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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에서는 김명숙 용의자는 1988년 8월 12일 저녁 3명의 공작원 남자에게 지시하여 니이카다현(新潟県) 真野町(현 佐渡市)의 자택 근처에서 曽我씨와 그 모친 미요시씨=당시(46)=를 납치, 가까운 해안에서 공작선에태워 북한으로 데려간 혐의다. 미요시씨의 행방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당시는 40-50세 정도로 조선노동당 공작기관「대외정보조사부」에 소속.현재는 70-80세로 신장 약 150센치라고 한다. 소가(曽我)씨는 新潟県警 등 경찰당국에 대해 지금까지「뒤로부터 온 3인조 남자에게 납치되었다. 배 안에서 일본어를 말하는 아주머니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발음은 일본인이 아닌 듯 했다」며 실행범 중에 여자가 있있음을 증언. 납치 후, 보자기에서 나와 행선지를 물었을 때, 「여자가『공부하러 가는 것』이라고 답했다」고 말했다. 그 후 새로이 북한의 시설에서 수개월간 김명숙 용의자와 생활했다고 증언, 현경은 비슷한 얼굴 그림을 공표했다. 또 수사에서 김 용의자가 일본에 체재하고 있은 적이 있었다는 사실도 판명. 범행 시는 실행 수일 전에 입국했다고 한다. 曽我씨는 납치직후보터 약2년 간 요코다(横田) 메구미씨=동(13)=와 같이 초대소에서 생활. 原敕晁씨=동(43)=등을 납치한 신광수 용의자가 교육계였다. 신광수 용의자는 대외정보조사부요원이었기 때문에 김명숙 용의자도 동부 소속이었을 의혹이 짙다. 경찰청의 漆間巌장관은 2일의 회견에서「북한이 6개국협의에 복귀하는 이상, 납치문제를 잊어버려서는 곤란하다. 日本은 잊지 않고 있다는 신호를 보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塩崎恭久관방장관은,「조속히 북한에 신병의 인도를 요구하겠다. 지금도 (타 납치사건에서의 용의자)인도를 요구하고 있으며, 한명이 늘은 형태로서 요구를 계속 하겠다」며, 금월 중에나 개최예정인 6개국협의에서도 용의자 인도를 압박할 방침을 분명히 했다. 産經新聞 2006. 11.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