1952년 충청남도 연기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서 배웠다.
1979년 계간 《문학과 지성》 가을호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 창작과 번역을 같이 해왔다.
2001년 이후 투병을 하면서 시작 활동을 한동안 중단하다
2006년 다시 시를 발표했다.
최승자는 현대 시인으로는 드물게 대중적인 인기를 얻어
박노해, 황지우, 이성복 등과 함께
시의 시대 80년대가 배출한 스타 시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시집
산문집
번역서
평가
맹문재는
1980년대의 한국 시문학사를 정리하면서
〈광주항쟁 이후 시의 양상과 특징〉이라는 제목 아래,
여성시의 확대를 그 시대의 한 특징으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최승자가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
마른 빵에 핀 곰팡이 /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일찍이 나는〉)라고 여성으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자학적일 만큼 드러내며
여성이 당하는 사회적 차별을 고발했다고 평했다.
시인 진은영은
자신의 시집 《우리는 매일매일》 '시인의 말'에서
최승자를 '우리들의 시인'이라고 칭했다.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