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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로마서 8:26~28,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찬송가 370장(주 안에 있는 나에게)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성령께서 도와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친히 기도해주심으로써 결국 구원의 은혜를 입게 된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성도의 구원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견고하게 가지게 되고 시험과 역경 중에도 믿음을 잃지 않고 결국 성화의 계단을 한걸음씩 올라감으로써 온전함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이 험한 세상에서 끝내 신앙을 견지하고 성숙하게 됨으로써 하나님 백성다움을 잃지 않고 끝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됨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렇게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에 의하여 하나님 백성의 삶에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가는 과정이 있다고 사도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적인 손길을 통하여 결국 하나님이 예비하신 가장 좋은 것으로 바꾸어가시는 역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예가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삶 속에서 뚜렷이 나타나곤 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심을 받아 약속의 땅 가나안에 왔을 때에 큰 기근이 생기자 약속의 땅을 벗어나 물이 많은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아브라함의 이 행동은 인간적인 판단으로서 그가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우상 숭배의 나라로 내려간 일로 실수이자 불신앙적인 요소가 섞인 행동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지켜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기에 자기 아내 사라를 애굽의 사람들이 빼앗아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그의 예상대로 사라의 미모가 소문이 나서 애굽의 왕 바로가 자기 아내로 삼고자 데려갔습니다. 바로는 사라를 데려가면서 결혼 지참금조로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까지 선물로 풍성히 주었습니다. 그런 일을 당하면서 아내 사라를 빼앗기고 홀아비가 될 위기를 만난 아브라함은 애굽에 들어온 자기 결정을 후회했지만 때는 늦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잘못을 탓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애굽 왕 바로의 집안에 큰 재앙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꿈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신 것으로 보여지는데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나타나 꾸짖어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105편 5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기름부은 자를 손대지 말며 나의 선지자들을 해하지 말라”
이 말씀을 듣고서 바로는 자기 집안에 닥친 여러 재앙의 이유가 아브라함의 아내를 데려온 일인 줄을 깨닫고 아브라함을 불러서 말하기를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아무 해도 받지 않고 무사히 나왔는데 그냥 나오지 않고 모든 소유와 가축들과 롯의 가족까지 나오되 가축과 은과 금까지 풍부하게 가지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허물과 불신앙이 있었지만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으시고 아브라함을 보호해주시고 사라를 돌려보내주시고 도리어 많은 가축과 풍부한 은과 금을 가지고 돌아오도록 지켜주셨습니다.
후일에도 아브라함은 그랄 땅에 갔다가 애굽 땅에 갔을 때와 동일한 실수와 불신앙적인 행동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에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책망하지 않고 도리어 그랄 왕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셔서 아비멜렉을 무섭게 책망하셨습니다.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창세기 20:7)
이 때에도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 사라 때문에 이방인들이 자기를 죽이고 아내를 빼앗아갈 줄로 알고 자기 누이라고 속였으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책망하지 않고 도리어 그랄 왕을 책망하여 죽일 듯이 위협하고 다시 무사히 되찾아오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비멜렉이 사과의 증표로 양과 소와 종들도 아브라함에게 주고 사라에게도 은 천개를 주어서 마음을 위로해주었습니다. 사실 잘못을 행하고 빌미를 제공한 것은 아브라함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런 과정에서 애가 탔던 아브라함을 책망하고 벌주지 않고 그를 괴롭힌 자들에게 책망하시면서 위협하시고 손도 대지 못하게 해주시고 그 위기에서 건져내시고 도리어 선물까지 받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얼마나 위하시며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으로 바꾸시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손자요 이삭의 아들인 야곱의 삶 가운데서도 이렇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본래 기질이 욕심이 많고 질투심도 많고 술수와 꾀도 많았던 야곱이 쌍둥이 형 에서와 경쟁하여 장자의 명분을 차지하려고 하였다가 형의 분노를 사서 밧단아람 외갓집으로 일시적으로 피신을 가게 되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야곱을 자기의 백성의 시조로 삼기로 뱃속에서 이미 작정하셨고 벧엘의 돌베개 잠을 잘 때에 꿈에 나타나셔서 언약을 베풀어주셨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믿음의 족장이 되기에는 여러 모양으로 인격이 미성숙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의 인격을 담금질하고 연단하기 위하여 당근과 채찍을 준비해놓으셨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둘째 딸 라헬이 야곱의 마음을 사로잡게 하셔서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그 밧단아람의 삶이 힘들지 않게 해주셨지만, 외삼촌 라반은 야곱보다 몇배로 야비한 사기꾼이었기 때문에 야곱은 그 밑에서 일하면서 온갖 고초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라헬에 대한 연모하는 마음 때문에 이겨나가면서도 외삼촌이요 장인인 라반의 이기적인 사기꾼과 같은 행동을 통하여 마음에 지속적인 상처를 받고 괴로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야곱은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인간에 대한 실망감을 갖게 되고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의지하는 신앙이 깊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법을 전혀 몰랐고 자기 생각과 판단에 따라 성급하게 움직이는 삶을 살아왔지만, 이제 밧단아람에서 삶에서 기다리는 법을 배웠고 하나님께 자기 삶을 맡기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밧단아람의 외삼촌 집에서 생활한 이십 년의 세월 동안에 야곱은 인격과 신앙이 다듬어지는 기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인격과 신앙을 다듬고 성숙하게 하기 위한 훈련 과정에서 외삼촌 라반을 악명높은 조교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야곱은 사랑과 성공을 늘 꿈꾸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삶 속에서 인간의 사랑은 늘 한계가 있음도 라헬과 레아의 갈등과 라헬의 미성숙한 성품을 통하여 깨달았고, 오직 참되고 영원하고 신실한 사랑을 하나님께 두게 되었습니다. 또한 야곱은 자기 삶의 안전을 자기 자신이 결코 보장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손길만이 자기 삶을 안전하게 지켜주심을 절실히 깨달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야곱의 삶 속에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셨습니다.
또한 그 야곱의 열한 째 아들 요셉의 삶 속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하나님의 사역 모습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가시는 일이었습니다. 요셉의 인격과 신앙도 아버지 야곱 밑에서는 지극히 미숙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열한째 아들 요셉을 응석받이로 자라게 만들어놓았고 늘 다른 형제들 가운데 요셉을 편애함으로써 어린 요셉이 늘 자기 중심적인 성품으로 자라날 위험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요셉을 통하여 장차 온 가족 곧 구약 교회인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크게 번성하게 할 계획을 세우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도량이 크고 성품이 성숙하고 믿음이 큰 그릇으로 빚어가야 했습니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의 형들에게 시기심을 허락하심으로써 나이 17살 난 요셉을 애굽에 노예로 팔아넘기는 악행을 저지르도록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통하여 애굽에서 요셉은 연단의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애굽 왕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들어간 요셉은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해야 했는데, 고생 중에도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셨으니 그는 날마다 육신의 아버지 야곱 대신에 하나님 아버지의 따스한 위로와 보호를 느끼면서 점점 신앙의 사람으로 변화되어갔습니다. 그는 17살 때부터 그 집의 종으로서 성실하게 맡은 일을 하나 하나 지혜롭게 잘 처리함으로써 주인 보디발의 신임을 쌓아가서 그 집의 가정 총무 곧 그 집의 모든 일을 관장하는 가정 총무의 자리까지 올라가서 한 집안의 대소사를 감당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가정 총무가 되었을 때 그의 생각에 모든 일이 잘 되면 자기 고향 가나안으로 돌아가 아버지 집을 찾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을 지 모릅니다. 하지만 요셉도 이렇게 성숙해지고 있지만 아직 형들을 용서할 마음의 준비는 안되었고 그의 형들도 역시 아직 미성숙해서 동생 요셉을 팔아넘긴 악행에 대하여 깊이 회개하는 마음을 갖지 못한 상태인지라 회복하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셉을 더 성숙하게 하시려고 더 밑바닥으로 내려가게 하셨으니 보디발의 아내의 무고한 고발을 받아 왕의 죄수를 가두는 정치범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 감옥은 요셉으로서는 다시 풀려나올 가능성이 없는 곳이었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면서도 날마다 성실하게 생활했더니 마침내 간수장이 그의 성실함과 그의 인품을 신뢰하게 되어 감옥의 사무를 다 요셉의 손에 맡겨두고 요셉에게 맡긴 일은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않았습니다.
이로써 요셉으로 하여금 더 낮은 자리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신앙과 인품이 성숙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때가 차기까지 기다리게 하신 것입니다. 마침내 그의 삼십 세가 되자 하나님께서 바로의 두 관원장 술 맡은 자와 떡 맡은 자 두 사람이 바로에게 진노를 당하여 감옥에 갇혔다가 그들이 비범한 꿈을 꾸었을 때에 요셉이 해몽을 해주었는데 그 꿈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년 후에 바로가 칠년 풍년과 칠년 흉년이 닥칠 것이라는 영적인 꿈을 꾸었을 때에 술 맡은 관원장의 추천을 받아 요셉이 바로 왕에게 서게 되고 드디어 그 나이 서른 살에 애굽의 국무총리로 전격적으로 발탁되게 되었습니다. 이는 요셉이 애굽에 종으로 팔린 지 약 13년만의 일입니다.
그리고 그 후 약 10년 후에 형제들이 큰 흉년 중에 양식을 구하러 애굽에 왔다가 국무총리가 된 요셉 앞에 엎드리게 되었으니, 이는 그 때서야 요셉의 인격과 신앙이 온전해지고 구약 교회인 이스라엘이 애굽으로 가게 될 하나님의 작정하신 때가 다 찼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아직 미약한 가족 단위 정도일 때에 애굽이라는 좋은 환경에서 번성하게 하시고 때가 되면 그들을 이끌어내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려는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과 작정을 이루어갈 수 있도록, 하나님은 요셉을 그처럼 17살부터 고난의 폭풍 속으로 내몰고 때가 차매 그를 애굽의 국무총리로 세우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자기의 삶 속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섭리적인 손길의 의도를 깨달았기에 아버지 야곱이 돌아가신 후에 자기 형들이 자기 앞에 다 엎드려 용서를 청하였을 때 이렇게 자기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창세기 50장 19절로부터 21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창세기 50:19~21)
그렇습니다. 요셉은 자기 삶의 행로가 우연에 의하여 일어난 일들이 아니요 하나님의 작정 속에서 계획하신 바를 이루어가시고자 친히 인도해오신 일이었음을 깊이 깨닫고서, 형들이 자기에게 행한 악행을 다 용서하고 그 형들과 그 자녀들까지 품고 봉양함으로써, 그 가족 전체가 애굽 고센 지역에서 안전하고 평안하게 번성하여 큰 민족으로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택한 백성들의 삶을 다 주관하시며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으로 바꾸어주신다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우리는 실수도 하고 잘못도 저지르고 심지어 죄를 범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까지도 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과정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마치 옹이가 있는 나무라도 훌륭한 예술가의 손에 붙들리면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목각 작품으로 바꾸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메시야 가문을 보아도 심각한 죄의 얼룩이 있지 않습니까? 야곱의 넷째 아들 유다도 며느리 다말을 통하여 베레스를 낳았으며, 보아스도 이방 여인인 룻을 통하여 오벳을 낳았고, 성군 다윗에게도 여러 아내가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 중에서 우리아의 아내였던 밧세바를 통하여 얻게 된 솔로몬을 다윗의 후계자로 점지하셨습니다. 이러한 점은 하나님은 인간의 죄와 허물까지도 다 품으시고 인간 구원의 대업을 이루어가신다는 점을 말해줍니다.
신약 시대에 주님의 손에 잡혀서 크게 쓰임받은 사도 바울도 애초에는 주님의 교회를 모질게 핍박한 큰 죄인이었지 않습니까? 그리하여 부르심을 받은 바울이 그 자신의 과거의 악행을 기억하면서 그의 사역을 방해하는 거친 핍박 속에서 낙심하지 않았으며, 뜨거운 열심을 가지고 수많은 이방 영혼들을 건지고 교회를 세우고 영적 싸움을 치열하게 싸워서 하나님의 나라를 광대하게 세워가게 하는 귀한 일꾼으로 사용받았습니다.
이 모든 것을 보면 우리 삶에 안 일어났으면 좋았을 뻔한 쓰라린 실패와 고통과 좌절의 사건들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자기의 뜻과 계획을 이루기 위한 연단의 목적을 위하여 허락하신 과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우리의 죄악까지도 그 섭리의 손길을 통하여 선이 되게 하시기까지 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 삶에 이해할 수 없는 실패와 고통의 순간을 경험한다고 해도 이로 인하여 주저앉지 맙시다. 그러한 일들이 일어난 이유를 우리의 작고 불완전한 이해력으로는 절대로 다 알아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전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모든 형편과 사정을 다 알고 계시며 끝까지 보호하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고난과 역경 중에 고아처럼 홀로 두지 아니하십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 삶 속에서 판단력이 부족하여 실수를 자주 하기도 하고 기질과 육신적인 욕심이나 죄성 때문에 영향을 받아 그릇된 길로 가기도 하고 신앙심이 부족하여 고난을 자초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 하나님께서 약하고 미련하고 죄에 빠져 자초한 우리의 삶의 상황에서조차 우리를 버려두지 아니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그러하고 야곱에게 그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러한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편이 되어주시고 우리를 마귀와 세상과 악한 자들이 함부로 해치지 못하도록 방패가 되어주시고 반석이 되어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행한 모든 잘못과 심지어 죄까지도 합력하여 선이 되어 하나님의 원대한 뜻을 이루어가게 하시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지도록 바꾸어가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말씀에 약속하신 로마서 8:28 말씀을 항상 명심하고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지 말고 주님을 의지하고 평안을 가집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를 영원 전부터 택하시고 사랑하시고 우리의 삶 속에서 한결같이 우리를 붙들어주시고 모든 것을 다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주시는 성 삼위일체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