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는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감정이다. 공포를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사람은 자기 존재를 지키고자 노력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으며, 흔히 ‘겁을 상실’했다 표현할 정도의 이상 상태를 제외하고는 이 본능이 잘 작동하는 편이다. 그리고 인간사가 다들 비슷비슷한 편이기 때문에 공포를 느끼는 대상 또한 비슷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인지하지 못한 순간 갑자기 앞에 나타난 무언가(꼭 귀신일 필요도 없다), 죽음을 상징하는 것들, 혹은 일반적인 구성을 심하게 벗어난 현상(인터넷에서 이야기하는 “환공포증”, “불편한 골짜기” 따위를 예로 들 수 있겠다) 등은 대다수가 공감하는 공포의 대상이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다른 이들이 공포를 느끼지 않는 특정 대상이나 상황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정신의학계에서는 이런 것들을 “공포증(phobia)”로 정의하고 중요하게 다루고 있으며, 요즘 사회 분위기도 공포증 환자들의 고충을 인정해주는 분위기이다. 근데 공포증도 정도가 있지. 개 공포증이나 고소공포증이라면 쉽게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개에게 물리면 꽤 아프고, 높은 곳은 추락을 유발할 수 있으니까.
나는 나비에게서 공포를 느낀다.
나비를 보는 것이 무섭다. 실제로도 영상으로도 사진으로도 그림으로도 싫다. 계기는 기억나지 않는데 매우 어렸을 때부터 무서워했다. 곤충류들을 고르게 싫어하는 편이지만, 나비만큼 무서워한 곤충은 많지 않다. 차라리 거미나 지네를 마주하는 편이 낫겠다(둘이 곤충류가 아니라는 사실은 잠시 접어두자). 나비의 머리가 싫다. 검은 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그 조그마한 두 눈 밑에 돌돌 말려있는 기괴한 입이 싫다. 그 입 밑에서 서로 구분도 잘 되지 않게 꾸물렁거리면서 길쭉하게 달려 있는 가슴-배가 싫다. 아 물론 3쌍의 다리가 어디에 달려있는지 찾아보면 구분이 되겠지만, 그딴 것은 알아서 하라지.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미치게 만드는 것은 나비란 족속의 상징인 날개이다.
나비의 날개는 그 몸에 비해 상당히 크다. 그리고 비행을 위한 움직임도 기묘하다. 잠자리나 벌의 비행을 떠올려보라. 이들의 날갯짓은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빠른 상하(上下) 움직임이 대부분이니까. 하지만 나비의 날갯짓은 다르다. 날개의 윗부분이 올라가면 아랫부분은 내려가고, 그 흐름이 아랫부분으로 내려가면 윗부분은 다시 반대로 움직인다. 나비 나름의 규칙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이 ―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쉽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죽하면 나비의 날갯짓을 따라 비행하는 로봇을 개발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있을까. 이런 점이 과학계에는 연구의 대상이 될는지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공포감을 배가시키는 요소에 불과하다. ‘팔랑팔랑’, ‘나풀나풀’이라고? ‘퍼득퍼득’, ‘펄럭펄럭’이 아니고? 오 세상에. 그 빌어먹을 존재에 달려있는 빌어먹게도 큼직한 다세포 쪼가리들의 혐오스러운 난무(亂舞). 상상만 해도 불쾌한 소음이 이는 것 같다. 퍼드드득 퍼득.
‘나비 공포증’ 환자로서 가장 슬픈 점은, 바로 내가 싫어해 마지않는 이 곤충이 사회 구성원들에게는 귀엽고 아름다운, 가끔은 자유로운 이미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비야 나비야/이리 날아오너라 ― 미쳤습니까? 그 존재와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싶습니까? 노래하며 춤추는/나는 아름다운 나비 ― 자기 소멸을 간절히 바라게 만드는 노래 가사로군요. 하지만 말할 수 없다. ‘귀여운 존재’에 대해 공포를 느끼는 성인 남성을 사회가 존중해줄 가능성은 높지 않다. 공포증을 숨길 수밖에. 봄에서 가을 동안 풀밭을 거닐 일이 생기면 나비가 내 길목을 지나치지 않기를 소원한다. 만약 나비가 내 근처로 온다면, 그리고 주위에 보는 눈이 있다면 속으로 절규를 지를지라도 도망칠 수는 없으니까. 그나마 배추흰나비 같이 조그마한 녀석이라면 좀 참을 수 있다. 그 녀석에 한해서는 귀엽다고 조금은 인정할 수 있겠다. 하지만 제비나비나 호랑나비 같이 체급 있는 녀석이 눈앞에 나타난다면…….
다행스럽게도 이 공포증 때문에 사회생활에 지장이 있어본 적은 없다. 이야깃거리 하나 떠올려보자면, 일전에 직장 사람들과 같이 나비생태공원에 들른 적이 있다. 건물 내부에 식물원을 구성해두고 그곳에 나비들을 풀어두는 콘셉트의 장소였는데, 설명만 듣고도 나는 상당히 긴장했다. 내 몸에 달라붙은 나비를 보고 기겁하는 모습을 동료들에게 보이면 얼마나 수치스러울 것인가. 이런 나를 구해준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존재였다. 건물 밖에서 어떻게 안으로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새 몇 마리가 들어와 내부의 나비들을 잡아먹고 다닌 것이었다. 그래서 동료들의 기대 ― 또한 나의 우려와 달리 나비들은 건물 내에 많지 않은 편이었다. 풀 속에 숨어있는 산(生) 나비들, 그리고 날개를 활짝 펼친 채 박제된 죽은 나비들의 모습만 버티면 되었다. 그것도 힘들었지만.
글을 쓰는 지금은 겨울이다. 쏘다니는 곤충들이 적어 좋다. 하지만 곧 봄이 온다. 봄은 따뜻하고, 푸르고, 밝고, 화사하고 … 나비가 존재할 것이다. 어쩌면 이번 봄에는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았던 내 공포증이 원치 않는 자기소개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럴 일이 없기를. 혹시 나비를 마주치더라도 낯가림 심한 녀석이기를.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 족속 모두 어디 내가 모르는 접시 물에 코 박고 단체 익사를 해주셨으면 좋겠지만, 나비 없는 봄은 봄이 아니라니까……. 참 쓸데없는 곤충을 마스코트로 세우고 있는가 봄.
첫댓글 나비를 현미경으로 보듯 자세히 설명해주셔서, 나비 모습을 상상하며 그리게 되네요~~
솔직한 글, 자세한 묘사, 잘 봤습니다
글을 읽으며 글쓴이 앞에 나타난 나비가 낯가림이 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듭니다~ ୧( “̮ )୨✧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9.02.26 19:56
ㅋㅋㅋㅋㅋ 반갑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