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6월 30일 이해영 연대장과 제대 송별연을 끝내고 연대를 나오니 그동안 정들었던 동네 S여관과 J요정에서 우리(보병, 포병 기갑, 통신, 알오티시 13기 천도리 근무)를 초대했다. 그들은 이별을 아쉬워했다. 그리고 그들은 역대 학군단 기수 중 우리가 그동안 가장 매상을 많이 올려 주었다는 얘기를 했다. 그동안 정들었던 인접 2중대 김창섭 중대장의 집에도 2중대 동기 두 명과 함께 초대 받았다. 그는 집에서 기르던 토종닭을 직접 잡아 주었다. 내가 1대대 3중대 근무할 때 나는 일과시간 중에도 내가 소속된 3중대 보다, 2명의 동기들이 있는 2중대에 가서 살다시피 했다. 왜냐하면, 나의 중대장인 H(3사 4기)는 사랑이 메마른 사람이었고, 욕설과 폭력을 자주 행사했다. 반면에 같은 3사 4기였던 2중대장은 인정과 관용이 넘친 분이었고, 비록 3사관학교를 나왔지만, 보병학교 고등군사반 졸업성적이 전체 4등일 정도로 실력이 있는 분이었다. 사람은 자연적으로 거칠고 메마른 인간에게는 거리를 두게 되고, 사랑이 있는 사람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마련이다. 내가 우리 중대를 떠나 2중대에 주로 가게 된 것도 사랑이 있는 쪽으로 가고 싶은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 때문인 것이다. 살벌하기 짝이 없는 군대에서 사랑은 더욱 목마르고 절실히 필요했다.
김창섭중대장은 사단사격장에서 사격측정이 있을 때에 2중대 소대장들과 토종닭 회식을 했는데, 나도 그 자리에 불러 주었다. 그리고 특전사 출신이었던 L 2중대 선임하사 제대 송별연에도 나를 불러 칠점사 뱀술을 맛보게 한 적도 있다.
그는 4중대장을 끝낸 후 실력을 인정받아 육사출신들의 보직인 연대직할 전투지원 중대장에 임명되었다. 제대 후 소식을 들으니 그는 보안부대에 들어가 대구 태백공사(대구경북 지역 관할 보안부대)부사장(중령)을 하고 전역했는데, 전역하고 대구에 있는 모 신용금고 감사를 할 때 그의 사무실에서 반갑게 재회한 적이 있다.
첫댓글 사람은 자연적으로 거칠고 메마른 인간에게는 거리를 두게 되고 사랑이 있는 사람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마련이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남자분들에게는 군 시절의 전우가 참 귀한 존재일 것 같아요.
다저스님의 군 시절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항아리님 댓글 격려 말씀 감사합니다ㅡ
마지막으로 연재하셨군요..ㅎㅎ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중간중간에 가끔 읽기는 했어도
댓글은 못 써드려 죄송합니다.~^^
샤론 운영위원님 방문 격려 댓글 감사합니다ㅡ
그 당시엔 빨리 마무리 되길 바라는 것 중에 하나가 남자들에겐 군생활인데,
지나고 보니,
그 조차도 아름다움 이었네여,
ㅎ ㅎ
방장님도 힘든 최전방 백령도 해병근무도
잘 마무리 하셨습니다~
76년 8월
전역을 앞둔 저의 중대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완전무장대기
오백미터 앞에서 적들의 탱크 포심이 부채 살 같이 드러나 보이고
명령만 떨어지면 제일 먼저 달려나갈 준비 태서
그때 동기에게 물었죠
"우리 죽으면 다음세상에서 만나자" 이럴 줄 알았으면 어머니에게 편지나 써둘걸~
나의 말을 뒤로 한 채
그날 동기가 웃으며 한 말이 너무 고마워
지금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동기야?" 조국을 위해 죽는다면 그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 있겠냐"
시골바다님은 해병대 출신으로 알고있는데요 ㅎ
저의 오빠도 해병출신이어요
성질 개떡 같아요 저의 오빠요 ㅎ
자아보다 대아를 위해서 살자는 바다님의 전우의 말이 가슴에 꽃힙니다ㅡ
남자분들은 제일 힘들었던 시절은 군 시절이라 말씀하시지만
제일 그리운 것도 군 시절이라 하십니다
제일 다저스님은 멋진 장교였을 것 같아요
지금도 멋지지만요 ㅎ
상상하며 잘 보았습니다
맑음님 격려와 사랑의 말씀에 고맙기 짝이 없네요
우리 팝힐에도 한번 시간나시면 놀러오시기
바라겠습니다
군생활 마지막 이야기..
남자분들의 군생활
이야기라
깊은 공감은 못했지만
다저스님의 인맥과 오래된 기억들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시고 글로
재미있게 써주셔서 많이
놀라웠어요~^^
그래서 박수 드리고 싶어요..
보라님의 격려와 칭찬의 글을 받잡고 감사한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다음에는 사회생활에서 겪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가끔 팝힐에 올리겠습니다
보라님과 회원님들의 성원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