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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텔라의 마음공부 >
인도로 요가 유학을 떠나다 2
엉덩이를 여는 자세를 할 때, 감정의 폭발을 경험하는 여성들이 많다
요가란 나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수용하는 것 두달 간의 인도 요가 유학은 많은 추억과 새로운 친구들, 그리고 깨달음을 내게 주었다. 특히 비슷한 취향과 성향의 내 종족(My Tribe)을 만난 것은 큰 행복이었다.
6달째 여행을 하고 있다는 휘트니란 미국인 젊은 여성은 요가 선생인 엄마를 둔 덕에 어린 시절부터 몸에 대한 각성이 몸에 베어 있었다. 몸을 이겨내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자연스레 수용하는 그녀의 태도는 ‘가르치는 연습(Teaching practice)’ 수업 시간에 빛을 발했다. 훗날 각자 사는 곳으로 돌아가 요가 클래스를 지도하게 될 때를 준비하며 가르치는 연습을 할 때의 그녀는 “참 잘했어요.”,
“아름다워요.”를 적절히 섞어가며 학생들 역할을 하는 클래스메이트들을 격려했다.
" 익숙치 않은 각도로 몸을 움직이면 새로운 감각이 깨어나듯,
생각의 각도를 달리하면 의식의 개화가 일어난다. "
- 나디아
몸을 대하는 그녀의 편한 태도가 내게 유독 인상 깊게 다가왔던 데는 이유가 있다. 몸이 남달리 유연한 것도 아닌데다가 운동 지진아였던 나는 요가에 대해서도 “무조건 하면 된다.”는 식의 태도를 가지고 지나치게 무리를 하기 일쑤였고 그 결과 인대를 다치기도 했었다. 그 누구보다 나 스스로를 못 살게 구는 나의 성향은 가르치는 연습을 할 때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양손을 좀 더 바닥 가까이 대세요.”, “좀 더 견뎌봐요.”
이 수업을 통해 더욱 처절하게 깨달았다. ‘말은 그렇다고 하지만 아직 멀었구나. 아직 난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질 않는구나. 뻣뻣하면 뻣뻣한 대로, 잘 못하면 못하는 대로 그냥 나를 봐줄 수가 없구나, 나는….’
물론 노력은 아름다운 것이지만, 그리고 노력은 인류 진화와 견성의 이유이기도 하지만 고요히 있는 그대로의 나를 격려해주고 만나주고 도닥여주는 연습이야말로 “빨리, 빨리.”를 외치며 빠른 속도로 발전하려 하는 한국인들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수행이 아닌가, 싶다.
나와 같은 종족들 (My tribe)
아일랜드 출신으로 런던에 거주한다는 노라는 자신의 감정을 많이 누르며 살아왔다고 한다. 요가 학교에서 함께 공부하는 두 달 동안 그녀는 정갈하게 빚어넘긴 머리카락과는 전혀 다른, 즉 평소의 그녀와 다른 여러 일탈 행위들을 하며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있었다. 저녁 시간에 클래스메이트들이 자주 시간을 보내던 샴발라 카페에서 그녀는 다른 연주자들과 함께 카페에 비치돼 있던 북을 치며 스스로 옭아맸던 여러 끈들을 느슨하게 하고 있었다. 깔끔하게 빚어넘겼던 머리카락은 열정적으로 북을 칠 때면 삐져나오고 바람에 흩날리듯 엉크러지기도 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변화되는 모습은 그녀 내면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쯤 그녀는 시리아 난민들을 위한 자원봉사를 하러 레바논에 가 있을 것이다.
뉴욕에서 왔다는 브리트니란 여성은 암말처럼 탄탄한 허벅지와 엉덩이를 가졌다. 약혼 중이라는 그녀는 지난 해 약혼자의 수입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 함께 전세계를 여행했다고 한다.
수업 시간 전, 다른 학생들이 조근조근 잡담을 나누고 있을 때, 브리트니의 목소리는 늘 도드라졌다. 그녀는 “세상에(Oh! My God!)”이란 표현을 정말 자주 사용했다. 그녀는 늘 화자(Speaker)였다. 나는 그녀가 대화를 하면서 상대방의 말을 듣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녀는 나의 좋은 스승이었다.
수행하기 전, 나는 늘 말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어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어줄 만한 가슴의 여유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수행을 하고 처음 바뀐 것은 바로 침묵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사랑 어린 관심을 보내게 되고, 대화를 나눌 때는 온전히 대상에게 집중하며 상대의 말을 들어주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마음 속, 비판의 소리를 매 순간 내리며 진정으로 애정 어린 관심을 가지고 그녀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요가 아사나(포즈) 수업 시간이면 몇몇 여학생들은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뒤에 앉아 그저 참관을 한다. 생리 중인 여성들은 아사나를 하지 않는 게 좋기 때문이다. 나는 폐경이 지나, 단 한 번도 아사나 수업을 빼먹지 않았다. 그런데 젊은 브리트니 역시 단 한 번도 수업을 빠지지 않았다. “브리트니. 너 생리 안해?” 궁금증 끝에 물어본 내게 그녀는 호르몬 이상으로 생리를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제서야 나는 그녀의 수다스러움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고 추호라도 마음 속에서 분별심을 냈던 것을 반성했다. 우리는 오직 모를 뿐이다. “저 사람 왜 저렇지?”라고 할 게 아니라, “저 사람이 저기가 불편하구나.”라고 이해하면 연민의 마음이 인다. 연민은 우리를 연결시키고 분별은 우리들을 분리시킨다. ‘우리는 본래 연결된 존재’라고 백날 말로만 반복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대상을 이해하고 연민의 마음을 일으키고 사랑을 보내고 하다보면 이 세상 모든 것과 연결이 된다. 그럴 때 우리는 수축되지 않고 더 커지고 넓어진다.
타일랜드에서 온 탠은 정말 사랑스러운 여인이다. 교통사고 후 치유의 목적으로 요가를 시작했다는 그녀는 2개월 살러오면서 무슨 살림을 그처럼 바리바리 싸왔는지, 그녀의 방에 가면 그야말로 없는 게 없었다. 에스프레소 커피메이커, 작은 쿠킹 스토브, 보울 등 그녀 방의 책상 위는 주방 기기로 가
득했다. 그녀는 프랑스에서 온 제이드란 여성과 한 방을 쓰고 있었는데 제이드는 그녀의 책상을 ‘부엌’이라 부르며 놀려 댔다. 나도 그 방에 가끔 놀러가 그녀가 만든 커피와 짜이 티를 맛봤다. 그녀는 또 피시소스와 타일랜드 식 매운 고추도 몇 개 가져와 식사 때마다 인도 음식에 더해 먹었다. 내게 한국어로 “언니”라 부르던 그녀의 사랑스러운 표정이 가끔 떠오른다.
그녀는 수업이 없는 일요일에 자신의 스승이 머물고 있다는 게스트하우스의 부엌으로 나를 초대해 타일랜드 식 그린카레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타이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는 그녀의 표정은 “음. 바로 이맛이야.” 그 자체였다. “탠, 너도 채식주의자야?”라고 물으면 그녀는 “응. 그런데 파트타임 채식주의자야.”라고 대답해 나를 웃겼었다.
리시케시 마을 중앙에 위치한 시바 조각상
아름다운 스승들
학생들뿐 아니라 선생님들도 지금 떠올려보니 모두 참 아름다운 사람들이었고 그리워진다. 힌두교 사제이자 우리들에게 만트라를 가르쳤던 만딥은 아름답고 맑은 목소리로 산스크리트어 만트라를 가르쳐주었다. 내게 만트라 수업 시간은 그나마 좀 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수업이 시작되면 눈을 감고 만딥이 하는 챈팅을 듣는데, 가만히 듣고 있으면 눈물이나곤 했다. 만트라를 배울 때엔 만딥이 한 줄을 챈팅하고 우리가 한 줄씩 따라하는 식이다. 다른 수업 시간에는 선생님들의 인도식 영어를 이해하느라 촉각을 곤두세웠지만, 이 시간만큼은 어차피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산스크리트어여서 마음을 내려놓고 영혼이 노래하도록 허락한 시간이었다.
만딥은 베다 점성술에도 능통했다. 그는 원하는 학생들에게는 따로 점을 봐주기도 했는데 그를 만나고 온 학생들은 하나같이 “너무 잘 맞는다.”며 감탄했다. 나는 이미 나의 운명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베다 점성술에서는 과연 어떤 말을 하나 궁금해 그를 찾아갔다. 그는 이제껏 나의 삶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이제 힘든 시간이 모두 지나갔음을, 나는 영적 수행을 해야 하는 존재임을, 이제 많은 이들에게 깨달음과 가르침을 펼치게 될 것임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는 점성술에 따라 각자에게 부족한 에너지를 보충하는 보석을 추천해주기도 했는데 나의 경우는 화성으로부터의 에너지가 불균형이라면서 붉은 색 산호를 권했다. 워낙 보석에는 별 관심이 없는 나였지만 특히 산호는, 누가 돈을 주면서 가지라고 해도 거절할 만큼 싫어했던 보석이다. 달의 움직임이 파도의 변화를 가져오고 “옴” 챈팅 하나가 에너지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던 나는 이런 말을 들은 이상, 그냥 나 몰라라, 할 수가 없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콩알만한 크기의 산호 반지를 구입해 오른손 넷째 손가락에 끼웠다. 앞으로 내 삶이 산호 반지로 인해 어떻게 더 달라질지, 지켜볼 예정이다.
요가 철학 시간에는 요가의 경전이라 불리는 파탄잘리의 <요가 수트라>를 배웠다. 산스크리트어로 쓰여진 이 책은 요가 수행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마디를 얻는지에 대해 정제된 언어로 서술하고 있다. 처음에 우리를 가르치던 철학 선생님은 자그마한 체구에 얼굴이 유난히 검고 행색에 남루한 노인이었다. 그는 자신이 배운 방식으로, 마치 서당에서 “하늘천, 따 지”를 소리내어 읽으며 천자문을 떼는 방식으로 <요가 수트라>를 가르쳤다. 산스크리트어 수트라를 읽은 후 5번씩 따라하라고 하니, 미국과 유럽 교육에 익숙한 학생들이 제대로 말을 들을 리 만무하다. 수업이 시작된지 둘째 주가 됐
을 때엔 학생들이 하나 둘씩 수업에 빠지기 시작했다. “철학수업 안 들어왔더라?”라고 묻는 말에 몇몇 친구는 “차라리 혼자 방에서 수트라 책을 읽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서.”라고 응답했다.
나는 아이들이 철학 선생님을 대하는 태도에 마음이 아파왔다. 그가 유창한 영어로 현란한 철학을 논하지는 못하지만 뚝뚝 끊어지는 영어로, 말보다 침묵하는 순간이 더 많았던 그의 강의는 곱씹어보면 우러나오는 지혜가 많은, 차 맛 같은 강의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의 거북이 속도의 강의를 들어줄 만큼 한가하지도, 인내심이 깊지도 못했다. 강의 시작 3주째 들어섰을 때엔 18명 학생 중 10명 정도는 수업에 들어오질 않았고 나머지 학생들도 자리만 채우고 있다 뿐이지, 모바일 전화기를 만지작 거리며 딴짓을 하고 있었다.
세상 모든 것을 애정으로 바라보다 보면 그것도 병이 된다.
나는 그 남루한 행색의 선생님을 보며 가장 낮게 임하는 신성을 봤다. 그에게 하는 것이 예수에게 하는 것이요, 붓다에게 하는 것이라 생각됐다. 샴발라 카페에서 클래스메이트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어느날 밤, 나는 꺼이꺼이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에게 그의 지혜를 풀어낼 만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
미국 뉴포트비치에서 온 제임스라는 20대 청년은 내 어깨를 도닥이며 말했다.
“스텔라. 나도 같은 생각이야. 클래스메이트들 앞에서 너의 생각을 제안하는 게 어때?”
나는 이제껏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을 해본 적이 없다. 좋은게 좋은 것이라며 그냥 넘어가고, 나대면 눈에 날 것 같아서 그냥 넘어가고, 나만 생각 있는 것 아니다란 생각에 그냥 넘어가고, 다 그렇게 사는 거라는 생각에 그냥 넘어가고…
하지만 다음 날 나는 용기를 냈다. 수업 시간 전, 나는 클래스메이트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며 이렇게 말했다.
“잠깐만 주의를 집중해주길. 우리 철학 선생님에게 그가 당연히 받아야 할 존중과 관심을 주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그의 강의를 듣는다는 게 그리 쉽지는 않지만, 그에게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는 깊은 맛이 우러나는 지혜를 우리들에게 쏟아줄 거라고 생각해요. 그 역시 우리들과 똑같은 재질로 지어진 인간임을 기억했으면 해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는 우리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을 모든 조건을 갖춘 것, 아닐까요.”
나의 의견에 몇몇 학생들은 동조했다. 하지만 결국 그에 대한 불평은 디렉터인 마헤시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그는 철학 선생님을 새로 교체했다.
새롭게 철학을 가르치게 된 선생님은 바누라는 이름의 27세된 젊은이였다. 나이에서 오는 차별을 막기 위함인지 그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수염을 깎아보지 않은 사람처럼 긴 수염을 휘날리는 모습이었다. 그는 보라색 천을 휘휘 두른, 남성용 치마도 몇 차례 입고 왔다. 예전 선생님이 침묵하는 시간이 많아 한 시간 강의 중 30분도 채 말하지 않았던 것에 반해 바누는 쉬지 않고 강의를 했다. 직접 수행을 해봐도 이해하기 힘든 <요가 수트라>를 그는 여러 차례 반복하고 강조하며 가르쳤다. 그렇게 하면 돌 같은 단단한 머리에라도 수트라가 새겨지기라도 할 것처럼.
내가 가장 좋아했던 선생님은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난 인도인 선생님, 자야였다. 그가 가르친 과목은 하타 요가 아사나.
아이들이 조용해질 때까지 침묵을 지킨 후에는 낮은 목소리로 “깊게 숨을 들이쉬고, 옴…”이라 말하고 “요게나 치타씨야 빠데나바참…”으로 이어지는 요가 시작 만트라를 챈팅했다. 만트라의 마지막 구절인 “하리 옴….”을 하고 나면 요가 스튜디오 공간은 알 수 없는 성스런 기운으로 가득차는 것 같았다. 그는 한 가지 동작을 5분이고 지속하게 했다. 그의 수업 시간의 요가는 움직이는 명상 수행이었다. “고통스러워요?”…… 이렇게 물은 후 그는 한참을 침묵한 후 한 마디를 더한다. “견디세요.(Bear it.)”
가슴을 열면 마음이 열린다
그는 서 있는 자세(타다사나), 얼굴을 아래로 한 개 자세(아도르 묵하 스와나싸나) 등, 이제껏 아무 생각 없이 했던 자세들이 얼마나 많은 곳에 주의 집중을 요하는가를 알려주었다. 의식이 완전히 몸에 머무는 체험,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체험이 거기에 있었다. 한 동작을 오래 하고 나면 고통 뒤에 찾아오는 즐거움도 있었다. 토요일이면 커다란 쿠션(Bolster)을 이용해 완전히 휴식하는 요가를 하곤 했는데, 나는 내 몸과 진정으로 연결되는 기쁨에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수업 시간에 그는 “가슴을 여세요.”라는 말을 참 많이 했다. 가슴을 열면 심장에 산소가 잘 공급되고 피가 잘 돌게 된다. 그리고 사람은 결국 몸에 따라 결정되는 존재인지라 가슴이 열리면 마음이 열리게 된다. 자세 하나만 바꾸어도 웬만한 질병은 다스려지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엉덩이를 여는 자세도 여럿 했다. 엉덩이를 여는 자세를 할때 많은 여성들이 꺼이꺼이 통곡을 한다. 우리들의 억압된 감정이 아랫배와 엉덩이 부위에 모여있다는 것이다. 나는 평소에 워낙 감정을 다 오픈하고 다녀서인지 엉덩이가 열리는 것으로 인해 감정이 폭발하는 체험은 하지 못했다. 멜로디와 노라 등 몇몇 여학생들이 힙 오프닝(Hip opening) 동작을 하며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하자 자야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괜찮아요. 그냥 떠나보내세요.(It’s ok to cry out. Just let it go.)”
요가는 삶이다. 명상으로 시작된 나의 구도는 요가를 만나 더욱 풍부해졌다. 붓다의 수행 방법에 더해 고대인들의 지혜의 꽃인 요가 수행을 겸한다면 마음도 몸도 더욱 편해지지 않을까. 현재에 머물기 위해 늘 하는 연습 가운데 하나가 몸의 감각, 몸의 호흡에 집중하는 것이다. 몸은 마음으로 향하는 출입구이다.
두 달 간의 요가 지도자 과정에서는 요가와 함께 명상을 수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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