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인촌(外人村)-김광균
하이얀 모색(暮色) 속에 피어 있는
산협촌(山峽村)의 고독한 그림 속으로
파아란 역등(驛燈)을 달은 마차(馬車)가 한 대 잠기어 가고
바다를 향한 산마루 길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전신주(電信柱) 위엔
지나가던 구름이 하나 새빨간 노을에 젖어 있었다
바람에 불리우는 작은 집들이 창을 내리고
갈대밭에 묻히인 돌다리 아래선
작은 시내가 물방울을 굴리고
안개 자욱한 화원지(花園地)의 벤치 위엔
한낮에 소녀(少女)들이 남기고 간
가벼운 웃음과 시들은 꽃다발이 흩어져 있었다
외인묘지(外人墓地)의 어두운 수풀 뒤엔
밤새도록 가느다란 별빛이 내리고
공백(空白)한 하늘에 걸려 있는 촌락(村落)의 시계가
여윈 손길을 저어 열 시를 가리키면
날카로운 고탑(古塔)같이 언덕 위에 솟아 있는
퇴색(褪色)한 성교당(聖敎堂)의 지붕 위에선
분수(噴水)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
* 추일서정(秋日序情) - 김광균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포화(砲火)에 이지러진
도룬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하게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 열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나무의 근골(筋骨)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낸 채
한 가닥 구부러진 철책(鐵柵)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위에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홀로 황량(荒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風景)의 장막(帳幕) 저쪽에
고독한 반원(半圓)을 긋고 잠기어 간다. *
* 은수저-김광균
산이 저문다
노을이 잠긴다
저녁 밥상에 애기가 없다
애기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한밤중에 바람이 분다
바람 속에서 애기가 웃는다
애기는 방 속을 들여다본다
들창을 열었다 다시 닫는다
먼 들길을 애기가 간다
맨발 벗은 애기가 울면서 간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그림자마저 아른거린다 *
* 녹동(綠洞) 묘지에서-김광균
이 새빨간 진흙에 묻히려 여길 왔던가
길길이 누운 황토(荒土) 풀 하나 꽃 하나 없이
눈을 가리는 오리나무 하나 산 하나 없이
비에 젖은 장포(葬布) 바람에 울고
비인 들에 퍼지는 한 줄기 요령 소리
서른 여덟의 서러운 나이 두 손에 쥔 채
여윈 어깨에 힘겨운 짐 이제 벗어 놨는가
아하
몸부림 하나 없이 우리 여기서 헤어지는가
두꺼운 널쪽에 못 박는 소리
관을 내리는 쇠사슬 소리
내 이마 한복판을 뚫고 가고
다물은 입술 위에
조그만 묘표(墓標)위에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린다
* 황혼-김광균
산은
누구의 무덤이기에
저무는 하늘에 늘어서서
말이 없고나
* 목련-김광균
목련은 어찌 사월에 피는 꽃일까
창문을 열고 내다보시던
어머니 가신 지도 이제는 10여 년
목련은 해저문 마당에 등불을 켜고
지나는 바람에 조올고 있다
어머니는 해마다 이맘때쯤 돌아오셔서
꽃피는 마당을 서성거리고
방안의 애기들을 들여다보실까
손수 가꾸신 가지에 봄이 나리고
바람은 먼 곳에 사람 소릴 가져오는데
임자 없는 꽃나무 두엇이
어머니 치맛자락을 에워싸고 있고나
목련은 슬픈 꽃
사월이 오면 나뭇가지 사이로
어머니 백발은 어른거리나
지금쯤은 먼 곳에서
옛 마당에 핀 꽃을 잊지나 않으셨는지 *
* 김광균(金光均)시인
-1914~1993 경기도 개성 사람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설야] 당선
-시집 [와사등][황조가][임진화].....
첫댓글 선생님!...
계묘년 한 해 일일문학을 위해 수고 많으셨습니다...
갑진년 새해에도 항상 건강하시고, 변함없는 가르침으로 저희들을 일깨워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