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스부르그 유럽의회에 참석한 유럽의회 국민당 그룹 대표 만프레드 베버 의원 (ANSA)
교황
교황, 유럽의회 국민당 그룹 대표에게 “일치된 유럽을 글로벌 프로젝트로 삼으십시오”
제멜리 종합병원에서 회복 중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유럽의회 국민당 그룹 대표 만프레드 베버 의원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형제애라는 위대한 꿈을 지역, 국가, 국제무대 등 모든 차원에서 좋은 정치의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그리스도인 정치인의 책임을 모든 의원들이 인식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Adriana Masotti / 번역 이재협 신부
그리스도인 정치인의 책임, 일상업무에 영감을 주는 가톨릭 교회의 사회 교리라는 매우 풍요로운 유산, 통합과 다양성의 가치를 모두 견지하는 유럽에 대한 생각, 형제애의 꿈을 실현하고 유럽의 모든 이가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삶을 보장하는 고귀한 정치적 전망의 필요성. 프란치스코 교황이 유럽의회 국민당 그룹(EPP) 만프레드 베버 대표에게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는 6월 9일자로 작성됐다.
시민과 의원 간의 거리를 좁히십시오
교황은 서한에서 지난 2014년 11월 유럽의회 방문을 기억하며 몇 가지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고 말했다. 첫 번째로, 유럽의회 선거가 처음 실시됐을 때와 비교해 현재 유럽의회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줄어들고 있다는 측면을 지적하며 “시민과 의원 간의 관계를 잘 돌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대의 민주주의의 고전적인 문제입니다. 각국 내에서 이러한 유대를 유지하기가 어렵다면 훨씬 더 ‘멀리 떨어져 있는’ 유럽의회의 경우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오늘날의 커뮤니케이션 매체는 이 같은 거리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2022년 3월 18일 프란치스코 교황과 만프레드 베버 대표
의원들을 위한 평생교육
교황의 두 번째 성찰은 대규모 의회 그룹에서 나타날 수 있는 다원주의다. 하지만 교황은 특정 원칙과 윤리적 가치를 두고 “서로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하는 한편, 이를 위해 의회 의원들을 위한 교육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리적으로 가장 중요한 사안을 탐구하고 심도 있게 고민, 토론하는 연구와 성찰의 시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양심의 차원에서, 그리고 정치에 참여하는 이들의 자질을 조명하는 흥미진진한 도전입니다. 그리스도인 정치인은 기회주의적 해법을 거부하고 언제나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선이라는 기준을 확고히 고수하면서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는 모습을 통해 다른 이들과 구별돼야 합니다.”
가톨릭 교회의 사회 교리를 기준으로 삼으십시오
교황은 “유럽 정치에 독창적으로 이바지하기 위해 영감을 줄 수 있는 매우 풍요로운 유산이 바로 교회의 사회 교리”라고 설명했다. 특히 연대성과 보조성이라는 두 가지 원칙을 강조했다.
“여러분이 서로 다른 정당에 소속된 동료 의원들과 공유하는 이 두 가지 원칙과 관련된 정치윤리적 측면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들의 입장에 따라 둘 중 하나만 강조하곤 합니다. 하지만 두 가지를 함께 활성화하고 상호 보완적인 방식으로 작동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교에서 영감을 받은 사회경제 사상에 적합하므로 특별히 여러분의 책임에 맡겨져 있습니다.”
유럽을 위한 고귀하고 강인한 영감
교황은 “통합과 다양성을 함께 견지하는 유럽에 대한 전망”을 간직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여러 문화의 다양성과 각 민족의 정체성을 유념하는 동시에 “이 풍요로운 모자이크가 일관된 형태로 구성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유럽의회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따라서 강력한 영감, 곧 ‘영혼’이 필요하며, 저는 ‘꿈’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고귀한 가치와 높은 정치적 전망이 필요합니다. 저는 지금 정상적인 관리, 훌륭한 행정 처리의 중요성을 축소하려는 게 아닙니다. 관리와 행정이 훌륭하다면 이미 큰 성과를 거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21세기의 거대한 글로벌 도전에 직면해야 하는 유럽을 지원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일치된 유럽으로 이 같은 도전에 맞서기 위해서는 고귀하고 강인한 영감이 필요합니다.”
2022년 바티칸 방문 당시 바티칸 라디오 방송국과 인터뷰하는 만프레드 베버 대표
형제애를 구체적 행동에 옮기십시오
교황은 오늘날의 유럽을 건설한 선조들의 “최초 서약”을 상기하면서 유럽연합 회원국이 자국의 이익만을 보호하는 정치 조직을 넘어 모두가 ‘형제자매로 정의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곳을 건설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아울러 교황은 “교회의 모든 이와 선의를 간직한 이 세상의 모든 이와 함께 나눈” 위대한 꿈인 이 “형제애”가 글로벌 차원의 프로젝트를 통해 유럽에 새로운 영혼을 불어넣는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저는 오늘날 그리스도인 정치인들이 형제애라는 위대한 꿈을 지역, 국가, 국제무대 등 모든 차원에서 좋은 정치의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역량에 따라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이주 문제나 지구를 돌보는 문제와 같은 오늘날의 도전은 인간의 형제애라는 이 위대한 원칙에서 출발해야만 제대로 직면할 수 있는 사안으로 보입니다.”
일치된 유럽을 건설한 선조들의 생각
교황은 지난 세기 전쟁의 비극 이후 서서히 통일된 유럽을 열망하는 과정에 영감을 준 결정적인 원칙, 곧 형제애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들이 자유, 정의, 평화 안에서 서로 존중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이상적인 목표가 있을 수 있을까요? 오늘날 통일된 유럽이라는 계획은 세계화된 세상에서 시험대에 올랐지만, 그 어느 때보다 지금 더욱 필요하고 유럽은 물론 온 인류 가족을 풍요롭게 하는 최초의 영감, 곧 형제애를 바탕으로 할 때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교황은 메시지 말미에 유럽이라는 울타리 안으로 이주하고 공부하며 일하는 젊은이들의 삶을 먼저 생각해 보라고 초대했다.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꿈에 부응하는 유럽, 그런 세상을 생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