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 公所] (9) 춘천교구 강촌본당 광판공소
공소 신축 꿈꾸지만 맹지로 묶여 애태워
- 춘천교구 강촌본당 광판공소는 토박이 신자와 귀촌 신자들이 조화를 이루어 가꾸고 있는 활기찬 공소이다. 서울대교구 신내동본당 신자들의 도움으로 공소 건립 40년만인 지난 2011년 다시 고친 공소 내부.
춘천교구 강촌본당 사목구 내에 3개 공소가 있다. 후동ㆍ추곡ㆍ광판공소이다. 강촌본당과 관할 3개 공소는 춘천교구 주교좌 죽림동본당 공소로 신앙 공동체를 시작했다. 강촌과 후동은 1958년, 추곡은 1960년에 공소가 설립됐다. 광판공소는 기록에 남아있지 않지만, 강촌ㆍ후동공소와 함께 1958년에 설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춘천 남쪽 바깥에 자리한 강촌본당과 세 공소 지역에 본격적으로 선교가 이뤄진 때는 1956년께이다. 6ㆍ25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은 이재민들을 돕기 위해 구호물품을 지원하는 교회 활동으로 시작됐다.
너른 벌판에 자리한 공소
광판공소는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장터골길 11-2에 자리하고 있다. 강원도 춘천시 남서부에 위치한 공소는 서쪽으로는 경기도 가평, 동쪽으로는 춘천시 신동면, 남쪽 홍천군 서면, 북쪽으로는 춘천시 서면을 접하고 있다. 너른 벌판에 마을이 세워져 예로부터 ‘광판(光坂)’이라 불렀다. 마을 남쪽으로 시냇물이 흐르고 너른 벌판 구릉 사이로 옹기종기 마을이 들어서 있는 전형적인 농촌이다. 광판리 일대 마을 이름도 정겹다. 오일장이 서던 마을이라 해서 ‘장거리’, 탑이 많아 ‘탑골’, 옛날 집터가 있던 골짜기여서 ‘텃골’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광판공소는 도로명으로 ‘장터골길’로 불리는 오일장이 서던 장거리 마을에 있다.
- 광판공소는 맹지에 지어져 건축법상 불법 건출물이다. 신자들이 만들어 놓은 십자가 너머 폐가와 방치된 땅을 매입해 도로 진입로를 만들어야만 맹지를 풀 수 있다.
광판 오일장은 유명했다. 1920년대 들면서 조선총독부는 조선 시대 역로(驛路)를 대체할 신작로를 깔았다. 일제는 춘천-홍천-횡성-원주로 이어지는 조선의 역로를 넓혀 신작로로 대체했고, 춘천-양구-인제-간성을 연결한 도로를 새로 만들었다. 신작로가 닦인 후 광판리는 면 소재지가 아닌데도 1과 6이 끼이는 날에 큰 오일장이 들어섰다. 두메산골이 아닌 너른 벌판에 장이 서는 건 당연하겠지만 오일장이 서면서부터 광판리는 바뀌었다. 장이 서는 날에는 동네가 시끌벅적했다. 춘천과 홍천뿐 아니라 인근 20여 개 마을 주민들이 광판 장거리에서 물물 교환을 하고 생필품을 사갔다. 춘천 출신 수필가 심창섭씨는 “장터는 민중의 마당”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글처럼 장터는 길바닥에서 누구나 서로의 물건을 주고받고 사고파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또 바깥세상 소식은 물론 새로운 문명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소통의 창구로 일상의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곳이었다. 광판 오일장은 1991년까지 그렇게 명맥을 유지하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58년에 시작된 선교
인심 좋고 흥이 있고 활력 넘치던 이곳에 복음이 전해진 것은 1958년 제16대 죽림동본당 주임으로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아서 맥마혼(Arthur MacMahon, 한국명 안성도) 신부가 부임하면서이다. 맥마혼 신부와 한동수(바오로) 전교회장이 1958년 무렵 광판리에 찾아와 선교하고 첫 교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정집에서 교리를 가르쳤지만 얼마 안 가 광판초등학교 교실을 빌릴 만큼 예비신자가 늘었다. 몰려드는 신자들을 감당하지 못해 1961년 현 공소 땅을 사서 천막을 치고 교리 수업과 공소 예절을 했다. 지금도 광판공소 신자 수는 교적상 200명이 넘는다. 하지만 대부분 고령자여서 현재 주일 미사에 참여하는 신자 수는 평균 40~50명이라고 한다. 요양원에 입원해 있는 적지 않은 신자들이 비록 공소에 나오진 못해도 교무금은 모두가 빠지지 않고 낸다고 한다.
과거 오일장으로 활력이 넘쳤던 곳이어서인지 광판공소에 들어서면 묘하게 흥이 느껴진다. 1973년에 지어진 낡은 공소 건물이지만 깨끗하다. 신자들도 대부분 70대 이상이지만 젊다. 박광섭(석두 루카) 회장과 김경수(요한) 운영위원장, 허성재(요한) 총무, 이선호(요한) 선교사 등이 주축이 되어 공소 살림을 맡아 하고 있다. 공소는 토박이 신자들과 귀촌해 정착한 신자들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토박이 신자들은 주로 오이와 가지, 옥수수 농사를 짓고, 귀촌한 신자들도 농사를 짓거나 펜션업을 하며 생활하고 있다. 또 별장을 지어 주말을 지내고 도시로 가는 이들도 있다. 늘 신자들이 교류하다 보니 가족 같은 분위기이다. 다 같이 모여 공소를 가꾸고 있다. 공소 창문 달기, 전기ㆍ방수공사, 도배, 조경, 잔디 심기 등 온갖 일을 함께한다. 매 주일 오전 7시 30분에 주일 미사가, 주중 수요일 오후 7시에 평일 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교육관으로 공터에 비닐 천막을 지어 이선호 선교사가 성경과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
- 광판공소의 살림꾼들. 왼쪽부터 허성재(요한) 총무, 김경수(요한) 운영위원장, 박광섭(석두 루카) 공소 회장, 이선호(요한) 선교사.
새로운 공소를 꿈꾸며
광판공소가 있는 춘천 남산면 일대는 지금 ‘남춘천 제2 산업단지’ 조성 공사가 한창이다. 2028년 완공되면 이 일대에 정밀의료산업 단지 중심의 복합도시가 들어선다. 그래서 광판공소는 신자들이 늘어날 것을 대비해 공소 건물 신축을 포함한 증ㆍ개축 계획을 세우고 있다. 주차장을 지을 땅도 사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광판공소 땅이 건축법상 ‘맹지’로 묶여 있어 현실적으로 건축 허가 대상이 되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다. 건축법에 따르면 건축물의 대지 2m 이상이 보행과 자동차 통행이 가능한 너비 4m 이상의 도로에 접해야 한다. 사방이 타인의 토지에 둘러싸여 도로와 직접 연결되지 못하는 땅이 맹지이다. 그래서 도로와 접한 땅을 매입하는 것이 광판공소 신자들의 숙원사업이다.
이선호 선교사는 “공소 옆에 도로와 접한 폐가와 오랫동안 방치된 땅을 사려면 비용이 2억 원 정도 들어 공소 신자들이 애태우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박광섭 공소회장은 “공소에 성체를 모시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신자들의 소망”이라며 “수제비를 나눠 먹으며 함께 공소 터 다지기를 하던 가족 같은 공소 전통을 계승해 아름다운 공소로 가꿔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