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4일
영월 김삿갓면에서 경북 영주시 부석사면 남대리, 마구령을 넘을 계획이었다.
마구령터널이 생겼다.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 오전약수에서 물을 받았다. 가지고 있는 주소대로 산길을 이리저리 헤맸다.
가정집이 나온다. 포기하고 나왔다. 그 집 뒤에 석조아미타불좌상(유형)이 있는 것 같다.
문수산 축서사(文殊山鷲棲寺) / 전통사찰
- 경북 봉화군 물야면 개단리
설화, 지림사 주지가 어느 날 문수산 쪽에 서광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주지는 의상대사에게 말하고 함께 서광이 일어난 곳으로 갔다. 그곳에 비로자나불이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의상대사가 불상을 모실 절을 지었다. 지금의 축서사다.
867년(경문왕 7)에 부처 사리 10과를 얻어 사리탑을 조성했다. 수행 도량으로서 명맥을 이어오다가, 1705년(숙종 31) 중건했다.
(인터넷, 한국문화대백과사전에서 내용을 가지고 옴)
축서는 영축(靈鷲, 영취)과 같은 말이다.
절 이름을 따르면 석가모니불과 연관되어야 한다. 산 이름을 따르면 문수보살과 인연이 있어야 한다.
비로자나불이 나온다. 문수산 아래 지림사가 축서사보다 먼저 지었다는 것이다.
봉화군 물양면 옆이 영주시 부석사면이다. 부석사를 짓고 있을 때 의상이 축서사도 지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축서사는 오래전에 우연히 들른 적이 있다. 오월, 작약꽃이 활짝 피어서 눈이 즐거웠을 때다.
이번엔 절을 제대로 보기 위하여 들른 것이다.
축서사는 가람 배치는 질성정연하지만 고색창연한 맛은 없다. 절에서 보는 산경, 소백산을 보는 맛은 좋다.
템플스테이로 유명한 절인 것 같다.
주차하고 돌아서는 이 건축물이 반기지만 웅장함에 기가 눌린다.
보탑성전, 경내에 화려한 탑이 있다. 아마 부처 진신사리탑일 것이다.
오층석탑, 경천사지나 원각사지 10층석탑의 탑신이 그려진다. 화려하다.
심검당
선열당
범종각
축서사 대웅전 앞에서 보는 경치, 나는 이 경치가 참 좋다.
대웅전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삼존불이다.
보광전
당간지주
축서사 석등 / 경북 문화유산자료
축서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목조광배 / 보물
높이 1.68m, 동화사 비로암 석조비로나불좌상과 조각기법이 유사한 9세기 만든 불상이다.
목조광배는 후대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처음엔 석조광배가 있었을 것이다.
혀를 찬다. 이런 귀중한 문화유산 앞에 불단을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를 보는 이를 위하여.
지림사(智林寺) / 전통사찰
- 경북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
지림사를 인터넷 찾아보기를 하였지만 자료가 없다.
축서사 창건과 관련된 설화를 참조한다면 축서사보다 먼저 지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찾아보기가 안 된다는 뜻은 이 절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신라 때 지어졌다면 현재 이 자리라고 할 수는 없다.
이 절은 어느 종단에도 소속되지 않았다. 경내에 국보인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주차하고 걸어 들어가는 길이 깔끔하다.
요사
관음전
대웅보전
극락전
멀리 보이는 산이 문수산이며 산 중턱에 축서사가 있다.
보광전
석불전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국보
북지리에 '한절'이란 규모가 큰 절이 있었다고 한다. 한절을 위시하여 27곳의 절에서 500여 명의 승려가 수도하였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가 언제 만들어진 자료에 기록한 것인지 나는 알 수는 없다.
부석사를 생각한다면 이 주위엔 백성보다 승려가 많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석불은 7세기엔 만든 것으로 여긴다.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보물)과 함께 영주/봉화지역 신라불상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작품이다.
자연석을 거의 그대로 이용하여 불상을 조각하였다. 경주 서악동 마애불을 보고 감탄을 하였는데, 이곳서도 감탄하였다.
대다수 마애불은 매우 큰 바위 하나에 조각되어 있다. 이곳은 아니다.
산맥이 끝나는 곳, 흙을 걷어내고 드러난 바위에 조각하였다. 전각이 없다면 전체를 볼 수 있어 좋을 텐대.
협시보살도 광배를 조각하였다.
봉화 청암정과 석천계곡 /명승
- 경북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닭실마을)
충재 권벌(冲齋 權橃, 1478년(성종 9)에 출생하여 1548년(명종 3) 사망)
기호사림파와 관련, 훈구파와 사림파 사이를 조정하려다 파직, 1547년 양재역벽서사건에 연루되어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충재박물관 인내판을 따라 들어왔다. 충재박물관은 닫혀 있다.
청암정과 구 주위를 돌았다. 사당도 있는 것 같은데 들어갈 문이 없다.
명승으로 지정되었지만 군이나 종중에서 관리를 잘 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청암정은 자연암반 위에 지었다. 청암정 앞에 흐르는 내에서 물을 끌어다 연못을 만들었다.
개인적 생각이다. 자연 그대로 우거진 숲도 좋지만 가지치기 등으로 관광객에게 좋은 경광을 보여 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
밖으로 나왔다. 담이다. 잡풀을 제거하고 청암정이 잘 보일 수 있도록 가지치기를 하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곳은 강론을 펼치던 강당인 것 같다.
사당지역 같다.
권세연 의병장 생가
권세연( 權世淵 1836~1899)
1895년 민비시해사건과 단발령에 격분한 안동지역 의병은 안동관찰부를 점령하였다.
참모진인 유지호(柳止浩)·김흥락(金興洛) 등은 권세연을 안동의 의병장으로 추대하였다.
1896년에 예안 이만도(李晩燾), 영양 조승기(趙承基), 문경 이강년(李康秊)·유시연(柳時淵)·김도화(金道和)·김도현(金道鉉) 등
여러 의병장과도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었다. 관찰사 김석중(金奭中)이 많은 관군을 끌고 공격하여 의병들이 패배하였다.
권벌의 12대 손이며 상해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인 석주 이상룡 선생의 외삼촌이며, 이 집은 이상룡 선생 외가이다.
이런 뜻깊은 집이지만 무관심하다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