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우....이제 어쩐다? 드래곤으로 트랜스포메이션 하기도 뭐하고....정령을 소환하기도 좀 그렇거든....저 정도의 엘프라면 실라페 정도로는 상대할 수 없을 텐데....'
로렌스가 고민하는 것은 당연했다. 지금 그는 자신과 싸우고 있는 엘프의 힘을 확실히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힘과 스피드 그리고 검술의 스타일과 전투 방식도 이미 머릿속에서 계산이 되가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은 그가 골드 드래곤이었기 때문이었다. 골드 드래곤은 예로부터 지혜의 드래곤이라고 불릴 정도로 아는 것이 많았다. 때문에 현존하는 갖가지 마법들은 거의 대개가 골드 드래곤에게서 만들어지고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골드 드래곤에게도 약점이 있었다. 바로 그들의 성격이었다. 골드 드래곤은 레드 드래곤 다음으로 가장 흉포하고 난폭했다. 때문에 그들은 다른 종족과 별로 친해지려 하지 않고 그들 서로만을 의지하며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그건 로렌스도 마찬가지였다. 그것 때문에 그가 지금 고민하고 있던 것이었다.
'제길....바람의 상급 정령과 정령왕은 너무 내 말을 안 듣는단 말이야......제기랄....인간계에선 내 발톱까지도 안 되는 녀석들이....너무 성가시단 말이야....아! 그래! 그게 있었지!!'
"간다아!!!"
로렌스는 순간 알 수 없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달려오는, 아니 거의 날아오다 시피 빠른 움직임으로 다가오는 마스터의 공세를 피할 생각도 않고 로브의 소매를 걷어 오른 손을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다.
"로렌스님!!"
카르는 진심으로 걱정되어 소리쳤다. 하지만 로렌스는 듣고 있지 않았다.
"윈드 월(wind wall)."
-퉁!!-
"큭!"
카르는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엄청난 속도로 로렌스를 두 동강낼 것만 같던 마스터가 어떤 장벽에 부딪힌 듯 공중에서 튕겨져 나갔기 때문이다. 카르는 두 눈을 비비고 다시 자세히 로렌스를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로렌스가 내민 오른손 끝에 바람이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그것이 커다란 바람의 장벽을 만들어낸 듯 했다.
"어찌된 거냐. 네가 웬일로 날 사용하는 거야?"
"어쩔 수 없잖아. 상급 정령과 정령왕을 불러낼 수는 없으니."
"후후...그냥 화해하라니까 그러네."
"이 몸이 누구 신데 그깟 정령들과 화해를 해!"
로렌스는 자신의 오른쪽 손의 중지에서 빛나고 있는 반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황금빛으로 번쩍거리고 있는 반지는 바로 정령의 반지 미르디온 이었다. 미르디온은 수많은 정령도구 중 하나로 정령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물건들 중 하나였다. 미르디온은 바람의 정령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도구였다. 정령 도구는 스스로 자아를 가지고 있어 착용자와 의사소통이 가능했던 것이다.
"흥....그깟 자존심 하나 때문에 우리 정령왕과 몇 년째 싸우는 거냐?"
"제길...닥쳐. 주인한테 말이 많다 너."
"으으...."
그 때 마스터가 천천히 일어섰다. 그 모습을 보고 로렌스는 천천히 오른손을 거두었다. 그러자 황금빛으로 빛나던 미르디온도 언제 그랬냐는 듯 보통의 반지로 돌아가 있었다.
"크흐흐...정령을 다룬건가? 역시 드래곤이셔."
"후! 어쩌라는 거야!!"
"네 녀석이 이렇게 나온다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지."
"흥! 한번 발버둥 쳐보시지!"
"하압!!"
마스터의 레이피어가 하늘을 향해 치켜올려졌다. 로렌스를 포함한 모두의 고개가 레이피어를 향해 움직였다. 그 순간이었다.
-샤아아악!!-
"헉!"
-쾅!!-
카르는 도저히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진 데에 수십 개의 의문이 생겨나는 것을 참아야만 했다. 마스터가 무심코 휘두른 검에서 푸른 광채가 나는 듯 하더니 이내 로렌스가 쓰러져 버 것이다.
"으윽....이럴수가...거, 검기(劍氣)인가...."
로렌스는 천천히 일어서며 당황한 눈초리로 마스터를 바라보았다. 검기. 오러 블레이드라고도 불리우는 이 기술은 상당한 검술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가능한 기술이었다. 주변의 마나를 검을 통해 방출해내는 기술로서 검을 통해 발산되기 때문에 그만큼 날카롭다. 검으로서 장거리 공격이 가능해지는 유일무이한 기술이기도 했다.
"흥! 죽어라!!"
그의 몸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마스터가 공중으로 치솟았다. 마스터는 로렌스를 향해 떨어지며 사방으로 레이피어를 휘둘렀다.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실로 엄청난 속도의 공세였다. 로렌스는 오러 블레이드의 충격이 컸던지 약간 휘청거리고 있었다. 만약 그가 드래곤으로서의 힘을 충분히 발휘하지 않고 있었다면 그조차도 몸이 두 동강 났을 것이 분명했다. 만약 드래곤으로 돌아간다면 그 엄청난 방어력의 비늘 덕분에 검기를 막아낼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제기랄! 윈드 월!"
다시 한번 로렌스의 오른손이 올라갔고 바람의 장벽이 마스터를 가로 막았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달랐다.
-쾅쾅쾅!! 콰콰콰!!-
검기의 난사였다. 마스터의 레이피어에서 푸른 마나가 검의 형태로 발사되며 윈드 월을 박살낼 듯 했다.
'제길....정말 귀찮게 하는군...일개 오크들의 우두머리가 이 정도의 힘을 가진 엘프였다니....'
거친 상대의 공세 속에 로렌스는 점점 지쳐갔다. 지혜의 드래곤이라 불리는 골드 드래곤인 스스로도 제어하기 힘든 분노가 치미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로렌스 스스로도 그 분노를 제어하려 하지 않는 것이 화근이었다. 마스터의 검기가 위드 월의 장벽을 강타하자 로렌스의 두 눈은 흉포하고 광기 어린 드래곤의 눈빛을 띠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