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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는 왕위쟁탈전에 패한 김우징을 장흥 천관사에서 신변보호한 후 민애왕(838년)을 축출하고 김우징을 왕위에 오르게 하였기에 관련 청해진의 장보고와 장흥연안의 호족세력이 관련이 있을 것 같아 흔적을 찾아내려고 정리한 자료이다.
■ 장보고는 해상왕인가?
▼ 장보고 고향은
어디인가?
장보고 출신배경과 성장과정에 대해 살펴본다.
장보고란 이름과 장보고의 유년시절에 대한 정보는 우리나라
역사서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궁복(弓福), 삼국유사에는 궁파(弓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중국자료에서는 장보고(張保皐)라고
적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글자가 다른 장보고(張寶高)로 기록되어 있다.
장보고 고향에 대해서도 기록상으로는 삼국사기에 해도인(海島人), 즉
‘섬사람’이란 것 밖에 나타난 것이 없으며 장보고가 청해진을 근거로 활동하였고, 장보고의 고향후배 정년(鄭年)이 청해진의 장보고를 찾았던 사연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장보고의 출신지를 완도라고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 장보고는 당나라에서 무엇을
했을까?
장보고는 805년에 나이어린 고향의 후배 정년(鄭年)과 함께 당나라로 건너가서 중국 서주 무령군의 군중소장이라는
군직에 올랐다.
당시 무령군(武寧軍)의 주요임무는 당나라 조정에 반기를 든 평로치청(平盧淄靑) 번수(藩帥) 이사도(李師道)가 이끄는
평로군을 토벌하는 것이였다.
장보고는 무령군(武寧軍)의 일원으로 당나라 왕조로부터 발해와 신라의 해상교역을 관장하는 업무를 위임받아 막강한
세력으로 성장하여 당의 조정을 위협하고 있는 평로군(平盧軍) 진압전에 참전하여 그 전공을 인정받아 소장직까지
승진했다.
▼청해진(淸海鎭) 관할범위 장흥앞바다
청해진(淸海鎭)이라는 의미는 ‘바다를 깨끗하게
한다’라는 뜻으로 추상명사를 앞세운 당풍(唐風)의 명명법을 사용했다. 이런 점에서 완도의 원래이름은 청해(淸瀣)가 아니라 조음도(助音島)였으며,
청해(淸海)라는 이름은 장보고가 완도에 진(鎭)을 설치하면서 이름하였다.
그래서 청해진의 관할범위는 서남해의 바다와 섬, 연안지역을
포함하였을 것이다. 청해진의 관할범위는 연구 자료에 의하면 『장흥 천관산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한 호족세력이 장보고 지배하에서 강진군과 해남군,
장흥군 연안지역을 포함하는 서남해 지역 일대였다고 한다. 청해진 설치는 서남해지역 일대에 대한 장보고의 관할권을 신라조정으로부터 승인받은 것을
의미한 것이다.』라고 한다.
■ 장흥연안지역의 호족세력은?
신무왕(김우징) 즉위(839년)과정에서 천관사를 대표하는 어떤 세력이
개입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세력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그 세력은 장보고 세력의 무력과 관련이 있으며 김우징이
왕위에 오르도록 청해진 장보고 휘하에서 활동한 군소 해상세력으로 사병을 거느린 채 홍진대사와 김우징 등이 머무르고 있는 장흥 천관산 천관사
주변의 일정한 영역을 다스렸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최근에는 염장이 청해진의 군사력을 기반으로 서남해의 새로운 위협 세력으로 대두하던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청해진을 혁파(851년)한 것으로 이해하려는 새로운 관점이 제시되고 있다. 그래서 장흥연안지역의 천관산 일대
호족세력은 일시적으로 위축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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