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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82:1-4 하나님이 하나님의 회 가운데 서시며 : 칼빈
왕이나 권위를 부여 받은 사람들은 교만으로 눈이 어두워져 거침없이 행동합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시인은 마땅히 이 세상의 가장 높은 곳보다 위에 계시는 최고의 재판장의 채찍을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경고 합니다.
시인은 그들의 의무와 처지를 상기시킨 후 그들이 훈계받기 거절하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께 의로운 재판장 되시는 성품을 입증해 주시라고 간구합니다.
아삽의 시
1. 본문 1절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회 가운데 서시며 재판장들 중에서 판단하시되” 입니다.
하나님이 공공복리를 위해 인류의 통치자로 세우시기를 기뻐하신 자들이 자신이 무엇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지위에 올라 있으며 누구의 복으로 그토록 높은 지위에 이르게 되었는가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모든 사람의 평등을 무시하고 자기들의 무절제한 생각에 따라서만 다스려 나간다는 것은 매우 온당치 못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들은 자기 영광과 권력에 도취돼 세상이 자기들을 위해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절제 있는 판단으로 다스리는 것을 자기들의 지위가 훼손된 것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리석음이 무모한 행위를 드러내기에 충분할지라도 이에 개의치 않고 아첨하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미덕을 드러내며 자랑하도록 합니다.
이런 오만을 바로잡기 위해 이 시편은 사람이 보좌와 심판대를 차지 할지라도 최고의 재판장의 직분은 하나님께서 계속 붙들고 계신다는 사실을 주장하는 말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비록 이방인이요, 방탕한 시인이라도 이런 사실은 증거하도록 만드셨습니다.
“Regum timendorum in proprios greges,
Reges in ipsos imperium est Jovis,
Clari gigant대 triumpho,
Cuncta supercilio moventis.”
Horatii, Carm. Liber iii Ode I.
시편 82 편
“왕들은 자기에게 속한 양 떼들을 다스린다.
위대하신 요브(Jove)는 그 왕들까지 자기의 관할권에 두시나니,
그는 위에서 이름 있는 거인들을 던지시고,
그의 위엄에 찬 눈길은 모든 자연계를 다 묶는구나.”
Boscawen's Translation.
시인은 이 세상의 주권자들이 자기에게 위임된 그 이상의 교만을 갖지 못하게 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그들 모두를 심판하시며 교만을 진압하시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이것은 매우 필요한 일입니다.
실제로 그들이 임금의 권력을 갖기까지 높아진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께 외부 의식을 통해 예배 드려야 한다는 것을 인정할 것입니다.
그러나 교만은 그들을 혼미하게 만들어서 하나님을 내쫓아 버리게 합니다.
또 하나님이 자기들의 회중과는 멀리 계신 것으로 생각하고 헛된 생각대로 나아갑니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이 내신 이성과 율법에 예속된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자가 의도하는 것은 이 세상의 임금들이 하나님이 계신 곳을 자기들의 회중에 두지 않음으로서 야기된 어리석음을 없애려는 것입니다.
그들이 도취되어 있는 이러한 비합리적인 자만심을 보다 효과적으로 제거시키기 위해 시민의 질서가 “하나님의 회” 라는 말로 불립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세상 모든 분야에 비춰진다 할지라도 사람들 가운데서 합법적인 통치가 행해질 때라야 가장 아름다운 광채가 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히브리 사람들이 매우 일반적으로 “하나님” 이라는 칭호를 사용해서 모든 진귀하고 뛰어난 것들을 찬양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본문의 내용으로 볼 때, 이 신적 존재에 대한 칭호가 하나님의 위엄에 특별한 증거를 나타내는 높은 지위에 오른 임금들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솔로몬도 “하나님의 언약”(잠2:17)과 결혼했다고 함으로서 그 관계가 구별되는 특별한 성격을 말합니다.
하반절을 ‘그가 신(神)들 가운데서(재판장들 중에서 -한글) 판단하시되’ 라고 번역할 것인지, ‘그가 가운데서 신들을 판단하시되’ 로 번역할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자가 더 용이하고 자연스럽습니다.
세상의 많은 통치자들은 아무리 자신을 높여도 자기들을 주관하고 계시며 계속해서 자신의 피할 수 없는 임무로 알고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실추시켜 버리려 해도 하나님의 권위는 조금도 손상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와 또 뒤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특별한 영광의 표적들을 주셨습니다.
시편 82 편
2. 본문 2절은 “너희가 불공평한 판단을 하며 악인의 낯 보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여기서 하나님이 심판의 보좌에서 말씀하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선지자가 1절의 방법을 좇아 왕들을 꾸짖을 길을 마련하기 위해 말합니다.
왕들은 머리를 구름위로 쳐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통치아래 놓입니다.
이런 처지인 그들이 이성의 책임에서 오만하게 벗어나려 하는 것은 헛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런 일을 자행합니다.
폭군들은 그들이 가장 천한 사람들 중에 있다가 반역을 일으켜서 높은 지위를 차지했어도 만일 하나님의 종이 자기들을 향해 단호하게 입을 연다면 마치 자기들에게 큰 잘못이 일어난 것처럼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에 호소함으로서 피할 곳을 찾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지배받는 율법에서 예외되는 특권을 가지려 함으로서 일반 백성들에게서 하나님이 주신 진리와 그 역할을 빼앗아 버리고자 합니다.
그들은 마음대로 할 특권을 누리지 못하는 한 그들의 주권은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기들 가운데 다스리시고 계신다’ 는 사실을 한번 받아들면 하나님의 진리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따라서 선지자는 이처럼 자기의 권위에 대한 근거를 말한 후에 거침없이 왕들을 책망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부당하게 압제하며 뇌물을 받음으로 모든 정의의 원칙을 그르치는 막중한 죄악을 꾸짖습니다.
시인은 “악인” 이라는 말을 정확히 밝혀서 선한 사람들이 판단을 그르치는 일이 없도록 해줍니다.
이 말씀에는 세상 임금들을 사로잡는 엄청난 분노가 나타나서 그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선하고 무죄한 사람들보다 악한 자들에게 보다 더 큰 관심을 기울이게 합니다.
또 이 구절은 악인들이 계속해서 소극적이며 아첨이나 교만, 뇌물 또는 다른 방도로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권력을 쥔 자들은 대부분 나쁜 쪽으로 기울어진다는 사실을 내다보게 합니다.
선지자가 악인들을 책망한 것은 그들이 선하고 양심적이기보다 자기에게 유익한 것만 구하기 때문입니다.
3. 본문 3-4절은 “(3)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지며
(4)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구원하여 악인들의 손에서 건질지니라 하시는도다”입니다
시편 82 편
우리는 이 구절에서 공정하고 훌륭하게 통치하는 자를 가난한 자들과 환난을 당한 자들의 권리를 지켜 주는 것으로 구분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간단히 배웁니다.
시편 저자는 제유법으로 일부분의 공정한 집행으로 그 전체를 가리킵니다.
이런 통치자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없이 공평하게 대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선지자가 그런 자들을 가리켜 슬픔을 당한 자와 압제당한 자들을 변호해 주는 자로 부름을 받았다고 표현한 것은 매우 적절합니다.
그 이유는 이런 자들, 곧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고 이 도움을 얻는 데는 오직 다스리는 자들이 탐심과 야망과 죄악들에서 벗어날 때에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재판관들이 칼을 쥐고 있는 목적은 악인들을 제어하여 무질서하고 난폭한 자들이 사람들 가운데 득세하지 못하게 하는데 있습니다.
사람은 그 힘의 확장에 비례하여 교만해지며 약한 사람들을 압제합니다.
그래서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과 싸움이 일어나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치안 판사에게 도움의 손을 뻗치는 경우가 아주 드뭅니다.
이런 증거들을 볼 때, 주로 가난한 자들과 궁핍한 자들을 왜 통치자들에게 위임하고 있는가 하는 사실이 매우 분명해집니다.
부자들의 잔인함과 부당한 처사에 쉽사리 밥이 되는 자들에게는 병든 자에게 의사의 도움이 필요한 것 못지않게 통치자들의 도움과 보호가 필요합니다.
왕들이나 다른 재판관들의 마음속에 자기들은 가난한 자들을 지켜 주기 위해 세움받는 자들이라는 사실과 자기들의 특별한 의무는 그들에게 부당한 일이 생기지 않게 하는 것과 모든 불의한 횡포가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깊이 뿌리 박혀 있다면, 완전한 공의가 온 세상을 정복하게 될 것입니다.
자기의 유익을 좇아 이리저리 좇아 다니는 대신 가난한 자들을 옹호해 주는 자신을 미천한 자로 여기지 않는 사람은 모두 올바른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또 우리가 이 구절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통치자들은 도와 주기를 간청받지 않아도 중재의 도움이 필요한 위치에 있는 자들을 자발적으로 도와주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 게으름과 죄인으로 간주된다는 사실입니다.
공개적인 불의가 행해지고 곳곳에 한숨과 탄식 소리가 들리는데도 하소연을 직접 듣지 않는 한 자기들이 부당한 처사를 구제할 수 없다는 핑계는 소용없는 일입니다.
그 이유는 압제 그 자체가 큰소리로 부르짖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높은 망대에 앉아 있는 재판관이 그런 사실들에 주의하지 않았다면 벌을 피할 수 없게 되리라고 시인은 여기서 단호히 경고합니다.
시편 82 편
시82:5-8 저희는 무지무각하여
치리자들이 불의하게 행할 때에는 운전자가 정신없이 운전하는 것과 같습니다(5).
그런 때에 그 자동차와 동승자들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본문은 치리자가 불의하면, 땅이 흔들림 같이 위험천만의 세상이 될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행악자들을 반드시 벌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의한 치리자들을 크게 벌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처지가 하나님을 대리한 것이기 때문입니다(6,7).
하나님을 대리한 특권자들이 불의하면 하나님을 가장 많이 모독하는 죄가 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대리하였으니 하나님이 그들의 진정한 주인이 아니겠습니까?
(1) 치리자들이 악인을 두려워하여 벌할 수 있는데도 벌하지 않으면 큰 죄입니다.
(2) 또 치리자들이 하나님의 갚아주심을 바라보고 불쌍한 자들을 도와줄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역시 큰 죄입니다.
그런 치리자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높은 명칭(신들, 지존자의 아들들)과 특권을 자기 발로 차 버린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치리자들의 죄 값이 멸망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7).
그러므로 이 시인은 하나님의 세계적 심판을 내다보고 예언합니다(8).
1. 본문 5절은 “저희는 무지 무각하여 흑암중에 왕래하니 땅의 모든 터가 흔들리도다”입니다.
시인은 방백들의 의무를 기억시킨 후에 자기 권면이 그들의 마음에 아무 효과가 없었다는 사실과 그들이 유익한 교훈을 받아들이기 거절하고 있다는 사실을 탄식합니다.
실로 그들은 온 세상이 기초부터 흔들릴지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안일하고 생각이 없는 처지에서 자기들의 의무를 게을리 하고 있을 것입니다.
시인은 주로 그들의 광란을 꾸짖고 정죄합니다.
그들은 하늘과 땅이 혼란 속에 빠진 것을 보아도 그 광경에 전혀 마음을 쓰지 않음은 인류의 이익에 대한 관심이 자기들에게 있지 않은 것처럼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그들은 이런 일에 특별히 보호자로 택해지고 임명되었습니다.
그들이 주로 어떠한 판단력을 빼앗겼는지, 또 자기들의 영광에만 눈이 어두워 고약하게도 모든 멍에를 다 팽개쳐 버림으로서 종교적인 사색도 그들을 절제하게 할 수 없었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시편 82 편
모든 지식과 지혜는 하나님께 복종함으로서 그 영광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또 모든 지식과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배를 받고 제재를 받아야 합니다.
하반절 “땅의 모든 터가 흔들리도다” 라는 말씀을 주석가들은 대개 세상에 있는 모든 환난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왕들이 자기들의 직분에 맡겨진 의무를 다하지 못할 때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그 이유는 인간 사회 구조의 기반 형성은 정의 수호와 시행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에 의하면 이 말씀의 의미는 세상이 임금들의 부당한 학정으로 훼손되고 전복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 해석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인간 사회가 무서운 혼란 속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도 심지어는 모든 땅이 기초부터 흔들리는 것을 보고도 무관심하고 냉담하게 남아있는 재판관들의 괴물 같은 우둔을 정죄합니다.
2. 본문 6-7절은 “(6)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7) 너희는 범인같이 죽으며 방백의 하나같이 엎더지리로다(그러나 방백들아 너희는 인생처럼 죽으며 백성 중 하나같이 엎드려지리로다 - 칼빈)” 입니다.
하나님은 재판관들에게 거룩한 성품과 칭호를 부여하셨습니다.
선지자는 이 사실을 인정합니다.
선지자는 이것이 악한 재판관들을 지지해 주거나 방어해 주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선지자는 그들의 직분에 대한 존엄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선지자는 그들이 말하려는 핑계를 예견하고 답변합니다.
‘너희가 만일 너희의 존엄성을 들어 자신을 변호하고자 한다면 이러한 교만은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할 것이요, 진실로 어리석은 생각으로 자신을 속이는 것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너희를 자신의 대리자로 세우심으로서 최고의 치리자 되시는 자신의 주권을 상실해 버리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하나님은 너희의 연약함을 기억나게 하셔서 너희로 하여금 두렵고 떨림으로 맡겨진 직분을 감당케 하는 방편을 삼으신다’
이 구절은 하나님이 직접 통치자들에게 말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고 통치자들에게 하나님의 권위로 옷 입혀 하나님의 칭호를 부여해 주셨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런 해석은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사람을 가리켜 “신”이라 부르신(요10:34) 그리스도의 말씀과 일치합니다.
한편 이 구절은 더 적합하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나는 너희가 신들이나 또는 지존자의 아들들임을 당연히 여기노라’ 가 그것입니다.
시편 82 편
그러나 이 해석은 실제적으로 의미가 바뀐 것이 없습니다.
이 구절은 단순히 재판관들이 부여받은 존엄성이 자기들의 죄악이 받아야 할 형벌을 피할 수 있는 핑계나 구실을 제공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치고자 한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정부는 자신들도 언젠가는 하늘 왕국의 심판대에 나아가 자기들의 행위를 심판받게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입는 존엄성은 단지 일시적인 것이 될 뿐입니다.
또 그들의 존귀와 영화는 세상의 유행과 더불어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따라서 7절의 “너희는 범인같이 죽으며” 라는 말씀을 의역하면 ‘너희는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로 무장하고 있다. 그러나 너희가 보통 사람과 일반이다. 따라서 너희는 불멸성(不滅性) 을 가지고 있지 않다’ 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 하반절 말씀이 방백들을 보통 계급에다 비유한다고 확신합니다.
“하나” 란 말은 일반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자기들이 사람인 사실을 망각한 이 땅의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은 영원히 죽지 않을 소망을 내다봄으로서 자신을 달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구절은 그들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죽을 수밖에 없다고 가르칩니다.
그리스도는 바리새인들이 자기에게 퍼붓는 비방을 책망하기 위해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요10:34-36)라는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이 말씀으로 그리스도는 자신이 심판장들의 수준에 계시다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보다 작은 것으로 보다 큰 것을 말하는 방식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직분을 맡은 자들에게 적용되어졌다고 한다면 이 이름은 더욱더 아버지의 나타난 형상이시요, 그 안에 아버지의 위엄을 나타내시며 신격의 충만한 것으로 거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독생자에 해당될 것입니다.
3. 본문 8절은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판단하소서 모든 열방이 주의 기업이 되겠음이니이다” 입니다.
이 시편 말씀이 왜 기도로 끝을 맺는가? 는 첫머리에서 말하였습니다.
선지자는 자기의 훈계와 충고가 비효과적인 사실과 교만에 도취된 방백들이 공평의 원리에서 주어지는 모든 교훈들을 멸시하였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직접 하나님께서 그들의 오만함을 억제시켜 달라고 간구합니다.
시편 82 편
성령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으로 우리가 폭군들에게 잔인한 대접을 받고 핍박을 당할 때마다 위로의 근거를 마련해 주십니다.
우리는 그들의 과도함을 억제시킬 힘이 이 땅에는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이 세상을 심판하실 직분을 가지고 계시며 이 직분을 헛되이 행사하시지 않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혼란 속에 뒤엉킨 질서를 회복시켜 주시도록 살아계신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 우리에게 지워진 의무입니다.
곧이어 “모든 열방이 주의 기업이 되겠음이니이다” 란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이 나온 이유를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나라에 관한 예언으로 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열방을 자기 주관 아래 두시는 것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보다 포괄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 열방의 순종을 요구하실 권리가 있으시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또 폭군들이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선과 악, 옳은 것과 그른 것을 혼돈 시킬 때, 그들은 하나님에게서 율법을 쥐고 계시는 하나님의 특권을 악하고도 부당하게 빼앗는 것이 된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세상의 혼돈된 질서를 회복시켜 주시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는 정당한 통치권을 되찾으시도록 간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