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것도 모를때 1978년 대구제일모직공장으로 내려왔다 방적과에서 그 공동체에 속한 수녀님을 만나고
매달 모임에 공동체를 방문했다. 한국인 3명 일본인1분 프랑스인 1ㅜ분이셨다
그곳의 영향을 받아서 1980년도 계산동에서 세례를 받았다 1983년 대구를 떠날때까지 그 공동체와 연을 맺었다
그이후 세월이 흘러서 목포삼학도본당의 정신부님을 따라서 목포항 건너편에 언덕을 올라 찾아간 공동체도
바로 대구에서 만난 그 공동체였다. 가난한 곳에서 가난을 밥먹듯이한 자배들이었다
그이전에 서울에서 명동성당에서 행사가 있었을때 잠시 지나쳤지만 그때에는 만나지 못했다
가장 잘 모르는 공동체이기도 하고 가장 마음에 와닿기도 한 묘한 느낌이 나는 공동체에 편지글을 찾아서
여기에 소개해본다 진정으로 아나윔정신으로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 강순화 자매의 편지
저의 우정의 사도직에 대해 설명을 드리기 전에 우선 샤를르 드 후코 수사님의 영성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샤를르 수사님의 영성을 조금이라도 알아야 저희의 일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샤를르 수사님은 프랑스 파리에서 귀족으로 살다가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떠났습니다.
나자렛에서 예수님께서 걸으셨던 먼지 나는 길을 걷고 목공소를 보면서 예수님의 삶에 반해버렸습니다.
성서는 예수님의 30년 동안의 나자렛 삶에 대해서 아주 조금밖에 언급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숨은 생활이라고 표현하지만, 사실은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드러내신 곳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 삶을 나누면서 반복해서 이야기할 것이고 조금씩 아, 그렇구나! 하고 동의하게 될 것입니다.
참된 이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샤를르 드 푸코
샤를르 수사님은 돌아가시기 바로 전에 “너 거기서 뭐하니?”라고 묻는 친구의 편지에 이렇게 답장하셨습니다.
“오래된 친구들과는 우정이 더욱더 깊어가고, 새로운 사람도 사귀고,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려고 노력하고,
기회가 닿으면 하느님이 얼마나 자비로운 분인지 이야기 나눈다.” 샤를르 수사님은 당시 아프리카 뚜아렉 언어사전,
속담 모음 등 지금도 이 민족이 사용하는 책을 쓰고 있었지만, 이렇게 대답한 것은 그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샤를르 수사님은 사제가 없는 곳에 가서 미사를 봉헌하며 투신하기 위하여 아프리카 이슬람교도들에게 갔습니다.
그곳에서 아파 죽을 지경이 되었을 때, 이웃 이슬람 친구들이 멀리까지 가서 염소젖을 구해다 살려주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이 친구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제가 아니라 환대를 베풀 수 있는 상대임을 알아듣게 되었습니다.
형제적 우정을 나누는 것이 복음을 삶으로 외치는 것임을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저희 수도회(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는 현재 많은 나라 이슬람 신도들 사이에서 우정을 나누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친구들이 천주교로 개종하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참된 이슬람이 되길 바랍니다.
이러한 영성을 살고자 하기에 앞으로 제가 나눌 이야기는 우정을 통해 나누는 삶의 이야기가 될 것이며,
외국에 사는 여러 선교사들의 이야기와는 좀 다를 것입니다.
멕시코에서 노숙자들과 우정을 나누며
제가 이곳 멕시코에 처음 와서 적응하던 시기에는 모든 것이 새롭고, 이해를 주고받는 통교가 부족해서
경험을 나누어 달라고 했더라면 입에 거품을 물고 끝없이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15년 이상 살고난
지금은 모든 것이 평범한 일상생활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생활을 주님의 시선으로 돌아보는
기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저는 올해 들어 여러 가지 일을 시작했습니다. 우선순위로 정해서 하는 일은 공원에서 노숙자들과 매주 기도하는 것입니다.
저의 수녀원에서 2, 3년 전부터 마약 때문에 정신이 자꾸 쇠약해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적어도 자신을 살피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어서 무엇을 하면 좋을까 찾다가 시험적으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기도”라는
나름대로의 이미지를 상상하시겠지요. 그러나 저희가 공원에서 하는 기도는, 글 한 줄을 열 번 반복해서 읽어도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뇌신경이 파괴된 친구들, 공원에서 오랫동안 노숙자로 살아왔기에 다른 곳에 적응할 수 없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기도입니다. 저희는 다만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맥락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려는 것뿐입니다.
실험적으로 해본 기도가 우리 친구들 처지에 맞는다는 확신이 서면서 다른 수도회 수녀들을 초대했고
지금은 네 수도회에서 함께하고 있습니다. 제게는 익숙한 일이었지만, 함께하는 다른 수녀님들을 통해서
저도 새로운 힘을 받고 있음을 느낍니다. 물론 일을 결정하는 데 모두의 의견을 존중하려면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여러 수도회가 함께 한다는 의미에서 수도회의 미래를 생각하는 기회로 삼고 있습니다.
수도회의 미래는 서로가 서로에게 속하며 살아가는 데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 공원에서는
주로 노숙자와 매매춘 남녀와 그들의 손님들도 만납니다. 제가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 안에서는
하느님의 현존에 대해, 저의 어린 시절 상처에 대해, 기본적인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다른 가면 없이 직면하게 됩니다.
앞으로 제가 가장 많이 소개하게 될 친구들입니다.
▲미사에 참석한 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 (사진/한상봉)
가계에서 일하며 생계를 돕고 공원에서 이야기를 들으며..
그 다음에 하는 일은 이곳 멕시코 교구 까리따스에서 운영하는 프로젝트인 “들으며 다닌다”에 일주일에
이틀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 일은 제가 기도하는 공원에서 약 30~40분 정도 떨어진 공원에서 하는데,
커피를 가지고 가서 말을 들어주길 바라는 사람이 있으면 들어주는 것입니다. 여기에 갈 때에는
“나는 너의 이야기를 들어주려 여기에 있다”고 적힌 빨간 티셔츠를 입고 갑니다. 주로 노인과 우울증 환자가
많은 지역인데 역시 이 공원에서도 노숙자를 많이 만나게 됩니다. 이 일은 제가 급료를 받고 1년 계약으로 하는데
1년 후 결과에 따라 계속할 것인지 결정합니다. 이 급료만으로는 생활이 안 되므로 일주일에 3일
이곳 한인 가게에서 일하는 중입니다.
가게에서 일하면 상인들의 세계와 교포들의 세계를 접할 수 있습니다. 돈 때문에 외국에 와서 언어와
문화의 다름에 매일 충격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온 세상의 흐름 한가운데 있음을 느낍니다.
그러나 제가 하는 다른 일들과 시간 조정이 어려워 3일을 파출부 일로 바꾸려고 알아보고 있습니다.
일을 그만두고 새로 찾을 때마다 모르는 것에 대한 불안을 느낍니다.
제가 수녀원에 입회해서 올해로 30년이 되었는데 그동안에 일을 한 곳은 이루 다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80년대 초 노동생활을 시작으로 공장도 여러 곳을 다녔고 농사일도 해보고 파출부도 여러 곳에서 해보고,
유럽에서는 집시들과 장에 다니며 조그만 물건들도 팔아 보았습니다. 그렇게 여러 일을 해보고 온갖 사람들을
만나 보았지만 안정된 수입이 없거나, 일을 새로 찾을 때 느끼는 불안은 여전히 제가 다루어야 할 숙제로 따라다닙니다.
요즘 경제위기로 실업자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기도할 때 그들과 함께 주님께 갑니다.
"예수님, 오늘 하루 제가 만나는 모든 사람 안에서 만납시다"
아침에 일어나면서 복음 말씀을 떠올리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면 기쁠 것입니다. 저는 제가 일하는
여자가방 가게 일을 가장 먼저 떠올리면서 “예수님 오늘 하루 제가 만나는 모든 사람 안에서 만나요”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시장으로 일하러 가는 상인들, 점원들, 물건 사는 사람들, 커다란 무리 안에
저도 바쁘게 뛰어다니며 바쁘다고 타령하며 매일을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오늘의 삶은 살고 나면 더 이상 바꿀 수 없는데 어떻게 일이 모든 것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일만 하고 살았다고 한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남쪽 치아파스라는 주에서 일을 하러 온 인디언 동료와 가게에서 나눈 이야기를 적어봅니다.
“나의 가족은 스페인 이름으로 다니엘라라고 나를 부르지 않아.” “그럼 너의 언어로
너의 이름을 어떻게 부르니?” “윌이라고 부르지, 학교에서는 두 가지 언어로 가르쳐도
모두들 스페인어만 사용하고 집에 가면 우리 언어만 사용해.” 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
그래, 인디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무시당하니 당연하지.” “나는 돈을 좀 모아 대학교에 가려고 올라왔는데
다 쓰고 한 푼도 모으지 못했어, 결국 일만하고 돈을 모으지 못하니 시골로 다시 가서 아버지 농사일이나 도와야지,
오빠가 이번 급료 타면 내 차비를 보태준댔어….”
정말 이들이 받는 급료는 아주 조금이고 자기 몸 하나도 알뜰해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순간 세상이 불공평함을 느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도록 일하고도 경제적으로
힘겹게 지내나! 오늘 기도는 이런 친구들을 지향에 두고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