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6:19-31 부자는 음부에 나사로는 낙원에 왜 갔을까
눅16장에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를 읽으면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왜 부자는 지옥을 갔을까? 그리고 거지 나사로는 왜 낙원에 들어갔을까, 부자가 특별히 죄를 지었다고 말하지도 않고, 거지 나사로가 특별히 하나님을 잘 믿었거나 선행을 했다는 기록도 없는데, 그래서 오늘은 그 궁금증을 함께 나누고 은혜를 받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에 대한 배경은 14절에서 재물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을 경고하고 회개시키려는데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재물만 추구하고 따라가는 세속적인 삶은 위험하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요즘 보도되는 핫한 뉴스는 전청조라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돈많은 재벌 3세의 혼외 자식으로 젊은 사업가이며 미국에서 자랐고, 승마를 공부했고, 경호원을 많이 데리고 다니면서 여자들을 유혹하여 돈을 갈취하고 사기 결혼으로 결국 자신을 망치는 결과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재물은 현세에만 집착하여 어떻게든 무슨 짓이든 돈만 손에 넣고 보여 주기식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또 미혹에 넘어가서 고통을 당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여기서 한걸음 물러나 사람은 누구나 죽는 것을 인지한다면 아무렇게나 막 되는대로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돌아갈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인지한다면 그곳은 행위에 따라 보상과 형벌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재물은 하나님을 망각하며 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부자는 죽어 음부에 갔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눈을 들어 아브라함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아브라함을 향해 아버지 아브함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품에 있지 않다는 것은 외형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지만 재물로 인해 하나님을 잊고 믿음에서 떠나버렸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인간이 오래 살면 100세 이쪽저쪽 인데, 저세상은 영원한 곳으로 비교 자체가 불가한데 인간은 본성이 악해서 선을 버린다는 것입니다.
죄가 무엇일까요?
렘2:13절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하나님을 버린죄, 믿지 않는 불신죄가 가장 큰죄이고, 스스로 웅덩이를 팠다는 것은 자신을 믿고 스스로 믿고 의지할 것, 종교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터진 웅덩이라 했습니다.
마6:24절을 보면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잠30:9절“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성도는 하나님보다 재물을 사랑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나 재물에 집착을 하다보면 탐심이 마음에 자리를 잡고 그 욕망으로 치달아 가게 됩니다. 그래서 잠언에는 30:8절“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아멘
재물에 집착을 하다보면 이웃을 무시하게 됩니다.
본문에서 9절을 보면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그 사람의 “대문앞에는 나사로라는 부스럼투성이의 거지가 누워 헌데를 핥더라”
문제는 부자는 한번도 자기 집 앞에 있는 거지를 돌아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개들이 헌데를 핥더라는 것은 그의 상처에서 고름도 나고 피도 났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는 배고픔을 쓰레기 통을 뒤져서 목숨을 연명했습니다. 왜 이토록 버림을 받았을까요? 바로 재물입니다. 그에게 재물이 많았다면 주인은 바로 하인을 시켜서 대접을 했을 것입니다. 바로 재물은 스스로를 특별난 존재로 의식을 합니다. 그리고 자기보다 못한 자들을 무시하고 그위에 군림합니다. 약2:6절을 보면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신15:7절“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네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
부자의 죄는 가난한 형제를 돌아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신명기에 기록하셨습니다.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아멘. 어렵고 힘든 가난 한자를 도와주지 않고 자기 배만을 채우는 자는 자기의 탐욕스러운 죄와 함께 영원한 불못이라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눅 12:5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부자는 자기의 영혼을 지옥에 보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죄가 있습니다.
나사로처럼 어려운 환경에 처한 자들의 대한 우리의 자세는
귀와 눈을 닫지 말아야 합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불쌍한 자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 잠19:17절을 보면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하나님을 빚쟁이로 만드는 것은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사로는 왜 낙원에 들어 갔을까?
나사로는 왜 천국에 갔을까? 첫 번째로 나사로의 뜻은 “하나님이 도우셨다”입니다.
부자의 이름은 하나님이 기억하지 않고 계시지만 거지는 나사로라고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도우셨기 때문에 천국에 간 것입니다. 우리의 이름을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것이 복입니다. 둘째로 나사로는 부자와는 다르게 선지자의 말을 듣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나사로는 굶고 아프고, 조롱당하고 고난당했지만 나사로의 삶을 끝까지 살았기 때문에 천국에 가게 된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나사로는 우리들입니다.
힘들고 아프고, 고통스러운 삶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며 산다면 하나님은 우리들의 이름을 다 기억하고 계시고, 우리를 위해 성령님을 보내 주시며, 우리를 항상 도우십니다. 예수님도 요14:16절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아멘, 그 사실을 믿고 인내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리를 지킬 때 우리는 나사로처럼 천국에 들어가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최고의 기쁨 속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억할 것은 우리 자신의 죽음으로 내 존재는 다 끝나 없어지는가? 아니면 죽음 건너편과 계속 연결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해야 합니다.
딤후3:14절 “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15절“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아멘.
우리는 대접받고, 자기만 아는 부자의 삶이 부러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면 결국 예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판단하며 살다가 지옥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굶고 조롱당하고 고난당해도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시고 그가 도와주심을 믿고 그 자리를 끝까지 지킬 때, 우리에게는 최고의 기쁨을 영원토록 누리는 천국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치려합니다.
예수님은 막7:11절에서 재물을 사랑하면 쉽게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다 하였습니다. 또한 돈 없는 자들의 인권을 짓밟고, 돈을 강탈해 가며 자기 배만 채운다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돈이 필요합니다. 최선을 다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며 예수를 믿는 믿음안에서 해야 하고 주시는 재물은 가난한 이웃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귀한 성경 66권을 주셨으므로 열심히 배우고 익혀서 살아 내시고 천국을 소유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의정부 등대지기 하늘산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