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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동방박사들의 성탄/ 마 2:1-3.1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성탄절이 되면 생각나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단연 기억되는 것은 동방박사들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성탄 때만 되면 이 동방박사들이 연극의 단골메뉴로 등장합니다. 여기 성경에 나와 있는 동방박사들은 가장 진지하게 성탄을 맞이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아주 강한 메시지를 받게 됩니다. 예수님이 태어난 후 가장 먼저 선물을 들고 찾아가 경배한 사람들이 이 동방박사들입니다. 이 사람들에게서 우리는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하게 되고 교훈을 받게 됩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오실 것을 알고 기다리면서 연구한 사람들” 이라는 점입니다.
예수께서 오시리라는 예언은 이미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것을 연구했습니다. 지금 모두 로마로부터 압박받고 내일에 대한 기대가 없는 그 시대에 백성들에게 한 가지 소망이 있었다면 오직 메시야의 도래였습니다. 그 메시야가 와야 압박과 설움에서 헤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메시아의 탄생을 고대하며 그가 오실 것을 연구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연구가들이 서기관들이었습니다. 이 서기관들은 매일 이 문제를 가지고 연구했습니다. 또 제사장들, 바리새인들도 예수님이 오실 것을 기다리며 연구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 말고 또 다른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이 동방박사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장차 메시야가 태어날 때는 어떤 징조가 있을 것이다 하고 특별히 별을 연구한 사람들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 동방박사들은 별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민수기 24:17절을 보면 “한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라는 예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장차 메시야가 태어나면 천체에 이상이 있을 것으로 그들은 믿었습니다. 그래서 집중적으로 별을 연구하던 중 마태복음 2:2절을 보면 갑자기 별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별이 움직입니다. 그들은 이미 준비하고 있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즉시별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 탄생을 제일 먼저 알고 찾아가 경배 드린 사람들로 기록되었습니다.
여러분, 삶에는 이렇게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연구하면 발견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구하는 자에게 주실 것이라고 했는데 거기 “구하는 자“ 라는 말은 연구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기도하는 것도 연구하는 자세입니다. 기도하면 얻게 되어 있습니다.
신앙인에게는 이렇게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모하고 기다리는 마음, 얼마나 소중한 마음입니까. 사모함이 있고 기다림이 있는 마음은 행복합니다. 야곱이 라헬을 위해서 7년을 하루같이 보냈다고 했습니다. 라헬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7년을 하루같이 기다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 동방박사들은 메시아 탄생의 예언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별을 집중적으로 연구했습니다. 그들은 매일같이 밤마다 이슬을 맞으며 밤 가는 줄도 모르고 별의 징조를 연구하고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자세가 얼마나 진지했겠습니까. 그래서 내일이 있는 사람, 기다림이 있는 사람, 기대가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은 내일을 위해서 오늘 손해도 수고도 어려움도 인내하고 감수할 수 있는 마음이 있습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미국에서 알아주는 위인입니다. 그가 청년 때 참 가난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애인과 결혼을 하려고 하는데 애인의 부모들의 반대로 결혼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부모들은 벤자민이 너무 가난한 것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딸에게 왜 가난뱅이에 고생하려고 시집을 가려고 하느냐 면서 만류했습니다. 그 부모들은 오늘 가난한 것만 눈에 보였습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딸을 시집보낼 때 오늘 가난한 것에 눈길을 돌립니다. 그래서 결혼 때 집집마다 갈등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애인은 벤자민의 미래를 보았습니다. 장차 가능성이 있는 애인의 앞날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고생쯤은 문제도 되질 않았습니다. 그 장래가 참 중요합니다. 장래가 있고 기대가 있으면 참고 인내하고 모든 수고를 감당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결국 벤자민은 후에 크게 성공하지 않습니까. 후에 대사가 되고 발명가가 됩니다. 피뢰침은 그가 발명한 것입니다. 나중에는 상원의원이 되고 장관이 되고 미국의 독립혁명 때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기도 했습니다.
삶에는 이런 미래가 있어야 합니다. 기대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오늘 연구하고 탐구하고 기다림이 있고 꿈을 갖게 됩니다. 여기 동방박사들은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런 모습으로 예수의 오심을 고대하며 연구하다가 마침내 뜻을 이루었습니다. 이 동방박사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별이 나타나자 과감하게 따라나선 사람들”입니다.
이 동방박사들은 별을 연구하다가 이상한별이 나타나자 즉시 준비해둔 선물을 들고 고향을 떠납니다. 이 동방박사들을 영어로 “마기”(Magi)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헬라말로는 “마고스”(Magos) 라고 부릅니다. 이 동방박사들은 모두 세 사람인데 그들의 이름은 멜키우스라는 노인이고, 발타 자르라는 중년이고, 가스파르라는 청년이었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메데인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시대 브라만과 맞먹는 사제계급이었고 꿈을 해몽하는데 특출한 자질을 가지고 있어서 국가자문위원으로 대접을 받는 지도층이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물질이나 명예보다 메시야를 만나는 것에 삶의 우선순위를 두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메시야가 태어날 때 일어날 별들의 움직임을 연구하는 일에 몰두하다가 이런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삶에는 이 우선순위가 중요합니다. 지금 내가 무엇에 우선순위를 두고 사느냐가 참 중요한 일입니다. 그 삶의 내용에 따라 나의 인생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나의 얼굴도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링컨은 사람 나이 40이면 자기얼굴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40년 동안 살아온 그의 삶의 내용에 따라 인생과 얼굴이 만들어진다는 말입니다. 여기 동방박사들은 예수의 태어나심에 대해서 집요하고 골똘하게 연구를 하다가 마침내 메시아의 탄생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탄생하신 예수님께 찾아가 경배하는 사람들로 기록되었습니다. 이 동방박사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는 사람들입니다.
세 번째는 “모험을 감수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2절을 보면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려 왔노라“하고 말합니다. 여기 동방은 메소포타미아라는 말입니다. 오늘의 페르시아, 이라크와 이란의 국경지대, 즉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사이를 메소포타미아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지금의 이라크 땅에서 걸어서 예루살렘 근방 베들레헴까지 찾아간 것입니다. 당시 교통이 좋습니까 길이 좋습니까 그 험난한 길을 40여일을 걸쳐 1600여 km를 낙타를 타고 때로는 걸어서 별을 따라 거기까지 찾아간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여행이 얼마나 힘들고 고달픈 여행이었습니까.
그래서 주석자들은 그 길을 “죽음의 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들은 죽음의 길이라는 아라비아 사막을 횡단했을 것입니다. 가는 동안 수난도 많았을 것입니다. 짐승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전갈의 위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목마름과 허기짐과 피곤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고난의 길을 통과해서 예수께 찾아간 목적은 순전히 태어나신 예수께 경배 드리기 위해서 였습니다.
경배와 예배에는 이런 헌신의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예배드리기 위해서는 때로 이런 희생도 있어야 하고 손해도 있어야 하고 모험도 필요합니다. 때로 시간의 헌신도, 물질의 헌신도, 인내의 수고도 있어야 합니다. 원래 예배는 무릎 꿇고 드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유대인의 회당에도 의자가 없습니다. 회교의 모스크에 들어가 보아도 의자가 없습니다. 동방교회에 가 보아도 의자도 없이 3시간씩 무릎 꿇었다 일어났다 하며 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도 누구하나 자리를 뜨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즘 교회에서 그렇게 하면 교회 문 닫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조금 추워도 더워도 멀어도 불편해도 교회에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 동방박사들을 보면서 진정 예배하는 자세를 배우게 됩니다. 그들은 모든 모험을 감수하며 1600km를 걸어와 예수께 예배했습니다.
네 번째는 “동방박사들의 순종하는 자세”를 배우게 됩니다.
이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까지 별을 따라왔습니다. 고난 끝에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그들은 의심 없이 왕궁으로 찾아갔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나는데 왕궁쯤에서 태어나리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상식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나는데 누가 마구간에서 태어나리라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들은 예루살렘에 들어가면서 상상하기를 예루살렘은 지금쯤 야단났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찾아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왕궁에서 태어날 줄 알고 의심 없이 왕궁으로 찾아갔습니다.
가서 이스라엘의 왕 메시야가 어디서 태어났느냐고 물었습니다. 헤롯이 그것을 알 리가 있습니까. 금시초문입니다. 예루살렘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기도 전이기 때문에 너무나 조용했습니다. 오히려 헤롯은 그 왕이 태어난 것을 찾거든 알려달라고 부탁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별을 따라 도착한 곳이 예루살렘에서 10리 정도 이웃동네인 베들레헴에 도착했습니다. 가 보니 그토록 기다리던 하나님의 아들, 오시리라고 요란하게 예언되었던 메시야가 태어난 곳은 초라하기 그지없는 마구간이었습니다. 그들은 상당히 의아해 했을 것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여러분, 진정 소중한 것은 그렇게 초라한 곳에서 얻어지는 법입니다. 진주는 바다 속 뻘에서 살아가는 조개 속에서 주어집니다. 금은 땅속 깊이 바위 속에서 주어집니다. 생수도 땅속 깊은 곳에서 얻어집니다. 달콤한 꿀은 산속 나무등걸에 매달린 벌집에서 얻어집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는 여우 똥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여우는 커피열매를 좋아하는데 여우들이 커피열매를 따먹으면 배설할 때 커피 씨만 나오는데 그 씨를 모아다 볶아놓은 커피가 가장 맛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영웅들도 보면 모두 가난한 집에서, 시골에서, 산골에서 태어납니다. 링컨도 켄터키 산골 오두막집 그것도 아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고 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보잘 것 없는 여관집 마구간에서 태어납니다. 이 동방박사들이 상상도 못한 환경에서 태어난 예수께 경배하고 돌아갑니다. 그리고 돌아갈 때는 다른 길로 갔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꿈에 그 길로 가지 말라는 계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그 계시를 받고 순순히 순종해서 다른 길을 또 개척해서 수고롭게 돌아갑니다.
여기서 우리는 동방박사들의 순종의 자세를 보게 됩니다. 이 동방박사들이 다시 헤롯에게 가서 그 사실을 알려주었더라면 특종 감을 알려주는 기쁨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비밀은 1급가는 국가적인 비밀입니다. 그리고 인류에게 주어지는 특종을 공개하는 주역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상당한 포상을 받았을 것이고 환대도 받았을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는 대가로 상당한 상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계시 받은 대로 다른 길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길은 참 위험한 길입니다. 헤롯이 지금 이 땅에 왕은 나 혼자인데 또 왕이 태어났다고 하니까 신경이 얼마나 곤두세우고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그들이 다른 길로 돌아가 버렸다는 것을 알면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속이고 돌아간 그들을 뒤좇아 가서 잡아 죽이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이 동방박사들은 보상도 없고 환대도 포기하고 아주 위험한 길을 숨죽이고 계시에 따라 다른 길을 택하여 돌아갔습니다.
오늘은 보상금의 시대입니다. 사람들이 조그만 일을 하고도 보상을 기다립니다. 요즘은 거지도 교회에 와서 천원을 주어도 받지 않습니다. “내가 거지인 줄 아느냐”하면서 큰 소리를 칩니다. 오늘은 이해타산이 아주 강한 보상의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 동방박사들은 다 포기하고 위험한 길을 택하여 그 밤에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가는 길을 우리는 “좁은 길”이라고 말합니다. 모두 포기하고 부정하고 위험이 있는 길을 택하여 가는 길, 그 길이 좁은 길입니다. 왜 그 길을 가야 하는가 하면 그 길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꿈에 그 길로 가라는 계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숨소리를 죽이고 올 때처럼 수개월을 걸려 아라비아 사막을 지나고 물을 건너고 산을 넘어 집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동방박사들의 모습에서 상당히 진지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들의 모습에서 희생의 모습을 봅니다. 헌신의 모습을 봅니다. 수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에게서 그 먼 길을 기쁜 마음으로 왔다가 만족스런 모습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것이 진정한 신앙인의 삶이고 예배의 정신입니다. 우리 신앙인에게는 그와 같은 진지한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렇게 태어나신 이는 누구입니까”
그렇게 태어나신 분이 바로 예수입니다. 우리들의 구세주이시고 이 땅에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오신 메시야 입니다. 요한복음 14:27절을 보면 “내가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니 이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한 영원한 평안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태어나자마자 하늘에서 천사들이 노래했습니다. “저 높은 곳에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이 땅에는 평화로다.”예수께서 태어나자마자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이것이 그 예수가 이 세상에 태어나신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그 예수를 하늘에는 영광, 이 땅에는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은 이 땅에 새로운 질서, 평화와 영광을 심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예수님은 약속하신 그대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정작 그렇게 기다리던 메시야,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그가 오심을 몰랐습니다. 다만 그의 오실 것을 기대하고 연구하고 기다리던 몇 사람에게만 조용히 알리시고 홀연히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성탄은 기다리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맞이하는 날입니다. 이번 성탄에 이 은혜를 입는 축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