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살아갈 이유 있음은
솔향 남상선/수필가
나는 꽃이 좋아 화원을 종종 찾곤 한다. 꽃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 향이 좋아 사람을 매료시키기도 한다. 어떤 꽃은 아름답기는 하지만 향이 없는 것도 있고, 향은 있는데 외양이 탐탁지 않은 것도 있다. 호불호를 따질 필요 없이 진정 꽃다운 꽃은 외양도 아름답고 향도 있는 꽃이라 하겠다.
사람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외양은 그럴싸한데 인간다운 면과 멋이 없어 비단보에 개똥을 싼 채로 사는 사람도 있다. 비단보에 개똥을 싼 인간으로는 살지 말아야겠다.
꽃은 향기가 있든 없든 물을 주고 공을 들인 사람에게는 마음을 즐겁고도 환하게 해 준다. 나도 꽃의 철학을 배워 꽃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 나에게 정성을 쏟고 사랑으로 공을 들인 사람들이 숱하게 많기 때문이다. 그런 분한테 받은 사랑을 100분의 1이라도 보은하며 살다가 갔으면 한다. 이것이 바로 나의 살아갈 이유 있음은이라 하겠다.
인생고해(人生苦海)라는 말도 있듯이 인생살이가 평탄한 과정만은 아니다.
요즈음 우리가 흔히 듣는 말에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이 있다.
누구랄 것 없이 부유하고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높은 가정에 태어나 경제적 여유도 있고 좋은 환경에 사는 금수저로 태어나길 좋아하는 게 인지상정이라 하겠다.
의문의 여지없이,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부모로부터 경제적 도움 없이 흙수저 인생으로 살기를 싫어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이라 하겠다.
나는 흙수저로 태어났다. 거기다가 키(신장)까지 작아 열등의식을 달고 살았다.
150㎝밖에 안 되는 단신이라 대학을 다닐 때는,
“저기 난쟁이 지나간다.”
“아이고, 대학생이란 게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1학년보다 더 작아!.”
이런 멸시와 조롱을 받으며 살았다. 거기다 가난하여 학비 조달을 할 수가 없었다. 하루 3시간∼4시간씩 자면서 4파트 아르바이트에 코피를 흘리면서 고학을 해서 대학을 졸업했다.
난쟁이란 별명에 쓰러져가면서도 의지의 투쟁을 했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칠전팔기의 정신으로 열정을 불살랐다. 삶이 이렇다 보니 내 인생 자체가 싫어졌다. 염세증인지 사는 것조차 부담스럽고 살기가 싫어졌다.
다른 자식들은 다 크는 키도 우리 부모님은 나를 왜 이리 작게 낳아 주시어 손가락질 받으며 살아야 하나? 이런 생각에서 부모님을 원망도 미워도 했다.
그래서 죽으려고 금강다리를 몇 번이나 갔다 오기도 왔다. 이렇게 어려워할 때 내 주변에는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분들이 계셨다. 그분들의 보듬어 주시는 따뜻한 가슴과 격려, 사랑이 있었기에 내가 지금껏 살고 있다. 느꺼운 감사를 드린다.
나는 키 작은 것이 철천지한이 되어 피나는 노력을 했다. 실력 있는 교사로 인정받는 것만이 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시조 가사 등의 문학작품을 닥치는 대로 암기하고 공부를 열심히 했다. 거기다 4파트 중고생들 아르바이트 하느라 다양한 참고서와 문제집도 숱하게 공부했다. 그 덕분에‘걸어다니는 사전’이란 별명까지 붙었다.‘교과서를 다 암기하는 교사’라는 꼬리표까지 곁들이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실력 있는 교사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 바람에 초임지 덕산고등학교에서 5년 근무하고 70년대 전국의 명문고로 유명세를 타는 대전여자고등학교로 할애내신이 되어 종이쪽지 한 장으로 가게 된 것이다. 가자마자 3학년 담임을 하게 되고 그것이 꼬리표였는지 가는 학교마다 3학년을 맡게 되어 교직 생활 39년 중에 29년을 3학년 담임을 하게 된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키가 작았기에, 가난한 흙수저로 태어났기에, 세칭 다른 사람들이 얘기하는‘작은 거인’이 돤 것이다. 한 때는 미워도 원망도 했던 부모님께 용서를 빌며 감사를 드린다. 단신으로, 흙수저로, 낳아주신 덕분에 남상선이란 이름 석 자가 영광을 누리며 살게 되었다. 어려운 상황에서 공부한 덕분에 내가 약자의 설움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그 바람에 그늘진 곳에 있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고 따뜻한 가슴으로 조금은 베풀며 사는 법도 터득하게 되었다.
나는 살면서 제자, 지인, 친구들로부터 엄청난 사랑을 많이 받았다. 아마도 내가 받은 사랑의 열기나 따뜻한 가슴의 온도를 계량화하여 수치로 나타낸다면 수천 도를 능가할 것이다. 용광로도 녹여낼 수 있으리라.
그 동안 받은 사랑을 100분의 1이라도 보은을 하고 내 눈을 감아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아직은 그것이 안 돼서 내 인생 소풍 길 못 마친다. 또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기에 내 그들을 위해서 열심히 사는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내 살아갈 이유 있음은’이다.
내 대학을 졸업했지만 내세울 만한 공부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 대학 생활의 총 결산이라는 게‘인생은 의지의 투쟁’이란 몇 글자만 가슴에 새겼을 뿐이다.
내 살면서 몸소 터득한 것은 음수사원(飮水思源:물 한 방울을 마셔도 근원을 알고 마셔라. 근본을 생각하며 살라는 뜻)이다. 또 춘화현상(春化現象)이다
저온(시련)을 거쳐야만 꽃이 피는(성공) 것을 '춘화현상'이라 한다. 인생도 마치 춘화현상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온상의 좋은 조건 속에서 자라난 화초를 부러워만 해서는 안 된다. 온실 속은 모진 비바람이나 매서운 추위를 모르기 때문에 온실 밖에 내 놓으면 혹한의 추위에 바로 동사하고 폭염의 더위나 비바람에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식은 온상 속의 꽃으로 키우지 말고 야생화로 키워야 한다.
인생의 눈부신 꽃(빛나는 성공)은 혹한(온갖 시련)을 거친 뒤에야 피는 법이다.
춘화 현상을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
‘내 살아갈 이유 있음은’
모진 비바람과 슬픔, 아픔 속에서도
내 살아갈 이유 있음은 내 안에 사랑이 있음이요,
아직 보은할 사람이, 내 돌봐야 할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첫댓글 "춘화현상"
어려움끝에 피어나는 "춘화현상"
선생님은 만고에 보배중
보배 이십니다.
선생님 처럼 가슴이 따뜻한사람이 있다는걸
처음 알았습니다.
따뜻한 빗물로 만물을 소생시키는 이타의마음.
명심또명심해야 되겠습니다.
남상선선생님께선 걸어다니는 사전. 또는 다이아몬드 라고 이름 지어주신 임양덕 선생님도 생각이나네요.^^
새벽에 좋은 글을 올려주셨네요 :) 작가님 말씀처럼 받은 사랑의 1/100이라도 갚아나가며 살아가야겠습니다. 모진 세월 긍정적인 마음으로 이겨내신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