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게 놓이지 않음 품(A1:5)
Pan*ihita-acchanna-vagga
“비구들이여, 이것과 다른 어떤 단 하나의 법도 이렇듯 빨리 변하는 것을 나는 보지 못하나니, 그것은 바로 마음이다. 비구들이여, 마음이 얼마나 빨리 변하는지 그 비유를 드는 것조차 쉽지 않다.”(A1:5:8)
“비구들이여, 이 마음은 빛난다. 그러나 그 마음은 객으로 온 오염원들에 의해 오염되었다.”(A1:5:9)
“비구들이여, 이 마음은 빛난다. 그 마음은 객으로 온 오염원들로부터 벗어났다.”(A1:5:10)
주해)
“‘이렇듯 빨리 변하는 것(evam* lahuparivatta)’이란 이렇듯 빨리 일어났다가 빨리 사라지는 것이다.”(AA.i.59)
“어떤 스승들은 [본경의] 마음(citta)을 바왕가의 마음(bhavan#ga-citta, 잠재의식)이라고 말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여기서 마음이라는 것은 어떤 마음이든 즉 눈의 알음알이까지도 다 해당된다.”(Ibid)
즉 마음은 어떤 마음이든 모두 빨리 변한다는 뜻이며 아비담마에서는 이런 가르침을 계승하여 마음은 모두 찰나생/찰나멸이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빛난다(pabhassara)’는 것은 창백하다(pan*n*ara), 깨끗하다(parisuddha)는 뜻이다.”(AA.i.60)
“여기서 마음이라는 것은 바왕가의 마음이다. 그러면 마음의 색깔이 있는가? 없다. 푸른 것 등에는 어떤 색깔이 있겠지만 색깔이 없는 것은 깨끗하기 때문에 빛난다고 설하셨다. 그리고 이것은 오염원이 없기(nirupa- kkilesa) 때문에 깨끗하다고 해서 빛난다고 하신 것이다.”(Ibid)
“‘객으로 온 것들(aagantukaa)’이란 함께 생기지 않고(asahajaata) 나중에 속행의 순간(javanakkhan*a)에 생긴 것들이다.”(Ibid)
“‘오염원(upakkilesa)들’이란 욕망 등에 의해서 오염되었기 때문에 오염된 것이라 불린다. 어떻게? 마치 계를 지키고 바른 행실을 갖춘 부모나 스승이나 은사가 계행이 나쁘고 행실이 나쁘고 서계를 갖추지 못한 아들이나 제자나 상좌들로 인해서 ‘자신의 아들이나 제자나 상좌들을 꾸짖지도 않고 공부시키지도 않고 훈계하지도 않고 교계하지도 않는다.’라는 비난과 불명예를 얻게 되는 것과 같다.
여기서 바왕가의 마음(잠재의식)은 계를 지키고 바른 행실을 갖춘 부모나 스승이나 은사와 같이 보아야 한다. 아들 등으로 인해서 이분들이 불명예를 얻는 것처럼 속행의 순간에 탐하고 포악하고 미혹한 고유성질을 가진 탐욕 등과 함께한 마음들로 인하여 일어난 객으로 온 오염원들에 의해서 천성이 깨끗한 바왕가의 마음은 오염되는 것이다.”(AA.i.60~61)
속행과 바왕가 등에 대해서는『아비담마 길라잡이』3장 §7의 해설을 참조할 것.
이 가르침은 대승불교에서『능가경』이나 대승『열반경』 등 여래장 계열의 여러 경과 논서들을 통해서 객진번뇌(客塵煩惱)로 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능가경』에서 “以如來藏是淸淨相 客塵煩惱垢染不淨(여래장은 청정한 것이지만 객으로 온 번뇌에 오염되어서 깨끗하지 못하다.)”이라고 하였듯이 특히 여래장 사상에 영향을 준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赤沼智善(아까누마 치젠)의『한파사부사아함호조록』(漢巴四部四阿含互照錄)과 CBETA로 검색해보면 한역 아함부 경들에는 객진번뇌를 말하고 있는 경들은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객진번뇌와 비교해 볼 수 있는 가르침은 초기불교의 빠알리 삼장 가운데는 오직『앙굿따라 니까야』의 이 부분에서만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본 품에서 세존께서는 이미 “마음이 얼마나 빨리 변하는지 그 비유를 드는 것조차 쉽지 않다.”(A1:5:8)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이것을 두고 초기경들에서도 부처님께서는 본자청정한 ‘영원불멸하는’ 마음을 설하신 것으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참으로 곤란하다. 마음이 연이생이요 찰나적인 존재라는 것을 잊어버리면 그것은 불교가 아니다.
초기경들 전반에서 예외 없이 마음은 항상 연기적 존재이고 조건발생이고 연이생(緣以生)일 뿐이라서 이러한 마음은 대상 없이는 일어나지 못하는 조건생/조건멸이고, 찰나생/찰나멸이다. 그래서 바로 위의 경에서 마음은 너무나 빨리 변하기 때문에 비유를 들 수조차 없다고 하셨다. 마음을 불변하는 그 무엇으로 상정해버리면 그것은 즉시에 외도의 자아이론과 같아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벗어났다(vippamutta)’는 것은 속행의 순간에 욕망이 없고 포악하지 않고 미혹하지 않은 [불탐/부진/불치의] 세 가지 원인을 가진 지혜와 함께한 유익한 마음이 일어날 때 [바왕가의] 마음은 객으로 온 오염원들로부터 벗어났다는 뜻이다. 마치 계를 지키고 바른 행실을 갖춘 아들 등 때문에 어머니 등이 잘 공부시키고 훈계하고 교계했다고 명성을 얻는 것과 같다. 즉 속행의 순간에 일어난 유익한 마음으로 인해 이 바왕가의 마음은 객으로 온 오염원들로부터 벗어났다고 설하시는 것이다.”(AA.i.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