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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시편-33 에스라의 계명 사랑(시편 119편 57-61절)
성경 말씀은 시편 119편 57절에서 61절까지 봉독합니다.
[시편 119편]
57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니 나는 주의 말씀을 지키리라 하였나이다
58 내가 전심으로 주의 은혜를 구하였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59 내가 내 행위를 생각하고 주의 증거로 내 발을 돌이켰사오며
60 주의 계명을 지키기에 신속히 하고 지체치 아니하였나이다
61 악인의 줄이 내게 두루 얽혔을지라도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낮에 119편 16절까지 살펴봤습니다.
여기 119편은 낮 시간에 잠깐 언급한대로 거기 자세히 보면 중간에 동그라미가 하나씩 있을 거예요.
몇절에 있느냐 하면, 1절부터 8절까지가 한 단락으로 있고, 9절부터 동그라미가 나오죠?
그러니까 1절부터 8절까지에 있는 모든 구절은 히브리어 제일 첫 글자, 알렙이라는 단어를 머리에 꺼내가지고 이야기를 해요.
그러니까 모든 절마다 알렙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한절 한절 다..
여덟번 나오는 거죠.
그 다음에 9절부터 16절까지는 뻬드라는 영어같으면 B발음이 나오는데, 알렙, 베드, 기멜, 달렛 이렇게..
동그라미 하나마다 히브리어 알파벳이 바꿔 있어요.
그래서 맨 끝에 가면 히브리어 철자의 끝자가 나옵니다. 그렇게 맨 끝에는 타우로 끝이 납니다.
그래서 완전히 이것은 그저 히브리어 알파벳 쭉 늘어놓고 매 절마다 그렇게 두문시로 끌어냈는데 아주 특이한 시 형식이죠.
내용은 이렇게 보면 중복이 많은 것 같기는 한데, 저는 어떻게 1절부터 8절까지 전부 알렙으로 시작해서 여덟절을 만들어 쓰고, 다음 절부터는 베드글자로 여덟절을 쓰고..
이렇게 정말 상당히 정성을 기울이지 않으면 이렇게 말하기 어려울 텐데, 정말 그런 면에서 아주 놀랍습니다.
17절,
[시편 119편]
17 주의 종을 후대하여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말씀을 지키리이다
여러분 만약에 오늘 우리의 삶을 거두어 가신다 그러면 가장 아마 회환이 후회가 남는다고 할 때 하나님 말씀대로 한번 살아보지도 못하고 내 인생이 끝나면 어떡하느냐 그런 후회가 남지 않겠어요?
그래서 우리의 삶이 삶의 길이가 얼마나 연장될지 모르지만, 할 수 없는 것은 못하더라도 할 수 있는데까지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봐야 돼요.
그래서 그렇게 말씀대로 살았을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그런 것을 한번 체험을 해볼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그게 만약에 우리가 이제는 그렇게 한번 살아보고 싶어도 시간이 없다.. 그러면 아무 것도 못하잖아요.
오늘이라고 하는 날, 내가 오늘이라고 해서 내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을 때 실천해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제가 요즈음 읽는 책들이 몇 권 있는데, 이름이 ‘사바랴’예요. 사발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자기 친구와 결혼한 어떤 부인이 있었는데, 그 부인을 한때 마음속으로 사랑했다는 거야.
그런데 사랑한다는 말도 한번도 못해 본채로 그만 친구와 결혼해버렸어요.
그리고 이 사람은 그게 상처가 되어가지고 일생 결혼도 못하고 나이가 60이 넘어서 마지막으로 찾아가서 물어봐야 되겠다 하고 친구 부인 되는 사람을 찾아가서, 그 때 나와 같이 해변 길을 걸어갈 때 나와 같이 걸어가다가 내게 이렇게 목을 기댄적이 있지 않소? 기억하느냐 하니까 기억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때 만약에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러니까 그러면 내가 당신에게 넘어갔죠. 그러더래요.
그러니까 용기가 없어서 그렇게 자기에게 기대오는 사람에게도 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 말을 못했기 때문에 친구는 그 말을 해가지고 좋은 아름다운 부인을 얻었는데, 자기는 먼저 표현해왔는데도 그 말을 못해서 일생 결혼도 못한채 인생을 다 허비하고 그 때 가서 왜 내게 그 때 그 말을 못해봤던가 하고 남은 생은 후회하면서 얼마나 살았는지 모르지만 그런데 그 유명한 이야기가 지상에 단 한 사람이라는 그런 책 제목속에 두 번째 쳅터에 그런 얘기가 나와요.
우리가 인생을 살고 나서 후회가 없어야 되겠는데, 아 그 때 내가 그렇게 해봤으면..
그 때 내가 하나님 말씀 들을 때 그 때부터 내가 실천 해봤어야 하는데..
여러분 우리가 시간을 빼앗기면 아무 것도 해 볼 수가 없어요. 뭐든지..
좋은 일도 못해 보고..
그래서 오늘이라고 하는 날 우리가 하나님 음성을 들을 때 우리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고, 정말 온유하고 겸손하게 받아들여서 그것을 실천해봐야 돼요.
사발처럼 되지 말고..
나는 그 사발씨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굉장히 충격이 되었어요. 그럴 수 있겠다...
평생 그것이 후회가 되어가지고 남은 생도 후회하다가 아무 희망도 없이 그렇게 늙어가는 그 여운을 한참 남기는 거예요.
짤막한 이야기인데, 실화예요. 실화..
우리 일생에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오늘 여기 내 삶을 후대하여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말씀을 지키리이다..
시간이 없으면 해보고 싶어도 못하잖아요.
18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19 나는 땅에서 객이 되었사오니 주의 계명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여러분 성경책을 다 펴놓고 해도 안 열리는 사람에게는 안 열리는 거야.
그래서 성경 몇군데 보면 보는 눈과 듣는 귀와 깨닫는 마음을 주지 않으면 다 펴놓고 장사해도 몰라..
그래서 저는 지금 볼 때 수많은 목회자들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보면서도 성경이 안 보이는 거야.
성경책에서 어떤 구절을 빼다가 설교는 할 수 있지만 성경 자체가 안 보인다니까..
저도 이게 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원만하게 다 보이는 데는 만 15년 넘게 걸렸어요.
그 앞에 설교도 하고 목회도 하고 목사이고 성례식도 하고 하지만, 성경이 다 보이지도 않은 채 그렇게 한 거야.
지금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죠.
그래서 정말 보는 눈과 듣는 귀와 깨닫는 마음이 있어야 돼요.
20 주의 규례를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
여러분 성경속에 어떤 모르는 책이 한 두 권 있을 때 그것만 해도 그것 볼 때마다 마음이 개운하지 않은 거예요.
계시록 같은 것은 성경 연구 시작한지 15년 동안 신학을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서도 안 보이는 거야.
대부분 목사님들 계시록은 안 보입니다. 안 보인채 그냥.. 찜찜하게..
계시록만 보면 피하고 싶고..
교회에서 누가 계시록은 누가 묻지 말았으면..
계시록 컴플렉스가 있다는 거예요.
게시록만 그런게 아니라 거의 다 모릅니다.
예레미야서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에스겔서가 뭘 말하고 있는지, 나훔서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오바댜 스가랴가 무슨 얘기하고 있는지 거의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제가 가끔 그런 얘기 하죠.
목사님들끼리 있는데에서 내가 솔직하게 이야기 해 봅시다.
예레미야서에 33장 3절 외에 아는게 있습니까? 하면 와~ 웃는다고..
웃는 다는 것은 동의한다는 거죠.
예레미야서 전체 두꺼운 책에 33장 3절, 내게 부르짖으라 그 한절 외에는 전혀 인식도 없이...
그러니까 도대체 이런 분들은 성경 가지고는 목회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성경 가지고는..
그래서 온갖 책을 뒤져가지고 무슨 설교 자료를 모으기 위해서 산을 넘고 물을 건너고 예화를 찾아가지고 매주 고민하고 이렇게 합니다.
21절,
21 교만하여 저주를 받으며 주의 계명에서 떠나는 자를 주께서 꾸짖으셨나이다
여러분 제가 가끔 얘기해요.
교만은 극치가 하나님 말씀 주의 계명을 무시하는 거야.
여러분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한다는 것은 자기가 하나님 계명보다 더 똑똑하다는 거야. 그렇죠?
자기가 하나님의 계명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 계명을 무시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그게 교만의 극치라는 거예요.
성경 말씀을 우습게 여기고 성경 말씀을 제쳐놓고 다른 것을 찾는다는 것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성경을 모르든지, 하나는 교만하든지..
성경을 모르든지 아니면 성경보다 자기가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든지..
성경보다 더 좋은 책이 있다고 생각할 때만 성경 제쳐놓고 딴책 찾지 않겠어요?
그래서 교만의 극치가 하나님 말씀 계명을 떠나는게 교만의 극치예요.
22 내가 주의 증거를 지켰사오니 훼방과 멸시를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23 방백들도 앉아 나를 훼방하였사오나 주의 종은 주의 율례를 묵상하였나이다
그러니까 이 에스라같은 사람도 성경만 가지고 씨름할 때 사람들이 다 멸시했다는 거예요. 에스라를..
방백들도 에스라를 훼방하고 그랬지만,
24 주의 증거는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모사니이다
하나님의 증거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즐거움이요.
제가 시편 1편 할 때 말씀드렸죠?
복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여러분 즐거워해야 돼요.
정말 꿀과 송이꿀처럼 달고, 달고 오묘하고 이것이 너무 옳다 너무 옳구나..
그것이 믿어지지 않으면 성경을 설교 안합니다.
성경을 그저 몇절 읽어놓고 온갖 세상 무슨 너절한 이야기 하다 마는 그런 식으로 가는 거예요.
성경이 안 보이니까 그런 거예요.
성경이 딱 보이면 다른 것 할 시간이 없어요.
저는 어쩌다가 저의 어쭙잖은 내 이야기나 간증을 이해를 돕는다고 해도 그게 마음에 걸려요. 괜히 또 내 얘기하는게 아닌가 싶어가지고 .
하나님 이야기 할 시간도 모자라는데, 내 이야기까지 곱사리 끼어가지고..
그래서 성경이 정말 보이는 사람은 성경 이야기 할 시간이 모자라서 다른 너절한 이야기 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24 주의 증거는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모사니이다
여러분 제가 대단히 황송한 이야기지만 별로 땅에 있는 사람들 찾아가서 목회 멘토를 삼거나 누구를 찾아가지 않았어요.
저를 전도해도 처음에 예수믿게 했던 그분은 젊을 때 초창기때 자주 만났어요.
제가 그분 제자이지만 네 사람의 목회자가 한 달에 한번쯤 모였습니다.
화평회라고 해가지고 그것은 회장도 없어요.
회장도 없고 부회장도 없고 총무도 없고 서기도 없고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만 네 사람이 한 달에 한번씩 모이는데, 모여서 시작도 없고 끝도 없어요. 자는 사람은 자고 이야기 하는 사람은 이야기 하고..
그렇게 해서라도 만났다 헤어지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고 그랬어요.
그래서 그 때 참 모이면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했는데, 그 이후로 목회 테크닉이나 이런 것 배우겠다고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닌 적이 없고, 성경 안에 ‘하나님의 사람들’ 하는 책을 쓸 때, 야, 내가 나의 모사 나의 참모 목회 참모 목회 자문위원 될 만한 분들이 성경안에 얼마든지 있구나. 80명..
거의 살아있는 사람들 찾아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 안에 제가 해외 유학도 안 간게, 내가 알고 있는 것 절반만 실천해도 내가 성자가 된다는 거야.
알고 있는 것 절반만 실천해도 성자가 될 텐데, 가기는 어디로 가겠는가..
그리고 서양 신학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 진작에 정리를 했기 때문에, 가지 않고 그냥 성경말씀을 바르게, 기록된 목적대로 바르게 이해하는데 생을 다 바치다시피 했는데, 후회함이 없습니다.
제가 지금와서 볼 때 기록한 사람들의 전체를 기록한 사람들이 아니고 대개 부분적으로 기록했는데, 어떻든 구약성경 대체적으로 대부분을 지금 모습으로 완성시킨 사람이 에스라라고 하면 창세 이후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사랑한 사람이 에스라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이 들고, 그 다음에 한 사람이 있다면 존 칼빈 같은 분이 정말 하나님 말씀을 사랑했어요.
그분이 쓴 기독교 강요라든지 주석을 보면 칼빈이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또 한 사람이 있다면 디엘 무디라고, 미국의 거의 학력도 없는 그런 전도자인데, 얼마나 성경 말씀을 사랑했는지, 이렇게 성경을 넘긴 자국이 푹 패였어요. 푹 파질 정도로 닳아서.. 그렇게 성경을 사랑한 거예요.
1 2 3등은 다 나왔죠. 혹시 내가 4등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그만큼 다른 것 말고 이 하나님 말씀을 정말 이게 참 달고, 여기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다 있다. 거기다가 모든 것을 다 걸고 그렇게 씨름을 해서 근 30년 넘어 정리를 하다보니까 지금 다른 것 여러분 아시는 대로 다른 것 아무 것도 잘 하는게 없잖아요.
뭐 하나도 내가 제대로 하는게 없어.
그래서 그럴 바에는 하나라도 제대로 하자..
여기 저기 끼웃끼웃 하다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 안 되니까, 성경 말씀 66권을 딱 관통시켜서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바르게 빠르게 배우고 가르칠 수 있는 그런 길을 닦아 놓자. 거기다가 삶을 다 걸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24 주의 증거는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모사니이다
여러분 제가 아무 것도 안 가르치고 성경 이야기만 했는데, 물론 성경 이야기 혹은 역사 이야기 조금 곁들이고 과학적인 이야기 단순화 시켜서 이야기 했는데, 그것을 듣고 싶어서 에스라하우스를 찾는 분들이 매년 평균 4천명 정도예요.
교역자가 한 해에 7백명에서 8백명 나오지 않습니까?
작은 일이 아니죠?
단순히 성경 한권만 가지고 씨름을 하는데도 사람들이 그것을 듣고 싶어서 4천명 수료하니까..
저 지리산 골짜기에 숨어있는데, 사람들이 찾아와서 듣고 가지 않습니까?
그리고 제가 강의한 CD가 전국을 도는데, 나는 여기에 서서 혹은 누워 자더라도 내 CD는 계속 떠들고 있거든요.
수천장이..
정품으로 나간게 수천장인데, 불법 복제는 얼마나 많겠나..
그래서 저에게 귀를 빼앗기면 일평생 귀를 빼앗기는 거야. 한번 두번 듣고 마는 사람이 없거든요. 듣고 또 듣고하니까..
그래서 부부싸움이 나는 경우도 있고..
그래서 제가 볼때, 불멸의 음악 불후의 명곡들을 부른 가수는 돌아가셨어도 그 음악은 계속 들려지는 것처럼, 저 생각에 제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강의한 것은 제가 죽어도 그 소리를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도 괜히 이것저것 아는게 없고 모르는게 없고 그렇게 하지 말고, 하나라도 딱 부러지게 해가지고 한 곳을 뚫어내야 돼요.
우리는 해 냈다. 그런 정도 실력을 쌓아야 돼요.
그러면 쓰임받게 됩니다.
진짜 실력이 있으면 하나님은 그냥 두지 않습니다.
25절,
25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여러분 제가 볼 때 사람이, 하나님 말씀 이 우주적 대 진리에 붙들린 바 되지 않으면 사람이 별 수 없이 그 이상과 생각과 욕심이 땅에 쳐박힌다는 거야.
맨날 그저 강남에는 얼마.. 판교는 얼마.. 맨날 그런 것..
이상이 땅에 다 쳐박히고 말아요.
그래서 그런데도 소성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영혼이 깨어나는 겁니다.
지난 99회때 어떤 목사님 아들이 에스라성경강좌에 온 거야.
처음에 들으니까 괜히 기분나쁘더래요.
그래서 자기가, 어떤 사람이 부시에게 신발짝 집어던진 것처럼 맨 앞에 앉아서 뭘 집어던지고 도망갈려고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목사님에게 집어던질려고.. 뒷자리에 앉아 있으면 뭘 못 던지니까 앞에 앉았는데, 앞에 앉아있어서 은혜 받은 거야.
은혜 받아서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어.
그래서 그 간증문이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어요.
지나놓고 보니까 아 내가 위험했었구나..
나도 신발짝 맞아가지고 유명한 사람 될뻔 했는데, 아슬아슬하게 유명한 사람 못 되고 말았죠.
거기 와서 이를 간 사람이 있는 거야.
몰랐잖아요.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목사님 아들이야.
그래서 자기 아들이 성경강좌에 와서 딱 변해오니까 그래가지고 아들이 그 변해온 아들 농땡이 같은 아들이 아버지 보고 ‘아버지 설교를 이렇게 하십시오.’ 이랬다하네요..
그런데 아버지는 또 시키는 대로 했대요.
그것까지 다 올려놨어요.
여러분 집에 가서 홈페이지 읽어보세요.
참 감동적인 얘기죠.
어떤 경우는 창원에 있는 어떤 목사님 아들이 아마 고등학교 학생인가 대학생인가 하는데, 이단에 빠진거야. 이단에..
하는 말이 아버지가 하는 설교는 내가 어려서부터 들었는데, 틀렸다는 거야.
그런데 자기가 간 이단 거기가 맞다는 거야.
아버지가 할 말이 없잖아요.
아버지는 최선을 다해서 평생을 아들을 놓고 설교했는데 그게 틀렸다니까 할 말이 있어야지.. 어떤 말도 안 되는 거야.
그래서 아버지가 ‘좋다. 네가 그렇다니까 내 할말이 없는데, 내가 너를 낳아서 이만큼 길러줬으니까 아버지로서 한 가지 마지막으로 내 일생일대 마지막으로 소원이 있다.’
‘뭔데요?’
‘노우호 목사님이 하는 에스라 성경강좌에 거기 참여해서 들어보고 그래도 네가 옳거든 가라. 너는 아들도 아니고 나는 너의 아버지도 아니다. 끝을 내자. 할 수 있겠나..’
‘그럼 가보죠..’
그래서 왔었어요.
와가지고 구약성경 절반도 안 들어서 눈물 콧물 다 흘리면서 아버지한테 무릎을 끓고 ‘아버지 죽을 죄를 지어 잘못했습니다.’ 그러더라는 거야.
그 날 아버지가 그 아들 죽었다가 다시 얻은 거야.
차라리 죽었으면 괜찮죠. 목회자 아들이 빗나가서 이단에 빠져 보세요. 목회자가 어떻게 목회 하겠어요?
그래가지고 아버지도 울고 아들도 울고 그렇게..
그런 적이 있었어요.
여러분 사람이 부분적으로 들어서는 아무 것도 확신이 안 됩니다.
부분적으로 알아서는 항상 부분적으로 긴가민가 하고 아리까리 하고 그렇게 되는데, 딱 처음부터 하나님 말씀을 자초지종 근본부터 근원부터 창조 원리부터 들으니까 깨어져버리는 거예요.
고집 이런 것 깨어져버리죠.
그렇게 해서 사람이 그 인생이 자기 삶의 가치관이 바로 서고 역사관이 바로 서고 세계관이 바르게 잡혀서 자기 길을 가게 한다면 보람있는 일 아닙니까?
그래서,
25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별 수 없이 진리를 잊어버리면 사람의 영혼이 진토에 붙어버립니다.
땅에 떨어져요.
26 내가 나의 행위를 고하매 주께서 내게 응답하셨으니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27 나로 주의 법도의 길을 깨닫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기사를 묵상하리이다
28 나의 영혼이 눌림을 인하여 녹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
29 거짓 행위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주의 법을 내게 은혜로이 베푸소서
30 내가 성실한 길을 택하고 주의 규례를 내 앞에 두었나이다
31 내가 주의 증거에 밀접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로 수치를 당케 마소서
제가 그런 이야기를 가끔 했습니다.
다 들은 얘기일 될텐데, 여러분 우리가 어떤 정밀한 기계라든지 복잡한 어떤 메카니즘을 가져오면 그 기계와 함께 사용설명서 메뉴얼 하는게 따라와요.
이게(성경) 바로 메뉴얼이야.
사람이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 이것 읽어봐야 돼요.
여러분 하찮은 전자제품이나 그런 것 하나 사용하는 것을 가져와서 고장없이 잘 쓸려면 메뉴얼 잘 읽어봐야 되는 것처럼,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바른 지침서 내 인생을 경영하는 이 경영 지침서가 이게 성경이라면 이것을 안 읽어보고 살아간다는 것은 성공했다손쳐도 성공한게 아니야.
반드시 읽어봐야 돼요.
읽어볼 때 이 성경이 기록된 본래 원 목적이 이해가 되도록 읽어봐야 돼요.
건성으로 되면되면 하게 요절 몇절을 읽어서 되는게 아니고, 66권 한권 한권을 성실하게 바르게 빠르게..
교회 온지 2년 3년 만에 이 내용을 훤하게 보도록 그렇게 공부를 해야 됩니다.
빨리 알아야 돼요. 빨리..
이것을 일생 걸려버리면 그러면 실천은 언제 하겠어요?
그러니까 빨리 실천할려면 빨리 파악해야 돼요.
하나님 말씀과 아주 밀접해지기를 바랍니다.
32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오면 내가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그래서 사실은 하나님 말씀은 항상 그래도인데, 우리 마음이 좁아져가지고 못 받아들이는 거예요.
제가 성경강좌에 온 목회자들이 얼마나 좁아져 있는지 특히 보수교단 사람들이 더 좁아져 있어요.
보수교단 사람들이 건전해 보이기는 한데, 좁아요.
그 복음주의라는 주의라인 바깥에는 하나도 모르는 거예요.
성경 안에 있는 구원역사 구속사 외에는 하나도 전혀 몰라요.
그러니까 성경에는 그 외에도 엄청난 많은 정보가 있는데, 딱 예수믿고 구원받는 그 한길만 찾아갈 뿐 나머지는 하나도 모르는 거야.
엄청나게 풍성한 것이 있는데 모른다는 거야. 좁아져서..
이번 199회 때도 고신측 어떤 목사님이 자기 친구 목사가 꼭 가보라고 해서 왔다는 거야.
와가지고 들어보니까 자기들이 무지한 것이 여지없이 드러났다고 하면서, 믿은 것 자체는 맞는데 너무 좁아졌다는 거야. 스스로..
그래서 저는 지금도 내가 편협하거나 좁아져가지고 내 마음에서 좁아져가지고 엄청난 것을 내가 내 스스로 눈을 감아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늘 굳어지지 않을려고 노력해요. 내 안에서 스스로 좁아지지 않을려고 노력을 합니다. 항상..
33절,
33 여호와여 주의 율례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34 나로 깨닫게 하소서,
여러분 깨닫는 것, 말씀의 의미를 깨닫는 것 이게 참 중요한 겁니다.
지금도 제가 볼 때 신학자들이 꽤 많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글을 쓰고 논문을 쓰는 사람이 많아요.
오래 전에 나온 책이 ‘십계명 해설서’ 이런 것이 있었어요. 책 두께가 이만큼 되는 거야.
십계명 해설서가..
내가 볼 때 쓸데없는 말이 너무 많아..
진리는 쉽고 단순한 건데..
여러분 모세가 십계명 중에서, 1계명에서 3계명까지 해석을 할 때,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내게 있게 하지 말며,
우상을 만들지 말며,
하나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이 세 가지를 가지고 그런 단어풀이를 하고 있는게 아니라,
그 말씀이 뭐냐하면, ‘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그 말이다..
이렇게 깨닫는 것이 깨닫는 거예요.
그것은 문자 단어 풀이 해가지고 한도 끝도 없이 바리새인들처럼 복잡하게 하는 것은 깨닫지 못한 사람이 하는 거야.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깨달은 사람의 설교는 다릅니다.
설교도 다르고 강의도 다르고 참 진리 그 자체가 나오면서 아무도 거부할 수 없는 진리가 우리 속사람에게는 ‘아멘’ 되어지는 거예요.
여러분 그게 안 되면 어떻게 새벽 5시부터 밤 11시까지 4박 5일을 앉아 있겠어요?
그게 말씀이 들려져야 억지 설교를 억지로 쥐어짜내는 것 하면 들어주는 것도 고역입니다.
여기 진리 자체는 억지가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항상 들어도 옳은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성경강좌를 하거나 제가 설교를 하거나 방송을 하는 것은 성경 이야기 외에는 별로 안 하거든요.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거예요.
기교를 부리고 그런 것도 아닌데, 그 이상하게 또 들어도 또 들을만 하고 몇번 들어도 또 들을만 하고 맨날 들어도 새롭고 그렇다는 거예요.
사실 웃기는 얘기지만 저도 자주 들어봅니다.
제가 들어봐도 재미있다니까.. 웃기는 얘기죠.
제가 들어봐도 딴것 듣는 것보다 훨씬 나아요.
제가 설교하고 제가 강의한건데, 어떤 것은 저것은 원고도 없는데 저게 어떻게 나왔지?
원고에 없던 것도 가끔 나와요.
나오는데 그것도 참 재미있는게 많아요.
그러니까 진리 자체에서 떠나지 않고 그 원 진리 뿌리를 붙들고 이야기를 쭉 편안하게 하면 듣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듣는 거예요.
그리고 고함을 안 지르니까 하루종일 들어도 부담이 안 되죠.
막 설교 잘한다고 웅변하고 책상을 치고 해 보세요.
10분 이상 못 듣습니다.
지금도 이 근방에 그런 분이 있습니다.
어떻게나 고함을 지르는지..
복음이 아니고 소음같아. 소음..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깨닫게 되면 그리고,
..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35 나로 주의 계명의 첩경으로 행케 하소서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이다
36 내 마음을 주의 증거로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치 말게 하소서
이것 참 주의해야 될 일입니다.
우리가 까딱하면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아서 탐욕으로 모든 목적이 그저 탐욕으로 설교되면 그것은 잘못하는 거예요.
아니면 그 탐욕이 물질적 탐욕이 아니라 명예적 탐욕, 목회 성공 하겠다는 탐욕..
명예욕, 물욕, 권세욕, 그런 것들이 욕심으로 욕망으로 해가지고 설교가 오염될 수 있어요.
그렇게 되지 않도록..
37절,
37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항상 탐욕에 치우치거나 허탄한 것에 이끌리거나, 아무 것도 아닌 것에 자기 영혼을 팔면 안됩니다.
.. 주의 도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
38 주를 경외케 하는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세우소서
39 나의 두려워하는 훼방을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주의 규례는 선하심이니이다
40 내가 주의 법도를 사모하였사오니 주의 의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
여기까지가 ‘헤’ 하는 단락이고,
그 다음에 ‘와우’, 41절부터인데,
41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과 주의 구원을 내게 임하게 하소서
42 그리하시면 내가 나를 훼방하는 자에게 대답할 말이 있사오리니 내가 주의 말씀을 의뢰함이니이다
43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
진리의 말씀이 내 입술에 조금도 떨어지지 않게 항상 입을 열면 진리가 나오게..
이것은 참 기도 같지 않습니까?
여러분 에스라가 이렇게 대부분이 다 기도입니다. 기도인데, 여기 복 받겠다, 세상적으로 성공하겠다. 이런 말은 한마디도 안 나옵니다. 단 한구절도..
오직 그저 내가 바르게 깨닫고 사람들에게 바르게 가르치기 위해서 성경교사로서 바람직한 자세 정말 배울만한 거예요.
44절,
44 내가 주의 율법을 항상 영영히 끝없이 지키리이다
항상 지키고 영원히 지키고 끝없이 지키리이다.
45 내가 주의 법도를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행보할 것이오며
참 진리는 자유케 합니다.
여러분 주의 영이 계시는 곳에 자유함이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기 때문에 진리가 오히려 우리를 속박하고 얽어매는 것이 아니라 자유케 한다’는 겁니다.
제가 진리 그 자체가 이런 것이다 하는 것을 알고 나니까, 그 진리 아닌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한 거예요.
비진리가 우리를 속박할 이유가 없다는 거죠.
예수님을 알지 못할 때 성경을 알지 못할 때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우리가 별의 별것에 매여가지고 그렇게 불편한 생활을 했어요. 자유가 없었어요.
46 또 열왕 앞에 주의 증거를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겠사오며
47 나의 사랑하는 바 주의 계명을 스스로 즐거워하며
48 또 나의 사랑하는 바 주의 계명에 내 손을 들고 주의 율례를 묵상하리이다
여기까지가 ‘와우’,
49절부터 ‘자인’,
49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나로 소망이 있게 하셨나이다
50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51 교만한 자가 나를 심히 조롱하였어도 나는 주의 법을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여러분 예수 믿는것 때문에 혹시 조롱 당하거나 한것 없어요?
저는 여러번 있었어요.
한번은 완행버스를 타고 신학교 왔다갔다 할 때인데, 버스를 타고 가는데 나는 그래도 결혼을 했고, 그 때 나이가 서른살 정도 되었을 텐데, 고등학생 하나 까까머리니까 키도 크고 고등학생이 정도인데, 학생에게 전도를 해봐야 되겠다 하고, ‘학생 예수님 잘 아시오?’ 하고 말을 걸었어요.
그런데 아침부터 ‘예수를 믿느니 닭 똥구멍을 믿으면 계란이 하나 나온다’는 거야.
고등학생이 자기 아버지뻘은 안 되지만 자기 선생님 뻘은 충분히 되는데, 아침부터 얼마나 기분이 나빴는지 성질 같으면 귀싸대기를 한대 때리고 싶은..
그런데 무식한 사람 갋으면 그러니까.. 내가 그랬죠.
계란 얘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계란이 한번 태어나서도 거듭나지 않으면 썩달걀이 되고 말아 이 사람아..
그 계란 이야기를 해 가지고 중생 이야기를 한 거예요. 거듭난 이야기..
그래서 지금 자네가 엄마 뱃속으로부터 한 번 태어났지만 계란처럼 해가지고 바깥 세상이 뭔지 몰라.
영의 차원의 세계 4차원의 세계 그 위 더 고차원의 세계를 모르고 있다고..
기껏 안다는게 계란밖에 모르니 그래서 되겠는가..
계란 껍데기를 깨고 나오면 전혀 다른 세상이 있다네..
이렇게 기분 나빠하지 않게 전도를 했죠.
그래가지고 교회를 나왔어요. 그런데 교회 나와서 얼마나 속을 썩이는지..
자기 집까지 2km 되는데, 예배 올 때는 밝을 때 오니니까 오는데, 저녁에 갈 때는 남자아이라도 무서워서 집에 못 가..
중간에 가는 길에 각시소가 있다니까..
각시소가 뭐냐 물귀신이 나오는 소가 웅덩이가 있어요.
그래서 각시가 나온데 거기서.. 각시소 때문에 집에 못가기 때문에 자전거로 예배마치고 다 태워줘야 돼.
그래도 태워주는게 얼마나 즐겁던지.. 그런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 조롱을 당하죠.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예수를 믿으라고? 욕을 믿으라고 해..’
옛날 같으면 이리내 봐. 내가 비트는데 은사가 있거든요.
목수 일 해가지고 아구힘이 있어서 한번 내봐. 비틀어버리면 그냥 데굴데굴 굴러요. 그렇게 못하잖아요. 또..
하여튼 별의 별 조롱을 다 당해봤어요.
그 때 잘 참아야 돼요.
찬송가 487장에도 ‘세상 친구 멸시하고 너를 조롱하여도..’ 그런 말 있죠?
요즈음은 조롱을 덜하는데 옛날에는 진짜 조롱 많이 당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방송이나 이런 것들이 파상공세를 하면서 기독교를 조롱하고 나와요.
그 조롱하여서도 나는 주의 법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우리 청년들 학생들 누가 친구가 뭐 조롱하는 것 그런 것 아주 지혜롭게 잘 받아넘겨야지 그런 것 때문에 격분하고 그러면 안 됩니다.
52절,
52 여호와여 주의 옛 규례를 내가 기억하고 스스로 위로하였나이다
53 주의 율법을 버린 악인들을 인하여 내가 맹렬한 노에 잡혔나이다
율법을 버린 악인들을 인해서 내가 맹렬한 노에 잡혔나이다.
54 나의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가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
바벨론 포로 가 있을 동안에 주의 율례가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
55 여호와여 내가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의 법을 지켰나이다
56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니이다
하나님의 법도를 다 지킨 것이 이것이 나의 재산이고 나의 분깃이다.
57절부터는 ‘헤트’인데,
57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니 나는 주의 말씀을 지키리라 하였나이다
58 내가 전심으로 주의 은혜를 구하였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59 내가 내 행위를 생각하고 주의 증거로 내 발을 돌이켰사오며
60 주의 계명을 지키기에 신속히 하고 지체치 아니하였나이다
여러분 그 계명을 깨달으면 지체하지 않고 가서 지킬려고 했다는 거야.
61 악인의 줄이 내게 두루 얽혔을지라도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62 내가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밤중에 일어나 주께 감사하리이다
63 나는 주를 경외하는 모든 자와 주의 법도를 지키는 자의 동무라
64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땅에 충만하였사오니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다른 것으로 나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 나를 가르치소서.
65절부터는 ‘테트’. 영어로 티읕 발음이죠.
65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종을 선대하셨나이다
여러분 저도 어디가서 강의를 하거나 설교를 하거나 대화를 하거나 할 때, 내가 하는 말을 참 알아듣고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하면, 그것처럼 즐거운게 없는 거야.
사실은 저 이야기는 내 이야기는 내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내 개인 이야기 할게 있어야지 말이지..
아무리 해도 내 개인 이야기는 내 놓을게 없어요.
내놓으면 부끄러운 것 밖에 없으니까..
내 부끄러운 이야기 안 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 말씀 전하는 거예요. 그냥..
그런데 단지 내가 말심부름 해도 하나님 말씀을 전했는데, 내 말이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 말씀인데, 그것을 달게 받아들이는 사람을 보면 나의 작은 봉사가 보람을 느낀다는 거야.
나는 내 말이 아니라도 그러는데 나같은 심부름꾼을 시켜서 하나님 말씀을 전했는데, 누군가가 그것을 달게 받아들였는데 전하는 나도 기쁘겠는데 하나님은 얼마나 기쁘겠어요.
말씀을 달게 받아들이는 것..
그래서 이 말씀대로 주의 종을 선대하셨나이다.
66 내가 주의 계명을 믿었사오니 명철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
67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때때로 이런 저런 고난이 우리를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오게 하는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분이 그래요.
자기가 인생을 살아가다가 심한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것이 지금 돌이켜 보니까 은혜였다는 거예요. ‘내 이 교만한 것을 보세요. 내가 안 어려우면 내가 하나님께 나오겠습니까?’ 하면서..
얻어맞은 것 때문에 하나님께 나왔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오늘 낮에도 그 비슷한 얘기를 들었는데, 환도뼈가 두개가 완전히 고장난, 환도뼈가 야곱처럼 위골될만큼 환도뼈 두개가 상할만큼 되어가지고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그런 사람이 있는 거예요.
고난 당하기 전에는 삐딱하게 갔다가 혼쭐나고 돌아와서 하나님 말씀을 지키나이다.
68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69 교만한 자가 거짓을 지어 나를 치려 하였사오나 나는 전심으로 주의 법도를 지키리이다
70 저희 마음은 살쪄 지방 같으나,
여러분 살이 마음에도 살이 너무 찌면 비계덩어리 같다니까.. 교만한 거야. 배부르니까..
..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71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그래서 여러분 고난도 우연히 임하지 않는다는 거야.
그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 뜻대로 부름심을 입었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난과 이런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거예요.
여러분 사도바울이 로마에 가기 전에 그 얘기 했습니다. 고린도에서 그 얘기 했는데, 써서 로마로 보냈잖아요.
그 뒤로도 바울의 일생을 보면 그 많은 고난이 전부 합력하여서 선을 이루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언제? 주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일때..
역경 고난 환난 이런 것이 다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거예요.
그럴 때는 그런 고난이 올 때에 낙심하지 않은 믿음이 있어야 돼요.
조금 어렵다고 하나님 뜻이 아닌가 보다..
조금 어렵다고 하나님이 나를 버렸는가 보다..
이래가지고는 그런 일 감당 못해요.
전에 한번 얘기 한것 같은데, 제가 우리 성서학원에서 25명이 공부하는데, 내가 공부도 제일 잘 한것 같은데, 제가 제일 비참한 데 갔다니까..
딴 사람은 사택도 있고 생활비도 주고 하는데, 나만 아무 것도 없는, 사택도 없고 아무 것도 없어.
그래서 교회 빚이 내가 갈 때 7월달에 갔는데 9천원 있었는데 연말까지 그 빚이 안 갚아지는 거야.
그러니까 성도들 대여섯명 앉아 있는데, 그것 해가지고 석유 램프 석유 사는 값 밖에 안 되는 거야.
그래서 연말에 가서 남자 집사님 하나 있는데, 그것도 맨날 담배 농사한다고 교회도 잘 안나오고..
담배농사가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사람 애를 먹이거든요.
계속 땄다 뭉쳤다가 불었다가.. 토깨비가 흉내를 못 낸다고.. 얼마나 일이 많은지..
하여튼 또 집사가 담배농사를 지어가지고..
그래서 집사님에게 우리 둘이 이 9천원 없애고 장부를 0으로 만들자.
붉은 글씨로 적자로 어떻게 넘어가겠소?
그 때 9천원이면 지금 90만원 될지 모르겠어요. 30년 전이니까..
그 때 전도사 제 왔다갔다 하는 차비 쓰는 경비로 5천원 받았거든요.
그래서 그것을 없애버리고 넘어갔는데, 한편 서글픈 생각이 드는 거라.
내가 하루 나가서 목수일 하면 돈이 얼만데..
이게 이런 비참한데 나한테 떨어졌는가 하는 그런 생각을 하는데, 한번은 무슨 책을 읽었는지 무슨 기도를 했는지 하여튼 깨달아졌어요.
뭐가 깨달아졌느냐?
여기는 어려운 곳이고 아무도 안 가는 곳이고 또 아무나 가서 되지도 않는 곳이고, 그래서 내가 너를 보냈어. 이것아..
그런 것을 깨닫게 된 거야.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전혀 그런 비참한 생각 안하기로 했는데, 또 현실을 보면 비참하거든..
그래가지고 못하겠다고 나를 보낸 목사님 찾아가서 못하겠다고 하니까 혼쭐났어. 또..
해보지도 않고 말이야..
그렇게 포기한다고.. 초신자때니까..
예수믿고 1년 반만에 전도사가 되어 갔으니까 뭘 알겠어요?
가만히 엎드려 있으라고..
지금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려고 가만히 내려다 보고 있는데, 그렇게 쉽게 낙심하면 되느냐고 혼이 났죠..
조금 있으니까 있어도 아무 것도 안 내려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없어..
그런데 그 고비를 조금 넘기고 있었더니 나를 거기 보냈던 목사님이 자기 교회 장로님을, 부자인 장로님이 있었어요. 시골에 있었지만 부자예요.
제 이야기를 해가지고 사람이 괜찮은 사람 일할 만한 사람인데, 좀 도와줘야 되겠습니다. 했더니 이 장로님이 쭉 들어보더니 산을 하나 팔았어요. 자기 산을..
산을 하나 팔아가지고 그 때 돈 40만원 큰 돈이었어요.
30년 전이니까..
78년도 쯤 되었으니까.. 30년 넘었죠.
40만원을 들고 온 거예요.
40만원 그것 해가지고 땅살 돈도 안 돼.. 예배당 지을 정도가 안 돼.
청년들이 전도를 하는데 성탄절때 나오라고 했더니, 동민들이 뭐라고 하느냐?
‘아이고 우리 화장실만도 못한 예배당에 거기 가겠나..’ 그러더래요.
청년들이 기가 팍 죽어가지고 전도할 용기가 안 난다는 거야.
그래서 하나님 보고 내가 목수니까 내 손으로 지을테니까 자재라도 하나님이 주셔야 지을것 아닙니까? 아무리 쳐다봐도 안 내려와요.
그러더니 40만원이 탁 오니까 용기가 조금 생긴거죠.
그래서 비참하게 그렇게 떨어질 때가 있었어요.
나 혼자만 이렇게 비참하게 떨어졌다.
그래서 지금도 제가 그 처음 갔던 그 교회가 30년 되었는데 그래도 꿋꿋이, 그런 상한 갈대나 가물가물한 등불도 끄지 않고 시골인데 지금 성도가 70-80명 모인답니다.
완전 고성군과 사천군의 경계 지방이니까 그야말로 오지중에 오지죠.
지나오고 나서 그런 제가 작은 정성이라도 5년 1개월 있었는데 쏟아부었던 것이 헛되지 않고 거기서 목사가 몇 사람 나오고..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래서 우리가 고난 당하고 어려움 당하고 하는 그 때 많이 배우는 거예요.
배부르면 그게 잘 안돼요.
어려울 때 힘겨울 때 이럴 때 배울게 있는 거예요.
그래서,
72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승하니이다
73절부터는 ‘요드’라고 하는 히브리어 요드로 시작하는데,
73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나로 깨닫게 하사 주의 계명을 배우게 하소서
74 주를 경외하는 자가 나를 보고 기뻐할 것은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는 연고니이다
75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판단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음이니이다
여러분 우리가 성실하지 않으면 자기 자녀를 때려서 교육하지 않습니다.
정말 자기 자녀를 제대로 성실히 가르치려면 때려서라도 교육을 하는 거죠.
그러니까 이 에스라가 자기를 괴롭게 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예쁜 아들을 예쁜 딸을 때려서까지 하는 것은 굉장한 성실한 마음이 있어야 그렇게 교육할 수 있는 거예요.
맨 그저 얼러서 기르면 후레자식이 된다니까..
여러분 홉니와 비느하스 봤잖아요.
아들이 사랑스러운 것은 좋은데, 하나도 안 때리고 기르니까 홉니와 비느하스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할 때 사생자라면 몰라도 받으시는 진짜 아들 참 아들 같으면 반드시 징계한다.
주의 성실에서 나오는 거라.
제가 전에 있던 원지교회 목사님이 가끔 여기 사론강좌에 오는데, 제가 아이들을 그냥 얼러 기르지 말고 반드시 때려가면서 길러라 했더니 그대로 해요.
거기는 보통 조금 잘못하면 한 대 두 대, 좀 세게 잘못하면 다섯 대, 극형은 일곱 대야.
딱 보고 있다가 너는 오늘 극형에 처한다 하면 일곱 대.
세 대 맞으면 ‘아빠 잠깐만요 조금 살살 때리면 안 돼요?’
맞을 짓 해서 맞으면 또 ‘아빠 잠깐만요. 아빠도 맞아봤어요?’
절대로 봐주는 것 없고 성실히 때리는 거예요. 성실히..
그리고 그 아이가 제일 웃긴데요. 제일 많이 맞는 아이가..
놀이방 게임방에 가면 거기 가면 극형에 처하는 건데, 변명을 하는데 나는 안 갈려고 했는데 발이 그리 갔다는 거야.
초등학교 1학년인데.. 그렇게 하기도 하고..
아빠 왜 몸에 해로는 것이 맛있느냐고 물어본대요..
그렇게 묻고 귀여워서 도저히 때릴 수 없는 거지만, 노우호 목사님이 자녀는 모름지기 성실히 때리면서 길러야 된다 하는 것 때문에 그렇게 초달하면서 기른대요.
셋 다 반듯하게 큰거야.
그래도 학교에서도 사랑받고 교회에서도 사랑받고 그렇게 아이들이 귀여울 수 없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그 아버지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만큼 그렇게 귀여운 아이들을 때리는 것은 미워서가 아니라 성실에 기초한다는 거예요.
하나님도 우리를 때리는 것은 하나님이 성실하기 때문에 때린다는 거예요.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에스라의 신앙이예요.
그래서 고난당하는 것도 내게 유익이라..
76 구하오니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이 나의 위안이 되게 하시며
77 주의 긍휼히 여기심이 내게 임하사 나로 살게 하소서 주의 법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78 교만한 자가 무고히 나를 엎드러뜨렸으니 저희로 수치를 당케 하소서 나는 주의 법도를 묵상하리이다
79 주를 경외하는 자로 내게 돌아오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저희가 주의 증거를 알리이다
80 내 마음으로 주의 율례에 완전케 하사 나로 수치를 당치 않게 하소서
81절부터는 ‘카프’인데요,
81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오히려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82 나의 말이 주께서 언제나 나를 안위하시겠나이까 하면서 내 눈이 주의 말씀을 바라기에 피곤하니이다
83 내가 연기 중의 가죽병같이 되었으나,
여러분 가죽병을 연기에 그을리면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겠는데, 그래도,
.. 오히려 주의 율례를 잊지 아니하나이다
84 주의 종의 날이 얼마나 되나이까 나를 핍박하는 자를 주께서 언제나 국문하시리이까
85 주의 법을 좇지 아니하는 교만한 자가 나를 해하려고 웅덩이를 팠나이다
교만한게, 항상 주의 법을 쫓지 않는 것이 교만이죠.
86 주의 모든 계명은 신실하니이다 저희가 무고히 나를 핍박하오니 나를 도우소서
87 저희가 나를 세상에서 거의 멸하였으나 나는 주의 법도를 버리지 아니하였사오니
88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로 소성케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입의 증거를 내가 지키리이다
89절부터 ‘람다’입니다.
89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90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
91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고 그 모든 만물이 지금 이렇게 굳건히 서 있는 것은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서 그렇게 하는 거죠.
92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93 내가 주의 법도를 영원히 잊지 아니하오니 주께서 이것들로 나를 살게 하심이니이다
94 나는 주의 것이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법도를 찾았나이다
95 악인이 나를 멸하려고 엿보오나 나는 주의 증거를 생각하겠나이다
96 내가 보니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어도 주의 계명은 심히 넓으니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는데,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어도, 주의 계명을 볼 때 정말 한없이 넓은, 지극히 작은 것부터 시작해가지고 한없이 넓은 세상까지 펼쳐 나갈 수 있는 그런 말씀이 하나님 말씀이다.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 119편은 거의 자기 신앙고백이며, 또 기도시가 되며 또 자기의 인생관 세계관 가치관이 다 묻어나오는, 다시 말하면 에스라라는 학자의 신앙과 세계관 가치관 역사관 전체가 다 묻어나는 그런 고백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우리 스스로 내가 믿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는지를 신앙고백서를 써 보세요.
그렇게 써보면 이 에스라가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 얼마나 하나님의 계명 말씀과 율례와 규례와 법도를 사랑했는지 그런 것을 절감하게 될 겁니다.
우리는 몇절 나오지도 않을 거야.
하도 우리 속에 우리 머리가 정리가 안되기 때문에 이렇게 끝없이 한없는 노래가 안 나온다는 거예요.
다시 말씀드리거니와 여기는 우리가 맨 우리 한국에 기복적인 어떤 미신적인 거머리 딸처럼 맨날 다고 다고 하는 것은 거의 안 나오는 얘기죠.
거의 하나님 계명을 즐거워하는 얘기, 그리고 그 완전함을 찬양하는 얘기, 그리고 이것을 자기가 잘 행하게 그리고 남에게 잘 가르칠 수 있기를 이런 기도로 꽉 들어찼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저 개인 기도가 참 많았는데, 나중에 나를 위해서 기도할게 아무 것도 없어요.
저는 천국에 가서 얻어맞지 않았으면 좋겠다.
땅에서 복받는 것 내가 무슨 복을 어떻게 받겠어요? 지금..
받은 것만 해도 너무 많이 받아서 민망할 정도인데, 그런 것은 기도할 마음이 없고..
우리 성도들이 다른 것은 몰라도 하나님 말씀을 정말 사모하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그리고 이것을 빨리 빨리 배워서 전하는 그런 모습을 보고 싶고 그런 거지, 저 개인적인 어떤 아무 그런 소원이 다 사라진 것 같아요.
이것은 바로 제가 에스라의 이런 삶의 자세 또 이런 신앙 이런 것을 제가 다 흠모하기 때문에 저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닮아 가는지 흉내 내는지 몰라도, 세상적인 그런 욕망보다도 에스라와 같은 그런 심령 그런 자세로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97절 이하는 다음 시간에 보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사람 에스라가 주의 율례와 계명과 법도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얼마나 사모하고 얼마나 달게 여기고 또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오늘 이 시편을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우리도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또 그것을 깨달으며 이를 사랑하고 이를 증거하는 신실한 증인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