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사랑하고 떠난 아티스트
『신해철』, 강헌, 돌베개, 2018.
2014년 10월 27일 마왕 신해철(1968-2014)이 사망했다. 열흘 전 S병원에서 장협착증 수술을 받은 후 고열과 가슴 복부통증을 호소하다 심정지로 쓰러졌고 재수술 후 끝내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47세였다. 신해철은 1988년 대학가요제에서 락밴드 ‘무한궤도’로 출전해 ‘그대에게’를 부르고 그랑프리를 수상한다. 가요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신해철은 이후 밴드 넥스트(1992)를 결성하고, 솔로와 그룹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신해철의 갑작스런 사고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비보였다. 대중음악평론가 강헌(1962-)도 청천벽력 같은 속보를 보고 실감하지 못한다. 강헌과 신해철의 인연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해철이 1994년 초여름 《The Return of N.E.X.T Part1·The Being》를 발표하고 둘은 인터뷰어(강헌)와 인터뷰이(신해철)로 만난다. 저자는 대부분의 인터뷰가 수박겉핥기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는데 신해철은 달랐다고 회고한다. 인터뷰에서 신해철은 넥스트의 작업방향, 앨범의 메시지, 음악적 원체험 등을 거침없이 밝혔다. 강헌은 신해철의 음악을 이해했고 앨범을 존중했다. 이때의 인연으로 둘은 동료이자 벗이 된다.
신해철의 죽음 이후 강헌은 『신해철: In Memory of 申海澈 1968-2014』(돌베개)을 발표한다. 책의 첫 줄에서 강헌은 확실하게 밝힌다. 이 책은 비평가로서 쓴 한 아티스트에 대한 작가론이 아니며 “그저 어떤 시대를 긴밀하게 동행한 벗에게 보내는 조금 긴 추모사이며, 언제까지고 이어질 그와 그의 음악을 향한 추억의 되새김”(p.4)이라고 말이다. 고인의 발인날(2014년 10월31일)부터 쓰기 시작한 원고는 “스무 날이 채 되기 전에 원고 대부분의 집필을 끝내고”(p.29) 49재 제단에 바친다. 원고는 바로 출간되지 못하고 3년 정도 묵혀있다 출판된다. 강헌은 원고를 검토하며 감정적으로 통제되지 않은 부분도 보였지만 그대로의 출간을 굳힌다. 강헌은 평론가라는 임무를 버리고 지극히 개인적인 울분으로 쓴 <신해철>을 세상에 내놓는다. 책은 음악평론가가 아닌 인간 강헌이 친구 신해철에게 바치는 추도사이다.
음악평론가 강헌은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거쳐 음악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는 조용필과 송창식, 정태춘과 들국화의 광팬이었다. 그는 평론집 <김현식론>(1991)을 썼고, <상상>,<리뷰>등의 문화잡지를 만들었다. 들국화 헌정앨범과 노무현 추모앨범을 제작하는데도 앞장섰다. 록음악 영화 <정글 스토리>를 만들었다. 저서로는 <전복과 반전의 순간>, <강헌의 한국대중문화사>등이 있다.
각 장은 신해철의 음악을 연대순으로 묶어 ‘스타덤(Stardom)’ ‘밴드(Band)’ ‘솔로 플라이트(Solo Flight)’ ‘애티튜드(Attitude)’로 나뉜다. ‘스타덤(Stardom)’은 스무 살 신해철이 대학가요제에 부른 <그대에게>를 작곡한 계기와 하루아침에 스터덤에 오른 이야기로 시작된다. ‘밴드(Band)’에서는 신해철이 밴드활동에 대한 성공과 좌절을 담았다. 그가 스타덤에 오른 뒤 솔로와 밴드로 귀환하는 여정을 알 수 있다. ‘솔로 플라이트(Solo Flight)’는 솔로활동 시기의 힘들었던 일화를 모았다. ‘애티튜드(Attitude)’는 음악에 관한 고찰과 그의 정치적 행보가 담겨 있다. 신해철은 약자를 대변하고 사회적 발언을 했던 뮤지션이었다.
신해철은 서강대 철학과를 중퇴하고 음악에 생을 건다. 발표한 곡도 무려 432곡이며 정규앨범도 17집을 선보였다. 대표곡으로 ‘그대에게’, ‘해에게서 소년에게’, ‘일상으로의 초대’, ‘민물장어의 꿈’,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등이 있다. 그는 대중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뮤지션이자 90년대 세대들에게 철학적 공감을 끄집어낸 스타였다. 사랑스토리를 넘어 자기인식에 대한 관념적인 질문을 던졌다. 가사를 분석하면 시적, 문학적 가치가 뚜렷하다.
책은 대중문화사를 꿰뚫는 강헌의 해박한 음악적 지식과 필력도 돋보인다. 신중현을 시작으로 신해철에 이르기까지 100년이 되지 않는 한국 대중음악사를 단숨에 서술하고 있다. 트로트, 발라드, 댄스, 랩과 메탈, 락, 레게, 리듬앤블루스에 이르기까지 장르별 음악세계를 보여준다. 또, 시대의 스타였던 조용필, 김현식, 유재하, 서태지 등의 활동도 언급한다. 당시 음반시장과 권력관계, 가요와 대중의 호흡, 음악장르의 변천사까지도 가늠하게 된다. 한국 음악사에서 신해철이 남긴 음악적태도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흔히 데뷔곡을 뛰어넘지 못하면 뮤지션들은 “소퍼모어 징크스sophomore jinx”(p.67)에 매몰된다. 데뷔작이 너무 강렬하면 후속작에 실망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세월이 가면>을 부른 최호섭이 그랬고 ‘담다디’신드롬을 일으킨 이상은도 이 경우다. 신해철도 예외는 아니었다. 화려했던 데뷔곡 <그대에게>를 뛰어넘어야 했다. 그는 이 신드롬을 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아티스트이자 프로듀서로 솔로와 록밴드를 넘나들며 기로에 서야했다.
강헌은 신해철이 ‘노력파’였음을 밝힌다. 신해철은 천부적 재능을 타고 나지는 않았으며 자신의 한계를 알고 노력했던 뮤지션이라고 말이다. 신해철은 집은 없어도 음반제작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그는 고퀄리티 음반을 원했다. SF적 상상력이나 판타지에 대한 애정을 음악 세계에 투영했고, 다시 무명의 라인업(김세황, 김영석, 이수용)으로 밴드를 만들었다. 늘 새로움에 대한 도전과 갈망도 넘쳤다. 1990년 그는 이미 <안녕>에서 영어로 랩을 선보였고, 이를 서태지가 받아 한국어로 랩으로 훌륭하게 재현한다. 표절에 대한 언급도 그는 왜 가수들이 표절했는지 시원(始原)을 꿰뚫고 있다. 표절은 일제강점기시절 엔카를 받아들였던 슬픈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그에게 음악은 전부였다.
“공부하는 자는 남을 함부로 비난하지 않는다.”(p.261)는 말을 남기고 떠난 신해철. 그를 사랑했던 음악평론가 강헌은 이 책을 통해 ‘마왕’ 신해철을 다시 한 번 부활시킨다. 한국 포크 록의 대부 한 대수는 말했다. “음악은 진실로 마약이며, 한번 중독되면 돌이킬 수 없다. 우리가 음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우리를 선택하는 것이다.”(p.62) 음악은 신해철을 선택했고 대중은 그의 음악으로 행복했다. 자신만의 신념으로 음악을 만드느라 고독했을 뮤지션 신해철도 이젠 행복하길 희망한다.
<서평-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