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년 7월 15일(수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 “몸이 아플 때 마음공부가 깊어집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아침 법문의 주제는 “몸이 아플 때 마음공부가 깊어집니다.”입니다. 오늘은 불기 2570년 7월 15일, 수요일이며 초복(初伏)입니다.
초복은 삼복더위의 첫날로, 몸이 쉽게 지치고 기운이 떨어지기 쉬운 때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몸을 무리하게 몰아붙이지 말고, 내 몸의 소리를 조용히 들어야 합니다. 몸을 잘 돌보는 일도 수행이고, 마음을 무너지지 않게 지키는 일도 수행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건강할 때는 건강의 고마움을 잘 모릅니다. 숨을 편히 쉬는 일, 밥을 먹는 일, 잠을 자는 일, 걸어서 움직이는 일, 이런 평범한 일이 얼마나 큰 복인지 아플 때 비로소 알게 됩니다. 몸이 불편해지면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일들이 하나하나 감사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병은 우리에게 괴로움만 주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스승이 되기도 합니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함께 흔들립니다. 병원에 다녀오고, 검사를 받고,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결과를 기다리다 보면 마음속에 걱정이 일어납니다. “왜 이런 증상이 계속될까.” “앞으로 괜찮아질까.” “내가 무언가 잘못 살아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기도 합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그 걱정 속에서도 한 걸음 물러서서 마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몸이 무상하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몸은 늘 변하고, 늙고, 병들고, 지치고, 다시 회복되기도 하며 한순간도 그대로 머물지 않습니다. 건강할 때도 몸은 변하고 있고, 아플 때도 몸은 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몸의 변화 앞에서 너무 놀라거나 절망하기보다, “이 몸도 인연 따라 변하고 있구나.”하고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몸의 무상함을 바로 볼 때, 우리는 집착을 조금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을 더 귀하게 살게 됩니다.
법우 여러분, 몸이 아플 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원망이 아니라 다정한 마음입니다. 우리는 몸이 불편하면 나도 모르게 내 몸을 탓합니다. “왜 이렇게 약할까.” “왜 예전 같지 않을까.” “왜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을까.” 하고 몸을 원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몸은 지금까지 우리를 위해 얼마나 애써왔습니까. 수십 년 동안 숨 쉬고, 걷고, 일하고, 기도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무거운 짐을 견디며 여기까지 우리를 데려왔습니다.
그러므로 몸이 아플 때는 먼저 내 몸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동안 참 애썼구나.” “내가 너무 무리했구나.” “이제는 조금 쉬어가자.” 하고 몸을 다정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몸을 미워하면 마음까지 거칠어지지만, 몸을 자비롭게 바라보면 아픈 가운데서도 마음이 조금 부드러워집니다. 수행은 몸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
병원 진료를 받고 난 뒤에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검사 결과가 정상이라고 해도 몸이 불편하면 마음은 여전히 답답할 수 있고, 뚜렷한 원인을 알 수 없을 때는 더 막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내 몸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기보다, “내 몸이 나에게 쉬어가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구나.” 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몸의 증상은 때로 우리 삶의 속도를 늦추게 하고, 마음의 짐을 돌아보게 하며, 기도와 휴식의 자리로 우리를 이끌어줍니다.
부처님께서도 병든 수행자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경전에 보면 병든 비구를 돌보시며 “나를 섬기려거든 병든 이를 돌보라.”는 뜻의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병든 사람을 돌보는 일이 곧 부처님을 섬기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하나의 뜻이 있습니다. 남의 병든 몸만 돌볼 것이 아니라, 내 병든 몸도 자비로 돌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내 몸을 함부로 여기지 않고, 내 아픈 마음까지 살피는 것이 자비의 시작입니다.
몸이 아플 때 마음공부가 깊어지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아픔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듭니다. 건강할 때는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몸이 아프면 한 걸음도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인간의 한계를 배웁니다. 그리고 그 한계 앞에서 부처님께 의지하는 마음, 기도하는 마음, 오늘 하루를 감사하는 마음이 깊어집니다.
또한 내가 아파보면 다른 사람의 아픔도 조금 더 이해하게 됩니다. 내가 숨이 차보면 숨 쉬기 힘든 사람의 마음을 알게 되고, 내가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해보면 불면으로 고생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내가 병원 의자에 앉아 기다려보면, 병마와 싸우는 많은 사람들의 불안과 간절함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픔은 잘만 받아들이면 나를 작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내 자비심을 넓히는 공부가 됩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초복 아침에 우리는 몸 보양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마음 보양도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몸에는 따뜻한 음식과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고, 마음에는 기도와 감사와 알아차림이 필요합니다. 몸이 지쳤을 때는 쉬어야 하고, 마음이 불안할 때는 숨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걱정이 많아질 때는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붙들지 말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조용히 해야 합니다. 이것이 병든 몸을 대하는 수행자의 지혜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 모두 이렇게 발원해 보았으면 합니다. “부처님, 제 몸이 불편할 때 마음까지 무너지지 않게 하소서. 몸의 아픔을 원망으로만 보지 않고, 무상과 감사와 자비를 배우는 공부로 삼게 하소서. 제 아픔을 통해 다른 이의 아픔도 헤아리게 하시고, 걱정에 끌려가기보다 기도와 알아차림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이 발원이 오늘 초복의 더위 속에서 우리 마음을 지켜주는 시원한 법문이 되기를 바랍니다.
법우 여러분, 몸이 아플 때 가장 힘든 것은 통증이나 불편함만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그 아픔을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몸이 조금 불편해지면 마음은 곧바로 미래로 달려갑니다. “앞으로 더 나빠지면 어떻게 하나.” “혹시 큰 병이면 어떻게 하나.” “내가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면, 몸의 아픔보다 마음의 걱정이 더 크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병을 대하는 수행자의 첫걸음은 몸의 증상만 살피는 것이 아니라, 그 증상을 바라보는 마음을 함께 살피는 것입니다. 몸이 아픈 것은 몸의 일이고, 그 아픔을 두려움과 원망으로 키우는 것은 마음의 일입니다. 물론 아픈 몸을 가볍게 여기라는 뜻은 아닙니다. 병원에 가야 할 때는 가야하고, 검사를 받아야 할 때는 받아야 하며, 치료가 필요하면 성실히 치료해야 합니다. 다만 치료를 하면서도 마음이 불안에 끌려가지 않도록 지켜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일체는 무상하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한다는 뜻입니다. 건강도 변하고, 병도 변하고, 젊음도 변하고, 기력도 변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건강할 때는 건강이 계속될 것처럼 여기고, 아플 때는 이 아픔이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건강도 영원하지 않고, 아픔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깊이 받아들이면, 우리는 지금의 몸을 더 소중히 여기면서도 지나친 두려움에는 조금 덜 흔들리게 됩니다.
몸이 아플 때 우리는 두 가지 길 앞에 서게 됩니다. 하나는 원망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수행의 길입니다. 원망의 길로 가면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나는 참 불행하다.” “이 몸은 왜 이렇게 약할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갇힙니다. 그러나 수행의 길로 가면 “이 아픔이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지금 내가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오늘 내가 감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하고 묻게 됩니다. 같은 병을 겪어도 마음의 방향에 따라 삶의 깊이는 달라집니다.
법우 여러분, 병은 우리에게 멈춤을 가르칩니다. 건강할 때 우리는 자꾸 앞으로만 갑니다. 해야 할 일, 만나야 할 사람, 해결해야 할 문제를 따라 몸과 마음을 쉬지 않고 몰아갑니다. 그러나 몸이 아프면 강제로 멈추게 됩니다. 처음에는 그 멈춤이 답답하고 속상하지만, 그 멈춤 속에서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너무 오래 참아온 피로, 말하지 못한 마음의 짐, 쉬어야 할 때 쉬지 못했던 습관, 내 몸을 돌보지 못하고 살아온 삶의 방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때 병은 단순한 장애물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다시 살피게 하는 신호가 됩니다. “조금 천천히 가도 된다.” “모든 일을 내가 다 짊어질 필요는 없다.” “내 몸과 마음도 부처님 법 안에서 돌봄 받아야 할 존재이다.” 이런 깨달음이 생깁니다. 수행자는 병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병을 통해 배우는 사람입니다. 아픔을 피할 수 없을 때 그 아픔을 원망으로만 끝내지 않고, 지혜와 자비를 배우는 인연으로 삼는 사람이 수행자입니다.
몸이 아플 때 마음공부가 깊어지는 또 하나의 이유는, 아픔이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건강할 때는 내 힘으로 사는 줄 압니다. 내가 계획하고, 내가 움직이고, 내가 이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몸이 아프면 한 끼 밥도, 한 번의 잠도, 한 걸음 움직이는 것도 수많은 인연의 도움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의사의 손길, 가족과 도반의 염려, 약 한 알, 따뜻한 말 한마디, 이 모든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인연인지 새롭게 느끼게 됩니다.
그러므로 병중에는 감사의 공부가 깊어집니다. 몸이 불편한 가운데서도 오늘 숨을 쉬고 있다면 그것이 감사입니다. 큰일을 하지 못해도 오늘 하루를 견디고 있다면 그것이 감사입니다. 누군가가 안부를 물어주었다면 그것이 감사이고,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실 수 있다면 그것도 감사입니다. 아픔은 우리에게 큰 행복만 찾지 말고 작은 평안을 알아차리라고 가르칩니다. 작은 평안을 알아차리는 마음이 깊어질수록 수행의 뿌리도 깊어집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병든 이들은 많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병든 사람을 외면하지 않으셨고, 병든 이를 돌보는 일을 귀한 수행으로 보셨습니다. 이 가르침을 오늘 우리 삶에 비추어보면, 병든 사람을 돌보는 일은 자비이고, 병든 내 몸을 미워하지 않고 돌보는 일도 자비입니다. 몸이 아플 때 “나는 왜 이럴까.” 하고 자신을 책망하기보다, “이 몸도 괴로움을 겪고 있구나.” 하고 따뜻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자비롭지 못한 사람은 다른 이에게도 오래 자비로울 수 없습니다.
오늘 초복의 더위 속에서 우리는 몸의 기운을 살피듯 마음의 기운도 살펴야 합니다. 더위에 몸이 지치면 그늘을 찾듯이, 걱정에 마음이 지치면 부처님 법의 그늘을 찾아야 합니다. 그늘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면 뜨거운 기운이 가라앉듯이, 기도와 알아차림 속에 머물면 마음의 불안도 조금씩 가라앉습니다. 마음이 불안할 때는 멀리 달아나는 생각을 붙들지 말고, 지금 들어오는 숨과 나가는 숨으로 돌아오면 됩니다.
법우 여러분, 아픈 몸을 가지고도 할 수 있는 수행은 많습니다. 조용히 숨을 바라보는 수행이 있습니다. 약을 먹을 때 감사한 마음으로 먹는 수행이 있습니다. 병원에 갈 때 두려움보다 믿음을 내는 수행이 있습니다. 누워 있을 때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수행이 있습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원망하지 않고, 오늘 할 수 있는 만큼만 정성껏 살아가는 수행이 있습니다. 수행은 몸이 건강할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약할 때 더 간절해지고 더 깊어질 수 있습니다.
아픔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이렇게 발원해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 이 몸의 아픔을 통해 무상을 배우게 하소서. 이 마음의 불안을 통해 기도를 배우게 하소서. 제 괴로움 속에서 다른 사람의 괴로움도 헤아리는 자비를 키우게 하소서. 오늘 하루 제 몸을 미워하지 않고, 제 마음을 포기하지 않으며, 부처님 법 안에서 한 걸음씩 걸어가게 하소서.” 이 발원은 병을 단번에 없애는 주문이 아니라, 병 앞에서도 마음을 잃지 않게 하는 등불입니다.
몸이 아플 때 마음공부가 깊어진다는 말은 아픔이 좋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픔은 분명 괴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괴로움 속에서도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아픔은 원망이 될 수도 있고 수행이 될 수도 있습니다. 원망으로 바라보면 병은 나를 무너뜨리지만, 수행으로 바라보면 병은 나를 깨우는 스승이 됩니다. 오늘 우리 모두 몸의 건강을 소중히 지키면서도, 몸의 변화 앞에서 마음이 더 깊어지고 더 부드러워지는 수행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법우 여러분, 몸이 아플 때 우리는 비로소 인생의 가장 근본적인 사실 앞에 서게 됩니다. 이 몸은 내 마음대로만 움직여주는 것이 아니며, 건강도 내 뜻대로만 붙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젊을 때는 몸이 늘 내 편인 줄 알고 살지만, 어느 순간 몸이 보내는 신호 앞에서 우리는 멈추게 됩니다. 그 멈춤은 때로 답답하고 두렵지만, 그 속에는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깊은 가르침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병은 괴로움이지만, 수행자의 눈으로 보면 마음공부의 문이 되기도 합니다.
몸이 아플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을 끝까지 버리지 않는 일입니다. 병이 깊어지거나 증상이 오래가면 마음속에 낙심이 생기기 쉽습니다. “언제쯤 나아질까.” “왜 원인을 알 수 없을까.”“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하는 생각이 밀려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우리는 부처님 법으로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몸은 불편할 수 있지만 마음까지 절망에 맡겨버리지 않는 것이 수행자의 힘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생기고 인연 따라 변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몸의 건강도 인연 따라 이루어지고, 병도 여러 인연이 모여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몸이 아프다고 해서 무조건 자신을 탓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잘못해서 그렇다.”고만 생각하면 마음이 더 무거워집니다. 다만 지금 이 몸에 어떤 인연이 모였는지 살피고, 치료할 것은 치료하고, 쉬어야 할 때는 쉬고, 마음으로는 기도와 알아차림을 놓지 않는 것이 바른 태도입니다.
아픈 몸 앞에서 우리는 겸손을 배웁니다. 예전에는 쉽게 하던 일도 힘들어지고, 당연하게 여기던 하루도 조심스럽게 살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마음은 위축되기 쉽지만, 수행자는 그 속에서 새로운 지혜를 배웁니다. “내가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구나.” “이 몸도 돌봄이 필요한 귀한 인연이구나.” “오늘 하루 무사히 지나는 것도 큰 복이구나.” 이렇게 알아차리는 순간, 병은 원망의 대상에서 감사와 성찰의 자리로 조금씩 바뀝니다.
법우 여러분, 병원에 다녀오고 진료를 받는 일도 수행이 될 수 있습니다.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는 시간,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 의사 선생님의 설명을 듣는 시간, 그 모든 순간에 마음은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숨을 고르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마음을 세우면 그 자리도 수행처가 됩니다. 절 법당에서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병원 복도에서도, 약을 먹는 자리에서도, 아픈 몸을 쉬게 하는 방 안에서도 수행은 이어질 수 있습니다.
몸이 아플 때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은 조급함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조급한 마음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해결되기를 바라지만, 믿음의 마음은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차분히 해나갑니다. 약을 먹어야 하면 약을 먹고, 쉬어야 하면 쉬고, 진료를 받아야 하면 진료를 받으며, 동시에 마음을 기도로 붙드는 것입니다. 병을 외면하지도 않고, 병에 압도되지도 않는 중도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몸을 돌보는 일과 마음을 닦는 일이 함께 갈 때 아픔 속에서도 길이 보입니다.
또한 몸이 아플 때 우리는 주변 사람들의 은혜를 더 깊이 느끼게 됩니다. 누군가의 안부 전화 한 통이 큰 위로가 되고,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됩니다. 평소에는 지나쳤던 작은 관심이 병중에는 큰 공덕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아픔은 우리에게 혼자 사는 인생이 아님을 알려줍니다. 내가 누군가의 기도 속에 있고, 누군가의 염려 속에 있으며, 부처님의 자비광명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른 사람이 아플 때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괜찮겠지.” 하고 지나치지 말고, 안부 한 번 묻고, 마음으로 기도 한 번 올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병든 사람에게는 큰 설명보다 따뜻한 공감이 힘이 됩니다. “많이 힘드시지요.” “잘 견디고 계십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이런 말 한마디가 병든 이의 마음을 붙들어 줍니다. 내가 아파본 사람은 남의 아픔 앞에서 더 부드러워질 수 있습니다.
법우 여러분, 몸이 아플 때 마음공부가 깊어진다는 것은 병을 억지로 아름답게 꾸미자는 뜻이 아닙니다. 병은 분명 힘들고 괴로운 일입니다. 다만 그 괴로움 속에서도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우리는 무너지기도 하고 깊어지기도 합니다. 원망만 붙들면 병은 나를 어둡게 만들지만, 기도와 감사와 알아차림으로 바라보면 병은 나를 깨우는 공부가 됩니다. 아픔이 사라진 뒤에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아픈 그 자리에서도 수행은 시작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초복(初伏)입니다. 더위가 깊어지는 계절에 몸을 보양하듯, 우리의 마음도 보양해야 합니다. 몸에는 휴식이 필요하고, 마음에는 평안이 필요합니다. 몸에는 따뜻한 음식과 물 한 잔이 필요하고, 마음에는 부처님 말씀과 기도 한 구절이 필요합니다. 오늘 하루 내 몸을 함부로 몰아붙이지 말고, 내 마음도 걱정 속에 오래 방치하지 말아야 합니다. 쉬는 것도 수행이고, 감사하는 것도 수행이며, 아픈 몸을 다정하게 돌보는 것도 수행입니다.
이제 오늘 법문의 주제를 다시 마음속에 새겨보겠습니다. “몸이 아플 때 마음공부가 깊어집니다.” 이 말씀은 아픔을 참고 견디기만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아픔 속에서도 무상을 배우고, 감사의 눈을 뜨고, 다른 이의 고통을 헤아리는 자비를 키우자는 뜻입니다. 건강할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삶의 귀함을 아플 때 보게 되고, 평소에는 깊이 하지 못했던 기도를 몸이 약할 때 더 간절히 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픔은 때로 마음을 낮추고, 삶을 깊게 하며, 수행을 더 진실하게 만들어줍니다.
법우 여러분, 혹시 오늘 몸이 불편한 분이 계시다면 자신을 탓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왜 이렇게 약한가.”하고 괴로워하지 마시고, “이 몸도 그동안 참 애썼구나.”하고 다정하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몸이 건강한 분들은 지금의 건강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아픈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내 몸도 잘 돌보며, 오늘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는 마음이 곧 수행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함께 이렇게 발원합시다. “부처님, 몸이 아플 때 마음까지 무너지지 않게 하소서. 병 앞에서 두려움보다 기도를 먼저 일으키게 하소서. 제 몸의 아픔을 통해 무상을 배우고, 제 마음의 불안을 통해 믿음을 배우며, 다른 이의 고통을 헤아리는 자비를 키우게 하소서. 오늘 하루도 제 몸과 마음을 부처님 법 안에서 잘 돌보며 살아가게 하소서.”
법우 여러분, 몸은 때로 아프고 약해지지만, 그 아픔 속에서도 마음은 더 깊어질 수 있습니다. 병은 우리에게 멈춤을 가르치고, 겸손을 가르치고, 감사와 자비를 가르칩니다. 오늘 초복 아침, 더위 속에서도 몸을 잘 보살피시고 마음을 맑게 지키시기 바랍니다. 몸이 아플 때도 부처님 법을 놓지 않고, 건강할 때도 감사와 기도를 잊지 않는 법우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첫댓글 부처님 법문 고맙습니다.
마음에 새겨 행 하겠습니다.
스님 법문 새기며 몸도 마음도 단단해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