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복궁은 조선 왕조 제일의 법궁이다. 1395년 태조 이성계가 창건한 이 궁전은 조선 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곳이다. 왕과 관리들의 정무 시설, 왕족들의 생활 공간, 휴식을 위한 후원 공간뿐만 아니라 왕비의 중궁, 세자의 동궁, 고종이 만든 건청궁 등 궁궐 안에 다시 여러 작은 궁들이 복잡하게 모여 있어 자세히 둘러보려면 하루가 부족할 정도다. 한 나라의 왕조의 역사가 담겨진 경복궁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꿋꿋이 자리를 지키며 나라의 중심이 되어 왔다. 1592년 임진 왜란으로 불타 없어지기도 했으며 일제 강점기 시대에는 거의 대부분의 건물들을 철거하여 근정전 등 극히 일부 중심 건물만 남았었다. 심지어 궁 앞에 조선 총독부 청사가 지어져 궁의 모습을 가리기도 하는 등 수모를 겪었으나 현재에는 다행히 복원 사업이 차근차근 이루어져 예전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 어느 때보다 한국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아진 이때, 경복궁 나들이를 떠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분명 초등학교 때부터 소풍으로 자주 찾아갔던 곳임에도 불구하고 늘 찾아가면 새롭고 아름답게만 느껴진다. 매번 들를 때마다 감탄하는 부분이 늘 달라져서 그런듯하다. 궁전에 자연스럽게 배경으로 북악산이 보이는 것에 옛 조상들의 지혜를 느낀다. 기와지붕에 얹어져 있는 잡상의 독특한 모습에 감탄하고, 화려하지만 조화로운 단청 무늬에 또 한 번 감탄을 하고 만다.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진 궁전의 규모에 놀라면서, 만약 철거된 부분까지 있었다면 지금 서울에 얼마나 광활하게 자리를 잡았을까 생각에 잠긴다.



지금도 서울의 중심이지만, 한양이었을 때의 모습은 얼마나 위풍당당했을지를 상상해보며, 기하학적인 질서에 따라 조화를 이루며 지어진 궁전의 모습을 하나씩 눈에 담는 일도 즐거운 일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의 건물들은 시시각각 변하지만, 경복궁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으면서 주변의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전통이구나를 깨닫는다.




경복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을 꼽으라 하면 경회루라고 할 수 있다. 조선 후기 연회 장소로 이용된 이 건축물은 단일 평면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누각 건물로 꼽힌다. 물속에 세웠지만 기초를 견고히 해서 건물이 잘 견디게 처리한 점, 전체적으로 간결한 디자인처럼 보이지만 연회 장소에 어울리도록 다채로운 장식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이 놀랍다. 건축물의 뛰어난 아름다움과 기능성도 높이 살만하지만, 가장 뛰어난 점은 연못과의 조화를 이룬다는 점이 아닐까. 그런 이유로 계절에 상관없이 연못과 경회루의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다. 경복궁 곳곳을 둘러보며 아픈 다리를 쉴 겸, 마지막으로 경회루의 풍경을 보며 휴식을 취하는 순간은 경복궁 탐방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소박한 즐거움이 있는 경복궁 주변, '서촌'


경복궁의 서쪽, 청운동과 효자동, 통의동 사직동 일대를 묶어 '서촌'이라 부른다. 관광지로 이름을 알린 북촌이나 익선동과 달리 아직까지 서촌은 정감 어린 옛 골목길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외지인들에게 친절하지 않은 동네기도 하다. 뚜렷한 이정표가 없고, 골목이 어지럽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사대부 집권 세력의 거주지로 옛 한옥들이 즐비한 북촌에 비해 역관이나 의관 등 전문적인 중인들이 모여살던 서촌은 한옥과 현대의 건물이 뒤섞여 있으며, 한옥의 대부분은 1910년 대 이후 주택 계획에 의해 대량으로 지어진 개량 한옥들이기에 전통을 느끼기에는 살짝 부족할 수 있다. 하지만 천천히 시간이 흐르는 서촌의 분위기에 반해서 카페나 갤러리, 레스토랑을 여는 이들이 늘면서 서촌이 새로운 나들이 코스로 떠오르고 있다.




서촌에 가면 다른 관광지처럼 굳이 유명한 곳을 골라갈 필요가 없다. 사람 사는 곳의 분위기를 느끼며 그저 걷는 것만으로 힐링이 되기 때문이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4번 출구로 나와 효자로를 따라 정처 없이 주변을 걷다 보면 예스러운 분위기의 한옥이 나오기도 하고, 유명한 갤러리가 나오기도 한다. 맛있는 냄새에 이끌려 걷다 보면, 누가 찾을까 싶은 곳에 조그마한 식당이 자리 잡고 있다. 그도 아니라면 길바닥에서 사람들의 손길을 바라는 고양이가 나오기도 한다. 골목마다 어떤 즐거움이 숨어있는지 알기 어렵기에, 그저 헤매는 경험이 즐거운 곳이 바로 서촌이다. 북촌, 익선동과 비슷하지만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경복궁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문화예술 탐방

서촌 일대는 겸재 정선, 화가 이중섭, 시인 이상 등 수많은 예술가가 머무르며 한국 근대문학과 예술로 유명한 곳이었다. 어쩌면 현재 서촌에 문화예술의 물결이 흐르는 이유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 한동안 뜸했던 서촌에 사람들의 발길이 다시 모이기 시작한 건, 바로 '대림 미술관'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통의동 주택가에 위치하고 있는 이 미술관은 한국 최초의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 출발하였으며, 현재는 사진뿐만 아니라 디자인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전시를 소개하며 그 경계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수준 높은 현대 미술과 디자인 분야를 소개함과 동시에 대중들이 일상 속에서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전시가 이루어지는 곳으로 유명하다. 새롭고 신선한 전시 콘텐츠뿐만 아니라, 관람객들에게 다양한 소통과 참여를 이끌어내는 전시를 진행하기 때문에 젊은 층에게 인기 있는 미술관으로 꼽히며 현재 서촌을 빛내는 존재 중 하나이다.


대림미술관과 더불어 화제를 모으고 있는 미술관은 대림미술관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그라운드 시소 서촌'이다. 이곳은 현재 가장 핫한 전시들을 연달아 진행시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는 전시제작사 미디어앤아트가 선보이는 전시 공간이다. 이름의 '시소'는 중앙의 무게 중심을 기준으로 양쪽의 무게에 따라 균형 있게 움직이는 놀이터의 놀이 기구 중 하나다. 이를 통해 어린 시절의 감성을 떠올리게 하면서 이전에 보았던(saw) 것을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보는(see) 플로우를 전시에 녹여내고자 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이런 의미로 그라운드 시소에서 선보이는 전시 또한 감성을 자극하는 콘텐츠로 이루어져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그라운드 시소 서촌에서 전시를 감상하려면 적어도 3시간은 대기해야 한다고 하니,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전시뿐만 아니라 이곳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건축물'에 있다. 건물 내부에 자리 잡은 원통형의 중정은 위에서, 아래에서 봐도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전시를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필수 코스로 꼽히는 곳은 바로 이 중정에서 사진 촬영이다.

이 밖에도 1942년부터 2005년까지, 60여 년동안 수많은 예술가들이 머물다 가며 한국 근대문학과 예술의 주요 거점 중 하나였던 통의동 보안여관도 서촌에서 꼭 가봐야 하는 곳으로 꼽힌다. 2017년부터 리모델링 및 확장을 통해 카페, 서점, 전시공간 등 복합문화예술공간과 더불어 숙소로 운영되고 있는 이곳은 다양한 예술가들과 휴식을 원하는 이들에게 편안한 쉼을 제공하는 곳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거제도의 유명한 숙소, '지평집'을 설계한 조병수 건축가가 직접 설계하고 운영하고 있는 갤러리 겸 카페 '온그라운드'도 빼놓을 수 없다. 100여 년 전 지어진 일본식 적산 가옥을 개조하여 만들어진 이곳은 기존 구조를 그대로 살리면서 현대적인 감성을 더해 묘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현재 서촌의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놓았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듯싶다. 허물어진듯한 천장에서 내리쬐는 햇살을 오롯이 느끼면서, 곳곳에 설치된 작품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낭만적이다.



전통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경복궁과 문화와 예술이 곳곳에 살아 숨 쉬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서촌을 돌아보면, 저절로 마음이 힐링 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문화와 전통의 힘은 우리를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그리고, 생각보다 힐링 여행은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