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가 이제는 아열대기후로 접어들었다고 하길래
'아~ 그럼 겨울에도 좀 따뜻해지겠다'
라고 생각을 했는데 터무니없는
오산이었습니다.
친구와 같이 갔던 고향집은 원시벌판같았습니다.
이틀전에 옛직장선배께서
저희 고향집근처에 어디 호젓한 전원주택
한 채 구해서 늘그막에 마실친구하자셔서
매물보러 간 김에
잠깐 집구경 시켜드리며 난방을 가동했다가
집나서면서 전원을 껐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아 할 수 없이 다시 가야했는데 마침 가까운 친구가 지방도시에서 온다고하여 읍내에서 만나 그 친구 차로 시골집에 가서 확인해보니
난방조종기는 꺼져있더군요.
읍내로 나와 점심반주를 좀 세게 하고
2차는 만두며 족발이며 잔뜩 챙겨 여관에 들어가 뜨뜻한 온돌에 엉덩이 붙이고 맥주로 판을 벌였습니다.
겨울철에는 수도관을 잠그고 안에 있는 물도 가능한한 다 빼내다보니
샘물로 생활하고 재래식변소를 이용하니까
손님들이 오면 많이 불편하여
그냥 수월하게 여관신세를 지면
따뜻하게 자고 씻을 수가 있어
이래저래 홀가분합니다.
월동채비를 여러 해 하다보니
들은 것도 있고 터득한 것도 있고하여
친구한테 일장연설을 했습니다.
때론 감탄하고 어떨 땐 고갤 끄덕이며
난방수안에 부동액을 얼만큼 채우고 순환시켜 난방관안에 골고루 퍼지게 하는지
세면장 좌변기 동파방지는 어떻게
하는지
온수 냉수꼭지를 중간에 놓고 물은
똑똑이 아니라 졸졸 정도로 틀어놔야
한다는 명강의에
경청을 하는 친구를 보며
교육의 보람을 느꼈습니다. ㅎ
친구는 새벽 3시에 일어나 일터로 가고
저도 몇시간 더 자다가 쓰레기를 모아놓고
첫차를 타고 상경길에 올랐습니다.
이른 시간이고 평일이라 30분 정도
당겨서 도착하리라는 기대는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30분 정도 영문도 모른 채 정차한 버스안에서 꼼짝도 않고 있다가
차가 움직이길래 창밖을 보다보니
씨제이 택배차량이 그야말로
종잇장처럼 구겨진 채 고속화도로
차선 하나를 막고 있었습니다.
운전석은 괜찮았으며
사람이 다친 흔적도 없었고
화물은 다른 차가 와서 실어갔는지
텅텅 비어있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28일이 그 회사
택배기사들 총파업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노면이 미끄러워 사고가 났었던 것 같습니다.
동서울에 내렸으나
청량리 대구탕집이 생각나서
주린 배를 ㅡㅎㅎㅡ 달래가며
청량리를 찾아
아점을 해결하고 귀가했습니다.
외출기능을 켜놓았으나
온수관이 얼었는지 냉수만 나오더군요.
며칠간 서울과 지방을 넘나들어 지친 몸에
짧은 수면으로 휴식을 주고
어두운 시간이었지만 동네산에 올라
늘 하는 운동치료 조금 하고
단골식당에 가서 매양 먹는 것으로
주문해놓고선
잠깐 뭘 가지러 집으로 갔습니다.
철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아ㅡㅡㅡ
난방연소기ㅡ보일러ㅡ가 터졌는지 문턱까지 물바다였습니다.
햐ㅡㅡㅡㅡ
이 거 누가 돈물어야지?
동파방지한다고 방한피복재 두르고
이불로 싸매둔 채로 난 안 건드렸는데.
백만원도 넘는 것 아닌가?
망연자실하여 있으려니까
때맞춰 주인아주머니가 퇴근하고
들어오시는 것이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업체에 전화를 하시고
전 문밖에 둔 장화를 갈아신고서야
물속을 디뎌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가
세숫대야를 챙겨나와 물을 퍼내기 시작했습니다.
물은 문턱 금간 틈을 통해 조금씩
집안으로 스며드는 중이었고요.
열 대야 정도를 퍼냈는데도
수위는 줄어들 기미가 없고
이삿오면서 일부 짐을 밖에다가
쌓아두었었는데 사기그릇인지
옷가지인지가 들어있는 종이상자는
다 젖어버렸습니다.
그릇이면 밤새 얼어서 터졌을 것이고
옷이라면 빨아입으면 되려나 모르겠네요.
잠깐 다녀온다던 사람이 함흥차사니
식당 쥔은 뭔일인가 하고 있을 거고
밥은 다 식고있을 것 같아
일단 멈추고 밥먹으러 갔습니다.
식당에서는
동네 설비하는 분을 잘 아는데
속일 사람이 아니니 소개해줄까 하는 걸,
집주인이 제조회사에 연락중이니까
괜찮다 거절하고 급히 막걸리 한 통에
저녁밥을 몇술 뜨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나때문에 손님들이 잘 찾지않는 막걸리를
사오는 수고를 한 식당에 미안해서
급한 판국에 뭔 막걸리냐고 여기겠지만
그 게 또 그런 것이 아닌 것 같아서.
집에 돌아와보니
그 새 계단과 바닥에 흘린 물이
얼어붙어 물퍼내는 작업은
느리고 위험해졌습니다.
연소통이 아니고 그밑에 급수관에서
새는 것 같다고 주인아주머니한테
얘기를 했었는데
업체와 통화해보니 기사가 지방에 있는데다가 밤이고 더구나 관이 탈난 거면
동네 설비업체에 알아보라고 했다네요.
다시 식당에 달려가 설비업자 연락처 받아
전화하니 이미 퇴근했는데 다음날 보자더군요 우리 집주인아저씨도 설비전문간데 안 계시냐면서.
집주인아저씨는 하필 밤근무중이었습니다.
다른 설비상을 찾아가보니 거기도 퇴근한다고 다음날 오전에 가능하다고
해서
낭패구나 싶었는데
역시나 퇴근준비하던 또다른 한 곳이
귀인이셨습니다.
내일 새벽에 일 나가야해서 너무 급하니
좀 도와주십사 했더니 선뜻 가보자시더군요.
장화 한켤레를 더 가지고 있었기에
설비상한테 신기고 전등을 대령하여
보조역할을 충실히 했습니다.
잠궈놓은 꼭지를 여니 갑자기 물이
솟구치고 비산하였습니다.
황급히 잠그고 보온재를 걷어내니
이음쇠부분에 밀봉고리ㅡ패킹ㅡ가 찌그러져있고 연결부가 저절로
분리되어있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이음쇠만 교체하면
되는 거였고
오만원으로 해결하였습니다.
비로소 안도의 한숨.
조심조심하며
물을 다 퍼내고
걸레로 적시며 짜내고
계단과 1층 바닥까지 물기없이 닦아
미끄럼 사고 나잖게 해놓고
수리한 관은 이불을 겹겹이 잘 싸매
놓았습니다.
원래 사용자책임이지만 비용을 대겠다고
오만원을 주는 주인아주머니께 놔두시라고 했는데도 고집을 부리셔서
제가 3만원은 부담하는 걸로 매듭.
돼지불백도 다 못 먹고 와야했던 아픔을
딛고 여유롭게 한잔하고자 다시 또
단골식당을 향했습니다.
맨처음 소개받았던 곳에서
부재중전화가 와있었습니다.
아마 미안해서 출장을 와주겠다거나
그런 전화였겠죠?
신경 써줘서 고맙다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동네인심이 체감온도를 확 높여 줬습니다.
단골식당 주인도 걱정했는데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무생채를 조금 청해서 탁주 한 통을
비우려 했는데 멸치조림에 돼지불고기를
내어왔습니다.
유산균음료도 주셨고.
고마운 이웃입니다.
흐린 날이었을텐데 집으로 오는 길은
달빛이 훤히 비춘 큰길 같았습니다.
지 앞가림이나 하지 무슨 연설씩이나
해제꼈는지ㅡㅡ
월동채비 명강사 체면을 확 구긴
날이었네요.
아침까지 다른 탈은 없었고
좀더 두고볼 일이지만
천만다행.
첫댓글 얼마나 당황스러웠을지 눈에 보이는듯 ..
더구나 겨울에 누수는 더 막막하죠
여기저기 사람을 댈수 없을때 막막함도..
정말 다행이에요 바로 누수부분 찾아 정리된거것도..
경비도 엄청 싸게~~
그곳 소개 받아 놔야겠어요~ ㅎㅎ
여튼 고생하셨어요^(^
연말 마무리 자아르ㅡ했습니다. ㅎ
흐미 이 추위에~~고생 많으셨겠네요ㅠ
혹독하게 송년식 치루셨음돠 ㅠ
천만다행으로ㅡㅡ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