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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경주 월성 남쪽의 깨끗한 남천을 걸으며 선덕여왕, 백결선생 그리고 최치원 선생을 그려 보았는데
오늘은 경주 북쪽으로 흐르는 알천(북천)을 걸음 해보고자 한다.
경주 버스터미널에서 택시로 통일신라시대 신문왕이 돌아가신 부왕 문무왕에게 신라의 보배인 옥대와 만파식적을 얻기 위해
행차하던 수랫재 신라시대 때부터 조선 후기까지 경주 감포와 경주, 그리고 장기를 이어주던 고갯마루로 올라가 본다.
이 길은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의 장례 행차길이며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용와 왕 그리고 광명과 피리이니
용이 왕이 되고 왕이 용이 되어 신라의 천년 광명으로 나라를 밝히던 길이다
신문왕은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의 뒤를 이은 681년에 신라 제31대 왕으로 즉위하셨고 국가 제도를 정비하여 새로운 통치기반을 마련하고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여 국가의 전성기와 문화적 황금기를 만든 분이다
수랫재로 오르는 계곡길은 잠시 후 정상 발원지까지 올랐다가 내려와야 하는 길이며 골짜기 이름은 모차골이란다.
예전에 마차가 다니던 길에서 유래되었으며 수랫재는 마차가 다녔으니 수래는 당연지사 수래가 넘었다는 지명이며
수랫재 넘으면 용연 폭포나 감은사지 그리고 이견대가 있는 경주 감포에 도착한다
계곡으로는 오래전에 떨어진 참나무 낙엽이 쌓이고 쌓여 두텁게 쌓여있고 물은 조금씩 흐르지만 모두가 진한 탄인 성분의 갈색 물이 흐른다.
수랫재
수래나 마차가 올라갔다고 믿어지지 않으나 어쨌거나 올라갔다니
당기고 밀고 오르고 내리셨던 조상분들의 노역은 언제나 힘들었을 것 같다.
수랫재에서 포항제철로 이어지는 마루금 따라 오르면 530봉에 도착한다. 정상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으며 비만 내린다.
마루금 따라 진행한다면 형산강을 고스란히 감싸 안은 마루금이 되어 실제적인 형산강 우측 지맥길인곳이다.
이곳에서 방향을 잡아가며 북천의 발원지만 찾으면 되는데 비가 내리니 어디가 발원지인지...
북천은 덕동호를 기준으로 함월산 남쪽과 서쪽에서 발원하는 덕동천과 절골천이 있지만 수랫재에서 발원하는 하천이 조금 더 길다.
하천의 발원지 기준은 하구에서 가장 멀고 긴 것을 원칙으로 한다.
지나온 경로와 하천 148번째 누적거리 9,369km
오래전부터 쌓인 참나무 낙엽길이 이어지나 아직 물은 찾지 못하였고
겨우 찾은 곳은 이산의 터줏대감인 묏 선생 목욕한 곳이고
비는 처발 처발 내리고 가끔 서늘한 바람이 불때마다 안개가 몰려들어 음산한 분위기를 만든다.
조금 내려오니 수랫재 올라가고 내려가는 등로와 만나
봄이나 가을에 오면 아주 좋을듯한 길인데 이곳으로 왕들이 행차하셨다니
등로는 전반적으로 큰 오르막이 없고 편안한 길이다.
몇백 년은 넘었을듯한 커다란 뽕나무가 자기 자리라며 서있고
군데군데 작은 나무 계단이 서있으며
물이 조금씩 흐르지만 낙엽이 워낙 많이 쌓여있어 잘못 밟으면 푹푹 빠진다.
누군가 먼저 진행하신 분이 죽은 나뭇가지를 이곳에 걸쳐놓아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없고
무슨 용도의 인지 모르나 마치 절구통 같은 모양이다
설마 왕의 요강은 아니겠죠!~~
이곳 가까이 사시는 분 계시면 가을에 한번 찾아보시면 아주 좋을듯한 계곡이니 꼭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내려오며
그 당시 신문왕이 부왕이셨던 문무왕을 뵈러 동해바다 감포로 가셨던 길인데
세월이 지나 길은 허물어져있으나 이 정도면 고속도로 수준 아닌가
대왕암이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한 경주 감포의 이견대는 신문왕이 세웠으며 부왕을 추모하기 위해 이 길을 통해 자주 찾았다고
하는데 모처럼 역사와 함께 하는 길이라 감정이 묘해지는 길이다.
신문왕이 이 길을 통해서 최고의 보물인 만파식적을 얻었는데 만파식적은 돌아가신 문무왕과 김유신 장군이 두 가지 보물
대나무와 옥대를 내리시니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자 바다 바람이 멈추고 거센 물결이 평온해졌다는 아름다운 피리
조금 전에 올랐던 길로 다시 내려와
신문왕 호국 행차길은 신라 왕궁 월성에서 동해 감포 이견대까지 이르는 길은 죽어서도 용이되어 신라를 지키고자 한 문무왕의 장례길(681년 음력 7월)이었으며 신문왕이 부왕을 추모하기 위해 대왕암으로 행차하던 길이다.
한분은 죽어서 넘으셨고 또 한분은 살아서 넘으셨던 평범하지 않은 옛길이라 가을날 단풍이 곱게 물든날 다시 한번 더 와본다면 동해바다가 자리하는 이견대까지 걸음 해봐야겠다
인자암
국통전 나라를 통일한 문무왕을 모신 곳인가
암자에는 아무도 안 보여 사진만 한잔 담고 나온다.
상류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아저씨의 깔끔한 성격이 작은 다락논에 고스란히 보이는데
이런 땅에서 농사를 지은 쌀이라면 얼마나 맛있을지
참 깔끔하게 정리를 해두셨다
모차골의 추원사 가는 길에
커다란 바위가 보이고 그 뒤에 추원사가 자리하는데
갈길이 바빠서 바위 모습만 보고
너는 누구냐!~
막걸리병과 켄 커피가 뚜껑이 따인체 매달려있고
바람이 불면 금방이라도 달그락 소리를 낼 것 같고
모차골에서 흘러온 물은 황룡동으로 이어진다.
동네 지명이 황룡이라니... 지명 유래를 찾아볼까 하여 마을 안으로 가봤지만 사람을 찾을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내려와
추원마을을 지나와
하천가로는 상수원 보호구역이라 들어가지 못하고 도로 다리 난간에 서서
물은 아주 깨끗하니 좋고
경주에서 감포로 가는 추령 길 옆으로 나무 테크 공사가 한창이다.
모차골에서 내려온 물과 무장봉 남쪽에서 흘러온 절골천이 만나는 곳
경주시민분들의 상수원인 덕동호로 들어가는 물인데 하천 옆으로는 들어가지 말라며 휀스가 끝없이 이어진다.
지방 2급 하천 북천
꽤 많이 흐르던 북천은 어디로 가고 자갈만 보인다.
물은 모두 땅속으로 흘러들어 가고 덕동호 인근에서 다시 솟아나 덕동호로 들어간다.
덕동교에서 본 북천의 모습
물은 이렇게 세상 밖으로 나와
저짜 덕동호가 보이고
무장봉에서 이어지는 산줄기들은 안개가 가득하고
덕동호 입구
덕동호 아래로 내려가며 명활산과 경주 월드 그리고 항룡사 9층 탑을 닮은 건물이 보인다
날씨는 비가 그치고 후덥지근한데 35도란다.
중도타워
황룡사 9층 석탑을 본떠 만든 탑으로 동국 산업 장상건 회장이 사비를 털어 만든 탑이다.
높이는 68미터 400억원을 들여 만든 탑인데 황룡사 9층 석탑과의 거리는 4km 정도 떨어져 있다.
주이의 건물과 비교해서 보면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데 마치 하늘로 올라가려는 듯 기세가 대단하다
신평천은 북천의 또 다른 이름으로 덕동댐과 보문호에 이르는 2km를 신평천이라 부른다고
경주 월드 워터파크
저 높은 곳에서 한번 내려오려고 줄을 섰는데 더운 날 고생이 많은 사람들
보문호를 돌아가는 길에 너무 덥다
저짜로 가야 하니 덥기는 덥고
무장산 방향과 추령 그리고 토함산 방향으로
보문호와 함월산 우측으로 토함산 방향
보문호의 물은 탁하고 수질이 별로다. 가끔 커다란 잉어들만 수면에 머리를 내밀거나 주댕이를 내미는데
물이 별로니 깨끗한 물 좀 달라는 듯 보인다.
부문호 입구와 소금강산
소금강 산자락에는 탈해왕릉과 법흥왕 때 이차돈이 내 목을 치면 흰 피가 나올 것이니 "어서 내 목을 치라!~" 그렇게 해서 신라 불교를 이끌어내고 순교하신 백률사가 자리하는 곳
보문호 입구에서
명활성 입구에서
명활성
신라시대 산성(둘레 6km)으로 남산성 서형산성(선도산), 북형산성(형산)과 함께 수도 반월성을 지키던 산성이며
자연석을 그대로 쌓아 올린 신라 초기의 축성 방식이다.
선덕여왕 때 비담, 상대등이 이 성(城)을 거점으로 난을 일으켰으나 김유신을 중심으로 한 신진 세력에 의해 평정되었다
복원중인 명활성
낙동정맥 삼강봉에서 이어온 산의 기운은 묵장산-조항산-토함산을 거쳐 명활산에서 선덕여왕이 누워계시는 낭산을 거쳐
반월성으로 향하는데 중간에 만나는 조항산이 예사롭지 않다.
조항산 자락에서 북으로 이어가는 토함산-무장산 운제산을 거쳐 한국 철강의 자존심인 황룡이 바다로 헤엄쳐 대양으로 향하는
명당 포항제철 포스코가 있고
조항산에서 토함산-형제봉-명활산-낭산-반월성 이 길은 신라 천년을 이어온 기운이 서린곳 어찌보면 부처가 가장 공들여 만든 도시란 생각이든다
조항에서 다시 남으로 이어가는 산줄기는 삼태봉-동대산 무룡산으로 이어지니 그곳 아래로 현대 자동차 공장이있다
울산 땅이야 말로 조선 최고의 땅이라 말하고 싶다, 1천 고지의 산들이 병풍처럼 우뚝하고 그곳에서 흐르는 맑은 물은 국내 수많은 하천들 중에서 손꼽히는 태화강과 동천을 두고 있으니 울산은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명활산성안의 풍경은 이렇고
성에서 본 소금강산 모습이 보이고
보문호를 내려오니 지방 2 하천이 사라지고 지방 하천이란 이름으로
하천 가운데는 온통 풀이 가득하여 물이 흐르는지 알길 없고
날씨는 덥고 그늘이 있는 듯 없는 듯 길게 이어진다.
하천길과 멀리 경주시 안강의 금곡산 방향
금곡산은 세속오계의 원광법사께서 수고하셨던 산으로 알려져 있고
세속오계는 다들 아시죠 원광법사께서 어린 화랑들에게 알려준 다섯가지 계율로써 사군이충,사친이효,교우이신,임전무퇴
살생유택이 있는데 살생유택이라 함은 아마도 황산벌에서 자기 처자식은 모두 죽이고 전장터에 나왔지만 어린 화랑을 차마
죽이지 못해 몇번이고 잡았다 놓아준 계백장군이 살생유택을 실천한 장군이 아닌가 생각 해본다.
지나온 명활산과 경주의 대표산인 토함산이 보인다
경주에서 가장 높은 산은 어디일까?
대부분의 경주시민들이나 산꾼들은 경주에서 가장 높은 산이 토함산이나 단석산으로 알고 있거나 경주에는 1천 고지의 산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경주에서 1천 미터급의 산이 있으니 낙동정맥길에 만나는 영남 알프스의 첫 지붕이라는 고헌산 서봉(1,035m)이 경주 땅이다.
경주에서 가장 높은 산임에도 경주에서 버림받은 듯 정상석은 울주군의 고헌산 (1,034m)과 너무나 대조적인 작은 정상석을
머리에 이고 있다.
내려가는 길에
구미산과 인내산, 어림산 금곡산 방향으로 저 뒤는 영천 땅이며 물은 모두 금호강으로 흘러들고 앞쪽으로 흐르는 물은 모두
동해로 향하는 용의 지형을 닮은 형산강 지류들이다.
하천 물속은 그런대로 바닥이 보이나 물속 풍경은 돌이 보이지 않고 부유물만 바닥에 가라앉은 모습
지나온 소금강과 명활산 방향
구미산과 어림산 방향으로 경주를 둘러싼 산꾼들이 우람하게 지키고 서있는 모습
먼산들이 가까이 왔으니 이제 형산강이 바로 지척에 보일 듯하다.
고여있는 물에서 서식하는 수생 식물 말풀만 저세상인 듯 가득하니 바닥이 보일리 만무하고
이곳 경주 북천은 오래전 신라시대 때는 알천으로 불렀던 경주의 젖줄이다.
덕동호나 보문호의 영향으로 지금은 거의 흐르지 못하는 하천
지나온 하천길에 그늘이라고는 전혀 없고
소금강 옆으로 멀리 토함산이 보이지만 너무 더워서 아무 생각이 안 든다.
북천이 본류인 형산강에 합류하는 지점
아파트 넘어 금욕산과 금곡산 방향이고 바로 앞은 금장대 모습
금장대는 형산강 본류 중 가장 경치가 좋은 곳에 위치하며 경주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에 있다
신라시대 때 사찰 금장사가 있었던 자리라고 해서 금장대라 붙였으며 조선시대 때는 시인묵객들이 시를 노래 한 곳이며
소설가 김동리의 단편소설 무녀도의 무대가 된 곳이기도 하다
건물은 2012년에 복원했다고 한다
금장대에서 본 경주 시내
앞은 북천(北川)이며 억새로 유명한 무장산 동쪽과 서쪽에서 흘러온 물이 덕동호 그리고 보문단지에 한번 들어갔다가
25km를 흘러 형산강으로 합수되는 지점 토함산과 멀리 동대산 방향이 보인다.
이제 집으로 가야겠군요 에이고 더 버라 온몸에서 식초 썩은 냄새가 나니 작은 초파리들이 정신없이 달려든다.
다음 강행은 아라가야의 땅인 함안으로 갑니다..
첫댓글 지속되던 폭염도 계절을 이기지는 못하네요 얼마남지 않은 여름 건강하게 잘 보냈으면 합니다
이제 하천길도 500km정도만 남아있어 올해가 가지전에는 마무리가 될듯합니다.
지부장님 한번 따라오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번에 다녀오신 북천(알천)은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하천입니다.
그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신라 제37대 선덕왕(780-785 재위)이 자식 없이 세상을 떠나자 화백회의에서 김주원을 왕으로 추대합니다.
김주원의 집이 경주 북쪽 20리에 있었는데,
갑자기 폭우가 내려 알천이 범람하므로 건너오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폭우가 열흘 동안이나 지속되자 다시 화백회의가 열리고 김경신을 왕으로 새로이 추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가 원성왕(785~798 재위)이 됩니다.
김주원은 저항하지 않고 스스로 명주(강릉)로 갑니다. 이분이 강릉 김씨 시조입니다.
김주원은 태종무열왕의 6세손이고, 김경신은 내물왕 12세손이니
크게 보면, 태종무열왕 계에서 내물왕 계로 왕권이 넘어간 것이고,
신라의 전성기인 신라 중기가 막을 내리고, 신라 하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때로부터 신라는 통치 지역이 경주와 그 주변에 국한되기에 이릅니다.
김주원의 아들이 김헌창인데, 822년에 웅천(현, 공주)도독으로 있을 때 신라 최대의 반란을 일으킵니다.
반란은 진압되고 김헌창은 자결하지만, 이에 신라의 몰락은 가속됩니다.
범람하여 신라 역사를 뒤바꾼 알천이 흐르지 않는다니...
강릉(명주)에 가면 김 주원의 묘가 있는데
지금도 땅속에 누워 "비만 안 왔어도" 비만 안 왔어도 하며 한탄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운명이란 바로 이런거라 생각이 들구요
친구님 글 감사합니다.
@배병만 다 아시는 내용을 제가 장황하게 올려 쫌 그렇쥬? ㅋ
저는 김주원의 묘에 가보지 못했고,
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1,200년 전 사람이라 묘가 남아있는지조차 생각지 못했어요.
역시 방장님의 발길이 닿지 않으신 데가 없군요. ^^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방장님의 후기 잘 읽었습니다.
@팔개 지난날 대간 둘레길을 걸으며 잠시 찾아봤던 묘인데
후손분들이 얼마나 정성것 가꾸었는지 묘역이 대단합니다.친구님덕분에 잊어먹은 김주원의 잃어버린 왕조에 대해서 기억합니다.
감사합니다.비만 안왔어도^^
역사공부 잘하고갑니다
상세한설명 감사합니다
이제 아침과 저녁에 조금 시원하죠
늘 조심해서 길이어 가시기 바랍니다.
경주에서 감포를 가려면 추령고개를 넘어야죠.
어릴적에는 관해동고개나 관해령으로 불리어졌는데...
조금 있으면 벌초하러 북천옆 길을 따라
추령터널을 지나 감포로 가는데 방장님의
강행기로 인해서 다시 한번 더 쳐다볼듯합니다.
옛 추억을 되살리면서 추령고개에 있는
백년찻집에서 차나 한잔 마셔야 할 듯...
추령고개의 백년찻집 유명한곳이죠
저도 그곳에 몇번가서 차한잔하고 산길로 걸었던 기억이 납니다.
금북산길 완주 축하드리며 다가오는 추석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시인문객들이 와서 어쩌고저쩌고 했다는...금장대..
그때는 투명할 정도로 맑은 물이 흘렀겠죠?!~
아무리 겉보기에 멋지고 좋다지만...
속이 썩었다면....
아~ 물이 깨끗해지기는 정말 힘들런지...
끝나지 않을 이야기 보따리인 방장님의 강행기 쪼매 어려워요.
처음 듣는 이야기들도 많고...
^^
날 더운데 고생하셨습니당.
건강 잘 챙시기며 다니세용
ㅎㅎㅎ 공부 좀 하시고
무안 갯벌은 정말 재미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멋진곳도 없을듯 합니다.
가끔 연락이나 주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