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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야산(931m) - 경북 문경, 충북 괴산
☞ 산행일자 : 2022. 8. 6.(맑음)
☞ 산행경로 : 이강년기념관~선유동계곡~학천정~용추계곡~피아골~대야산~밀재~다리골~월영대~주차장
☞ 산행거리 : 약 18.6km (도상거리 16.7km)
☞ 산행시간 : 약 6시간 26분
경북 문경시와 충북 괴산군의 경계를 이룬 대야산은
속리산국립공원내에 포함되어 있고, 시원한 계곡과 반석이 특징이다.
오랜만에 안내산악회를 이용해 대야산을 찾는다.
지난 백두대간 이후 처음이니 약 7년 만이다.
원래는 더운 날씨를 감안해 대야산주차장에서 출발,
계곡물에 몸도 좀 담그고, 여유롭게 정상을 한 바퀴 돌아올 예정이었으나
동행한 일행이 선유동계곡을 거쳐 가자는 말에
무더운 날씨에 무리가 아닐까 생각했으나 결국 그러기로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하산시간에 맞추기 위해 조금 무리를 한 탓인지
선유동계곡을 모두 지나기도 전에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피아골 오름길 내내 힘이 들어 겨우 겨우 정상에 올랐다..
어쨋거나 하산길에 계곡에서 뜨거운 몸을 식히기도 했지만
안내산악회를 이용한 산행에서 처음으로 겨우 하산시간에 맞춘 산행이 되었다...
운강이강년기념관
이 기념관은 운강 이강년 선생의 독립운동을 기리기 위해 2002년 4월에 세웠다.
여기에는 선생의 의병항쟁 연보를 비롯 교지. 간찰. 만사 등 관련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500m거리에 그의 생가지를 복원해 놓았다.
선생은 1858년 이곳 가은읍 도태리(현 가은읍 상괴리)에서 태어나
1880년 무과에 급제하여 절충장군행용양위부사과와 선전관을 역임하였다.
이후 1884년 갑신정변을 계기로 낙향하여 학문에 몰두했다.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비분강개한 선생은 도태리에서 창의하여 농암장터에서 친일 관찰사 김석중을 처단하였다.
이후 제천. 단양. 수안보 등지에서 항전을 계속하였다.
선생은 1907년 한일신협약으로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되자
다시 거의하여 충북 제천. 충주. 단양을 중심으로, 경북 문경. 영주. 봉화,
강원도 영월. 원주. 화천. 인제. 홍천. 강릉. 양양, 경기도 가평. 포천 등지에서
유격전을 벌이며 일제에 항전하였다.
그러다 1908년 7월 제천 작성전투에서 적의 탄환에 발목을 맞고 붙들려
대심원에서 사형판결을 받아 그해 10월 교수형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여 그의 공을 기리고 있다.
기념관 담장에 무궁화가 곱게 피었고...
배롱나무는 꽃이 시들시들..
이강년기념관은 담장 밖에서 슬쩍 눈요기만 하고
선유동천 나들길로 들어선다.
선유구곡과 칠우칠곡 그리고 대야산의 용추계곡을 합하여 선유동천이라고 한다.
‘선유동천 나들길’의 총 연장은 8.4km로
선유동천을 중심으로 한 구간이 1코스(4km)이고 용추계곡 일원은 2코스(4.4km)다.
우측 하천을 건너면서 본격적인 나들길이 시작된다...
돌계단을 건너고...
비비추가 도열해 있는 꽃길을 지나
주변에 핀 꽃들을 렌즈에 담는다..
범부채 | 봉숭아 |
겹꽃삼잎국화 | 루드베키아 |
금계국 | 이질풀 |
칠우칠절(七愚七絶)
대한제국말엽 을사늑약, 한일강제병합 등 국가혼란기 지역유림 7인이
보인계(輔仁契)라는 모임을 결정하여(1916년)
완장천 계곡 일곱 구비의 절경을 이름 짓고
아름다움을 함께 완상하였다.
제1곡 완심대(浣心坮) 제2곡 망화담(網花潭) 제3곡 백석탄(白石灘) 제4곡 와룡담(臥龍潭) 제5곡 홍류천(紅流川) 제6곡 월파대(月波坮) 제7곡 칠리계(七里溪) | 마음을 씻는 곳 꽃잎이 담기는 연못 흰돌이 아름다운 여울 용이 쉬는 연못 붉은 꽃잎으로 물드는 계류 달빛이 파도치는 곳 완장천 계곡의 시점 |
좌측 장성봉과 가운데 애기암봉 우측은 원통봉
제1곡 완심대
완심대는 도로를 건너 계곡에 있다고 한다...
모르고 지나치는 게 대부분...
완심대는 송나라 양기파의 선승 보각선사(대혜종고)의 어록 중
"浣心垢濁 解心執着"에서 온 말로 마음의 때를 씻어 버리고
마음의 집착을 풀어버린다는 의미이다.
칠우대
초입 바위 절벽을 칠우대라 명명하고 칠우들의 이름을 새겼다.
칠우들은 모두 어리석을 우(愚)자가 들어간 호를 가진
1884년(甲申)~1888년(戊子)생이다.
칠우정원들이 남긴 [낭원총설]에 칠우대 기사, 절구와 율시가 전한다.
- 우은 김종률(愚隱 金鐘律) 順天人 甲申生 - 우석 정세헌(愚石 鄭世憲) 草溪人 乙酉生 - 우초 민순호(愚樵 閔舜鎬) 驪興人 乙酉生 - 우전 김정진(愚田 金廷鎭) 安東人 丁亥生 - 우당 김종훈(愚堂 金鐘勳) 順天人 戊子生 - 우송 김정익(愚松 金正翊) 慶州人 乙酉生 - 우포 김양한(愚圃 金亮漢) 安東人 丁亥生 |
제2곡 망화담
널따란 바위 옆에 세워진 돌에 "망화담"이란 아름다운 글씨가 새겨져 있다.
물에 떠 있는 꽃들이 많아서 그 물질할 수 있는 못이란 의미의 망화담은
봄이면 칠우칠곡 각 굽이의 꽃잎들이 떠 내려와
이곳에 이르러 맴돌지 않았나 여겨진다.
망화담 역시 차도로 나가서 다리를 건너야 볼 수가 있다.
다리 아래 바위에 망화담이라 새겼다..
칠우폭포
칠우칠곡 망화담과 백석탄 사이에 위치한 칠우폭포이다.
둔덕산 동편 능선에서 발원하여 골짜기를 따라 흐른다.
평시에는 건폭이나 여름철 우수기에는 수량이 많아 시원함을 더한다.
이걸 폭포라고 하기엔 쫌~~~
제3곡 백석탄
흰 돌들 사이로 흐르는 맑은 시냇물이
바위로 인하여 여울을 만들며 흘러가니
보던 사람들로 하여금 시원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그 옛날 칠우들은 이 굽이에 이르러
망국으로 인하여 가졌던 울분을 삭이지 않았나 여겨진다.
모우정
제4곡 와룡담
바위에 새겨진 "와룡담"글씨는 해서와 초서를 배분, 조합하여 절묘한 느낌을 준다.
위로부터 내려오던 시냇물이 이곳에 이르러 큰 못을 이루면서
넘실거려 마치 용이 누워서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이 굽이의 이름을 용이 누워있는 못이라고 명명한 것으로 보인다.
제5곡 홍류천
홍류는 붉은 물을 의미하며 실제로 물이 붉을 수는 없으나
이것은 물 위에 붉은 꽃이 떨어져 흘러갔기 때문이다.
이 곳은 물살이 천천히 흐르고 있어
붉은 꽃잎들이 물을 가득 메우고 흘러가기에
홍류천이라 하지 않았나 여겨진다.
제6곡 월파대
월파대는 칠우칠곡의 다른 굽이와 달리 바위가 넓게 자리하고
그 옆으로 시내가 흘러가 대(坮)라는 명칭이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비스듬히 자리하는 바위 때문에 시냇물이 완만히 흐른다.
달이 뜬 밤이면 달빛이 이 물살 위에 비치며
하얀 물결을 이루고 흘러가기 때문에 월파대라고 이름한 것으로 보인다.
제7곡 칠리계
여울이 7리에 걸쳐 있다하여 칠리계라 불린다.
널따란 바위가 약간의 격차를 가지고 있어
선유구곡에서 흘러오는 물이 이 굽이에 이르면
작은 폭포를 이루며 흘러가니 7리를 걸쳐 흐르는 여울 같은 느낌을 가지게 한다.
선유구곡에 이른 사람들이 물길을 따라 내려오다
이곳에의 아름다운 경관에 매료되어 오랫동안 머물기도 한다.
칠우칠곡이 끝나면 다시 선유구곡이 시작된다.
선유구곡
제1곡 옥하대(玉霞臺)
白石朝暾相暎華(백석조돈상영화) 晶流寒玉紫騰霞(정류한옥자등하) 閒尋題字迷難辨(한심제자미난변) 只有白雲臺上遐(지유백운대상하) | 흰 돌에 아침 햇살 비쳐 밝게 빛나고 맑은 시내 찬 물결에 안개 붉게 오른다. 한가로이 새겨진 제자 찾기가 어렵고 흰 구름만 누대 위로 저멀리 자리하네 |
제2곡 영사석(靈傞石)
以石爲槎喚作靈(이석위사환작령) 中流停著歲冥冥(중류정저세명명) 傍崖又有仙人掌(방애우유선인장) 一路窮源指可聽(일로궁원지하청) | 돌로 뗏목삼아 선령을 부르거늘 시내 가운데 머무르니 세월이 아득하네 벼랑 곁엔 또한 선인의 자취가 있으니 한 길로 원두를 찾아가면 만날 수 있으리 |
제3곡 활청담(活淸潭)
靜處從看動處情(정처종간동처정) 潭心活活水方淸(담심활활수방청) 本來淸活休相溷(본래청활휴상혼) 一理虛明道自生(일리허명도자생) | 마음으로 정처에서 동처를 바라보니 못속이 활발하니 못물이 맑아지네 본래의 맑음 마음 흐리게 하지 말라 이치가 허명하면 도는 절로 생기리라 |
제4곡 세심대(洗心臺)
虛明一理本吾心(허명일리본오심) 枉被紛囂容染深(왕피분효용염심) 到得玆臺思一洗(득도자대사일세) 肯留滓穢分毫侵(긍유재예분호침) | 허명한 이치가 본디 내 마음 이거늘 부질없이 세상사에 깊이 물들었네 이 대에 이르러 한 번 씻길 생각하니 어찌묵은 때를 추호라도 두겠는가 |
구은대유적비
일제압정이 우심하던 때, 계유(1933) 4월 망간에 순천김씨족내구로가 구로회를 조직하고
둔세장종 불관진누의 정신으로 선유동에 들어가 돌에
구로대(향산구로회 고금취미합응 역가가내감절취기명대기)라 새기고
방명과 동시 세심대하 청천중 반석에 구로천이라 대자를 새기니
그 아래위로 잇단 전설의 구곡경치는 이로부터 더욱 총관하게 된다.
같은 해에 수계를 하여 수간의 모사와 부전 수십경을 사서 장래의 소용계획을 세웠던 바 있다.
오늘에 그 후손들은 이를 전승하지 못함을 안타까이 여기며
이 비를 세워 고매한 선조의 얼을 되새기고자 한다.
경술국치후 102년 임진 2012년 6월
순천 김두희 근찬, 순천 김구로후손 근수
※ 둔세장종 불관진누 : 세상을 피하여 자취를 감추고 세상에 얽매인 너더분한 일에 관여하지 않음
제5곡 관란담(觀爛潭)
潭上湍流瀉作瀾(담상단류사작란) 到來潭處勢全寬(도래담처세전관) 觀他有本元如是(관타유본원여시) 照得吾心一鑑寒(조득오심일감한 | 못 위 급한 물살 쏟아져 이룬 물결 연못에 이르러선 그 기세 잔잔하네 원래 이와 같이 근본 있는 물결 보니 차가운 수면 위에 내 마음 비춰보네 |
관란담이라 각자되어 있고
그 옆의 거석에 구은대라 새겨져 있고 9명의 김씨 이름이 종서로 새겨져 있다.
관란담
제6곡 탁청대(濯淸臺)
臺前流水絲漪橫(대전유수사의횡) 一濯長纓萬累輕(일탁장영만누경) 想像損翁當日趣(상상손옹당일취) 滄浪一曲玩心明(창랑일곡완심명) | 누대 앞에 흐르는 물 일어나는 실물결에 한 번 긴 갓끈 씻으니 온갖 근심 가벼워라 손옹이 사신 그때 가진 흥취 상상하니 푸른 물결 한 구비에 완심이 밝아지네 |
제7곡 영귀암(詠歸岩)
臨流盡日弄晴暉(임류진일농청휘) 風浴隨時可詠歸(풍욕수시가영귀) 不必沂雩能撰志(불필기우능찬지) 巖臺自足振春衣(암대자족진춘의) | 물에 임해 온종일 맑은 빛 즐기다가 수시로 바람 쐬고 읊조리며 돌아온다. 꼭 기우가 아니라도 뜻을 펼 수 있으니 바위 누대 자족하며 봄옷을 떨치리라. |
제8곡 난생뢰(鸞笙瀨)
琮琤石瀨奏笙鸞(종쟁석뢰주생란) 縹渺仙踪底處看(표묘선종저처간) 從古閬林多怪秘(종고랑림다괴비) 雲間鷄犬是劉安(운간계견시류안) | 돌여울 물소리 난새의 노랫소리 저 아래 아득히 신선 자취 보인다. 옛부터 신선 사는 곳엔 신비롭고 괴이하니 구름 사이 닭과 개는 바로 유안이네 |
제9곡 옥석대(玉舃臺)
全石跨溪鏡面開(전석과계경면개) 凹爲泉瀑峙爲臺(요위천폭치위대) 仙人遺寫今何在(선인유사금하재) 應有雙鳧葉縣來(응유쌍부섭현래) | 시내가 흐르는 전석엔 거울이 열리고 파인 곳은 폭포되고 언덕은 누대된다. 선인의 남긴 자취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섭현에서 날아온 두 마리 오리가 있으리 |
바위면에 옥석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선유동천나들길 1코스(이강년기념관~학천정)가 끝나는 곳
선유교 좌측에 있는 학천정에서 1코스가 끝나고
이어 2코스가 용추계곡으로 이어진다...
1시간이 채 안되어 학천정에 도착하고 보니 온 몸은 땀으로 범벅..
목이 말라 식당에서 막걸리 한 병을 서둘러 나눠 마시고
2코스가 이어지는 용추계곡으로 간다..
학천정은 숙종부터 영조까지의 학자 도암 이재(1680~1746)를 기리기 위해
1906년 후학들이 세운 정자이다.
막걸리 마시느라 조금 지체한 탓에
서둘러서 식당가를 따라 가다보니 길이 막혀 더 이상 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
주변 상인에게 물어보니 다시 되돌아 나가야 한단다..
다시 되돌아 나와 보니 좌측으로 산길이 있었다.
시원한 숲속길이 한동안 이어지고...
도로 건너 용추계곡 방향으로 들어서고
주차장 갈림길
좌측 용추계곡으로 들어선다...
무당소
용추폭포 아래에 있는 무당소는 수심이 3m쯤 되는 정도로
100여년 전 물 긷던 새댁이 빠져 죽은 후 그를 위해 굿을 하던
무당마저 빠져 죽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무당소의 물이 아주 맑고 투명하고 주위에는 산들이 둘려 있어서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다.
온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데
계곡에서 시원하게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피서객을 보니
산행이고 뭐고 그냥 물속에 들어가고 싶은 심정 뿐이다.
오랜만에 대야산을 와 보니 이곳에도 많은 계단이 놓이고..
용추에 도착
용추
암수 두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오른 곳이라는 전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용추 양쪽 거대한 화강암 바위에는 두 마리의 용이 승천을 할 때
용트림을 하다 남긴 용비늘 흔적이 신비롭게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용추의 장관이야말로 명소중의 명소, 비경중의 비경이 아닐 수 없다.
밀재갈림길에 도착하고 너무 더워
계곡물에 세후한 후 잠시 쉬었다가 우측 피아골로 들어서고
이후에도 너무 힘이 들어 자꾸만 쉬어간다..
다소 늦은 점심을 하고 나니 본격적인 가파른 오름길이 기다리고
10여년 전 피아골로 산행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와는 등로가 많이 정비된 탓인지
완전히 처음 가는 길처럼 낯설기만 하다..
로프구간도 나온다..
점점 경사도 심해지고 등로도 거칠어지는데
몸은 물에 젖은 솜처럼 천근 만근 ..
한 발자국 떼기도 힘들기만 하다..
대야산 0.3km 지점에서는 기진맥진..
나중에 보니 이곳에서 정상까지 30분이 소요되었다.
300m에 30분이라....
겨우겨우 대야산 정상아래 밀재 갈림길에 도착한다.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이곳에서 밀재 방향으로 하산할 예정이다.
용추계곡 입구에서 장장 2시간 40여분 후 드디어 정상에 도착한다.
지난 대간산행 이후 7년 여 만에 다시 오른 대야산에서
옛 생각에 젖어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잠시 망중한에 빠진다.
대야산은 충북 괴산군과 경북 문경시에 걸쳐있는 산(930.7m)이다
대야산은 "큰산"이라는 의미인데, 옛날 이곳에 홍수가 났을 때
봉우리가 대야 만큼만 남아 있었다고 하는 전설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백두대간 마루금이 이어지는 곳인데 막아 놓았다.
대간 능선따라 우측 멀리 희양산이 보이고
대야산에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
좌측에 우뚝 솟은 둔덕산이 보이고 우측에 조항산..
다시 속리산으로 이어지는 대간길도 보인다.
정상에서 내려서는 길...
예전에 로프를 타고 오르내리던 길에 계단이 놓여 수월하게 지난다.
하지만 암릉을 산행하는 묘미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정상에서 잠시 올라 선 암봉에서 다시 한동안 쉬어간다..
중대봉갈림길
중대봉 방향도 막아 놓았다.
중대봉갈림봉에서 본 대야산 정상...
암릉을 타고 넘어간다..
중대봉...
밀재방향으로 내려서고...
예전엔 이곳에도 로프를 타고 암릉구간을 오르내렸었는데
이젠 대부분의 등로에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대문바위...
중대봉 방면의 암릉을 바라보고..
대부분의 등로엔 암릉의 능선길이 아닌 계단으로 우회로를 만들어 놓았다.
코끼리바위 옆에도 계단이 놓였고...
계단 때문에 코끼리의 형상이 가려졌다..
이런 곳엔 계단이 없는 것이 훨씬 나을 듯...
대야산에서 40여분 후 밀재에 도착..
하산 길 임에도 많이 지친 탓에 다시 또 쉬어가고..
직진의 대간 길은 예전엔 막아 놓았더니 오늘은 한 쪽이 열려있다.
떡바위를 지나고...
밀재에서 30여분 후 월영대에 도착한다..
월영대
휘영천 밝은 달이 중천에 높이 뜨는 밤이면,
바위와 계곡을 흐르는 맑디맑은 물위에 어리는 달빛이
아름답게 드리운다 하여 월영대라고 한다.
경관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월영대를 지난 계곡에서 땀에 젖은 몸을 씻기 위해
계곡물에 들어 앉아 있으니 나오기가 싫었지만
하산 시간이 빠듯하기에 아쉬운 맘을 안고 하산을 서두른다.
용소바위
암수 두 마리의 용이 용추계곡에서 머무르고 하늘로 승천하다가
발톱이 바위에 찍혀 그 자국이 신비롭게도 선명하게 남아있어
이를 용소암이라 한다.
드디어 계곡을 벗어나 식당가에 도착하고
주차장에 도착해 힘들었던 산행을 마무리 한다.
산행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