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兒到處是故鄕 남아란 어디 메나 고향인 것을
幾人長在客愁中 나그네 시름에 잠긴 사람 그 얼마인가
一聲喝破三千界 한마디 버럭 질러 세상 뒤흔드노니
雪裡桃花片片飛 눈속에 복숭아꽃 펄펄 흩날리도다'
만해 한용운은 오세암에서 좌선 중에 있었다.
홀연 바람에 날려 물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오랫동안 의심하던 것들에 대해 문득 깨친 바 있어
이른바 이 오도송(悟道頌)을 직관으로 썼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까지도 멀리 하고서
머리카락마저 날리고 나 여기 섰네
슈베르트의 음악도 / 그 즐기던 블랙커피도
타는 갈증 달래던 술, 담배 끓고 / 먼 산이나 바라보며 바위되어 가네
계집도 사랑도 변해 가는 것
그런데도 때때로 취하고 싶네. / 맹물이라도 마시고 취하고 싶네.
부질없는 짓인 줄 뻔히 알면서도 / 눈 밑 가장자리엔 그리움이 이슬로 맺히고
아내, 아빠 되어 있을 얼굴들이 겹치고 있네.
이럴 땐 뼈가 시리고 살이 떨리어 / 염주 쥔 손마디가 더욱 처량하이.
썸씽 스페셜로 잔 가득 부어 놓고 / 흐느끼고 싶네. 잔잔하게 주정거리고 싶네.
신춘문예 응모작에서 번번이 예심도 통과 못한 글이었지만
어떤가? 내 자작시를 안주 삼아 / 동백아가씨를 부르며 허물어지고 싶네.
진리는 다래끼 돋은 눈꼽에도 끼어 있고
미운 며느리년의 속옷 가랑이에도 박혀 있다네.
진토닉 술잔에도 담배 연기에도 / 햇살처럼 빚줄기처럼 널려 있다네.
큰스님의 설법 들을 때마다 낄낄낄 웃었지
갈보년의 사타구니엔 시궁창 냄새 / 잘 빚어 넘긴 처녀의 머릿결에선 상큼한 냄새
그런데도 둘이 아닌 하나라 하니 / 진리는 하나라 하니.
가진 자 우월하고 없는 자 열등해서 / 그게 싫어서
無所有 唯一物로 살고 싶어서
있는 것 다 버리고 / 아는 것 다 버리고 떠나왔더니
베푸는 자 우월하고, 받는 자 열등한 것, 마찬가질세.
그런 의미에서 진리는 둘이 아닌지 모르겠지만.'
한 때 회자되었던 이향봉의 '언제를 위해 오늘을 사는가' 중의 한 부분이다.
흰 배꽃도, 피 흘리며 우는 두견새나, 쏟아지는 은하수도 없는데
병처럼 정이 많은 것도 아니면서 보슬비 내리는 봄밤에 잠을 이루기 어렵다.
길을 가다 길을 잃은 나그네의 수심이 가는 빗줄기처럼 가슴을 잔잔하게 때린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지만
산이 산으로 보이지 않고 물이 물로 보여지지 않는 나이를 아직까지 살고 있다.
지하철에서 스쳐간 짧은 치마 허벅지가 허연 여인네 생각으로
새벽이면 몽정을 하고 속옷이 흥건히 젖는다.
속내가 아닌 줄 알면서도 가까운 사람의 지나가는 말 한마디에
미풍에 흔들리는 봄풀처럼 마음이 요동을 치기도 한다.
어둠이 갓 깔린 마을 버스 정류장 포장마차 옆을 지나노라면
생선 구워지는 구수한 냄새가 비닐 천막에 어른거리는 붉은등보다 더 유혹적이다.
북한산 정릉천가를 따라 제철을 만나 진홍색으로 활짝 피어난 철쭉은
보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울타리를 넘어 들어가 만져보고 싶고 꺾어보고 싶다.
6감으로 들어오는 정보에 자신의 의지가 자유롭지가 않다.
사람은 누구나 찾고 또 기다린다.
그러나 지니고 있는 그 무엇으로도 욕망이 채워지지 않는다.
채워지지 않는 욕심, 만족을 모르는 욕망.
가질수록 가난해지는 마음. 얻을수록 부족해지는 삶의 멍에.
세파에 떠밀려 세포의 가닥가닥 허망과 탐욕이 배어있다.
가슴 깊이에는 지울 수 없는 회한의 각인(刻印)이 자리잡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회한은 순간이고 현실 앞에 서면 현실만 보인다.
백팔번뇌(百八煩惱). 108 가짓 수의 번뇌. 無限煩惱.
백년도 못사는 주제에 천년의 근심을 안고 살아야 한다고 했던가.
섣달 그믐날 자정 보신각 제야의 종은 원래 108번을 쳤다(요즘은 약식으로 33번).
불교에서 33이나 108이라는 숫자는 '모든 곳에 있는 모든 사람'을 뜻한다고 한다.
상소하거나 민란을 일으킬 때 33명의 이름을 적어 통문을 돌렸다.
단체나 회사를 세울 때 발기인의 수를 33명으로 하는 관례를 따르기도 한다.
3·1 운동 때 민족 대표를 33명으로 한 것은 전체 국민의 뜻을 알리기 위한 표시였다.
만해가 번개처럼 깨달은 해탈은 필부에게는 남가일몽이고
世間을 떠나서도 한동안 방황했던 향봉의 인간미가 보슬보슬 봄비에 묻어 내린다.
그래도 이 밤은 지날 것이고, 새벽이 오면 지난밤은 잊으려 애쓸 것이다.
상(商)나라 임금 성탕(成湯)처럼 아침 세수대야에다
'순일신(荀日新) 일일신(日日新) 우일신(又日新)'이라 새기고
日日是好日(그날 그날이 좋은날 되소서)을 빌면서 하루를 살아야겠지 ---.
첫댓글 ()_()_()_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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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은 나그네의 수심이 가는 빗줄기처럼 가슴을 잔잔하게 때린다...현무암님 제가 마음이 짠 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