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우리 시인들이 아무리 좋은 시를 짓더라도 세상 속물들은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태백이 친구 왕십이(王十二)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것(시)을 듣고 모두 고개를 흔드니
이는 마치 동풍(봄바람)이 말 귀에 듦과 같음이라.’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마이동풍(馬耳東風)의 유래입니다.
말의 귓가에 미려한 시구를 읊어준들 미련한 말이 무엇을 알겠습니까.
그저 숨결이 귀에 드니 고개 흔들어 간지럽다 하겠지요.
이 마이동풍과 같은 속담으로 ‘소귀에 경 읽기(牛耳讀經)’가 있습니다.
아무리 가르치고 일러주어도 알아듣지 못하거나 건성으로 듣는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힘들다, 괴롭다 하소연을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해법을 구합니다.
하지만 사람도 역시 미련한 동물이라서 당장은 솔깃하게 귀 기울이지만 대개는 거기서 끝입니다.
조언을 듣고 나서의 행동이 그 사람의 자질이라는 말을 합니다. 될 사람인지 아닌지 말입니다.
그 자리에서는 맞아, 맞아 공감하고 손뼉을 치지만 전혀 실천하지 않는 이,
고개 끄덕여 들어놓고 시간 지나면 잊어버리는 이,
애초에 하소연이 목적이라 건성건성 듣는 이들이라면
그 어떤 조언도 소귀에 읽은 경전에 불과할 뿐이겠지요.
무예를 익히려 스승을 찾아가면 3년 동안 물 긷고 밥하는 것만 시킨다는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힘든 무도의 길을 걸을 만한 자질을 갖추었는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지요.
그래서 어떤 이들은 조언을 섣불리 하지 않고 오래 뜸을 들이며 딴 얘기를 한다고 합니다.
화를 벌컥 내고 가버릴 사람이라면
굳이 아까운 시간을 들일 만큼 다급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당의정(糖衣錠)이 아닌 약은 쓴맛을 각오한 이만 맛볼 수 있습니다.
무엇이 절실한지조차 모르는 이에게는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조차 고개 흔들게 하겠지요.
답을 듣는 귀는 마음에 있습니다.
지난 10여년간 우리말 편지를 배달해주시던 성제훈 박사께서 올해 12월부터 일손을 놓으셨습니다.
근무 중에 보내는 우리말 편지가 옳은 근무태도가 아니라는 지적을 받은 때문이라네요.
공무원이기 때문에 근무시간 안에는 절대로 다른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니...
우리말을 아끼고 되살리는 일이 아무리 좋은 일이어도...
누군가가 앞장서서 해 주어야 함에도...
마이동풍이고 우이독경인 현실이 참 아쉽습니다.
그래도 저는 지난 자료를 헤적여서 내년에도 우리말 편지를 보내려고 합니다.
고맙습니다.
-우리말123^*^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