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놀이 2 / 황선영
새끼가 고3이면 안 하던 기도도 더 해야 하거늘. 올핸 기도하는 게 힘들어 새벽 예배에 거의 나가지 않았다. 눈만 감았다 하면 이 놈의 글쓰기가 머릿속을 다 차지해 버린다. 무엇을 쓸까로 시작해 조사는 '이'로 할지 '가'로 할지, 문장을 앞으로 했다 뒤로 했다, 촌스럽지 않은 결론을 찾아 온 세상을 떠돌아다닌다. 아무리 정신을 집중하려 해도 이쪽에서 당기는 힘이 너무 세다. 내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라 아예 알람을 껐다. 잡생각 하자고 새벽부터 일어나는 건 비효율적인 것 같아 그냥 자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렇다고 내 믿음이 약해진 건 아니다. 하나님이 선하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어 오랫동안 괴로웠는데 이젠 좀 수긍된다. 아픈 데가 넓고 깊어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 무슨 필요가 있어 겪게 했을까 하는 잡스러운 인생사, 내버려 두시는 내 연약함. 보니, 글 쓰려면 이런 것 다 재산이대. 그래서 그대로 인정하기로 했다. 역시 득이 있어야 이해가 빨라.
초고는 쓰레기라더니 진짜. 눈 뜨고 보기 어렵다. 누더기를 걸치고 있는 것 같다. 얼른 쓰고 다듬어야 한다. 빨고 꿰매 다리면 얼추 옷 같아진다. 못 봐줄 꼴에서 점점 나아지는 걸 보면 알 수 없는 곳이 간질간질하다. 연습장에 갈기고 대충 얼개가 짜지면 노트북에 타이핑한다. 옮기면서 구성이 달라지고 더 쉽고 세련된 단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생각을 여기에 매달아 놓으면 조금이라도 문장이 나아지는 것 같다. 퇴고는 여기저기 옮겨다니면서 해야 한다. 장소 분위기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집에서는 겁나 잘 쓴 것 같았는데 밖에서 읽어보면 완전 별로다. 교수님 말씀대로 나와 글이 좀 분리된다. 사실 나는 움직이는 게 싫다. 그래서 찾아낸 묘책이, 음악. 방에 가만히 앉아서 클래식부터 트로트까지 다양하게 틀어 놓고 글을 손본다. 나가지 않고도 분위기 전환이 빠르게 된다. 하하. 올해 가장 많이 들은 곡은 김광진의 <편지>, 조성진이 연주하는 드뷔시의 <달빛>이다. 책상에 앉으면 무조건 이 노래를 틀었다. 눈물을 한국자는 흘려야 글이 나왔다. 아빠, 엄마 얘기라도 하려면 한바가지는 쏟아야 했다.
화요일 수업이 끝나면 둘째가 방으로 들어와 글을 주라고 한다. 지금은 게임과 웹툰에 빠져 있지만 한때는 독서광이었다. 내 글 <공간>을 읽더니 무슨 거짓말 이리 잘하냔다. 이렇게 어질러진 집이 '미니멀 라이프'냐고. 하하. 그러니까. 정직, 진실 어쩌고 하면서 쓴다 했던 말은 취소해야겠다. 공갈을 잘 치니 진짜 소설을 써야 하려나? 얼마 전에 큰아이가 티브이를 보다가 아빠랑 헤어지면 다시 결혼할 것이냐고 물었다. 화면을 쳐다보니 이상민, 탁재훈 씨가 나와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글쎄. 그건 가 봐야 알 일이고. 심장이 약간 두근댔다. 그런 일을 맞게 된다면 얼마나 이야깃거리가 많을 것이야! 진짜 소설책 한 권은 뚝딱이겠는데. '황선영의 이혼사, 재혼사' 유치하긴 해도 제목이 금방 나온다. 그러자면 이 사람과 영영 이별이니 코끝이 애리다. 왜 하필 글쓰기일까? 밥이 나오는가, 떡이 나오는가? 조사를 뭘로 하든 그게 뭐가 중하다고. 수많은 남자 중에 이 사람일 수밖에 없는 것만치나 이해하기 어렵다. 돈이 많은가, 인물이 빼어난가? 살아보니 별로 착하지도 않고 말이야. 뭐 상대도 마찬가지겠지만.
"자기야, 거 맨날 쓰는 단어만 쓰지 말고 좀 골고루 사용해봐. 네이버 국어사전에 검색하면 유의어가 밑에 쫙 뜬다고." "아, 그래?"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낸다. "자기야, 그런데 뚱땡이 유의어에 황선영이 없어!" 멱살을 잡을까 하다가 손을 잡고 고맙다고 했다. 귀한 에피소드 만들어 줘서. 내 영감의 보고는 당신이야. 사랑해.
방문을 빼꼼 열더니만 '황완서'를 외치며 노후 걱정은 없겠단다. 나도 바라는 바긴 하나, 달에 한 번 갔다 오는 게 빠를 일 같다.
첫댓글 선생님 둘째가 아빠를 닮아서 재치가 넘치네요. 황완서 작가님 저 사인 미리 받아도 될까요?
매직 가져갈게요. 하하.
@황선영 에이 포 용지 가져갈께요.
저도 부탁합니다. 우리 친하게 지내요. 하하. 금방 유명해질 것 같아요.
아따, 왜 이러세요. 놀리지 마세요.
고맙습니다!
하하. 초고를 연습장에, 퇴고를 노트북에 쓰시는군요. 그것만 봐도 대단한 정성입니다. 온 가족이 응원해 주니 힘나겠어요.
저도 16일에 사인 부탁해요. 오타가 세 군데쯤 보입니다.
제발 알려주세요!!! 못 찾겠어요.
글을 쓰는 노력을 배워야 하는디요. 그렇게 열심히 쓰시니 늘 칭찬 받죠.
어쩌면 달에 다녀오는 것보다 황완서가 빠를 수도 있겠는데요.
그때를 대비해 저도 사인 한 장!!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그 찰랑찰랑함이 있거든요. 선생님 글이요. 저는 그걸 배우고 싶어요.
올해 감사했습니다.
나는 큰방에서 혼자 작가 놀이하는데 온 가족이 응원하니 힘이 나겠어요. 하하 재미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응원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그렇게 받아야겠어요. 놀리지 말고 나가라고 했거든요.
온 가족이 응원해주니 힘이 나겠습니다. 저는 아이 때문에 작업실이 필요할 것 같다고 원룸이라도 얻어야겠다고 너스레떨고 다녔는데 선생님 글 읽고 반성합니다.
오, 그러니까요. 작업실! 좋네요. 하하하.
재미있게 글 쓰시는 거 너무 부러워요. 진짜 작가세요.
부럼움의 대상이 되다니, 영광입니다. 고맙습니다.
글 쓰는 끼가 있는 선생님 부럽습니다. 황완서가 달에 다녀오는 것보다 훨씬 빠르겠습니다.
끼요? 우와. 대박. 정말정말 고맙습니다.
<그런 일을 맞게 된다면 얼마나 이야깃거리가 많을 것이야! 진짜 소설책 한 권은 뚝딱이겠는데.> 작가 맞네요. 하하하!
너무 나간 것 같아요. 하하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 글 읽을 때마다 말문이 막힌답니다. 와!! 이렇게 미리 열심히 준비하고 쓰다니 대단하다 하면서 혼자 중얼거리며 읽었어요.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교회에 가서 기도하며 글감을 찾는다는 것에 놀랐답니다.
기도는 안 하고 허튼 생각만 해서 큰일입니다.
진짜 재밌어요. 음식으로 치자면 몇가지의 맛이 어우러지는 것 같습니다. 맛있는 글 잘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겨울 잘 지내시고
봄에 뵈요!
가족들이 선생님의 든든한 배경이네요. 한 학기 동안 개성 있는 글 읽으며 많이 배웠어요. 다음 학기 기대해도 될까요? 하하.
장담하면 안 되니까 뻔한 말로 해야겠네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맛깔스런 글입니다.
단숨에 쭈욱 읽어내려가는 글이 황완서님 되실 날이 머잖은 느낌이라고 감히 댓글 남기고 갑니다.
글쓰기반에 처음 등록한 신입생입니다.
어머나,
이런 기분 좋은 일이!
읽어만 줘도 영광인데
댓글까지 달아주시고요.
정말
고맙습니다!
반갑습니다.
3월에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