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동 성당 선교분과 위원 순례기
8월7일(토) 선교분과 위원과 원장수녀님 10명이 본당 봉고차를 타고 구산성지, 마재성지 ,양근성지 3곳을 순례하는 일정으로 성지순례를 떠났습니다
그동안 신영세자의 입교에서 세례까지 여러 가지 과정의 빈틈없는 준비 등 분과 위원 모두의 희생과 봉사를 위로하고 , 이 땅의 신앙의 자유를 위하여 목숨을 받쳐 순교하신 성인의 발자취를 느껴보고자 성지순례를 계획 하였습니다
많은 비가 내릴 것 이라는 일기예보에 걱정을 하였으나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습니다. 외곽순환도로를 달려 미사리 근처 구산성지에 도착 하였습니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하신 김성우(안토니오) 성인과 여덟 명의 순교자가 묻혀 있고, 마을을 둘러싼 산의 모습이 거북을 닮아 구산이라고 불러 이곳 성지는 구산성지 입니다.
전통적인 신앙공동체의 모습을 200여 년을 간직하고 있는 귀중한 교회의 얼이 살아있는 평화의 은혜가 가득한 성지입니다. 이곳 구산 성지가 평화의 은혜가 충만한 이유는 성인과 순교자를 모신 곳이지만 피 흘림의 순교지는
아니었다는데 있답니다.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은 서울에서, 8인의 순교자들은 남한산성에서 순교하신 후에 이곳 구산에 모셔졌습니다. 성인의 묘비에 새겨진 『나는 천주교인이요 살아도 천주교인으로 살고 죽어도 천주교인으로 죽을 따름이오.』라는 성인의 굳은 신앙심을 표현한 명언은 우리의 심금을 찡하게 울렸습니다. 우리 모두는 큰절로써 성인에게 예를 올렸습니다. 구산성지는 정말 모든 것이 아기자기 하였습니다.
미적 감각이 풍부하신 이곳 신부님께서 직접 구우신 묵주돌이 입구 성모상 주변을 장식하고 있으며 , 곳곳에 정자가 있어 가족단위나 각종 소규모 모임 을 하시는 분들이 쉬어가기에 안성맞춤 입니다 . 몇해 전 본당에서 성지순례 때에 잔디밭 정자에서 족발에 한잔한 기억이 납니다. 성스러운 성지에서 웬 추태? 라고 할지 모르지만 성지의 분위기가 너무나 아름다워 이곳 신부님의 허락을 맡아 친교의 시간을 가졌던 곳입니다, 때마침 이곳 성지에서는 수능 103일 기도를 미사 전에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저로써는 아주 감동적인 순간 이었습니다. 우리 큰애(이필재 안토니오)가 고3이라 100일기도를 시작해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103인 성인을 기억하며 시작한 기도는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미사 후 점심식사는 근처의 아주 유명한 한식집에서 먹었습니다. 입구에 교황님의 축복장이 걸려있으며 성인의 후손이 경영하는 곳이라서 또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식사 중에는 곧 축일을 맞이하실 글라라 원장수녀님과 로렌시아 부단장님, 마리아 회계님 세분을 위한 축하식을 조촐하게 가졌습니다.
맛있는 식사 후 남한강변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감상하며 옛길을 달려 마재성지로 이동 하였습니다.
마재성지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크게 만나는 한강변에 안겨있는 마을로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증거자가 태어나고 묻히신 곳입니다. 정약종 증거자는 다산 정약용, 정약전과 한 형제이면서 끝까지 신앙을 지켜 순교한 초기 한국천주교회의 기둥이었습니다.
증거자께서는 형제들 중에 가장 늦게 신앙을 받아 들였지만,
불타는 열성으로 끝까지 신앙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최초의 평신도 단체인 명도회의 초대회장으로 전교에 힘썼으며,
특히 한문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 최초의 순수 한글 교리서인 《주교요지》를 편찬하셨습니다. 그 뒤 교리서를 종합·정리하여 《성교전서》라는 책을 쓰던 중 신유박해가 일어나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셨습니다.
가족들도 기해박해 때 모두 순교하여, 모든 것을 하느님께 봉헌한 참 신앙인의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곳 성지는 상수원 보호구역내에 위치하여 성지의 개발에는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는 성지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성지의 규모는 작았지만 주변 경관은 휼륭 하였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바치고 나서 생가 터로 이동하여 이분들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느껴보고 , 18년간의 유배 생활 등 천주교인으로써 한 많은 생을 보내신 다산 정약용 선현의 묘소에 들려 큰절로 예를 갖추고 실학 박물관으로 이동하여 시대를 초월하여 여러 가지 발명품을 선보이신 정약용 선현의 발자취를 보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수원화성 축조에 쓰인 거중기와 정조임금이 한강을 건널 때 사용하신 배다리는 지금도 군사훈련에 사용할 정도로 위대한 발명품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성지순례 코스는 양근 성지로 남한강 강줄기를 따라 성지에 도착 하였는데 아뿔사! 성지의 문이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성지 개발을 위해 새 단장 중 이었습니다. 이곳성지는 이승훈 베드로 성인이 1784년 북경에서 세례를 받은 후, 이벽 성조의 집에서 한국 천주교의 창립 선조들인 이벽 성조와 권일신 성현에게 세례를 베풀고, 현 양평군 강상면 대석리 대감마을에 살고 있는 권철신 성현에게 세례를 베풀고, 천주교 신앙생활을 실천한 곳입니다. 양근 성지로 부터 충청도와 전라도로 천주교 신앙이 전파되었고, 당시 천주교 교리의 완전한 이해를 하지 못했던 천주교 창립의 주역들이 신부의 역할(가성직제도, 혹은 모방 성직제도)을 하며 미사와 견진성사를 2년간 집전 하던 곳입니다.
그래서 양근 성지를 한국천주교회의 요람지라고 합니다.
먼발치 에서 성지를 바라보며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코미디언 배현정씨가 운영하는 곤지암의 소머리국밥 집에서 저녁을 먹고 차 안에서 묵주기도를 바치며 짧지만 보람찬 성지순례 일정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오늘 순례에 명가이드 역할을 해주신 원장수녀님 감사합니다. 하루 종일 운전해 주신 선교분과장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한국의 모든 순교 성인들 이시어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