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내서 빚 갚기', 자영업자 탈출구는 없다
[늪에 빠진 중소상인·<9>] '대출의 덫'에 걸린 자영업자들
15년 넘게 수영용품점을 운영하는 이만수(가명·62) 씨. 이 씨는 2003년 한 시중은행에서 8000만 원을 대출받았다. 실내수영장들이 한두 곳씩 문을 닫자 납품할 곳이 줄어 운영이 어려워진 탓이다. '경기가 풀리면 이 정도 빚은 갚겠지'하던 생각은 오산이었다. 상환 과정에서 소득이 줄다 보니 운영자금을 대기 어려워져 다시 신용대출이나 카드론을 사용했다. 계속된 불경기로 최근에는 급기야 현금서비스에 전세자금 대출까지 받았다. 이 씨의 부채는 여전히 8000만 원이다. 최근에는 월 70만 원인 이자조차 두 달 넘게 밀려 결국 신용회복 절차를 밟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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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영업자들이 빚에 허덕이고 있다. 신용회복위원회에서 상담 중인 자영업자 ⓒ프레시안(서어리) |
이 씨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편의점을 운영하다 지난해
장사를 접은 장명훈(가명·55) 씨가 2002년 처음 받은
대출액은 3000만 원이었다.
지금 대출 잔액은 2억이 넘는다. 10년
사이 7배가 불은 셈이다.
지금까지 빚을 낸 횟수만 시중은행 6번,
대부업체 4번이다.
신용카드 불법
할인을 말하는 이른바 '카드깡'에도 여러 번 손을 댔다.
장 씨가
금리가 40%에 육박하는
대부업체 대출을 받은 건 2010년, 편의점 20m 앞에
대형마트가 생겼을 때다. 안 그래도 주변에 편의점이 우후죽순
생기며 지지부진하던 매출은 대형
마트가 들어선 이후
급전직하했다. 대부
업체에까지 손을 벌렸지만 결과적으로 빚만 늘고
경영은 더 나빠졌다.
신용보증기금에서
채무상환 독촉이 떨어질까 두려워 휴업
신고를 했다. 그리고 이듬해 겨울, 휴업 기간은 끝났고 결국 서류상 폐업 상태에 이르렀다. 집이라도 팔아 빚을 갚고 싶지만,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터라
마음대로 팔지도 못한다. 장 씨는 앞으로의 생활이 막막하기만 하다.
자영업자 열에 여덟은 '빚쟁이'자영업자들이 '대출의 덫'에 걸렸다. 대부분의 자영업자는 이 씨와 장 씨처럼 장사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받는다. 그러나 어느샌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대출은 부메랑이 되어 날아와 장사는커녕 생계조차 꾸리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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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과 2012년 자영업자 대출 증가액 비교 ⓒ프레시안(서어리) |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5월 전국 자영업자 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부채상황 조사에 따르면, 84.3%가 부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8명 이상이 빚을 내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말이다. 부채가 있는 자영업자의 평균 부채액은 1억 1364만 원이다. 지난해
한국은행의 가계
금융조사 결과인 8천 289만 원보다 약 3천만 원 정도 많은 결과다.
자영업 직군의 총부채액도 늘었다. 금융감독원은
은행권의
자영업자대출 잔액이 지난 5월 말 기준으로 164조 8000억 원이라고 5일
발표했다. 증가액으로만 따져보면, 올 들어선 5월까지 6조 3000억 원 늘어 전년 같은 기간 3조 5000억 원보다 증가 폭이
확대됐다.
대출액보다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연체율 증가 추이다. 지난 7월 19일 금감원 발표에 따르면 5월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1.17%로 지난해 말(0.8%)보다 크게 올랐다. 같은 기간의
가계대출 연체율(0.97%)을 웃돈다.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말까지 0.8%대를 기록하다 올 1월 1%를 돌파한 뒤 계속 오르고 있다. 자영업자들이 더욱 궁지에 몰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빚내서 빚 갚기'자영업 대출이 무서운
이유는 한번 발을 들이면 쉽사리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점 때문이다. 또 다른 자영업자 안 씨는 "그동안
투자한 게 있으니 장사가 안되어도
점포를 뺄 수도 없고, 계속 빚으로 살아왔다"고 했다. '빚내서 빚 갚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이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소득'이다. 소득이 있어야 빚을 갚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더는 '돈 나올 구멍'이 없다는 사실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뒤이어 지난해 시작된
유럽 재정위기는 자영업 매출에 큰 영향을 줬다. 금감원 은행감독국의 서강훈 조사관은 "경기에 민감한 자영업자들의 경우 유럽 재정위기로 인한 타격이 더욱 크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가 '생계형 자영업자'들의 대출 증가다. 지난 1분기 자영업자대출 증가액 3조 원 중 저부가가치업종인 부동산·임대업,
도소매업, 음식
숙박업 3개 업종에서만 2조 2000억 원이 늘었다. 자영업자들이 빚을 끌어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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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의 경쟁자는 또 다른 자영업자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슈퍼마켓과 편의점이 있는 모습 ⓒ프레시안(서어리) |
자영업자 사이의 '과당경쟁'도 소득 감소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7월 27일 낸 <
지속가능 성장을 위한 경제주평>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41.2%가 주 경쟁상대를 주변의 다른 자영업자로 인식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주변의 대형업체나
TV 홈쇼핑 등을 경쟁상대로 고려하는 비율이 각각 25%, 4.5%인데 비하면 높은 수치다. 결국 자영업자끼리 먹고 먹히는 싸움을 벌이는 셈이다. 이 씨와 장 씨 모두 결과적으로는 주변 자영업자들과의 경쟁에 밀린 경우다.
신용회복위원회 김민성 심사관은 "소득이 늘어야 변제도 가능한데 취약한 경제 여건에도 불구하고 성급하게 대출부터 하고 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 심사관은 또 "일단 대출을 한 번 받은 상태서 적자가 생기면 이를 메워야 해서 또 대출을 받는다. 결국 어느 순간 끊을 수 없는
고리에 갇힌다"고 말했다.
자영업자 720만 시대. 좀체 풀리지 않는 경제 여건 속에서 자영업 대출 문제는 점차 뜨거운 감자가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