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와 머슴 바울(롬16:1-2)
2022.9.11, 평신도주일, 김상수목사(안흥교회)
“한국인의 식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물고기는 무엇일까?”
만약 이런 질문을 받으면 뭐라고 대답을 하겠는가? 고등어, 갈치, 조기, 명태, 우럭, 오징어 등 여러 물고기들이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인 김창일씨는 한국인의 식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물고기는 “멸치”라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멸치는 밥상의 화려한 주인공은 아니지만, 각종 음식이나 국물의 맛을 내는 것에 있어서 감초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멸치를 “한국인의 밥상의 숨은 지휘자”라고 표현했다.(동아일보2022.9.1 A29면). 아마 많은 분들이 공감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숨은 지휘자 역할을 하는 것들이 어찌 작은 멸치뿐이겠는가? 가정이나 어느 단체나 국가나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성도들의 거룩한 헌신이 생명을 살리고, 예수 믿는 맛이 무엇인지를 드러낸다. 오늘은 평신도주일이다. 한국교회는 평신도들의 이러한 숨은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고 귀한 것인지를 강조하기 위해서 이런 날을 제정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나)를 성도로 불러주신 은혜에 감사하면서, 성도로서 다시 한 번 믿음과 소명을 새롭게 하기를 바란다.
기독교 역사상 지금까지 가장 영향력 있는 선교사는 사도 바울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엄청난 많은 일들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일들을 혼자서 다 이룬 것이 아니었다. 그의 배후에서 힘을 합했던 수 많은 손길들이 있었다. 그들 중에는 사역자들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은 평신도들이었다. 이들 모두가 하나님 나라의 숨어있는 영웅들이다. 또한 사도 바울의 자랑꺼리이며 하나님의 자부심이 되는 사람들이다. 우리교회에도 목회자와 성도들의 자랑꺼리와 자부심이 되는 분들이 많다. 모두가 주님의 은혜이다.
특히 오늘 본문인 로마서 16장에 보면,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마치면서, 그의 사역의 배후에서 묵묵히 함께 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거명 하면서 깊은 사랑의 마음을 표한다. 이들이 대부분이 평신도들이다. 그런데 이 모든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이름은 뵈뵈(Phoebe)라는 겐그레아 교회 출신의 여집사이다. 그녀가 로마서를 로마교회에 전달했다. 다 같이 로마서 16장 1-2절 말씀을 읽어 보자.
“1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2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롬16:1-2)
이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뵈뵈에게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라는 특별한 별칭를 붙였다. 겐그레아는 고린도에서 남동쪽으로 11km정도 떨어진 조그마한 시골항구다. 사도 바울이 평신도 여집사에게 자신의 보호자라는 호칭을 붙였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여기에 쓰인 “보호자(프로스타티스)“라는 말은 조력자(Helper), 좋은 친구(Good Friend)라는 뜻을 갖고 있다. 쉽게 말하면 뵈뵈는 사도 바울과 여러 성도들에게 헌신적인 조력자였고, 그 모든 사람들의 좋은 친구였고, 교회 안에서 마음이 따뜻한 어머니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아마도 사도 바울을 비롯해서 많은 성도들은 그녀의 섬김으로 인해서 말할 수 없는 안정감과 행복을 느꼈을 것이다. 이처럼 여집사 뵈뵈같은 사람이 많은 교회가 행복하고 건강한 교회이다. 참으로 감사하고 자랑스러운 것은 우리 안흥교회에는 뵈뵈처럼 은밀히 섬기고 헌신하는 성도들이 많다는 것이다.
항상 중요한 것은 목회자냐 평신도냐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느냐라는 것이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는 것은 목회자나 선교사나 장로와 같은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사명이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목회자들도 본래 다 평신도 출신들이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각자를 부르신 주님의 부름에 합당한 더 충성되고 더 지혜로운 종이 되기를 힘써야 한다(마24-25장).
성경 속의 인물들 뿐만 아니라 기독교 역사에는 우리가 본받아야할 훌륭한 평신도 출신 일꾼들을 너무 너무 많다. 그 중에서도 이 시간에 마지막으로 나누고 싶은 분은 의료 선교사였던 제임스 홀(W. J. Hall, 1860-1895) 부부를 도와서 평양의 남산현교회를 세웠던 김창식이라는 분이다. 김창식은 비록 평신도였지만 뵈뵈처럼 홀 선교사 부부에게는 좋은 친구이자, 신실한 동역자였고, 극심한 고난 중에도 큰 힘이 되었던 보호자와 같은 사람이었다. 제임스 홀의 아들인 셔우드 홀과 김창식의 아들 김영진이 후에 결핵 환자들 위해서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을 만들었다.
김창식은 1857년 황해도 수안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열다섯 살 때 고향을 떠나 전국을 떠돌면서 머슴살이, 장돌뱅이, 마부, 지게꾼 등 별의별 일들을 다했다. 그러다가 서울에서 울링거 선교사의 집에 머슴으로 들어갔다. 그가 서양 선교사의 집에 머슴으로 들어간 이유는 그 당시에 서울 장안에 "서양 사람들이 조선 아이들을 데려다 지하실에 가두어 놓고 하나씩 잡아먹는다더라." "예쁜 애들은 밤에 끼고 자고, 싫증 나면 자기 나라에 노예로 팔아 넘긴다더라" 등과 같은 소문들의 진상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그는 오히려 2년 동안 머슴살이를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하인을 인간 취급도 하지 않는 조선 양반들과는 달리 자신 같은 비천한 사람에게도 인간대접을 해주는 선교사들의 태도에서 그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기독교로 개종을 결심하고 올링거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이후에 평양에서 제임스 홀 선교사를 만나 친구처럼 도우면서 전도에 온 열정을 쏟았다.
그런 중에 1894년 여름, 평안도 관찰사로 내려와 있던 민병석은 평양에 기독교가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고 기독교인들에 대한 체포령을 내렸다. 그때 선교사들을 도왔다는 이유로 김창식을 비롯한 성도들 10여 명이 투옥되었다. 민병석은 이들에게 배교를 강요하고 전도를 금하면서 죽도록 매질을 했다. 이때 홀 선교사는 감옥의 김창식을 찾아가 여호수아 1장 9절 말씀을 읽어 주면서 믿음을 격려를 했다. 김창식은 거의 죽은 시체처럼 되어서 돌아왔다. 그래서 후에 제임스 홀의 아내인 로제타 홀은 그를 “조선의 바울”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은 후에 얼마가지 않아서 청일전쟁(1894-1895)이 일어났다. 그때 평양에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 김창식은 몸을 아끼지 않고 홀 선교사를 도왔다. 그러다가 홀 선교사는 자신도 전염병으로 인해서 소천했다. 이때가 그가 조선에 온지 2년 11개월, 그의 나이는 34세, 그리고 아내 로제타와 결혼한지는 2년 5개월 만의 일이었다. 제임스 홀이 세상을 떠날 당시에 그에게는 한 살 된 아들이 있었고 아내 로제타는 임신 7개월째 이었다.
남편이 죽은 후에 로제타 홀은 출산을 위해 잠시 미국으로 갔다가, 다시 평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남편 제임스 홀 선교사를 기념하는 “기홀병원”을 설립하고 선교사역을 계속했다. 그러던 중에 이번에는 유복자로 태어난 사랑하는 딸 에디스가 풍토병으로 죽고 만다. 이때 슬픔에 중에 있는 로제타 홀을 위로하고, 그녀의 딸 에디스의 시신을 등에 업고 서울까지 가서 양화진에 있는 제임스 홀 선교사의 곁에 뭍어 주었던 사람이 김창식이다. 여기까지가 평신도 시절의 김창식의 모습이다.
그후 김창식은 신학을 공부해서 1901년 김기범과 함께 한국 최초의 목사로 안수를 받았다. 머슴 출신이 한국 기독교 최초의 목사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정말 놀랍기만 하다. 그는 1924년 정년 은퇴하기까지 영변, 수원, 해주 지방을 다니면서 125개의 교회를 개척하고, 48군데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김창식의 생애 자체가 오늘 우리들이 성도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를 잘 말해준다. 이러한 김창식에 대한 일대기를 2021년 성탄절에 KBS에서 “머슴 바울”이라는 제목으로 방영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 여러분들이여, 죄짓는 자리에 함께 있으면서 동조하면 공범이 되듯이, 복음을 위한 목회와 선교사역에 함께 하고 동역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와 공로자로 인정하시고 더 큰 은혜를 부어 주신다. 그러므로 작은 멸치가 한 마리로 있을 때는 보잘 것이 없지만, 다같이 힘을 합했을 때는 밥상에 숨은 지휘자가 되듯이, 우리들도 우리들도 힘을 합하여 하나님 나라의 숨은 지휘자들이 되자. 지역복음화와 세계복음화를 위해 제2의 뵈뵈와 머슴 바울 김창식처럼 좋은 평신도가 되겠다고 결심하자. 주님께서 우리와 늘 함께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