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31.木. 맑음
05월27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3.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밸라거사입니다.
그 음식점이 영양돌솥밥집이었습니다. 예전에 몇 차례 우리 스님과 함께 일요법회 도반님들과 와서 식사를 한 적이 있는 곳인데 이곳 위치가 구 번화가 뒷골목 어딘가에 있어서 서산 사람이 아니라면 몇 번 가량 와보고는 장소를 짐작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여튼 저녁식사를 마치고 난 후 자리를 함께 했던 선암스님께서 이어서 차까지 한 잔 내겠다고 해서 찻집 물색에 나섰습니다. 대략 두어 군데 장소가 떠올랐고, 정덕거사님 차와 팔봉거사님 차와 선암스님 차가 찻집을 향해 각각 출발했습니다. 우리들이 탔던 정덕거사님 차는 십여 분쯤 뒤에는 롯데마트를 돌아 언덕 공터에 자리 잡은 커피하우스에 도착했습니다. 김화백님 말에 의하면 서산에서 여기가 가장 맛난 커피집이라고 했는데 일단 주차장 겸 마당이 햇살이 잘 드는 밝은 장소라 좋았습니다. 서울보살님과 락화보살님은 먼저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고 우리들은 주차장에서 이야기도 할 겸 바람을 쐬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언덕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다 보면 오른편으로 널찍한 공터가 있어서 저 안쪽으로는 건자재상의 노천창고에 건자재들이 쌓여있고, 앞쪽으로 한 길 축대 밑에는 아마 롯데마트 뒤편 화물차들이 들어 다니는 공산품과 음료 자재창고가 있는 듯하고, 그 앞으로는 롯데마트 건물이 커져버린 높이로 풍경을 가리고 서있었습니다. 남향받이일 듯한 공터의 비탈을 등지고 커피하우스가 시내를 향한 채 옴싹하게 앉아있었습니다. 호오, 이런 분위기라면 커피가 맛날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으나 사실 나는 커피 맛을 모릅니다. 아니, 커피이거나 커피가 아니거나 하는 정도야 알지만 커피의 질과 가치를 탐할 만큼 커피를 열심히, 그리고 부지런히 마셔본 적이 없어서 그런 의미의 커피 맛은 잘 모른다는 말입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입니다만 차茶 맛이나 홍차紅茶 맛도 잘 모릅니다. 참선 맛도 기도의 묘미도 그렇게 잘 알지 못합니다. 삼천 배拜는 몹시 힘이 든다는 정도는 조금 압니다. 여기에 비하면 대화의 즐거움이나 단정한 관계關係를 통한 사람들 사이의 교분交分은 그 진한 맛을 알려고 노력을 하는 편입니다. 싸각거리는 살얼음에 밥알이 동동 뜨는 식혜 맛이나 곶감과 계피와 흰 잣의 조화가 어우러지는 겨울 아침나절의 수정과 맛은 조금 압니다. 모락모락 김 오르고 고실고실 찰진 기름기 도는 하얀 쌀밥 맛도 조금 압니다. 막 담가 생기 충만한 생김치와 씹을수록 고소한 묵은 김장김치 맛은 조금 압니다. 피카소처럼 그릴 수는 없어도 이중섭의 소를 보고 있으면 생명의 근원 같은 것이 보일락 말락 하고, 베토벤처럼 악보를 구상할 수는 없지만 모차르트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뭐랄까, 아는 것과 조금 아는 것과 모르는 것과 하나도 모르는 것이 함부로 섞여있어서 머릿속이 조금 복잡은 하지만 얼크러진 가운데 어떤 통일점統一點을 찾아가는 수고로움이 오히려 삶에 활력活力을 주는 때도 있어서 그런대로 살만은 합니다. 이를 테면 흐린 하늘 아래 커피하우스 주차장에 서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오르는 만큼씩 또한 머릿속에서 빵! 하고 터질 때까지 주무르고 부풀려보는 것입니다. 언덕 내리막길을 따라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가 물굽이를 지나며 소용돌이치는 급한 물살소리를 지르면서 파도치듯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교통신호등의 점멸 색깔에 따라 들려오는 소음의 진행과 정지가 넓은 공터에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도로위에서의 침묵은 상상속의 침묵보다는 다소 음감音感 있고 산만하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한 이십여 분이 지났는데도 다른 차들이 공터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우리 차에는 락화보살님만 고북 사람이고 다른 분들은 다 외지 사람인데 반해 다른 두 대의 차에는 모두 서산 분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정덕거사님께서 전화를 해보더니 하하~ 웃으면서 다른 분들은 다른 쪽에서 또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물망에 올랐던 두 군데 찻집으로 각각 나누어서 세 대의 차량들이 도착한 듯했습니다. 커피하우스에 먼저 들어가 분위기를 잡고 앉아 물까지 마셔버린 서울보살님과 락화보살님을 불러내어 다시 차에 올라타서 그쪽 찻집으로 차를 몰아 달려갔습니다. 너른 주차장에 팔봉거사님 차와 선암스님 차가 세워져있었으니 이번에는 제대로 온 것 같았습니다. 3층 건물의 2층 커피 집으로 올라갔습니다. 우선 실내가 아주 넓고 공간이 툭 틔어있어서 마음에 흡족했습니다. 그런데다 사방 창밖으로 보이는 경치란 팔등 같은 야산아래 모를 심으려고 물을 채워놓은 크고 작은 논배미들이였습니다. 논배미 한가운데 들어서있는 커피하우스라니, 땅 넓은 서산이라 가능한 경치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도로변의 높이로 논을 메우고 축대를 쌓아 바둑판 1000배 크기만큼 논바닥을 침범해 들어가 3층 건물을 짓고 주차장을 만들어서 그 한 층에 커피하우스를 만들어놓았더니 사방 풍경이 자연스럽게 논배미와 논두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마치 5월의 어느 날 모내기를 하다가 논바닥 한 복판에 앉아 새참으로 커피를 마시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 것 같은 느낌은 나만의 환상인 줄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분위기와 이만한 크기의 서재와 작업실을 가지고 있다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한 사람의 서재와 글 쓰는 공간으로는 사실 매우 매우 넓기는 하지만 이렇게 툭 트인 실내와 논배미라는 창밖의 경치가 매우 흡족하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1998년도에 개봉한 틴토 브라스 감독의 모넬라라는 이탈리아 영화가 있습니다. 영화 내용은 약간 거시기한 청소년불가 수준의 혼전 순결 뒤집어보기 정도의 영상이지만 나름대로 감독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틴토 브라스 식式 에로티시즘을 설명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여기에서는 이 영화의 에로티시즘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다만 195,60년대의 이탈리아 시골풍경이나 고적한 실내의 넓은 공간을 잡아내는 가슴 푸근해지는 영상미映像美가 나는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낙천적이고 향락적인 남부 이탈리아 사람들의 특성을 보여주는 넓고 풍요로운 실내외의 공간들이 부드러운 영상 속에 잘 녹아있는 것을 보면 이 영화감독이 재능이 뛰어나다는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우리나라도 ‘6,70년대에는 내부 공간이 한적하고 풍요로운 음식점이나 중화요리집이나 제과점들이 제법 있었습니다만 ’80년대를 기점으로 그 한가로운 공간들이 서양화인 유화油畫처럼 무엇인가로 꽉꽉 메꾸어져버렸습니다. 사회적인, 그리고 문화적인 그런 공간들이 우리들 주변에서 사라져버린 뒤로는 내안에 들어있던 무엇인가도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듯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마치 내안의 문화文化와 문학文學과 예술藝術 중 일부를 빼앗겨버린 것처럼 말이지요. 글쎄요, 그동안 그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