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년을 일년정도 남겨놓은 시점에서 나무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아마도 2013년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정년후에 뭘해야 후회하지 않는 생활을 할 것인가 많이 고민되던 시절이었다. 당시 십년 넘게 주말 전원생활을 실행하던 때였으니 나무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쏠렸다. 그래서 나무와 관련된 인터넷 카페에도 가입하고 그곳에서 시행하고 있는 나무학교에도 출석했다. 물론 그런 과정을 거쳐 나 나름대로 나무에 대한 상식이 상당히 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카페에서 주로 한 것은 아로니아 판매였다. 엄청난 수요가 창출될 것이다, 안토시아닌 등 좋은 성분이 많이 함유돼 있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아로니아를 특수 재배하기 위해 특수한 비료를 사용해야 한다며 일반 비료에 비해 3~4배 비싼 비료를 사용하라고 설명했다. 그 비료가 그 카페 관련자들이 만든 것인지 어디서 수입해서 판매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튼 아로니아를 재배할 것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나는 솔깃했지만 장사수완이 없고 나무를 잘 재배할 능력도 없어 아로니아 재배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년후에 기를 쓰면서 뭔가를 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기로 했기에 나무 상식 늘리는 것에 만족했다.
그런데 그 이후 충북 단양에 놀러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 곳에서는 군에서 앞장서 대대적으로 아로니아 재배에 들어간 것으로 보였다. 군민들이 나서서 대대적인 아로니아를 알리는 행사를 벌이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아로니아 묘목도 판매하고 아로니아 액즙도 판매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아로니아 재배가 왕성하게 이뤄지는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로니아 열매는 그 자체로는 정말 맛이 없었다. 비슷하게 생긴 블루베리와는 너무도 딴 판이었다. 블루베리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었지만 아로니아는 뭔가를 타 먹어야하는 단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블루베리에 비해 아로니아에 사람에게 좋은 성분이 많은 것은 사실이었다. 아로니아가 사업성이 좋다고 하니 정말 여기저기서 아로니아 재배가 이뤄지고 있었다. 화야산방주변에도 아로니아 재배하는 곳이 여러곳이 있다.
처음에는 상황이 좋았다. 아로니아 재배자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아로니아 열매의 kg당 가격은 3만~4만원에 육박했다. 고소득 작목이라며 재배를 권유하는 지자체가 늘었다. 이처럼 인기가 높아지자 2013년 500곳 남짓했던 농가 수는 2017년 10배 넘게 늘었다. 키우던 작물을 베고 아로니아를 심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인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아로니아 시장은 빠르게 침체되기 시작했다. 가격이 1000원대로 떨어졌다. 언론 보도를 보면 최근에는 아예 경매가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농민들은 농사를 포기하고, 남은 아로니아는 '처치 곤란' 상태에 놓여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로니아 재배 농가들은 급기야 정부를 상대로 소송에 들어갔다. 농민들은 한국과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폴란드산 아로니아 분말이 대거 수입돼 국내 농가들이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폴란드는 아로니아의 최대 재배 국가이다. 아로니아 농가는 정부가 FTA 피해보전 직불금을 지급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농식품부의 생각은 달랐다. 아로니아 사태는 공급 과잉과 수요 감소의 결과일 뿐이라며 직불금을 지급하지 못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법원도 정부의 생각과 같았다. 법원이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아로니아 재배 농가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나는 아로니아 초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과거 메추리 파동처럼 특정 아이템이 수익이 높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너도 나도 관련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한 경험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특히 농산물관련 사업이 그렇다. 제대로 수요와 공급을 예측했으면 실패하지 않았을텐데 아쉬움이 많이 든다. 물론 정부가 나서서 아로니아를 재배하라고 부추기지는 않았지만 특정 작물에 대해 나름 분석을 내놓았어야했다. 지자체의 판단에 너무 맡겨놓은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정부도 무조건 직불금을 지급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아로니아 재배 농가와 정부사이에 해법을 찾기 힘들고 갈등은 더욱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심어놓은 아로니아를 어떻게 하겠는가. 뭔가 판로를 개척해야만 할 것이다. 폴란드 아로니아가 좋다고 하지만 국내에서 재배된 것에 비할까.
2021년 4월 20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