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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신자와 초보 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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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 나눔 은혜언약의 특성을 알고 성숙한 신앙을 갖자
장코뱅 추천 5 조회 344 26.07.11 07:47 댓글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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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6.07.11 08:34

    첫댓글 이번 묵상은 복음과 교리를 함께 담고 있으니 묵상과 공부의 효과가 날 것 같습니다. 초신자와 바쁜 분들은 묵상본문만 읽으셔도 충분합니다. 여력이 되는 분만 아래 추가 설명을 읽으세요.

  • 26.07.11 10:59

    네, 알겠습니다.

  • 작성자 26.07.11 08:40

    <호크마 주석>

    ===엡 1:3
    찬송하리로다 - 이 말의 헬라 원어(* )는 성경에서 다만 하나님에게 한하여 사용된다. 어순(語順)으로 보아 이 말은 문장 초두에 있으므로 강세(强勢)를 띤다. 사도 바울이 여기서 구원의 영화(榮華)를 말하려 함에 있어서 먼저 송영의 정서(情緖)가 터진 것이다. 그것은 그 구원이 하나님의 예정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 하나님은 존재론적으로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다(고전 1:30). 그리고 신자들은 그리스도로 말마암아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다.(롬 8:15). 따라서 그들은 모든 구원의 은혜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만 받게 된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 - "하늘에 속한"이란 말(* )이 여기서는 하늘의 장소적 의미로 쓰인 것이니(1:20,2:6,3:10,6:12), 그 "모든 신령한 복"은 하나님아버지께서 하늘에 계서서 내려 주시는 은혜를 가리킨다. 이 은혜는 양자됨, 성령의 열매 천국에 대한 약속, 부활 소망, 영생이다(Theodoret).

    === 엡 1:4-6
    택하사... 예정하사 - 이 두 말은 이 문맥에 있어서 서로 유사한 내용을 가진다고 간주해도 과히 틀림이 없다.

  • 작성자 26.07.11 08:41

    구원의 근거는 하나님의 "예정"(혹은 선택)이다. 바울이 여기서 구원론을 말하면서 그 근거를 첫머리에 말한다. 그런데 이 예정, 혹은 선택은 어떤 방식으로 성립되었는가?
    (1) 창세전에 - 되었음.이와 같은 선택에 대하여는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다(요 17:24). "창세 전에" 우리의 구원이 예정되었으니 우리가 아무 선이나 악을 행하기 전에 벌써 우리는 선택되었다(롬 9:11). 그러므로 이 선택은 하나님의 임의적 행위이고, 인간의 아무런 조건도 참고하시지 아니하신 것이다.
    (2) 그리스도 안에서 - 되었음 이것은 그리스도의 공로(功勞)를 보셔서 구원하시기로 택정하셨다는 의미이다(벧전 1:19-20).
    (3) 사랑 안에서 - 되었음. 우리에게 주신 구원이 우리의 무슨 공로에 대한 보수라면 그것은 공의(公義)의 보상원칙(報償原則)에 속하는 것이고 사랑의 행위는 아니겠다. 그러나 우리에게 아무런 공로가 엇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셨으나 그것은 순전한 사랑리 원칙에 속한 것이다.
    (4) 그 기쁘신 뜻대로 - 하셨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신 그것이 우리 인간 편에서 행할 것에 대한 평가(評價)로 말미암아 행해진 것이라면,

  • 작성자 26.07.11 08:41

    그것은 하나님의 임의적 행위라고 할 수 없다.
    (5)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 택하셨음.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것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6) 찬미하게 하려 - 고 선택되었음, 곧, 사언행(思言行)이 모두 다 하나님을 알고 감사하며 섬기는 생활(이것이 "찬미"이다)을 하게 하려고 선택되었다.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함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택정하신 일의 목적이지만, 그보다도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미하게"하려는 것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그로 말미암고 그에게로 돌아간다(롬 11:36). 만물의 존재의 이유는 하나님을 "찬미하게 하려"는 까닭이다. 이 점에 있어서 어떤 사람이 질문하기를,"그렇다면 하나님은 순 이기주의자가 아닌가? "할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다음과 같은 대답은 성경적이다. 곧, "하나님은 창조자시요, 사람은 그 피조물이다. 창조작가 아무 것도 없는 중에서 인간을 지으실 때에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지으셨음이 어찌하여 불의한 행위인가? "하고 할 것이다. 롬 9:15-23 참조

  • 작성자 26.07.11 08:41

    우리가 위의 해석과 같이 구원 받기로 예정된 방법을 보니, (1) 우리는 조금도 자만할 수 없다. 우리의 잘한 그 무엇이 이 선택을 성립 시킨 일이 있는가? (2) 구원 받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께 대하여 불평할 만한 아무런 조건도 없다. 만일 유기(遺棄)된 자에게 어떤 공로가 있다면 그는 불평을 품을 만하다. 그러나 인간은 다 죄인이다(롬 3:10). (3)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선택에 근거한 것이니만큼 우리는 이 구원에 대하여, 안전성을 느낀다. 우리의 구원이 우연적으로 된 것이고 하나님의 영원한 예비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서은 위태로운 것이며 또 우연적으로 유실(遺失)될 염려 있는 것이겠다. 감사를 품게 된다. 우리에게는 구원 받을 공로가 전연 없고 도리어 우리는 부단히 하나님을 거스리는 추악한 자들인데 은혜로 구원 받았으니 그 얼마나 감사한가! 송구한 마음과 겸비를 가진다. 나도 남과 같이, 혹은 그 이상 죄인인데 주님께서 나를 특별히 돌아 보셨으니 만큼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많은 수고와 많은 봉사를 하려 한다.

    === 엡 1:7
    그의 피로 -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의 죽으심을 가리킨는 말인데 왜 그것을 "피"로 표시하는가?

  • 작성자 26.07.11 08:42

    "피"는 생명을 대표하는 것이다(창 9:4). 구약 시대에 피는 속죄제(贖罪祭)의 희생(犧牲)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이 희생의 피는 구약 시대에 오랜 세월 동안 제물로 드림이 되면서 후에 오실 그리스도의 피(이것은 실물임-힘 10:1)를 예표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 "피"라는 말은 구약의 예언을 연상시키면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성취적 의의(成就的意義)를 지적 하는 귀한 말이다.
    구속 - 이 말의 헬라어(* )는 종을 그 주인에게서 값 주고 풀어 내옴과 같이, 죄 값을 지불하고서 죄인을 그 받을 벌에서 풀어 내옴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죄 값을 무엇으로 냈는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다.(벧전 1:18-19)

  • 26.07.11 09:04

    묵상 본문과 중심이 비슷한 것 같아요. 공감합니다.

  • 작성자 26.07.11 08:43

    엡2:8

    <호크마 주석>

    개역성경에는 '가르'(* , '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이것은 본절이 앞절에서 언급된 그리스도인에 대한 하나님의 지극히 풍성하신 은혜를 다시한번 강조함을 시사한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 본절은 5절에서 언급한 것을 반복한 것이지만 5절과 두 가지 차이점을 갖는다. (1) 5절의 은혜에는 관사가 없으나 본절에서는 관사 '테'(* )가 있다. 이것은 앞절에서(7절) 언급한 '은혜'와 동일한 것임을 시사한다(Lincoln). (2) 5절에는 '믿음으로 말미암아'가 없으나 본절에서는 나타난다. '믿음'은 스스로 자신을 의롭게 하려는 행위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기대하는 것으로 구원이 인간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이다(Wood, Bruce, Foulkes, Lincoln).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구속의 은총(恩寵)을 받아들이고 응답함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이것'이 가리키는 것에 대해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 작성자 26.07.11 08:44

    (1) 혹자는 이것이 '믿음'이라고 주장한다 (Bengel,Beza, Hodge, Chird, Westcott). (2) 혹자는 구원의 과정 전체라고 주장한다(Lincoln,Wood, Abbott, Gnilka, Schlier, Mitton). 두 견해 중 후자가 더 타당하다. 왜냐하면 '이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투토'(* )는 중성으로 믿음의 성(性)인 여성과 맞지 않으며, 문맥상 본절의 내용이 믿음에 대한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Bruce,Foulkes).

  • 26.07.11 09:06

    상세한 설명에 매우 공감합니다.

  • 작성자 26.07.11 08:45

    <호크마 주석: 히브리서>

    =====6:17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 본절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를 나타내는 것으로 창22:16-17에 대한 언급이다. 여기서 '맹세로 보증하셨나니'는 하나님의 약속의 불변성을 의미한다. 특히 '보증하셨나니'의 헬라어 '에메시튜센'(* )은 '중재자'란 뜻의 '메시테스'(* )에서 유래한 말로서 '중재자가 되다', '보증인이 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하나님은 맹세가 필요 없으나 자신의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주기 위하여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셨다. 한편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은 아브라함을 포함하여 그의 후손들을 시사하는 것으로 육체적인 후손이라기보다는 영적인 후손 즉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Lane, Mo-rris).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하신 맹세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확신을 고무(鼓舞)시켜 주는 말씀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 즉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까지 확장되어 적용된다(Michel, Spicq, Foerster). 따라서 아브라함에게 하신하나님의 맹세는

  • 작성자 26.07.11 08:46

    자신의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주기 위하여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셨다. 한편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은 아브라함을 포함하여 그의 후손들을 시사하는 것으로 육체적인 후손이라기보다는 영적인 후손 즉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Lane, Mo-rris).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하신 맹세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확신을 고무(鼓舞)시켜 주는 말씀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 즉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까지 확장되어 적용된다(Michel, Spicq, Foerster). 따라서 아브라함에게 하신하나님의 맹세는 자신의 약속이 변치 않는다는 사실을 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증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 26.07.11 09:12

    성경에 약속이라는 단어와 개념이 참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감사한 단어입니다.

  • 작성자 26.07.11 08:47

    <호크마 주석: 요한복음>

    =====17:9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 본절에서 예수께서 위하여 간구하는 대상을 제자들에게만 제한시키셨다고 해서 세상을 위하여 구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제자들은 세상과 구별되어 있다(L. Morris). 여기서 아버지와 아들과 제자들은 밀접한 상호 관계로 연결되어 있으며(Lenski), 예수는 중보자로서 하나님과 제자들의 관계를 유지시키신다. 특히 '비옵나니'의 헬라어 '에로탄'(* )은 종속 관계에서 사용하는 '아이테인'(* )과는 달리 대개 동등한 위치에서 말하는 것을 가리키며, 이는 곧 중보자로서의 예수의 신적 신분을 시사한다. 한편 예수께서는 '세상'을 위해서도 기도하신다. 세상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며(요 3:16) 궁극적으로 세상 역시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할 대상이다. 본장 속에서도 예수는 세상이 '믿을 것'(21절)과 세상이 '알게 될 것'(23절)을 위해 기도하신다. 예수는 제자들의 죄만을 짊어지신 것이 아니라 세상 죄를 짊어지셨다'(1:29). 그는 세상의 어리석음과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을 기도하셨다(눅 23:34). 세상은 제자들과 달리

  • 작성자 26.07.11 08:47

    하나님과 대립적(對立的)인 위치에 있다. 따라서 그 기도의 내용이 서로 다른 것은 필연적이며, 세상을 위한 기도는 더 이상 세상이 '세상적'이지 않기를 구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회개에 이르기를 구하는 것이다(L. Morris, C.K. Barrett). 예수는 세상에서 그의 말씀을 듣고 회개를 외쳐야 하는 제자들을 위해 먼저 기도한다.

  • 26.07.11 09:13

    호크마 주석을 보면 Lenski라는 분의 의견이 자주 나옵니다. 한번 검색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 작성자 26.07.11 08:50

    <호크마 주석: 히브리서>

    =====9:15
    이를 인하여 드는 새 언약의 중보니 - '이를 인하여'는 본문이 11-14절에서 언급한내용의 결과임을 나타내다. 특히 이것은 앞절에서 언급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피가 양심을 깨끗이 하여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한 것을 가리킨다(Morris,Lane, Hewitt). 한편 '중보'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시테스'(* )는 그리스도의 구속적인 죽음의 효과를 시사한다(Michel).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종말론적 구속을 성취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맺기로 약속하신 새 언약을 실현시키셨다(8:8-12;10;16,17;렘 31:31-34). 따라서 그리스도는 새 언약의 중보이시다.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새언약의 중보자가 되신목적이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첫 언약 하에서 외형적인 면만 속죄한 불완전한 요소를 해결하여 온전한 속죄를 이루었다. 즉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율법의 불완전성을 해결하여 양심까지 깨끗하게 속죄시킴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로 하여금

  • 작성자 26.07.11 08:50

    기업을 얻게 하였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녀들에게 주어질 '기업'은 죽은 사람의 유언에 따라 얻는 재산을 가리키는 것으로(Morris) 영원한 구원을 시사한다(1:14;5:9,Lane).

    =====9:16,17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살았을 때에는 언제든지 효력이 없느니라 -'유언'에 해당한는 핼라어 '디아데케'(* )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1)언약. (2) 유언. '디아데케'는 신약성경에서 보통 '언약'을 가리키나 본절에서는 '유언'을 의미한다. 유언은 언약과는 달리 반드시 죽음을 전제로 하는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기 위해서 죽어야만 하셨음을 시사한다(Hewitt, Lane). 이러한 죽음의 필요성은 언약의 절차에서 비롯된다 구약에서 언약의 비준(批准)은 희생 제물에 의해서 보증된다(창 15:9-21;출 24:3-8;시 50:5;렘 34:17-21, G.E. Mendenhall). 그리스도는 이러한 새 언약의 비준을 위한 희생 제물로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맺고자 하시는 새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오셨으며(요 4:34;6:38, 39) 아들을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는 새 언약의 효력이 발휘될 수 있도록

  • 작성자 26.07.11 08:50

    죽으셔야만
    했다(8:9-12;요6:40).

    =====9:18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은 것이 아니니 - '이러므로'에 해당하는 헬라어'호덴'(* )은 본절의 결론이 16,17절에서 언급된 법적 원리에서 유래된 것임을 시사한다. 제사의식에서 희생 제물이 대표하여 피를 흘림으로 언약의 효력이 발생한 것처럼 새 언약에서도 대리자의 죽음을 통해 언약의 효력이 발생하였다. 새 언약에서는 구속 사역이 한 사람의 대리적인 죽음을 통해 성취되었으나 첫 언약 즉 옛 언약에서는 사람이 아닌 다른 동물의 죽음을 통해서 외형적인 구속 사역이 이루어졌다. 이와 같이 옛 언약이든 새 언약이든 간에 '디아데케'('유언')의 효력이 발생되기 위해서는 죽음이 필수적인 조건이었다(Morris).

    =====9:19
    저자는 본절에서 구약 시대에 언약 체결을 위해 희생 제사를 드리는 모습을 나름대로의 목적을 가지고 출애굽기 말씀을 인용하여 기술하고 있다(출 24:3-8).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 구약시대에 언약을 맺는 과정은 세가지 단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중 본절은 첫번째에 해당하는 것으로 계명을 백성들에게 선포함으로

  • 작성자 26.07.11 08:51

    언약을 맺기 위한 항목과 조건들을 제시하는 것이다(Morris). 언약의 조건들을 선포하면 백성들은 받아들일는지에 대한 가부(可否)를 결정해야만 한다. 조건의 선포 후에 두번째 과정은 언약의 내용들을 책에 기록하는 것이나 본절에서는 이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책과 온 백성에게 뿌려 - 본문은 언약 체결의 세번째 과정이다. 피뿌림의 과정을 통해서 언약의 비준이 결정된다. 출 24장에는 피를 백성에게 뿌렸다는 사실은 기록되어 있으나 '물과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였다'는 것은 나타나지 않는다. '물과 양털 그리고 우슬초'는 대개 시체를 만져서 부정해진 자나(민 19:1-22) 문둥병자(레 14:4-6, 49-51)를 정결케 하는데 사용되었다. 또한 구약성경에서 '책'에 뿌렸다는 사실 역시 나타나지 않으나 이것은 사람의 손이 닿은 책이 부정할 수 있기 때문에 정결례(淨潔禮)를 행했던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Morris).

    =====9:20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 본문은 출 24:8(LXX)의인용이다. 저자는 70인역 출 24:8을 본절에 인용하면서

  • 작성자 26.07.11 08:51

    두 가지를 변경하였다. (1) 70인역의'이두'(* ,'보라')가 본절에서 '투토'(* ,'이것')로 변용(變用)되고 있다. 이 사실은 저자가 본절에 인용하는 과정에서 그리스도의 성만찬 말씀과 일치시키기 위해 변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Lane, Hewitt). 따라서 본절은 '주의 만찬'을 암시하며(마 26:28;막 14:24, Spicq,Michel, Thomas). 희생된 동물의 피에 의해서 옛언약의 효력이 발생됨을 시사한다(Lane). (2) 70인역의 '디에데토'(* ,'위탁하였다')가 본절에서는 '에네테일라토'(* ,'당부하였다')로 바뀌었다. '디에데토'는 하나님께서 첫 언약을 제정하셨음을 암시하는 반면에, '에네테일라토'는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기 위해 말씀하신 것을 사람들이 비준해야 함을 시사한다(Hughes).

  • 26.07.11 09:16

    유언의 신성함은 물론이고 엄중함을 느끼게 하는 너무나 훌륭한 설명입니다. 묵상 본문과 흐름속에서 연결되네요. 감사합니다.

  • 작성자 26.07.11 08:55

    개혁주의 신학의 통설에 따른 구속 언약은 창세 전 삼위일체 하나님(성부와 성자의 위격) 사이에서 맺어진 영원한 도장(인)이자 협약입니다. 성부께서 택하신 자들의 구원을 작정하시고 성자께 중보자의 책임을 맡기셨으며, 성자께서는 이에 자발적으로 순종하여 자기 백성의 보증인이 되시기로 서약하신 신성한 언약입니다.


    '평화의 의논(Consilium Pacis)'은 스가랴 6장 13절("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자리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자리에 있으리니 이 둘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에 기초한 신학적 용어로, 개혁주의 조직신학에서 구속 언약(Covenant of Redemption)을 지칭하는 또 다른 핵심 표현입니다.

    창세 전, 성부와 성자(그리고 성령)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참된 평화를 회복하시기 위해 맺으신 신성한 영원한 협약이자 의논입니다.

  • 26.07.11 09:09

    본문에서 몰랐던 내용을 여기서 알면 좋겠습니다.

  • 작성자 26.07.11 09:18

    개혁주의 신학의 통설에 따른 행위언약은 하나님께서 타락 전무죄한 상태의 아담과 맺으신 언약으로, 인류의 대표인 아담에게 완전한 순종을 요구하시고 그 보상으로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신 법적 협약입니다. 만약 순종하지 않고 불순종할 경우에는 영원한 사망의 형벌이 주어지는 조건적 언약입니다.

    이에 가장 부합하는 핵심 성경 구절은 호세아 6장 7절입니다.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호 6:7)

    [부합하는 이유] 타락 전 아담과 맺은 관계가 단순한 명령이 아니라 공식적인 **'언약(Covenant)'**이었음을 구약 성경 스스로가 명시적으로 확증해 주는 가장 대표적인 구절입니다.

  • 26.07.11 09:10

    호세아서에 아담의 행위언약 부적격 상황이 나오는군요. 알겠습니다.

  • 26.07.11 09:35

    초신자와 가독성을 위하여 요약해 봅니다:

    은혜 언약은 하나님께서 연약한 인간을 위해 신실한 보증인을 허락하시고 성령의 사역을 통해 의무를 이행하며 살 수 있도록 하신 전적인 은혜의 계약입니다.
    이 언약은 성부의 선택적 사랑에 기원이 있고 성자의 구속에 법적 토대가 있으며 성령의 효과적인 적용으로 죄인의 삶에 실현되는 삼위일체적 역사입니다.
    은혜 언약은 역사 속에서 수립된 이후 다가올 영원까지 결코 취소되거나 끊어지지 않는 영원하고 훼손될 수 없는 신실한 신적 약속입니다.
    인간의 영적 실패와 배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끝내 승리하기 때문에 이 언약은 결코 깨어지지 않는 견고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언약의 영원한 생명과 깊은 교통의 관계는 오직 창세 전에 선택받은 자들과 그들의 자녀들에게만 실제적으로 적용되는 특정성을 가집니다.
    다만 신약 시대에 이르러 복음의 지경이 유대인이라는 단일 민족의 한계를 넘어 온 땅의 모든 민족에게로 활짝 열리며 보편적 경륜으로 확대되었습니다

  • 26.07.11 09:36

    역사 속에서 언약이 시행되는 외적 형식과 시대적 경륜은 바뀔지라도 복음의 본질과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합니다.
    ​은혜 언약은 인간이 영원한 생명의 교통을 누리기 위해 반드시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 조건적이나, 그 믿음조차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는 점에서 무조건적입니다.
    ​이 언약은 자격 없는 자에게 주권적으로 영원한 기업을 넘겨주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유언적 성격을 지니며, 구원 전체가 전적인 선물임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법을 통해 거룩한 삶의 기준을 요구하실 뿐만 아니라 성도가 그 요구를 이뤄갈 수 있는 힘과 은혜까지도 언약 안에서 아낌없이 공급하십니다.

  • 26.07.11 11:03

    이걸 보니 줄거리가 잘 이해됩니다^^

  • 작성자 26.07.11 11:07

    위에 있는 깊은 의미의 댓글에 깊이 공감하며 소회를 나눕니다:

    벌코프의 조직신학 등을 통해 정리된 은혜 언약의 특성은 우리의 구원이 결코 우연이 아닌 삼위일체 하나님의 치밀하고 영원한 계획임을 다시금 깨닫게 합니다.

    특히 인간의 연약함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끝내 승리하여 이 언약이 결코 깨어지지 않는다는 진리가 마음에 가장 큰 위로와 확신을 줍니다.

    조건적이면서도 동시에 무조건적인 이 신비로운 은혜 앞에서, 우리가 가진 믿음조차 내 공로가 아닌 전적인 주권적 선물임을 겸손히 고백하게 됩니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아갈 힘과 은혜까지도 언약 안에서 친히 아낌없이 공급해 주신다는 대목에서 성화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세밀한 사랑을 느낍니다.

    이 놀라운 은혜 언약의 특성들을 머리로만 아는 지식을 넘어, 매일의 삶 속에서 주님과 깊이 교통하며 신앙의 성숙을 이루어 가시기를 함께 기원합니다.

  • 26.07.11 11:04

    아멘!

  • 작성자 26.07.11 10:06

    주님, 무 자격한 저를 은혜 언약의 신실한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의 종으로 삼아 주셨으니,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만을 온전히 선포하는 신실한 목회자가 되게 하소서.

    맡겨주신 주님의 귀한 양떼들이 사람의 공로나 율법의 억압이 아닌, 영원히 깨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급하시는 은혜 안에서 날마다 참된 영적 자유와 성숙을 누리게 인도하소서.

  • 26.07.11 11:04

    아멘!

  • 26.07.11 12:08

    묵상 본문 1문단에 공감합니다:

    에베소서 1장 7절 말씀을 통해 은혜 언약의 핵심인 삼위일체 하나님의 주권과 그리스도의 보증, 그리고 죄 사함의 은혜를 일목요연하고 명확하게 풀어내어 주셔서 큰 은혜가 됩니다.

    창세 전부터 시작된 삼위일체적 은혜와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을 통한 속량이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깨어진 교통이 회복되는 '영생의 시작'임을 다시금 확신하게 됩니다.

    값없이 베푸시는 이 주권적인 구원 언약의 풍성함을 기억하며, 이어지는 은혜 언약의 성경적·영적 특성들을 통해 주님의 크신 사랑을 더욱 깊이 묵상하고 새기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 26.07.11 12:10

    2문단의 은혜 언약의 일곱 가지 특성과 성경적 논증을 깊이 경청하며 소회를 나눕니다:

    첫째와 둘째 특성에서 밝혀주셨듯,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아들과 성령을 통해 율법의 요구를 대신 완성하시고 삶에 적용케 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밀한 보증 사역이 큰 위로로 다가옵니다.

    셋째와 넷째 특성을 보며, 인간의 잦은 실패와 배반에도 불구하고 끝내 승리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창세 전 선택하신 자녀들에게만 허락하시는 차별화된 영생의 교통이 얼마나 값진지 복음의 무게를 깨닫습니다.

    다섯째 특성을 통해 구약의 선지자들이 바라본 메시아와 신약의 사도들이 전한 그리스도가 본질적으로 동일하며, 아브라함의 믿음의 방식이 오늘날 우리의 구원 방식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연속성에 깊이 공감합니다.

    여섯째 특성에서 짚어주신 '형식상 조건적이나 실질상 무조건적'이라는 통찰은,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책임과 그 믿음마저도 선물로 주어졌다는 주권적 은혜의 신비를 명확하게 정돈해 줍니다.

  • 26.07.11 12:10

    마지막 일곱째 특성인 '하나님의 주권적 유언'이라는 고백은 히브리서 9장 말씀과 맞물려, 이 언약이 단순한 쌍방 협상이 아니라 아들의 피로 효력을 발생시켜 자녀에게 영원한 기업을 넘겨주시는 일방적인 사랑의 확증임을 보게 합니다.

    전체 글을 관통하는 "구원은 우리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선언은, 신앙의 연수가 더해질수록 우리가 붙잡아야 할 유일한 고백이 오직 주님의 전적인 은혜뿐임을 다시금 일깨워 줍니다.

    성경 구절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이 깊이 있는 신학적 해설을 통해 은혜 언약의 확고함을 마음 깊이 새기며, 오직 주님의 주권적 자비만을 겸손히 찬양하는 신앙의 깊이가 더해지기를 소망합니다.

  • 26.07.11 12:11

    3문단 은혜 언약의 유언적 성격이 주는 네 가지 핵심 진리에 깊이 공감하합니다:


    유언적 표현에 담긴 진리들을 통해 구원이 우리의 공로 없는 전적인 선물이며, 인간의 어떠한 연약함과 실패에도 결코 훼손될 수 없는 견고하고 절대적인 진리임을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됩니다.

    신약의 새 언약 경륜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을 통해 완벽하게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서 있는 복음의 터가 얼마나 단단하고 영광스러운지 새삼 깨닫게 만듭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룩한 삶의 기준을 요구하시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요구를 기쁨으로 이뤄갈 수 있는 힘과 은혜까지 언약 안에서 친히 아낌없이 공급해 주신다는 대목에서 목회적 위로와 큰 감동을 받습니다.

  • 26.07.11 16:17

    네, 좋은 댓글에 공감합니다!

  • 26.07.11 12:18

    은혜언약의 의미들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한 것들이 매우 뜻 깊고 유익합니다.
    개념어, 교리 용어들이 많아서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겠으나 내용이 익숙한 것들이어서 아주 어렵지는 않습니다.
    은혜언약이라는 것이 형식상으론 하나님과 인간 양자 간의 언약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거의 하나님의 일방적인 언약의 성격이 강하다는 설명도 이채롭고 그만큼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에 대한 강조로 보입니다.
    언약이 하나님의 유언이라는 것과 예수님의 죽음으로써 언약의 효력이 발생케 되었다는 설명이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피 흘리심, 희생 제물, 죽음의 처절함과 고귀함이 우리를 삼위일체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길로 인도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26.07.11 12:21

    핵심을 잘 집어주셔서 감서합니다. 공감합니다.

  • 26.07.11 16:18

    올려주신 구속 언약과 행위 언약, 그리고 은혜 언약의 일곱 가지 특성과 유언적 성격에 이르는 모든 개혁주의 신학적 통찰은 구원의 전 과정이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의 주권과 신실하신 은혜 위에만 세워져 있음을 완벽하게 증명해 줍니다.

    아들의 십자가 피로 확증된 이 영원한 유언적 사랑을 품고, 율법의 억압이 아닌 공급하시는 성령의 힘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내며 주님의 양떼를 신실하게 섬기는 은혜 가득한 영적 여정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 26.07.12 15:4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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