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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말씀의 향기♣ No2488
8월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연중 제20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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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주님! 하루의 양식이 될 이 묵상글을 받아보는 모든 이들을 축복하시고 주님의 뜻대로 살게 하시며 은총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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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bc 오늘 미사**
https://m.youtube.com/watch?v=BhZ0Q5zyf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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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창조주를 아기로서 품에 안았던 분이 하느님의 집에 사랑으로 가득 차서 머무는 것을 옳은 일입니다!>
성모승천대축일입니다. 하느님의 총애를 입으신 성모님께서 하늘로 불러올림을 받으셨음, 즉 구원되셨음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1950년 11월 1일 비오 12세 교황님께서는 회칙 ‘지극히 자애로우신 하느님’을 통해서 성모 승천을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습니다.
“원죄에 물들지 않고 평생 동정이셨던 하느님의 모친 마리아는 현세의 생활을 마치신 후 육신과 함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 영광을 입으셨다.”
성모 승천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희망을 주는 사건입니다. 승천하신 성모님께서는 오늘 지상 순례 여정을 걷고 있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 사랑하는 자녀들이여! 용기를 내십시오.
여러분에게도 가능한 일이 승천이고 구원이여, 천상 영광에의 참여입니다.”
성모 승천은 하느님께 대한 성모님의 신앙과 순종, 헌신적인 태도가 무위로 돌아가지 않고 구원과 승천이라는 풍성할 결실을 맺었음에 대한 확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모님처럼 하느님께 자신을 개방하면서, 그분의 구원 의지 실현을 위해 헌신한다면 성모님처럼 구원과 승천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성모 승천은 지상 순례 여정 중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희망의 징표로 제시됩니다. 아울러 성모님이 도달한 목표는 성모님 당신 개인만의 목표가 아니라 믿는 모든 이들의 목표, 교회의 목표요, 오늘 우리들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마리아 안에서 교회는 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자신의 목표에 도달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교회는 후에도 이 목표에서 빗나갈 수 없다. 마리아의 현양은 세상 종말에서 교회 현양을 위한 보증이다.”
교회 전승에 따르면, 성모님께서는 성령강림 직후 에페소로 가셨습니다. 골고타 언덕 위에서 아들 예수님께서 남기신 유언에 따라 요한 사도과 함께 지내셨습니다.
평소 성모님의 성향을 고려할 때 절대 편안히 계실 분이 아니었습니다. 요한 사도를 비롯한 여러 사도들의 어머니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다 하셨을 것입니다. 사도들을 뒷바라지하면서, 틈만 나면 기도하면서, 언젠가 상봉하게 될 당신 아들 예수님을 매일 그리워하며, 경건한 삶을 살아가셨습니다.
성모님의 죽음과 승천에 관한 전설은 다양합니다. 한 전설에 따르면 성모님의 임종이 가까워지자 선교를 위해 사방에 흩어져있던 사도들이 모여와 마지막 인사를 올렸답니다.
이윽고 성모님께서 임종하시자 사도들은 기도와 찬미가로 그녀의 덕을 기렸고, 정성껏 장례를 치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멀리 선교 나가 계셨던 토마스 사도는 빨리 달려온다고 최선을 다했지만, 도착해보니 장례를 치른지 이미 사흘 뒤였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웠던 토마스 사도는 성모님 얼굴이라도 뵐려고 무덤을 열었는, 그분의 시신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수의는 잘 개어져 있었고, 아주 향기로운 냄새가 무덤 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답니다.
현장을 목격한 사도들은 이렇게 외쳤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당신 어머님을 부활시키셔서 그 정결한 육신을 모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성모승천은 교회와 전 인류가 그토록 바라던 최종적인 희망이 실현됨을 보여주는 축제일입니다.
성모승천은 인류 구원의 역사가 완성되었을 때 모든 사람들이 누리게 될 영광을 미리 보여주는 위로와 희망의 표지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성모승천 교리를 굳게 믿는 우리들은 오늘 자신의 처지가 아무리 실망스럽더라도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좌절이 클수록, 고통이 커질수록, 우리가 나아갈 길이자, 역할모델이신 성모님을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성모 승천과 관련된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의 찬미가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창조주를 아기로서 품에 안았던 분이 하느님의 집에 사랑으로 가득 차서 머무는 것을 옳은 일입니다. 성부께서 간택하신 신부가 하늘의 신방에서 사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당신의 아들이 십자가에 매달린 것을 가까이서 보며, 아들을 낳으실 때도 느껴보지 못했던 칼날 같은 슬픔을 느낀 이가 자기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앉아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승리가 죽음을 삼켜버린 대사건, 예수님의 부활 승천의 복사판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비록 나약한 인간이지만 썩는 몸에 썩지 않는 것을 입은 위대한 사건입니다.
성모님의 승천, 성모님께서 직천당(直天堂)하시고 성인 중의 성인이 되신 것은 우리에게 큰 희망을 준 대사건입니다.
우리가 비록 썩을 몸을 지닌 인간이지만, 우리도 언젠가 성모님처럼 불멸의 갑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음을 보여준 은혜로운 대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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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내가 어디로 향하는지 아는 방법>
(묵상 동영상)
https://youtu.be/Y2_vTTTLpC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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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성모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날을 기념합니다. 예수님이야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다시 아버지께 승천하시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모 마리아는 우리와 같은 한 인간이십니다. 그런데도 당신 아드님처럼 하늘로 승천하셨다는 사실은, 우리 또한 성모님처럼 하늘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줍니다.
그런데 성모님께서 그 순간에만 하늘로 오르셨던 것일까요? 성모님은 살아계셨을 때부터 하늘로 향하고 계셨습니다. 이 세상에서부터 하늘로 향하지 않으면 마지막에도 하늘로 올라갈 수 없습니다. 하늘이라는 말은 땅이라는 말이 떠오르게 합니다. 우리는 모두 지금 하늘로 향하든, 땅으로 향하든 그 길을 열심히 걷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죽음과 함께 그 방향의 끝까지 도달하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하늘로 걷고 있는지, 땅으로 걷고 있는지 반드시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알려면 내가 어떠한 추진력을 사용하는지 알면 됩니다. 모든 발사체는 뒤로 뿜는 추진력이 있습니다. 내게서 뿜어나오는 추진력이 나의 속도와 방향을 알 수 있게 합니다. 만약 나를 통해 물이 끊임없이 흘러나가고 있다면 나는 분명히 물의 원천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노를 저으며 물줄기를 거슬러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올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 홍주연 작가의 『더 해빙』입니다. 홍주연 작가는 사업 실패로 돈에 대한 트라우마가 심했던 아버지 밑에서 컸습니다. 아버지는 자린고비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굴비였습니다. 아버지가 췌장암에 걸렸다고 하여 홍주연 작가가 마지막에 굴비라도 실컷 드시고 가시라고 10마리 보내드렸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것도 아껴 드시다 5마리를 남기고 돌아가셨습니다. 병원도 굳이 6인실을 선택하여 죽을 때까지 돈을 아끼셨습니다. 그러나 홍주연 작가는 ‘그렇게 돈을 아끼면서도 왜 아버지는 평생 가난하셨을까?’를 궁금해하였습니다. 물론 자신도 돈을 쓰는 것에서 항상 불안하고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다가 어렸을 때부터 비범하였고, 지금은 전 세계 재벌들의 컨설팅을 해 주고 있는 이서윤 선생을 만납니다. 그녀는 수십만 명의 부자들을 연구하여 ‘해빙’(Having)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낸 인물입니다. 그녀는 홍주연 작가에게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면 기쁘게 쓰라고 말해줍니다. 돈을 낭비하라는 말이 아니라, 돈을 쓰면서 기쁜 마음이 들 때만 쓰라는 것입니다. 꼭 필요했던 것, 혹은 누군가를 도와줄 때는 돈을 쓸 때 마음이 기쁩니다. 그렇게 무언가를 기쁘게 내어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그 원천으로 향하게 됩니다. 원천으로 향할수록 더 많이 받게 됩니다. 원천은 그것이 솟아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돈도 물처럼 흐름이 있는데 기쁘게 흐르는 그 흐름에 자신을 맡길 때 부족함이 없어진다고 합니다.
이렇듯 무언가를 기쁘게 내어줄 때, 그것이 무엇이든 그 기쁘게 내어주는 것의 원천으로 향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내가 용서를 기쁘게 하고 있다면 자비의 원천이신 하느님께 향하고 있는 것이고, 내가 말씀을 전하고 있다면 진리이신 주님께 향하고 있는 것이고, 내가 사랑하고 있다면 사랑 자체이신 주님께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내가 누군가를 쉽게 미워하거나 질투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미움의 원천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빨리 회개하지 않으면 되돌아올 수 없는 만큼 가버리고 맙니다.
구약에 하늘로 승천한 사람이 두 명 나옵니다. 에녹과 엘리야입니다. 에녹이 하늘로 승천한 이유는 ‘하느님과 함께 걸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걷는다는 말은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는 뜻입니다. 누군가의 존재가 나와 함께 있다면 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뜻이 계속 나를 괴롭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과 함께 있다면 하느님의 뜻이 나를 괴롭힐 것이고, 그 뜻을 받아들여 실행한다면 하늘로 올라가게 됩니다.
성모 마리아는 하늘에서 온 가브리엘 천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성모 마리아는 신약의 에녹이셨던 것입니다. 하늘의 뜻이자 하느님의 아드님을 세상에 내어주셨으니 그 추진력으로 말씀의 고향으로 향하신 것입니다.
그다음에 엘리야가 있습니다. 엘리야는 하늘로 오르며 자신의 제자 엘리사에게 자신의 망토를 떨어뜨렸습니다. 엘리사가 그 망토로 강을 치니 강이 두 갈래로 갈라졌습니다. 이는 마치 홍해를 가를 때 모세가 들었던 지팡이와 같은 힘을 지닌 것입니다. 바로 ‘성령’이고 ‘은총’을 상징합니다. 누군가에게 은총을 주고 있다면 그 사람은 은총의 원천으로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눈치채십니다. 포도주는 은총입니다. 교회에 은총이 부족한 것을 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총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 갑니다. 그리고 그 은총을 내려주시는 기적을 행하십니다. 이렇게 성모님은 교회에 은총을 중개하시기 위해 그리스도께 가셨습니다.
하늘로 오르는 방법은 지금부터라도 하늘에게서 오는 것을 기쁘게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말씀과 은총의 중개자가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모 마리아는 한 인간으로서 우리가 쫓겨났던 에덴동산에 어떻게 다시 오르는지 보여주신 최초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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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8월 15일은 광복절이며 성모승천 대축일이다. 성모승천에 대한 것이 성서에 나타난 근거는 없지만, 초대교회에서부터 이에 대한 신앙을 간직해 왔고 1950년 11월 1일 교황 비오 12세가 ‘대자대비하신 하느님’(Muniticentissimus Deus)이라는 칙서를 통해 믿을 교리로 선포하셨다. 교회는 2000년간을 마리아의 승천을 기념했으나 정식으로 신앙교리로 선포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하나이요 거룩한 교회는 하느님의 모친,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의 가장 큰 축일을 지내고 있다. 8월 15일 축일은 여러 가지 명칭이 있다: 잠(kóimêsis), 성모승천(Análêmpsis) 등이다. 오늘 8월 15일은, 교회가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당신의 아들과 같이 특별한 기념을 하고 있다. 아들의 부활과 영광으로 시작하여, 인간의 영광 안에 -영혼과 육신- 처음으로, 우리의 희망으로서, “승천”하셨고, 영광 안에 당신 아들을 따라가셨다.
복음: 루가 1,39-56: 마리아의 노래
주님의 천사가 성령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전갈을 마리아에게 전한지 얼마 안 되어서였다. 그리고 불가능한 상황에서 아이를 낳게 하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을, 즉 남자가 없는 처녀가, 그리고 석녀였던 엘리사벳, 노인 즈카리아의 아내가 아기를 가졌다는 것과 마리아도 아기를 가졌다는 것을 보증해 주었다.
마리아는 천사에게 즉 하느님께 충실히 그 뜻을 받아들이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말씀하신 대로”, 즉 하느님의 말씀대로(38절). 하느님의 말씀을 잉태하고 즉시 집을 나서 엘리사벳을 방문하고, 도와주기 위해 떠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엘리사벳에게 인사한다.”(aspázomài).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한 마리아는 이제 성령으로 가득 차 있다(35절). 그리고 엘리사벳이 그 인사말을 들었을 때, 즉 당신의 친척의 “인사”(aspamós)(36절)를 들었을 때, 먼저 당신의 태중의 아기가 기뻐하였다. 이 아기는 요한이라 불릴 것이다(63절).
마리아의 여행은 나자렛으로부터 한 것이다. 엘리사벳은 구원을 기다리는 충실한 여인으로부터 난 여인으로 유다에서 구세주가 오시며, 유다에서 나타나실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 요한을 통해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것들은 성령 안에서 사제적, 예언자적 일이었기 때문이다. 마리아의 방문과 인사는 엘리사벳에게 또한 성령의 충만함을 주었다(41절).
이렇듯 마리아는 첫 번째로 성령을 받은 분이셨으며, 엘리사벳은 두 번째 성령을 받으신 분이시다. 이분들은 바로 성령을 전달해 주는 분들이다. 이 두 여인은 함께 태어날 아기들에게 있어 주님의 공동체, 구원의 공동체, 위대한 왕의 거룩한 나라의(참조: 시편 47,3; 마태 5,35), 성령으로 준비된 성전의 처음의 중심인물이 된다.
(마리아 승천 축일의 의미)
이것은 마리아의 신앙과 삶의 승리와 영광을 드러내주는 동시에 구원역사의 완성에 희망을 준다. 성모승천은 예수님 부활의 은혜를 입은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언젠가 성실한 신앙인 모두에게 주어질 부활의 영광을 마리아를 통하여 미리 앞당겨 실현한 사건이다. 즉 성모승천은 예수님 부활의 재확인이며 미래에 이루어질 우리의 부활의 보증이다.
여기서 예수님과 마리아의 관계는 스스로 당신을 비우시고 낮추신 하느님께 당신의 육체를 내어드림으로써 하느님의 아들이 완전한 인간이 되게 하셨기에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셨다. 이 완전한 인간인 그리스도는 세상의 구원이시다.
(마리아는 믿음의 여인)
이렇게 마리아를 보면 모든 것이 믿음에서 출발하여 완성에 이르는 모습이다. 즉 천사의 알림에서 십자가 사건 그리고 성령강림까지 믿음으로 가득한 분이시다. 아브라함보다 더 자신을 하느님께 내맡긴 믿음으로 아드님의 구원사업에 협력하신 분이시며, 하와의 불순종의 매듭을 당신의 순종으로 풀어주시고 세상에 구원을 얻을 수 있게 한 새로운 하와이시다.
마리아는 우리에게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르쳐 준다.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그분의 역사를 인정하며, 감사와 찬미를 드릴 수 있게 해준다. 마리아는 단순히 예수님을 낳으신 그 혈연관계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던 신앙의 여인이었기 때문에 복되신 분이시다. 그러나 그분의 생애에 언제나 칭송과 영광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분은 어머니로서 또한 많은 고통을 받으신 분이시다. 그러나 항상 하느님께 대한 변치 않는 믿음이 모든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 신앙인의 모델인 성모님께서 인간으로서 당신이 하늘의 영광에 첫 번으로 주어졌다는 사실이 우리 모든 믿는 이들에게 마리아와 같은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준다.
우리의 생활이 마리아의 삶을 따를 때,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으며,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낳아줄 수 있다. 마리아로서 살도록 노력하자. 그것이 우리 신앙인들이 가야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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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오늘의 묵상
[서울대교구 박기석 사도요한 신부님]
(성모 승천 대축일 전야 미사)
오늘의 묵상(1)
루카 복음사가에 관하여 가장 많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처음으로 그린 화가라는 사실입니다. 루카는 예루살렘에 머무시던 마리아를 자주 뵐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마리아의 초상화를 여러 개 만들어 섬겼다는 이야기가 전해 올 정도이니 더욱 그렇게 생각됩니다.
사실 루카 복음서는 다른 복음서들에 비하여 마리아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전해 줍니다. 마태오가 구세주를 낳은 어머니의 역할에만 초점을 두었던 것과 달리, 루카는 마리아를 한 인격체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매사에 숙고하는 모습(루카 2,19.51 참조)과 그에 따른 깊은 신앙(루카 1,38; 2,51 참조)을 전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운데 루카가 마리아를 간접적으로 한 번 더 언급하는 대목이 오늘 성모 승천 대축일 전야 미사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설교를 듣던 군중 가운데 어떤 여자가 예수님을 향하여 목소리를 높여 말합니다.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유다인은 신체의 일부로 그 사람을 가리키는 어법을 즐겨 사용하였기에 그 여인이 말한 ‘모태’와 ‘가슴’은 당연히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가리킵니다. 여기에 예수님의 대답이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져다줍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그렇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셨을 때 엘리사벳에게서 믿음의 여인으로 복되다고 칭송받으셨고(루카 1,45 참조), 예수님과 관련된 모든 일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시는 믿음의 자세를 보여 주셨습니다(루카 2,19.51 참조). 따라서 ‘오히려’라는 표현은 부정적 의미보다는 ‘그보다 더’라는 의미로 알아들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히 육친이셔서가 아니라 참으로 하느님 말씀을 들으시고 따르셨기에 성모 마리아를 복되다 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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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오늘의 묵상
“가톨릭 교회가 마리아에 대하여 믿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마리아에 대하여 가르치는 것은 또한 그리스도 신앙을 밝혀 준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487항은 그리스도교 신앙 고백 가운데 성모 마리아에 대하여 이렇게 언급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성모 승천에 대해서도 966항에서 다음과 같이 분명히 합니다. “마침내, 원죄의 온갖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시어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께서는 지상 생활의 여정을 마치시고, 육신과 영혼이 하늘의 영광으로 올림을 받으시고, 주님께 천지의 모후로 들어 높여지시어, 군주들의 주님이시며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자이신 당신 아드님과 더욱 완전히 동화되셨다. 거룩한 동정녀의 승천은 당신 아들의 부활에 특별히 참여한 것이며,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을 앞당겨 실현한 것이다.”
그렇습니다. 마리아의 승천은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로마 8,30)라는 말씀이 마리아에게서 실현되었음을 뜻합니다. 따라서 마리아의 승천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 헌신적인 태도,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겪으신 몸과 마음의 수고와 시련의 삶이 무위로 돌아가지 않고 온전히 하느님 안에 받아들여져 완성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 복음은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을 전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어머니께 드리는 엘리사벳의 인사에 대한 응답으로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을 찬양하십니다. 따라서 성모님의 겸손함이 드러나는 이 노래가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비천한 여종을 굽어살피시는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자비로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를 기억하도록 성모님께서는 맏물이신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오게 하셨고, 또한 재림하시도록 ‘가난한 이들’의 희망을 노래하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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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가톨릭 평화신문 미주지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끌림과 떨림’은 비슷한 면도 있고, 다른 면이 있습니다. 처음 본 사람인데도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사람처럼 끌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격이나 취미가 비슷하면 더 끌리기도 합니다. 음식도 그렇습니다. 맛이 있는 음식도 있지만 입맛에 끌리는 음식도 있습니다. 술도 비싼 술이 좋지만 입맛에 끌리는 술이 있습니다. 저는 해산물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예수님께 마음이 끌린 사람이 있습니다.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소리쳤던 소경, 깨끗해지기를 바랐던 나병환자, 부하의 병을 고쳐달라고 찾아왔던 백인대장, 딸의 병을 위해 찾아왔던 여인, 예수님을 집으로 초대했던 자캐오, 예수님께 시중들던 마르타, 예수님의 발치에서 말씀을 듣던 마리아가 있습니다. 세상의 욕망과 권력에 끌리기보다는 우리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끌리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청혼하는 연인은 마음이 떨릴 것입니다. 서품식에서 바닥에 엎드려 성인호칭기도를 듣는 서품자의 마음도 떨릴 것입니다. 둥지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하늘을 나는 새도 떨릴 것 같습니다. 드디어 새집을 마련해서 입주하는 아내의 마음도 떨릴 것입니다. 처음 무대에서 노래하는 가수의 마음도 떨릴 것입니다. 저도 첫미사를 봉헌할 때 무척 떨렸습니다. 무서워서 떨리는 것이 아니라 가슴이 벅차서 떨리는 것입니다. 하혈이 멈추었던 여인의 마음도 떨렸을 것 같습니다. 들것을 들고 걸을 수 있었던 중풍병자도 떨렸을 것 같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났던 막달라 마리아도 떨렸을 것 같습니다. 다락방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제자들도 떨렸을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께 말씀을 들었던 제자들도 떨렸다고 합니다. 익숙함으로 소중함을 잊어버리기보다는 처음 성체를 모셨던 그 설렘과 순수함으로 신앙을 간직하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성모승천 대축일입니다. 초대교회는 성모님께서 죽음을 거치지 않고 하느님께로 가셨다고 믿었습니다. 교리적으로는 성모님께서는 원죄 없이 잉태되셨기 때문에 원죄의 결과인 죽음을 맞이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신학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인간이면서 하느님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성모님은 이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셨다고 이야기합니다. 성모님께 대한 이 모든 찬사와 공경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요? 우리는 그것을 천사 가브리엘과 성모님의 대화에서 알 수 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성모님께 아이를 가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이끄심이며 하느님의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성령의 이끄심을 받아들이면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면서 성모님께 대한 찬사와 공경은 시작된 것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들 모두 언젠가 하느님의 품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의 표징입니다. 누군가 이야기 했습니다. 영원한 것은 끝도 없는 시간의 연장이 아니라, 영원한 것은 채워짐이라고 했습니다. 희망이 채워지고, 사랑이 채워지고, 믿음이 채워지는 것이 바로 영원함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끝도 없는 시간의 연장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 속에서 우리 모두는 사랑으로 채워 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 신앙인이 가야할 미래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성모 마리아의 일생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충실한 응답이었습니다. 성모님은 자신의 삶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으셨습니다. 우리도 성모 마리아처럼 자신보다는 이웃과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는다면 이 세상에 더 많은 평화가 이룩될 것입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와 어려움들이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도우심으로 지혜롭게 극복되기를 기도드립니다.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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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만남>
루카 1,39-56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다, 마리아의 노래)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그러자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만남>
참으로 아름다운 만남이 있습니다
눈물겹도록 정겨운 만남이 있습니다
가슴 시리도록 진한 만남이 있습니다
새 세상의 시작을 준비하는
마리아와 요셉의 만남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알리는
마리아와 가브리엘 천사의 만남
구원 역사를 경축하는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
마리아 태중의 예수님과
엘리사벳 태중의 요한의 만남
하느님이신 하느님 아버지와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신
아기 예수님의 성전에서의 만남
구원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요르단 강에서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의 만남
구원의 큰 걸음을 내딛는 갈릴레아에서
예수님과 첫 제자들과의 만남
참 세상을 드러내는 예수님과
가난한 이들, 아픈 이들, 소외된 이들의
따뜻한 희망 가득한 만남
십자가 아래서의
예수님과 성모님의
가슴 무너지는 만남
부활하신 예수님과
막달라 여자 마리아,
그리고 제자들과의 만남
자랑스러운 아들 예수님과
아버지 하느님의 만남
그리고 오늘
성모님과 아버지 하느님의
감격스러운 만남
온 삶 한 길을 걸어온 성모님을
따뜻하게 품에 안으시는 하느님을 봅니다
하느님 품에서 이제야 드디어
평온한 긴 숨을 내쉬는 성모님을 봅니다
가슴 졸이며 살아온 시간들
아기를 가지면서부터 걸어온 가시밭길
사랑하는 아들이 미쳤다는 소리를
가슴 깊이 간직해야 했던 순간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던
아들의 처참한 죽음에
함께 해야 했던 쓰라린 아픔들
이제 이 모두를 뒤로하고
아니 이 모두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드디어 그토록 간절히 소망했던
아버지 하느님 품에서의 평화
오늘 아버지 하느님께서
당신의 소중한 딸 마리아를
당신의 따스한 품에 안으십니다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만남입니다
오늘 아들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어머니 마리아를
당신의 영광 안에 품으십니다
빛나는 감미로운 만남입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만남의
끝자리에 함께 합니다
끝자리에 함께 함으로써
새로운 만남을 시작합니다
하느님과 나의 만남
거룩하신 어머니와 나의 만남
믿음 안에서 벗들과의 무수한 만남들
하느님과 나의
아름다운 만남의 끝자리가
이젠 누군가에게
새로운 만남의 첫자리가 될 수 있도록
부족한 나를 주님께 봉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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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장 이기헌 베드로 주교님]
<희망과 기쁨의 축일>
오늘은 성모 승천 대축일입니다. 성모 승천 대축일은 평생 예수님을 돌봐주신 성모님께서 ‘하느님 백성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로의 표시’(교회헌장 68)임을 보여주신 희망과 기쁨의 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생애 마지막 순간인 십자가 위에서, 당신을 고통스럽게 바라보고 계신 어머니와 제자에게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26) 하셨고, 제자에게는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7)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당부로 우리의 어머니가 되신 성모 마리아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머니가 되시어, 우리와 함께하셨습니다.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갈 때, 자연재해나 전염병으로 공포에 떨고 있을 때는 더욱 그러하셨습니다.
코로나19의 재앙을 성모님께 맡깁시다. 최근 전 세계는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번져,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며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언제 멈출지 모르는 이 재앙으로 인해, 많은 나라에서는 성당이 폐쇄되어 미사를 드리지 못하고 있고, 마음의 안식처 삼아 기도하러 찾아가던 성당도 쉽게 찾아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린이들은 성당에 찾아와 뛰어놀고 예수님을 배우던 주일학교도 가지 못한 지 오래 되었습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는 조금씩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여서, 마음 놓고 주일미사에 나오지 못하고 있는 교우들이 많고 성당에서 가졌던 모임들도 여전히 정상화되지 못한 상황입니다.
이런 시간이 계속되어 감에 따라 교우들의 마음은 불안과 두려움이 늘어가고 있고, 교회 생활의 공백으로 신앙마저 약해지지않을까 하는 걱정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간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그리스도교 역사 안에서, 전쟁과 자연재해와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을 때, 그리스도 신자들은 성모님께 기도하며 매달렸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열심히 기도해 왔지만 언제 그칠지 모르는 지금의 이 재앙이 하루빨리 끝날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성모님께 기도드려야 하겠습니다.
묵주기도야말로 우리가 자주 해왔던 친근한 기도입니다. 묵주기도를 열심히 바칩시다.
묵주기도는 많은 성인들의 사랑을 받고 교도권이 권장해 온 기도입니다. 1883년 교황 레오13세께서는 회칙 <최고 사도직>을 발표하시고, 묵주기도가 사회악을 물리치는 효과적인 영적무기라는 드높은 선언을 하셨습니다.
특히 최근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교서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를 발표하시며 묵주기도를 권장하셨습니다. 교서 안에는 이런 고백이 있습니다.
“저는 기회 있을 때마다 묵주기도를 자주 바치도록 권장해 왔습니다. 묵주기도는 어릴 때부터 저의 영성 생활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 왔습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저는 언제나 묵주기도를 바쳐왔습니다. 저의 모든 근심 걱정을 묵주기도에 의탁했으며, 그 안에서 저는 언제나 커다란 위안을 받았습니다.
묵주기도는 제가 가장 사랑하는 기도입니다. 묵주기도는 놀라운 기도입니다. 그 단순함과 심오함은 놀라운 기도입니다.”(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 2항)
“묵주기도는 묵상이며 간청입니다. 하느님의 어머니께 꾸준히 기도하는 것은 어머니의 전구가 당신 아드님의 마음에서 모든 것을 주실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합니다.”(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 16항)
묵주기도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성인들이 사랑했던 기도이기도 했지만, 성모님께서 파티마나 루르드 같은 곳에서 나타나시어 권장하신 기도이기도 합니다.
성모님을 통해 바치는 가장 강력한 간청이기도 한 묵주기도를 바치며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19 재앙으로부터 구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도록 합시다.
가정을 작은 교회로 만드는 기회가 되도록 합시다. 가족 모두가 예전처럼 마음대로 교회를 찾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지금은 가족 모두에게 새로운 신앙 도전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바로 ‘작은 교회인 가정’을 만드는 도전입니다.
본래 혼인성사를 통해 이루어진 가정은, 가정 그 자체가 작은 교회이어야 하고 부모는 자녀들에게 하느님을 가르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동안 교회가 그 역할을 해 왔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혼인성사를 통해 이루어진 가정과 부모의 역할이 각 가정에서 드러나야 할 때입니다. 지금까지 제대로 그런 역할을 해오지 못했더라도, 신앙 안에서 성장해야 할 자녀들을 위하며 온 가족이 함께 모여 기도드리는 시간을 가지고, 자녀들에게 하느님 자녀로서 갖추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면 좋겠습니다.
가족들끼리 조용하게 성당을 찾아가 성체조배를 하고,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는 시간을 갖는 그 자체가 가정이 작은 교회의 역할을 충실히 다 하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방역과 거리두기로 쉽게 성당을 드나들 수 없다고 하더라도, 사목자나 봉사자들은 작은 교회로서의 가정의 의미를 깨닫는 데 도움을 주며, 가족들뿐 아니라 기도하러 성당을 찾는 교우들을 따뜻하게 맞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영광스럽게 하늘로 승천하신 우리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께서 예수님과 요셉과 함께 사셨던 성 가정처럼 우리의 모든 가정도 성가정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우리의 가정을 봉헌하도록 합시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여 코로나의 위험 중에 있는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우리의 모든 가정을 거룩하게 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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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임상만 대건안드레아 신부님]
<성모님의 승천과 구원의 완성>
오늘 성모 승천 대축일은 성모 마리아께서 생애를 마치신 후 우리가 겪는 죽음의 부패를 겪지 않으시고 하늘로 올림을 받으셨음을 기념하는 날이다.
성모님의 승천은 사도들의 성모 마리아 빈 무덤 증언과 초기 교부들의 가르침으로 일찍부터 거룩한 교회의 전승으로 받아들였다.
특히 빈 무덤을 목격한 사도들은 마리아께서 하느님의 특은으로 돌아가신 지 사흘 만에 하늘에 오르셨다고 믿고 이 사실을 선포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전승이 아니더라도 예수님을 잉태하시고 낳아주신 마리아의 육신이 죄의 결과인 부패를 면하는 은총을 받았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런 이유로 교회는 초세기부터 성모님의 승천을 믿고 기념해 오다가 1950년 11월 1일 비오 12세 교황이 성모님께서 돌아가신 후 하늘에 올림을 받았다는 사실을 믿어야 할 신앙 교리로 선포하였다.
교회의 성모님 승천에 관한 전승들에 대한 역사적 사실도 중요하지만, 주님께서는 성모님께서 노래하신 ‘마니피캇’을 통해 우리에게 ‘기쁨’과 ‘축복’ 그리고 ‘찬미’의 삶을 건네주심에 집중해야 한다.
이것은 힘든 인간의 역사를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통하여 이미 우리에게 구원이 주어졌다는 희망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성모님의 승천이 신앙 교리로 선포된 1950년은 전 세계가 전쟁과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도전으로 엄청난 혼란을 겪던 시기였고, 교회 또한 전 세계를 휩쓴 철학적 합리주의 등 반가톨릭적인 사조로 인하여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시기였다.
세계대전의 참혹상을 경험한 사람들은 ‘하느님은 인류 역사 안에 정말 함께 하시는가? 하느님은 인간을 위해 어떠한 섭리도 하시지 않았다’는 분노를 드러내며 종교 무용성을 주장하기 시작했고, 이에 많은 그리스도인도 신앙을 버리고 교회를 떠나던 위기의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교회로 하여금 성모님의 승천을 신앙 교의로 선포하게 하시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의지하면 결국에는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의 운명을 바꿀 것이라는 희망과 신앙을 갖도록 하심으로 모든 분열과 전쟁을 넘어 인간이 억압에서 해방되는 기쁨을 갖게 하셨다.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어찌할 수 없을 만큼 병들고 타락하여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해도 하느님은 우리의 비천함을 하느님이 굽어보시고 당신 팔로 권능을 펼치신다는 희망과 기쁨을 갖게 하는 섭리의 표현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절망적으로 보이는 세상이 끝이 아니라, 성모님께서 하느님 품 안에서 생애를 마치시고 하늘로 승천하신 것이 완전한 결말인 것처럼 우리도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완성되는 삶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약속의 상징인 것이다.
우리는 예기치 않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인간의 비참성을 다시 한 번 경험하게 되고 인류의 미래에 대한 위기가 극대화된 시기를 살며 또다시 하느님의 존재와 섭리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교회는 이 상황에서 성모님의 승천에 함축된 주님의 섭리 안에서 현재 상황이 극복되어 인간성이 회복 될 수 있고, 우리의 미래는 오직 하느님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도록 애써야 한다.
성모님의 승천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존엄성이 하늘에 오를 수 있고, 인간 운명이 멸망이 아니라는 것을 하느님께서 선포하신 기쁨의 축일이기 때문이다.
“승천으로 영광 속에 앉으신 성모님께서는 우리들의 희망이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프란치스코 교황, 2014년 성모 승천 대축일 강론, 대전 월드컵 경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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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홍승모 미카엘 신부님]
<마리아의 노래>
오늘 우리는 성모 승천 대축일 복음으로 ‘마리아의 노래’를 듣습니다. 라틴어로 마니피캇(Magnificat)이라 불리는 ‘마리아의 노래’는 구원의 역사를 요약해 놓은 찬미가입니다.
교회는 전례적으로 저녁 기도에 이 ‘마리아의 노래’를 바치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노래’ 첫째 부분은 하느님께서 이루신 구원에 대한 마리아의 개인적 감사의 노래를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루카 46-50절)
여기에는 하느님께 감사해야 하는 이유를 열거합니다.(루카 48-49절) 둘째 부분은 하느님께서 마리아 안에서 이루신 구원이 하느님 백성 전체에 미치고 있다는 것을 찬양하고 있습니다.(루카 51-56절)
마리아의 노래’에서 묵상할 것 중에 하나는, 마리아께서 깨달은 하느님을 향한 새로운 시각입니다. 새로운 시각이란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분으로만 여겨, 우리 인간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던 하느님께서 비천한 여종인 당신 자녀의 처지를 결코 버려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루카 1,48-49)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은 마음이 교만한 사람이 아닌 겸손한 사람에게만 해당합니다.(루카 1,51)
우리가 마리아에게 배워야 할 신앙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마리아께서는 당신 자신을 비천하고 낮은 사람으로 처신한 것입니다.(루카 1,48)
그러나 교만은 자기 자신의 실제 모습을 외면하게 하여 하느님과 이웃을 향한 마음의 눈을 가리게 합니다. 교만은 자신의 실상을 허황되게 평가하고 진실에 눈멀게 합니다. 그래서 오직 자기 자신의 생각과 결정과 행동만이 옳고, 남들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증오하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마리아의 겸손한 신앙 안에서 하느님을 향한 새로운 마음의 눈을 떠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겸손의 옷을 입고 서로 섬기십시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총을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스스로 낮추어 하느님의 권능에 복종하십시오. 때가 이르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높여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온갖 근심 걱정을 송두리째 하느님께 맡기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여러분을 돌보십니다.”(1베드 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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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농장을 운영하던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의 노력으로 농장은 점점 커졌고, 이제 더는 혼자 운영하기 힘든 상태가 되었지요. 그래서 관리인을 공개 모집했지만, 워낙 일이 많은 농장 일이기에 관리인을 해보겠다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얼마 뒤에 드디어 한 명의 지원자가 나타났습니다. 농장 주인이 그에게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를 묻자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태풍이 몰아치든, 눈보라가 몰아치든 아주 편안하게 잠을 잘 잡니다.”
이게 무슨 장점인가 싶었지만, 다른 지원자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이 사람을 채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이 사람은 아주 성실했고, 이 모습에 농장 주인은 만족스러웠습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이 농장에 커다란 폭풍이 덮쳤습니다. 폭우와 거센 바람에 놀란 농장 주인은 서둘러 농장에 가서 관리인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관리인은 너무 편안하게 자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너무 화가 나서 흔들어 깨웠지만, 관리인은 잠에 취해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할 수 없이 농장 주인 혼자서 걱정되는 축사와 밭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깜짝 놀랐습니다. 축사 지붕은 단단하게 묶여 있었고, 밭 주변은 배수로를 넓게 파서 태풍으로부터 피해를 보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면접 당시에 태풍, 눈보라에도 편안하게 잠을 잘 잔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만큼 철저하게 준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걱정과 불안으로 힘들어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바로 철저한 준비가 아닐까요? 준비 없이 걱정과 불안으로 지금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의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오늘 우리는 지상 생애를 마치신 다음 하늘로 불려 올라가신 성모님의 승천을 기념합니다. 성모님께서 이런 영광을 얻으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단순히 하느님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이것도 이유가 되기는 하겠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어떤 상황에서도 무조건 하느님과 함께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잉태 소식을 들었을 때도, 예수님을 낳았을 때도, 에집트로 피난 갔을 때도, 성전에서 예수님을 잃어버렸을 때도, 사랑하는 아들의 수난과 죽음을 목격할 때도……. 그의 기준은 늘 하느님의 뜻이었습니다.
이것만큼 이 세상을 잘 사는 길이 있을까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가장 크고 철저한 준비였습니다. 우리 역시 바라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성모님의 모범을 본받아 철저히 하느님과 함께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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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모래알 하나를 보고도
너를 생각했지
풀잎 하나를 보고도
너를 생각했지
너를 생각하게 하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없어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정채봉 시인의 시입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큰 공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사랑하는 어머니를 주님 곁으로 떠나보내고 나서 무엇을 보든 어머니가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묵상 글을 쓰면서도, 묵주기도를 하면서도, 전화기를 봐도, 또 예전에 어머니와 함께했던 장소를 가도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사랑하는 관계는 이렇게 내 일생을 만듭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생전에는 제대로 표현하지 못합니다.이것이 후회입니다.
그러나 기도 안에서 만난다는 희망을 품게 됩니다. 그리고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리라는 기대 속에서…. 그 사랑을 간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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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청주성모병원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
<희망을 주시는 어머니>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구세주의 어머니를 우리에게 보내주셨고 어머니를 통하여 우리의 필요를 전구해 주시도록 안배하셨습니다.
오늘 성모승천 대축일을 맞이하여 성모님의 전구로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아울러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길에 있어서 성모님을 모범이요, 안내자요, 동반자로 모실 수 있는 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
광복절을 맞이하여 겨레의 평화와 분열과 미움을 버리고 용서와 화해, 더 큰 사랑을 추구하는 마음의 광복을 위해 기도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마리아가 임신한 엘리자벳을 방문하였을 때 엘리자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참으로 마리아는 복된 여인입니다. 참으로 행복한 마리아 입니다. 그런데 그 행복이 어디서 왔느냐 하면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믿음에서 왔습니다.
루카복음 11장 27절, 2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고 예수님께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 다시 말하면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그리고 결국 구원의 역사는 믿음의 행위로 시작되고 또 열매 맺게 됩니다.
마리아는 남자를 모르는 여인이었지만 천사가 전한 소식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처녀인 마리아였지만 성령으로 말미암아 구세주를 낳을 것이라는 하느님의 메시지를 믿었습니다. 그리고 구세주를 낳았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그 큰 믿음이 오늘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길 기원합니다.
성모님은 당신의 겸손과 순명의 삶으로 모든 사람에게 모범이 되었고. 예수님께서는 성모님의 청을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마리아의 노래를 보면,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 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비천함을 굽어보시고 큰일을 하신 주님께 초점을 맞추는 겸손함을 만나게 됩니다. 그 겸손은 주님의 뜻을 철석같이 믿고 실행하는 순명을 이어가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카나의 혼인잔치 현장에서 첫 기적을 행하셨는데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마리아님의 마음을 헤아려 여섯 개의 물독에 물을 가득 채워 포도주로 변하게 하여 그의 청을 들어주셨습니다.(요한 2,1-12)
그러므로 “성모님을 통하여 은총을 구하십시오. 성모님을 통하여 반드시 얻을 것입니다.”(성 베르나르도) 여러분은 “성모님의 마음을 여러분의 것으로 삼아 잘 활용하십시오. 그분의 마음으로 사랑하고 거기에 견주어 여러분의 마음을 성찰하고 그분을 닮지 않은 것이면 무엇이나 다 마음에서 몰아내십시오.”(가경자 메리 포터)
성모님은 믿음의 어머니, 순명의 어머니, 우리를 위해 전구해 주시는 어머니이십니다. 그리고 어머니 마리아님은 예수님을 잉태하실 몸이었기에 “그리스도의 예견된 공로에 힘입어” 원죄로부터 보호를 받아 당신 자신이 “원죄 없이 잉태” 되시는 특은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구원 활동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남김없이 봉헌 하시어 “평생동정”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당신 외아들의 삶의 여정에 함께하여 누구보다도 철저히 주님을 뒤따랐던 마리아님을 성자 예수님께서 누리신 영광에 동참하게 하기 위해서 “몽소승천” 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천상영광을 누리고 세상의 모든 이를 위한 전구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성모님의 삶의 여정은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에 바탕을 두고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성모님은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 는 고백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아드님과 함께 영욕을 나누었고 아드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는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끝까지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시며 믿음 속에 그 고통과 아픔을 다 감내하셨습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바로 이 믿음의 결실입니다. 우리도 승천하신 성모님을 기리며 그분처럼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구원 받기를 원하는 이는 믿음으로 성모님의 도우심을 청해야 합니다. 구지 성모님을 통하지 않아도 되지만 통하지 않으면 그만큼 “전구하심” 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성모님께 의탁함으로써 더 큰 은총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성모님을 통하여 예수님께로 효과적으로 나아갈 수 있고 마침내 예수님을 통하여 아버지 하느님의 영광에 동참하게 됩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에게 큰 희망을 줍니다. 어머니의 믿음을 닮은 삶을 통하여 우리도 하늘에 오를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성모님과 같이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굳게 믿을 때, 성모님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의 길을 걸을 줄 알 때, 성모님과 같은 영광을 입게 될 것입니다.
성모님 본받아 구원을 얻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이루어질 것임을 믿어서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믿고 맡기는 은혜가 충만하기를 희망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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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님]
♡알타반의 말씀 사랑♡
오늘 미사의 말씀은 성모님을 기립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
마리아께서 천사의 방문을 받고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신 후 사촌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들은 인사말입니다. 엘리사벳이 성령의 감도를 받아 외친 이 말씀은 성모님은 물론 교회가 받은 커다란 선물입니다.
인간이 느끼는 행복의 조건은 매우 다양합니다. 어떤 이는 재물에서, 어떤 이는 명예에서, 어떤 이는 쾌락에서, 어떤 이는 관계에서, 또 어떤 이는 지적 성취와 깨달음에서 행복을 느낍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성모님께서 그러셨듯 믿음 때문에 행복한 존재일 것이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성모님은 인간 사고력의 한계 안에서는 믿을 수 없는 주님의 뜻을 믿음으로써 구원에 협력한 믿음의 여인이십니다. 그분의 생애는 믿음으로 견고하고 아름답게 짜여진 지성소의 휘장과 같을 겁니다. 그 휘장을 통해 성자께서 보호를 받으셨고, 그 휘장이 열림으로 구원자께서 세상에 드러나셨습니다.
제1독서에서는 마리아를 떠올리게 하는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녀는 "모든 민족을 다스릴 분"(묵시 12,5)을 낳은 뒤 악을 상징하는 용에게 쫓깁니다.
이는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창세 3,15)고 뱀에게 이르신 주님의 선고를 떠올리게 합니다. 요한 묵시록에서는 아이를 삼켜버리려는 악한 힘인 용과 여인의 대치가 숨막히도록 급박하게 펼쳐집니다.
"여인은 광야로 달아났습니다. 거기에는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처소가 있었습니다."(묵시 12,6)
여인은 이집트의 추격을 피해 갈대바다를 건너 광야로 달아난 이스라엘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주님의 백성인 우리까지도 그녀 안에 있는 셈이지요.
말씀이신 주님을 잉태하고 출산하고 양육하며 살아가려 애쓰는 우리를 악은 가만히 두지 않으려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방해하고 공격하는 세상의 온갖 악에서 우리를 피신시켜 활짝 열어젖힌 당신의 "처소"로 받아들이십니다. 그 처소는 우리에게 가장 안전하고 평화롭고 거룩한 주님의 '심장'이고 '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이들을 이야기합니다.
"각각 차례가 있습니다. 맏물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분께 속한 이들입니다."(1코린 15,23)
사도는 모든 원수들이 그리스의 발 아래 굴복될 때, "그분께 속한 이들"이 주님과 함께 영광 안에 들어갈 것이라고 합니다.
성모님은 그 모든 때를 초월하여 마지막으로 파멸되어야 할 원수인 죽음의 부패를 겪지 않으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가장 철저히 속하셨던 마리아에게 특별한 은총을 베푸신 것이지요.
주님께 속한 우리 역시 그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비록 실패와 상실로 삶의 밑바닥까지 곤두박질쳤더라도 우리의 본래 자리,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열어두신 "처소"는 모든 원수를 이기신 주님의 '곁', 승천하신 성모님의 품이라는 희망입니다.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루카 1,52)
이토록 상상할 수 없이 놀라운 하느님의 자비를 오늘 마리아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분은 들어 올리시는 분, 들어 높이시는 분입니다. 인간 실존과 죄악과 나약함으로 끝간 데 모르고 추락하는 우리를 친히 당신 곁으로 들어 올려 제 자리를 찾아주시는 분이시지요.
사랑하는 벗님! 오늘 우리의 어머니신 마리아와 함께 이 희망을 노래합시다. 코로나19와 수해, 혐오와 분열, 가난과 소외 와중에도 지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주님 곁에 마련된 우리 자리를 바라봅시다. 그리고 천상으로 성모님을 모셔들이는 천사들과 성인들의 기쁨을 관상합시다. 마리아를 맞이하시는 성삼위 하느님의 사랑에 머무릅시다. 우리의 심장에서 희망의 빛이 꺼지지 않도록 멈추지 말고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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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김홍언 요한보스코 신부님]
※김홍언 신부님의 영성의 샘물※
♥허상들을 없애려면, 행복의 하느님, 성모님을 내 마음에 초대
마음이 풀리지 않을 때는 내 안에 존재하는 다른 존재를 불러들여 허상을 내몰아 버리는 게 도움이 됩니다.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던 존재로 말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느님 혹은 성모님을 내 마음에 초대하면 마음의 평안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늘 기도한 분들이 안정감 있어 보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신자가 아닌 분들은 자신을 가장 기분 좋게 해 주는 사람의 사진을 눈에 보이는 곳에 두거나 가지고 다녀 보십시오.
사람의 마음은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경치 좋은 곳에서 화를 내는 것은 마음의 눈이 경치를 보지 못하고 자기를 화나게 하는 대상을 생각하고 있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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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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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수도회 양주분회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오늘은 성모승천 대축일임과 동시에 우리 민족의 기쁨인 광복절이기도 합니다.
1950년 11월 1일, 한국에서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고 있을 때, 교회는 “성모님의 승천” 교리를 선포함으로써, 인간의 미래가 하느님 안에 있음을 천명하였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성모송>에 언급되고 있듯이, “은총이 가득 하신 분”, 곧 참으로 복되신 분이셨습니다. ‘은총이 가득하다는 것’은 축복의 풍요로움과 구원의 완성을 말해줍니다. 사실, 마리아는 구세주를 낳아 인류를 구원하는 계기를 마련하셨으며, 그러기에 하느님의 가장 완전한 구원의 도구가 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단순히 예수님을 낳으신 어머니라는 혈연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오늘 <복음>에서 엘리사벳이 칭송하고 있듯이, “하느님의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던” 신앙의 여인이었기에 행복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성모님은 우리에게 신앙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모님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자신에게 베푸신 하느님의 자비와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하느님의 구원을 노래합니다. 이는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 안에 살아 있다는 노래요, 동시에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의 삶을 바꾼다는 혁명의 노래입니다. 곧 성모님 승천은 보잘 것 없는 한 여인이 인류 최고의 영예를 얻을 수 있다는 혁명적인 가르침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모님의 승천과 함께 우리 민족에게 베풀어진 기쁨인 광복을 기념합니다. 이 광복이 바로 우리에게 베풀어진 성모님을 통한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마치 제1차 세계대전이 파티마 성모님의 전구로 종결되었듯이,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동란 역시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의 승천대축일에 종결되었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우리 안에 베풀어진 하느님의 자비와 축복을 찬미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날은 해방의 기쁜 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남북이 분단된 불행한 날이기도 합니다.
사실, 올해(2020년)는 해방 76주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분단 76주년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여전히 편협하고 경직된 사고로, 아직도 형제적 화해와 평화를 이루지 못한 채, 많은 이들이 동포요 형제를 적으로 여기고 대적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교회는 광복 50주년인 1995년 성림강림대축일에 <한국천주교 사목지침서>를 통해, 북한선교의 진정한 뜻이 “분단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형제적 나눔을 실현하면서 민족의 평화통일을 대비”(제 200조)하는데 있음을 밝히고,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지난 2014년,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한국을 방문하여 첫 날 청와대에서 공직자들에게 지난 70년이란 세월을 두고 높이 쌓아온 대결의 장벽을 허무는 작업부터 시작하자고 하셨고, 마지막 날 명동성당 미사에서 “남북으로 대결하고 있는 한민족의 화해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는 평화를 원하고, 연대와 협력과 대화의 시대를 열어가야 할 때입니다. 상대방을 굴복시키려 하거나 내 편으로 변화시키려하기 보다, 상대방의 고통과 어려움에 공감하고 연민으로 다가가야 할 때입니다. 대화에는 상대방의 처지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그동안의 유리한 위치 점령을 위한 ‘기 싸움’과 ‘힘겨루기’를 내려놓아야 하고, 서로의 대립과 긴장의 이기적인 ‘줄다리기’를 멈추어야 할 일입니다. 오늘, 성모승천 대축일에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께 특별히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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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루카 1,54)
주님!
제 안에서 활동하시는 당신을 찬미합니다.
제 안에 베푸신 측량할 수 없이 큰, 헤아릴 수 없이 놀라운 당신의 자비를 찬미합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여 찬미하는 일이 제 삶의 전부가 되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 자비의 노래 외엔 아무 것도 아니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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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님]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루카1,42)
오늘은 하느님의 어머니요, 우리의 어머니, 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 하늘로 들어 올려지신 것을 기념하는 '성모승천대축일'입니다.
'성모승천'은 성모님의 4대 핵심 교리 중 하나입니다.
성모님의 4대 핵심교리는 성모님께서,
1)'하느님의 어머니'이시고(1.1),
2)'평생 동정'이시고(3.25),
3)'하늘로 들어올려지셨고'(8.15),
4)'원죄없이 잉태되셨다'(12.8)는 교리입니다.
성모승천은 인간의 지위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이자, 우리의 희망이고 목적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 탄생 예고에서 "예!"라고 응답함으로써 '순종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성모님은 '믿으신 분'입니다.
"예!"라는 대답을 시작으로 십자나무에서 예수님의 시신을 내려 품에 안으실 때까지 끝까지 믿으셨습니다.
성모님은 '견디시고 자신을 감추신 분'입니다.
아들 예수님과 함께하는 여정에서 때로는 예수님 때문에 마음 아픈 일도 많으셨지만, 끝까지 견디셨고, 끝까지 자신을 감추셨습니다.
그래서 하늘로 들어 올려지시는 영광을 누리게 되셨고,
그래서 엘리사벳의 칭송처럼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된 여인이 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성모님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성모님을 공경하는 이유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가정이나 내가 머무는 곳에 성모님을 모셔 놓은 이유입니다.
같은 은총과 영광이 우리에게도 주어질 수 있도록,
성모님처럼 끝까지 믿고,
성모님처럼 끝까지 견디고,
성모님처럼 끝까지 감추는,
그런 신앙인이 됩시다!
그래서 성모님처럼 하늘로 들어 올려지는 은총과 영광이 우리에게도(나에게도) 내려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신앙인이 됩시다!
오늘은 또한 광복 75주년을 맞이하는 날입니다. 해방을 위해 애쓰다가 순직한 모든 영혼들을 기억하고, 진정한 해방을 위해서 함께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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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성심시녀회 소보둥지 김연희 마리아 수녀님]
(5분 아침묵상)
https://www.youtube.com/watch?v=CMoi3jTIOHo&feature=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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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습니다."(루카 1, 52)
어머니의
이름을 다시
불러봅니다.
어머니의
사랑에서 진실로
아름다운
사람의 삶을
만납니다.
하늘을 닮은
사랑입니다.
하늘과 땅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을 낳으셨고
예수님과 함께
끝까지 낮아지신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에서
산다는 것이
견디며 또
견디는 기도임을
배웁니다.
아픔이 아픔을
일으켜세우고
비천함이 비천함을
달래어줍니다.
간절한 사랑이
하늘과 땅을
이어줍니다.
애달픈 사랑이
애타는 십자가의
절절한 봉헌이
됩니다.
올바른
사랑만이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가게 합니다.
참된 사랑은
모든 벽을 허물고
하늘로 오릅니다.
하늘을 품은
사람에겐
모든 것이
기적입니다.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길
그 길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그길이
삶의 승천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모든
여정 모든 삶이
하늘로 오르십니다.
지극한 사랑이
지극한 승천의
기쁨이며
승리임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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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2013. 10. 24
연희동성당 류상현 스테파노
■묵상글 나눔■
[이름,본명,지역(본당),축일,연령,연락처]를
문자로 보내주세요.
010-3284-9295 | 카톡ID jijiv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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