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사를 연구한 시인 이동순은 "단단하지만 딱딱하지 않고, 카랑카랑하지만 애수와 정감으로 둘러싸인 목소리가 남인수 성음(聲音)의 핵심"이라고 했다.
소설가 김훈은 남인수 노래에서 영감을 얻어 단편 '고향의 그림자'를 썼다.
1959년 남인수가 '신라의 달밤'의 현인과 벌인 노래 대결은 가요사 명장면으로 남아 있다.
한 극장에서 두 가수가 번갈아 노래하다 남인수가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 하며 '낙화유수'를 부르자 승패가 갈렸다고 한다.
현인은 나중에 "그 양반을 도저히 못 당하겠더란 말이야"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 무렵 남인수는 '목포의 눈물'을 부른 이난영과 사랑에 빠져 행복의 절정을 누렸지만, 폐병에 걸려 1962년 6월 26일 마흔넷에 세상을 떴다.
남인수 50주기를 맞아 6월 1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남인수 특별전'이 열린다.
옛 음반과 악보, 남인수의 삶과 시대상을 담은 영상자료를 모았다. 원로 가수들은 10일 남인수 추모음악회를 열고, 옛 가요 팬들은 남인수 250곡 전집도 낸다고 한다.
'송창식 세대'인 진이정 시인은 10여 년 전 시 '애수의 소야곡'을 쓰고는 세상을 떴다.
그는 '남인수' 노래를 즐겨 부른 아버지가 젊은 시절 앓았을 슬픈 꿈을 생각하며 그 시를 썼다고 했다.
세대마다 부르는 노래는 다르지만 때론 좋은 노래가 세대를 이어주기도 한다.
김소월의 시가 지금도 한국인의 애송시이듯, 남인수 노래야말로 세대를 아우르는 한국인의 노래로 기릴 만하다.
<조선일보 만물상 박태현 논설위원>
이상의 글은 신문기사의 내용이다.
지금 이시간 가요무대 진주편이 방영되고 있는데 남인수의 노래들이 나오고 있네요.
하--이거 노래 들으랴 ---글 올리랴 왔다 갔다--
진주성 촉석루를 배경으로 가요무대 마지막 합창곡은 '애수의 소야곡'이 였읍니다
다음은 2년전에 필자가 이 카페에 남인수의 글을 올린게 있는데 아래에 넣어보겠읍니다.
불세출의 가요 황제 남인수
흘러간 한국가요사에서 두개의 큰 봉우리가 있다면
하나는 음악대학에서 성악을 정통으로 공부한 현인(1919~2002)이고, 또 하나는 천부의 재주로 고음과 미성의 가수인 남인수(1918~1962)이다
남인수는 1930년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가장 폭발적인 인기를 받고 있었던 '한국 트롯트계의 황제'였다.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올드팬들로 부터 정겨운 사랑과 그리움속에 회상되곤 한다
남인수는 그의 예명이고, 진주 출신으로 어릴때의 이름은 최창수이며 어머니의 개가에 따라 강문수로 호적의 성명이 바뀌었다
1938년 '애수의 소야곡'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라 채규엽 고복수등을 앞질렀다 (2년전 데뷰곡이였던 '눈물의 해협'을 곡명과 가사를 바꾸어 재취입했다)
애수의 소야곡은 그의 독특한 금속성 목소리와 애잔한 음색이 조화되여 듣는이의 마음을 파고든다
# 애수의 소야곡 (이부풍작사 박시춘작곡 남인수노래)
♬~~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요 만은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밤
고요히 창을 열고 별빛을 보면 그누가 불러주나 휘파람 소~리~~~
애수의 소야곡은 가버린 연인을 그리워하는 찟어질듯한 마음을 노래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라를 잃은 우국의 심정을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이중적 아픔을 노래하고있고 그것이 1930년대 민중의 가슴에 한과 비분으로 남아있다
당시 홍난파의 '울밑에선 봉선화'와 더불어 우리 민족의 겹겹이 쌓인 한과 애수를 표현한 대표적인 가요이다
♬~~울며헤진 부산항을 돌아다보니 연락선 난간마다 흘러온 달빛
이별만은 어렵더라 이별만은 슬프더라 더구나 정든 사람끼리 음 음 음~~
1940년 발표된 '울며헤진 부산항'(조명암 박시춘 남인수)은 우리민족의 아품과 상처를 함성으로 절규하고있다.
일제의 태평양 전쟁과 더불어 강제동원되여 가족과 정든사람과 생이별을 하고 떠나가는 애한을 부산항 연락선(관부연락선이 될터)에 싣고있다
남인수의 무대 상황은 하얀양복에 나비넥타이 흰색구두를 신고 한손에는 노래가사를 적은 메모지를 들고 간헐적으로 훔쳐보며 인기곡을 부를때는 그날 쑈무대의 절정을 장식하곤 했다
한편으로는 당구장과 일식집도 운영하는등 돈을 모으는 데는 악착 같았고, 한번 들어간 돈은 나올줄을 몰랐다 하여 '돈인수'란 별명이 붙기도 하였다. '여인수'라는 별명도 있었는데 공연이 끝나면 기생들의 인력거가 그를 모셔갈려고 줄을 이었다나--
이처럼 폭발적인 인기와 생활의 뒷면에는 지병인 폐결핵으로 건강을 잃고 있었다
# 이별의 부산정거장(호동아 박시춘 남인수)
♬~~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슬픈 부산 정거장
잘가세요 잘있어요 눈물의 기적이 운다
한많은 피난살이 설음도 많아 그래도 잊지못할 판자집이여
경상도 사투리에 아가씨가 슬피우네 이별의 부산 정거장~~~
1954년 피난생활을 회고하며 전쟁의 상흔을 어루만지던 애환의 가요이다
이노래는 당시에 10만장의 레코드 판매고를 기록 하였는데, 오늘날의 1천만장~2천만장에 버금갈 정도이고 그의 건재함을 과시하는 동시에 제2의 황금기를 구사하게된다
또한 '이별의 부산정거장'을 국민가요로 대히트 시킨이후, 남인수는 현인과 더불어 한국가요계의 쌍벽을 이루면서 불멸의 명성을 얻게되고 최고의 국민가수로 대중의 뇌리에 각인된다
이후에도 50년대 중후반 '추억의 소야곡' '청춘고백' '산유화' '무너진사랑탑'등을 유행시킨다
한편 '목포의눈물'을 부른 이난영(1916~1965)과는 새로운 부부 관계로 발전한다 (*이난영의 남편이였던 김해송은 6.25때 월북 작곡가로 불귀의 몸이 된다)
# 산유화 (반야월 이재호 남인수)
♬~~산에 산에 꽃이피네 들에들에 꽃이피네
봄이오면 새가울면 님이 잠든 무덤가에
너는 다시 피련마는 님은 어이 못오시는가
산유화야 산유화야 너를잡고 내가운다
*김소월의 시 '산유화'가 연상된다.
(산에는 꽃피네 꽃이피네 갈봄 여름없이 꽃이피네.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여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새여 꽃이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지네 꽃이지네 갈봄 여름없이 꽃이지네.)
남인수가 무대에서 앵콜을 받으면 으례 불렀다는곡,산유화.ㅡ
우리 가요계에 '황성옛터'와 더불어 몆 않되는 명곡으로 꼽힌다.
마치 피를 토하듯 처절한 울음을 우는 두견새와 같이 절규와 통곡에 가까운 노래이다
그리고 산유화의 가사처럼 그도 병고로 운명의 불길이 꺼저가고 있었으니---
이난영의 무릎에서 마지막 읊은 '황성옛터'를 끝으로 1962년 6월 애타는 마음을 뒤로하고 눈을감았다.
그의 나이 45세. 생전에 1천여곡을 남겼다.
(*이난영도 생의 기력을 잃었는지 3년뒤인 1965년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남인수와 명콤비를 이루어 수많은 곡을 발표하였던 가요계의 대부로 불린 작곡가 박시춘은 '우리시대에 있어서 남인수를 능가하는 가수는 나오지 않을것이다' 라고 애석해 했다
그의 장례는 한국연예협회장으로 조계사에서 치러젔고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장송곡 대신 그의 데뷰곡이자 출세곡인 '애수의 소야곡'이 연주되였다.
♬~~ 차라리 잊으리라 맹세하건만 못생긴 미련인가 생각하는 밤
가슴에 손을얹고 눈을 감으면 애타는 숨결마저 싸늘하고나
그의 노래에 대한 평가는.ㅡ 타고난 미성에다 폭발하는듯한 발성법. 폐부를 찌르는듯한 호소력. 3옥타브를 거침없이 소화시키는 자유자재한 가창력등으로 25년이나 정상을 지켜온바 '가요황제'라는 말로써 총괄될수 있겠다. 국악을 하는 명창들도 그에게는 주눅이 들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그의 사후에도 고태원 남강수 김광남등이 창법과 음색을 이었고 많은 영향을 끼쳤다
후일 여러 기념비 추모비등이 세워젔는데 진주 진양호에 노래기념비와 동상이 있다
1996년에는 진주시와 진주 MBC가 합작하여 '남인수 가요제'를 진주에서 매년 개최하였으나 남인수와 박시춘등 초창기 가요 멤버 20여명등이 친일 인명사전에 수록됨으로써 12회를 끝으로 2008년부터 중단되여 있다. (*1942~43년 일제의 만행이 극심할 무렵 '혈서지원'등 친일 군국가요를 만들어 불렀다는 것인데 이른바 친일 연예인이다 그당시 상황이 어쩔수없지 않았느냐는 옹호론도 만만 찮다)
남인수의 히트곡을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다
물방아사랑(1937년) 애수의소야곡 꼬집힌풋사랑 청노새탄식(이상1938년)
감격시대(39년) 울며헤진 부산항(40년) 황성옛터(41년) 남매. 낙화유수(42년)
서귀포칠십리(43년) 가거라 삼팔선(46년) 달도하나 해도하나(47년) 고향의 그림자(53년)
이별의 부산정거장(54년) 추억의 소야곡(54년) 청춘고백(55년) 산유화(56년) 무정열차(57년)
울리는 경부선(58년) 무너진 사랑탑(5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