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표정 외 1편
홍인숙
십인십색 집단상담
어색한 얼굴로 모니터 안에 모여 든다
별칭으로 바꾸는 사이 반쯤 열리는 입술들
오늘의 대화 주제는 불안입니다
불안해서 우울로 간 걸까요?
오른쪽에서 비음이 날 때
왼쪽에서 코드를 푸는 게임
자동화된 기계음이 곡조를 메우는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매번,
반복되는 스테레오 타입인데요
축축한 땅에 기분을 심었더니
줄기가 흔들릴 때마다 스치고 가는 그림자
파국의 꽃을 피우려던 건 아니었어요
다 말라버린 화분을 안고
방충망에 붙은 매미 날개를 바라봤어요
내 배는 부서지지 않아*
우리가 잃어버린 건 스티로폼 배였을 뿐인 걸
거친 바다에서 잔잔한 바다에서
리듬을 쳐봐요 파도를 타는 거예요
검은 구름 속에 숨은 조각달도
언젠간 항구에 닿을 거예요
*그림책 작은 배(캐시 핸더슨 지음, 페트릭 벤슨 그림, 황의방 옮김, 보림) 중에서
그날의 대담
매겨진 무거운 세금에서 벗어나려던 건 아니었나요? 부양할 홀어머니를 매정하게 뿌리칠 수 있던 건 혁명에의 의지였나요? 일순간 고깃배를 내버릴 만큼 새로운 세상을 확신했나요?
이곳 갈릴리 날마다 뱃전에 올라 쏘는 태양과 소금 바다 속 하루를 건지는 어부였소 텅 빈 그물 빠져나가는 물살뿐일지라도 살아야 할 이유가 되는 간절한 손길 또 다른 아침마다 광풍 부는 바다를 헤집었다오 저물녘 해진 그물 둘러메고 돌아오지만 매순간 전복을 꿈꾸는 겉옷 한 벌 잃지 않고 살아왔소 서로를 닮은 얼굴만으로 견디어내던 우리에게 당도한 세금은 평등하지 못했소 빈 배에 매겨진 조세는 부당했다오 우린 모두 어디에 가닿든 활활 타오를 불길이었소 저마다 한 자루 파도의 칼날 가슴에 벼린 채 발밑의 어둠 지나기만 기다렸소 그날 배를 박찬 건 빛으로 옮겨 갔다는 말, 단 하나의 이름으로 나를 부른 이, 그건 벼락처럼 마주친 운명의 말이었소 사람 낚는 어부가 되리란 말 찢어질 듯한 풍랑 앞에 흔들리는 검은 바다 두려운 너울 속에서도 물 위를 걷는 사람 숭고한 혁명은 이미 시작된 것이라오 낡은 겉옷과 한 척의 배는 이미 아름다운 항구에 만선의 깃발 나부끼는 것이었소
홍인숙
1961년 인천 부평 출생. 대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 수료.
2013년 시와소금 등단. 시집 딸꾹. 참고서 그날의 대담.
대전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부 교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