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antanamera
- 저항의 시, 저항의 노래
Guantanamera
Guajira Guantanamera
Guantanamera
Guajira Guantanamera
Yo soy un hombre sincero
De donde crece la palma
Yo soy un hombre sincero
De donde crece la palma
Y antes de morirme quiero
Echar mis versos del alma
Guantanamera
Guajira Guantanamera
Guantanamera
Guajira Guantanamera
Mi verso es de un verde claro
Y de un jasmin encendido
Mi verso es de un verde claro
Y de un jasmin encendido
Mi verso es un ciervo herido
Que busca en el monte amparo
Guantanamera
Guajira Guantanamera
Guantanamera
Guajira Guantanamera
Con los pobres de la tierra
quiero yo mi suerte echar
Con los pobres de la tierra
quiero yo mi suerte echar
El arroyo de la sierra
me complace más que el mar
Guantanamera
Guajira Guantanamera
Guantanamera
Guajira Guantanamera
|
관따나메라
관따나모의 여인이여
과히라를 노래해요, 관따나모의 여인이여
관따나모의 여인이여, 과히라를 노래해요
관따나모의 여인이여
나는 진실한 사람
야자수가 자라는 마을 출신이라오
나는 진실한 사람
야자수가 자라는 마을 출신이라오
그리고 내가 죽기 전에
나는 내 영혼의 시를 쓰고 싶다오
관따나모의 여인이여
과히라를 노래해요, 관따나모의 여인이여
관따나모의 여인이여
과히라를 노래해요, 관따나모의 여인이여
나의 시는 생기 넘치는 초록색이며
불타는 쟈스민이라오
나의 시는 생기 넘치는 초록색이며
불타는 쟈스민이라오
나의 시는 상처입은 사슴
산에서 피난처를 찾는다오
관따나모의 여인이여
과히라를 노래해요, 관따나모의 여인이여
관따나모의 여인이여
과히라를 노래해요, 관따나모의 여인이여
이 땅의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이 한 목숨 바치리라
이 땅의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이 한 목숨 바칠 것이라오
산골짜기에 흐르는 시냇물이
나는 바다보다 더 좋다오
관따나모의 여인이여
과히라를 노래해요, 관따나모의 여인이여
관따나모의 여인이여, 과히라를 노래해요
관따나모의 여인이여
|
Guantanamera
는 라틴 아메리카의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노래다. El Condore Pasa가 인디오의 언어와 가락으로 스페인의 강점에 의한 잉카제국의 몰락을 슬퍼한 노래라면, Guantanamera는 스페인어로 스페인의 식민통치 아래 고단한 삶을 영위하던 쿠바 사람들의 저항의 노래이자 저항의 시(詩)다.
Guantanamera는 노래 가락도 아름답고 서정적이지만, 쿠바 독립의 아버지인 호세 마르티의 싯구절들을 원전으로 한 민요이기 때문에 쿠바에서는 물론 스페인의 식민통치를 경험한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아직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노래다. 특히 이 노래의 모국인 쿠바에서는 공식적인 국가(國歌) 이상으로 쿠바를 상징하는 노래로 국민들이 애창하고 있다.
이 노래는 민요라는 특성상 여러 버전이 있었는데, 최초로 악보화되어 음반으로 발매된 것은 1945년이었다. 호세 페르난데스 디아스(Jose Fernandez Dias)라는 가수가 과히라(guajira)라는 고유의 음악형식으로 El Solo de Papecito라는 제목을 달아 레코딩했으나, 바로 그 해 미국에서 레코딩된 음반이 폐판되어 세상에서 잊혀졌다. 그러나 1961년 미국 포크음악의 대부 피트 시거(Pete Seeger)가 엑토르 앙굴로(Hector Angulo)라는 쿠바 청년으로부터 노래를 채보하여 1963년 그 악보를 등록함으로써 다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때마침 쿠바 내의 소련 핵기지 건설을 둘러싸고 벌어진 미국과 소련과의 일촉즉발의 위기 국면에서, 이 노래가 A hard rain gonna fall(우리나라에서는 양병집과 이연실이 <소낙비>로 번안하여 불렀음)과 함께 평화를 염원하는 각종 집회와 시위의 단골메뉴로 불려지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1966년에는 ‘샌드 파이퍼스’(Sand Pipers)라는 보컬 트리오가 낸 싱글 앨범이 미국 내 판매 10위권에 들어가고 앨범차트 9위에 오르면서 일반인들에게까지도 널리 알려지게 된다.
쿠바 독립의 아버지 호세 마르티
Guantanamera의 원전이 되는 Versos Sencillos를 쓴 호세 마르띠(Jose Marti, 1853~1895)는 시인이자 사상가이자 혁명가로서, 쿠바 독립의 기초를 다진 인물이다. 현재까지도 쿠바 독립의 아버지, 쿠바의 사도로 추앙받고 있으며, 수도 아바나에는 호세 마르띠 공항(옛 아바나 공항), 호세 마르띠 광장, 호세 마르띠 기념관 등이 세워져 그를 기념하고 있다.
1853년 스페인 출신 어머니와 카나리아 제도 출신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호세 마르띠는 중등학교 시절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한 시를 쓰던 교사 멘디베(Mendive)를 만나 쿠바의 현실에 눈을뜨게 되어, 16세 때부터 쿠바의 독립을 염원하는 내용의 <절름발이 악마>, <자유 조국>,<서사시>, <압달라> 등의 시들을 발표한다. 문학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호세 마르띠는 1870년 스페인군에 입대한 동료 학생을 비판한 편지가 공개되면서 체포되어 옥고를 치루지만, 감옥에서 오히려 식민지 백성들의 삶을 생생하게 체험하고, 조국 쿠바의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맹세하게 된다.
6년을 감옥에서 보낸 뒤 스페인으로 추방된 호세 마르띠는 사라고사대학에서 법학과 철학, 문학 등을 공부하고, 1873년에 멕시코에서 결혼한 후 중남미를 전전하다가 1878년 귀국해서 다시 독립운동을 계속한다. 그러나 다시 체포되어 스페인으로 재추방당하자 뉴욕으로 망명하여 La Patria(애국)지(誌)를 발행하는 한편, 쿠바 독립운동 단체들을 모아 ‘쿠바혁명당’을 조직하여 8년동안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펼친다. 그러나 1895년 무장세력을 이끌고 쿠바로 들어와 관따나모 근처에서 스페인군과의 전투 중에 전사한다.
호세 마르띠는 전 생애에 걸쳐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많은 시와 문예평론, 전기, 설화 등을 비롯하여, 세계 정세와 독립운동의 방향과 내용에 관한 글을 남겼는데, 문학사적으로도 쿠바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칭송받는다. 작품으로는 아들을 위하여 쓴 Issmaelillo(1882, 뉴욕), Versos Sencillos(1891년, 뉴욕), 사후 간행된 Vessos libres(1910년) 등의 시집과 쿠바혁명 후 아바나에서 발간된 Obras completas de Jose Marti(호세 마르띠 전집) 등이 있다. 노래 Guantanamera는 호세 마르띠의 시집 Versos Sencillos(단편 시집)의 싯구절을 발췌하여 민요로 만들어진 것이다.
호세 마르티의 사상은 체 게바라를 비롯한 제3세계의 해방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지금까지도 라틴 아메리카 일부에서는 그가 주장했던 농업을 기반으로 한 소공동체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쿠바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투쟁하면서도 “내 진정한 조국은 쿠바가 아닌 인류”라고 보편적 인류애를 주창하던 호세 마르띠는 ‘지구상의 그 어떤 인간보다 순수한 인간’, ‘증오를 지워버린 투사’, ‘아메리카 최고의 지성’, ‘언행이 일치했던 진정한 인간’이라는 칭송과 함께 노래 Guantanamera가 불려지는 한 영원히 세상 사람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관따나모의 비극
노래 제목인 ‘Guantanamera’라는 말은 쿠바 동쪽의 한 시골 항구마을인 ‘관따나모의 여인’이라는 의미인데, 관따나모는 1903년 이래 지금까지 미국의 군사기지가 있는 곳으로, 현재는 세계가 주시하고 있는 알카에다 조직원들과 이라크전쟁의 포로들이 수감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관따나모는 대서양의 태풍 허리케인을 피할 수 있는 매우 아름다운 천혜의 항구도시이지만, 쿠바인들에게는 치욕의 장소다. 콜럼부스가 상륙한 곳이 바로 관따나모였고, 그 때문에 신대륙의 황금을 찾아나선 열강들이 군사적 요충지로 눈독을 들여 콜럼부스 이후 지금까지 멕시코, 영국, 스페인, 미국 등에 점령당해 왔기 때문이다.
미국은 1989년 하바나항에서 일어난 미국 군함 메인호의 폭발사건(후에 미국이 조작했음이 밝혀졌음)을 빌미로 스페인에 전쟁을 선포하고 관따나모에 미군기지를 건설하는데, 이것이 바로 ‘미·서 전쟁’이다. 이 전쟁의 결과로 미국은 쿠바에 친미정권을 세우는 한편, 일본과 카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어 조선을 일본에 넘기고 필리핀을 식민지화할 수 있었다.
1903년 미국은 매년 금화 2,000개(약 4,085달러)의 기지 사용료를 쿠바에 지불하는 대신 미국이 원할 때까지 관따나모의 기지를 사용한다는 계약을 맺고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데, 1959년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친미정권을 무너뜨리고 쿠바 혁명이 성공하자 미국은 기지 주변에 28마일 길이의 철책을 둘렀다.
쿠바 핵위기가 해결되고 냉전이 종식되면서 관따나모 기지의 중요성이 많이 떨어지기는 했으나, 2001년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 체포된 탈레반과 알카에다 포로들과, 2003년 이라크전쟁의 포로들이 이곳에 수감되면서 세계인의 이목이 다시 집중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곳에 수감된 전쟁포로들이 미군에 의해 고문과 가혹행위 등을 당하고 있고 비인도적 대우를 받고 있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국제앰네스티를 비롯한 인권단체들과 국제사회로부터 거센 항의와 비판을 받고 있다.
피트 시거
Guantanamera를 채보하여 발굴한 피트 시거는 1919년 음악학자이자 민요채집가인 찰스 시거(Charles Seeger)의 아들로 뉴욕에서 태어났다. 1938년 하버드 대학을 중퇴하고 부친의 유업을 이어 부친의 동료였던 의사 존 로맥스(John A. Lomax)ㆍ알란 로맥스(Alan Lomax) 부자, 동료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 등과 함께 미국의 전 지역을 돌며, 민요를 채집했고, 이를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와 함께 포크음악으로 정리하여 현대 포크음악의 창시자로 칭송받는 인물이다.
피트 시거는 민요와 노동자의 고단한 삶이 배어있는 호보송(hobo song)*을 채집하여 이를 바탕으로 미 전역의 대학과 노동조합들을 돌며 포크음악을 전파하는 한편, 그룹 알마낙 싱어스(The Almanac singers, 1941)와 위버스(The Weavers, 1948)에서 활동하면서 포크음악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 호보송(hobo song) : hobo(호보)라는 것은 화물열차에 무임승차하여 각지를 이동하는 방랑자. 다만 거지는 아니며 도착한 곳에서 날품팔이로 먹고 산다. 이런 호보의 괴로움 또는 그 낙천성을 노래한 것을 hobo song이라 한다.
그뿐 아니라 피트 시거는 세계 각국의 민요 채집에도 관심을 기울였는데, 한국전쟁에 보병으로 참전하여 경기도 포천과 의정부 등지에서 국군과 인민군 모두 아리랑을 부르는 것을 목격하고 아리랑을 채보하여 1957년 음반으로 내기도 한다. 그 후로 피트 시거는 아리랑을 반전평화의 노래로 소개하면서 노래를 부를 때마다, 꼭 “한국에는 다양한 멜로디의 아리랑이 있습니다. 일본이 한국을 지배할 때는 이 노래를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한국은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있지만, 남과 북에서 아리랑을 부르는 한 한국은 분단국가가 아닙니다”라는 멘트를 하고 있다.
피트 시거는 포크음악의 창시자로서 만족하지 않고, 자신이 만든 노래에 사랑과 평화와 정의의 메시지를 담아, 미국뿐 아니라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차별과 억압과 불의에 저항해왔다. 포크음악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그저 구전되어 온 작자 미상의 민요가 포크 음악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 생명이 없는 노래는 포크음악이 아니다. 그 시대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반영되어 진실이 녹아있다면 그것이 포크음악”이라고 단언하면서, 아흔이 가까운 나이에도 그러한 정신으로 이라크 전쟁 반대운동을 비롯해 각종 집회와 시위에 지금까지도 열성적으로 참여하여 노래하고 있다.
피트 시거의 대표곡으로는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세계의 모든 집회와 시위현장에서 불리워지는 We shall overcome (우리 승리하리라)- 우리나라에서는 1972년 서울대학교 신입생 환영회 때 김민기가 처음 번안해 불렀다- 반전평화의 고전 Whenever flowers all have gone (꽃들은 모두 어디에 갔나), Guantanamera 등이 있으며, 총 700여곡에 달하는 민요를 채보해, 포크음악으로 복원시켰다. 이러한 그의 음악적 공로를 기리기 위해 후배 음악인들에 의해 1998년부터 2003년까지 Seeds: The Songs of Pete Seeger vol1,2,3 총 3장의 헌정음반이 제작되어 그에게 바쳐졌다.
원문 : 네이버 dhk99 님의 블로그(에서 전재함)
압달라>서사시>자유>절름발이>소낙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