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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이 되고부터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주로 간식으로 풀었다. 입으로 들어간 간식이 엉덩이와 허벅지에 자리를 잡고부터 내 몸은 굼뜨기 시작했다. 3학년이 되고부터 친구들과 점심시간에 잠깐 하던 농구마저 그만두자 팔뚝과 가슴은 물찬 고무풍선처럼 늘어났다. 급기야 아랫배가 만삭이 되고 보름달을 닮은 얼굴에 턱이 하나 더 생겨났다.
내가 누구인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불행하지만,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고귀한 특권계급 고3이 아니던가! 나보고 살 빼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에게 난 살찐 사람이 아닌 일류대학을 들어가야 할 고3으로만 보였다. 사람들이 그렇게만 보는 사이 나의 배와 옆구리 엉덩이 아래와 팔뚝 뒤가 가뭄에 논바닥 갈라지듯 쩍쩍 갈라지며 트기 시작했다. 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내 주위에 그런 친구들이 한둘이 아니었기에 고3이 되면 누구나 겪는 특권 중에 하나려니 했다.
일 년 동안 엄마는 늘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수능 일 년 전부터 성당에서 수능 대박 기도에 들어갔던 엄마가 편안한 마음으로 묵주를 손에서 놓았다. 엄마가 손에서 편안하게 묵주를 내려놓았던 그 날, 난 고 3으로서 누렸던 모든 특권을 내려놓아야만 했다.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청명했고 초겨울 날씨답지 않게 포근했다.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엄마가 그동안 고생했다며 백화점에 쇼핑을 가자고 했다. 엄마는 나보다 더 무거운 짐을 벗은 사람처럼 기분이 상기되어 있었다. 엄마는 출발하기에 앞서 일 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들었던 입시기도문 CD를 평소 좋아했던 패티 김의 CD로 교체했다. 패티 김의 풍부한 성량이 차 안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엄마는 백화점을 향해 천천히 차를 몰았다. 엄마가 운전하는 자동차는 백화점 지하 6층까지 내려가서야 겨우 주차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엄마는 남성 캐주얼이 진열된 5층으로 가자고 했다. 승강기를 타고 5층에 내리자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수능을 치기 전까진 오직 회색빛 한 색상으로만 보이던 사물들이 각각 자기 색을 드러내며 눈앞에 펼쳐졌다. 낯선, 그러나 너무나 멋진 옷들이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동안 수능 준비한다고 얼마나 고생했니? 이제 마음껏 입고 마음껏 멋을 부려보렴.”
첫 번째 매장으로 들어간 엄마는 행가 위에 걸려 있는 옷들을 집어 내 몸에 맞춰보기를 반복했다. 엄마가 내 몸에 옷을 맞춰보는 숫자가 늘어날수록 내 어깨는 조금씩 앞으로 움츠러들었다. 잔뜩 주눅이 들어있는 나에게 용기를 내라며 웃고 있는 마네킹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웃음에 용기를 얻어 마네킹이 입고 있는 옷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에게 맞는 치수 주세요.”
매장에 들어설 때부터 내 몸에서 눈을 떼지 않던 판매사원이 다소 놀란 얼굴로 한 번 더 나의 몸을 아래위로 훑었다.
“손님 죄송합니다. 저 옷은 정상적인 몸을 가진 고객님을 위해 만들어진 옷입니다. 손님같이 비정상적인 몸을 가진 분들께 어울리는 옷은 이쪽에 있습니다.”
순간 심하게 일그러지는 엄마의 표정을 보았다. 판매사원이 안내한 행가에는 게으른 아저씨들이 입어야 할 옷 몇 벌이 걸려있었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내 손을 이끌고 매장을 나왔다. 엄마의 손에 이끌려가는 거대한 비계 덩이가 매장에 배치된 거울에 비쳤다. 매장 입구마다 호객행위를 하며 서 있던 마네킹들이 내가 지날 때마다 비웃었다. 그날 난 처음으로 내 몸이 날 사랑하는 사람을 부끄럽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헤라너스에 등록하고 오직 살을 빼야겠다는 일념으로 무작정 하루 서너 시간씩 운동했다. 덕지덕지 붙어있던 살들이 그런 날 가소롭다며 비웃었다. 무작정 운동만 하면 빠질 줄 알았던 살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음만 앞선 무리한 운동은 오히려 나에게 부작용을 선물했다. 조금씩 아파지기 시작한 무릎 통증은 운동하면 할수록 더 심해졌다. 결국,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일주일을 쉬고 헤라너스에 다시 갔을 때 정만 아저씨가 애처로운 눈으로 날 바라봤다.
“성우야, 너 우리 모임에 가입해라, 그럼 내가 책임지고 네 몸 만들어줄게.”
“입학하기 전까지 가능하겠습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충분하다.”
“살만 뺄 수 있다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모임에 다희 누나도 가입했습니까?”
“너 다희 좋아하는구나? 다희가 우리 모임 총무다.”
“그럼 당장 가입하겠습니다.”
다음날 정만 아저씨는 나에게 꼭 맞는 운동시간표와 식단표를 가지고 왔다. 받아온 식단표를 엄마에게 건네고 하루도 빠짐없이 시간표대로 운동했다.
스트레칭을 끝내고 10분 정도 사이클로 몸을 풀었다. 오늘 내가 해야 할 운동 부위는 가슴과 삼두근이었다. 벤치프레스를 위해 20kg의 바에 10kg의 바벨을 한쪽에 한 개씩 끼우고 고정된 벤치 위에 등을 대고 누워 바를 잡았다. 정만 아저씨가 가르쳐 준 운동방식은 세트마다 중량은 늘이고 한계횟수는 줄이는 피라미드 방식이었다. 한 종목당 세트는 기본 5세트였고 횟수는 15회를 기준으로 한계를 느낄 때까지였다. 첫 세트를 하는데 가슴에 묵직한 느낌이 왔다. 쉽게 했던 무게에도 불구하고 다른 때와 느낌이 달랐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마신 술 때문인 것 같았다.
엄마의 정성이 담긴 식단과 정만 아저씨의 열정으로 엄마가 기쁜 마음으로 선물한, 내가 꼭 입고 싶었던 스타일로 멋을 부려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했다. 소주는 온몸이 저려 마실 수가 없었고 맥주는 무슨 맛인지 몰라 마실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집요하게 권하는 선배들의 유혹과 강압에 짓눌러 억지로 온몸을 저리게 하는 소주와 무슨 맛인지도 모르는 맥주를 섞어서 입에 털어 넣고 눈을 감았다. 음복도 못 하던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술을 마셨다. 1박 2일의 오리엔테이션을 구토로 끝내고 집에 왔을 때 엄마는 얼굴이 많이 상했다고 했다.
힘이 들었지만, 첫 번째 세트와 두 번째 세트를 마치고 나자 몸이 다시 제 컨디션을 회복했다. 벤치프레스 5세트를 끝내고 다음 운동을 위해 벤치에서 일어났다. 헬스클럽은 혼자서 운동하는 공간이 아니었기에 하고 싶은 운동이 있다고 하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회원이 내가 하고자 하는 운동기구를 사용하고 있을 때는 부득이 유사종목으로 운동을 바꾸어야 했다. 정만 아저씨는 나에게 그에 대비한 유사 운동들을 여러 가지 가르쳐 주었다. 인클라인 벤치프레스는 이미 다른 회원이 사용하고 있는 관계로 인클라인 덤벨 프레스를 위해 다용도 일자형 벤치를 45도 경사로 세우고 10kg의 덤벨을 양손에 들고 벤치에 앉아 등을 기댔다. 호흡을 들이마시며 천천히 덤벨을 아래로 내려 주먹이 가슴과 거의 일직선이 되게 한 후 호흡을 잠시 멈추고 숨을 내쉬면서 덤벨을 밀어 올렸다. 가슴 상부에서 묵직한 느낌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오늘같이 원명 형이 하체운동을 하는 날이면 정만 아저씨는 자기가 운동하는 것처럼 즐거워했다. 형이 스쿼트를 할 때면 아저씨는 하던 운동을 멈추고 형 뒤에 서서 형의 양 겨드랑이 사이로 본인의 팔을 걸어 안전하게 보조를 해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세월에 장사 없다고 관절에 힘이 약해진 아저씨는 요즈음 140kg을 근근이 들었다. 그러나 형은 오늘도 150kg을 어깨에 메고 가볍게 일어났다. 형과 아저씨가 보조를 맞춰 스쿼트를 할 때면 회원 대부분은 하던 운동을 멈추고 구경을 했다.
나는 다른 운동을 위해 자리를 옮기며 다희 누나를 찾았다. 다희 누나는 스쿼트를 끝낸 원명 형을 눈에 고스란히 담을 것처럼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다희 누나는 함께 운동하는 여자 회원들에 비해 좋은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다희 누나가 자기 몸에서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부위는 복근이었다. 다희 누나는 스포츠브래지어 아랫단이 보일락 말락 할 때까지 헬스복 상의를 접어 올려 내 천자로 잘 만들어진 복근을 드러내놓고 너스레를 떨며 자랑하길 좋아했다. 그럴 때면 늘 원명 형의 얼굴은 노을처럼 붉었다.
원명 형에게 완전히 넋이 나간 다희 누나를 정만 아저씨가 데리고 자리를 옮겼다. 난 팬택 플라이 머신 벤치에 앉아 무게를 25kg에 놓고 양팔을 옆으로 벌린 상태에서 직각으로 세우고 팔을 가슴 중앙으로 힘껏 모았다. 늘 느끼는 기분이었지만 팬택 플라이를 마치고 가슴에 힘을 주면 내가 의도하는 대로 가슴이 움직였다. 팽팽한 그 맛에 흠뻑 빠져 가슴운동의 마지막은 늘 플라이 위주로 마무리했다. 스쿼트를 끝낸 원명 형은 런지를 하고 있었고 정만 아저씨에게 붙잡힌 다희 누나는 한 손에 2kg의 덤벨을 들고 팔뚝 살을 떼어 내기 위해 열심히 킥 백을 하고 있었다. 나는 삼두근 운동을 위해 일자형 벤치를 찾아 EZ 바를 걸치고 양쪽에 5kg의 바벨을 꽂았다. 준비를 마치고 벤치에 누우려는데 금방까지 정만 아저씨 옆에서 킥 백을 하고 있던 다희 누나가 언제 자리를 옮겼는지 원명 형 옆에서 대퇴사두근운동을 하며 원명 형에게 말을 붙이고 있었다. 다희 누나는 정만 아저씨로부터 집중력 있게 운동하지 않는다고 야단을 맞아도 그때뿐이었다. 다희 누나는 한 가지 운동을 진득하게 하지 못했다. 오늘 배운 동작을 다음 날 해보라고 하면 어떻게 하는지 몰라 다시 가르쳐줘야 했다. 본인은 헬스뿐만 아니라 복싱 에어로빅 스포츠댄스 등을 했다고 했지만, 회원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난 천장을 보고 벤치에 누워 바를 얼굴 위로 들어 올려 팔을 쭉 편 상태에서 천천히 팔을 굽히며 바가 이마에 닿을 정도로 내렸다. 잠시 동작과 호흡을 멈춘 후 숨을 내쉬면서 바를 천천히 위로 밀어 올렸다. 정만 아저씨는 팔을 올리고 내릴 때 절대 팔꿈치가 벌어지면 안 된다고 했다. 언제나 첫 세트보다는 두 번째 세트가 가뿐했다. 마지막 세트를 마치고 일어나는데 벤치가 내 등에서 밴 땀으로 젖어있었다. 난 몸에서 빠져나간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 정수기 앞으로 갔다. 다희 누나는 받아주지도 않는 원명 형 옆에서 끈질기게 애정공세를 퍼붓고 있었다. 난 물병에 물을 보충하고 흥분된 근육들을 잠시 진정시킬 목적으로 다희 누나 옆으로 갔다.
“다희 누나 지금 원명 형에게 작업하는 거지?”
내 말에 다희 누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당당한 다희 누나의 고백에 원명 형의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난 대퇴사두근운동을 하는 다희 누나의 대퇴근을 지그시 누르며 짓궂게 물었다.
“다희 누나 여기 살고 있던 살들 다 어디로 쫓았어?”
나의 농이 싫지 않았는지 다희 누나는 레그 익스텐션 자세에서 다리에 힘을 주었다. 손이 튕겨 날만큼 탄력이 느껴졌다. 난 탄탄해진 대퇴근에 둔 손에 다시 힘을 주며 다희 누나의 얼굴을 보았다. 다희 누나는 아주 만족해하는 표정이었다. 내 몸에 조금씩 근육이라는 놈이 붙고부터 다희 누나는 나의 이두와 삼두근, 광배근과 복근, 그리고 대퇴근을 손으로 직접 만져보며 대견해 했다. 다희 누나의 손길을 느낀 날이면 난 평소보다 더 열심히 땀을 흘렸다. 다희 누나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입을 놀리며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원명 형의 대퇴이두근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형이 지금 하는 다리운동은 벤치에 엎드려 뒤로 무릎을 굽히는 라잉 레그컬 자세여서 조금 색다른 마음으로 보면 꼭 남녀가 교접할 때 힘쓰는 자세처럼 보이는 운동이었다. 다희 누나의 시선이 불편한지 형의 자세가 조금씩 흐트러지고 있었다.
“다희 누나! 누나가 지켜보고 있으니까 형이 운동을 제대로 못 하잖아, 누난 운동 안 해,”
민망했는지 다희 누나는 주위를 빠르게 한 번 훑고는 정만 아저씨가 운동하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내가 삼두근 운동을 한 세트 끝냈을 때였다. 육감적인 몸매가 한눈에 드러나는 요가선생이 요가를 끝내고 물을 마시기 위해 정수기 앞으로 왔다. 내가 운동하는 바로 앞에 정수기가 있었기에 난 자연스럽게 요가선생의 몸을 스캔할 수 있었다. 종이컵에 물을 받기 위해 상체를 굽힌 요가선생의 뒤태는 한마디로 예술 그 자체였다. 굴곡이 뚜렷한 상체에서 흘러내리던 허리선을 따라 나의 시선이 힙에 미쳤을 때 난 요가선생이 팬티를 입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보아도 팬티 라인이 보이지 않았다. 타이트한 요가선생의 탄력 있는 대둔근과 그 아래로 길게 늘어선 대퇴이두근을 디테일하게 스캔하고 있는데 갑자기 지난달 모임에서 들었던 정만 아저씨 친구분의 말이 눈앞에서 형상화되고 있었다.
“요가선생과 오입 한 번 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아무리 힘든 자세를 요구해도 다 소화 시킬 수 있을 테니.”
이상한 자세로 요가선생과 엉켜있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세면장으로 달려갔다. 갑자기 커져 버린 아랫도리를 숨길 수가 없었다. 세면장에서 길게 들숨과 날숨으로 달뜬 가슴을 진정시켜보려 했지만, 한번 일어난 아랫도리는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나와 엉켜있던 상대가 요가선생에서 다희 누나로 바뀌면서 흥분의 도는 극으로 치달았다. 어쩔 수 없이 세면대에 물을 틀어놓고 얼굴을 담갔다. 찬물이 머릿속에 가득 담고 있던 야한 형상들을 모두 쫓아내고 나서야 아랫도리가 진정되었다. 세수하고 세면장을 나오는데 다희 누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는 요가선생이 그렇게 좋으세요? 그러면 사모님에게 요가를 가르치세요.”
다희 누나의 말에 정만 아저씨 친구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아저씨는 요가선생이 들어간 탈의실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볼륨이 예술인 요가선생에 비해 다희 누나는 가슴이 빈약했다. 내가 다희 누나 곁으로 다가가자 다희 누나는 내 귀에다 대고 요가선생의 가슴은 성형이라고 말했다. 난 다희 누나가 요가선생을 싫어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기에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다희 누나는 늘 요가선생이 샤워를 마치고 나온 후에야 탈의실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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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헬스장이 운동하기 좋은 곳이 아니라 작업하기 좋은 곳???
아님 운동도 하고 작업도 하는 일석이조의 공간?
늙수그레한 아저씨들의 눈빛과 관심이 우째 힐끔거린다 했더니...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