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마라…
나의 보물 1호
동부금융의 광고에 나오는 문구다.
이 문구를 살피기 전에 다음과 같은 표현들부터 살펴보자.
아름답지 마라. 예쁘지 마라. 밉지 마라. 어렵지 마라. 쉽지 마라. 높지 마라. 낮지 마라. 덥지 마라. 춥지 마라. 밝지 마라. 어둡지 마라. 노랗지 마라. 푸르지 마라.
어딘가 어색하다.
뛰지 마라. 가지 마라. 달리지 마라. 다니지 마라. 먹지 마라. 마시지 마라. 자지 마라. 졸지 마라. 서지 마라. 앉지 마라. 내리지 마라. 타지 마라. 밀지 마라. 당기지 마라.
전혀 어색하지 않다.
똑같은 ‘-지 마라’꼴인데 앞의 무리는 어색하고 뒤의 무리는 어색하지 않다. 왜 그럴까?
‘말다’는 ‘어떤 일이나 행동을 하지 않거나 그만두다’라는 뜻이다. 이 ‘말다’가 ‘-지 말다’의 구성으로 쓰이면 ‘앞말이 뜻하는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함’을 나타낸다. 금하는 대상이 ‘행동’이라는 것이다. 행동을 나타내려면 ‘동사’여야 한다. 그런데 위에 나열한 ‘아름답다, 예쁘다, 밉다, 어렵다, 쉽다……’같은 말은 모두 ‘형용사’다. 형용사는 ‘행위’가 아니라 ‘상태’를 나타낸다. ‘동작’이나 ‘행위’를 못 하게 하는 것이지 ‘상태’를 못 하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아프지 마라.
‘아프다’는 동작이나 행동을 나타내는 말일까? 누구라도 알겠지만 그렇지 않다. ‘상태’를 나타내는 말, 다시 말해 형용사다. 따라서 동사에 붙는 ‘-지 말다’와 함께 쓸 수 없다.
그럼 어떻게 써야 할까?
‘-으면 안 되다’같은 표현이 있다. ‘아프면 안 된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 ‘-으면 안 되다’는 동사와 형용사에 두루 쓸 수 있다. 또 ‘-지 않다’를 이용해 ‘아프지 않아야 한다’처럼 쓸 수도 있겠다.
이 ‘아프지 마라’라는 표현에 대해선 2005년에 이 ‘말글 돋보기’에서 다룬 적이 있다. 당시엔 여의도의 한 초등학교에 세워진 커다란 비에 새겨 놓은 글귀에 그런 내용이 있었다. 그걸 ‘얘들아 다치지 말아라’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적이 있다. 오늘 이 글을 쓰기 위해 여러 방법을 써서 검색해 보았더니 ‘여의도의 한 초등학교’는 바로 ‘여의도초등학교’이다. 그 비석은 아직도 건재한 듯하다. 벌써 7년 전에 초등학생들이 그런 잘못된 표현을 배우면 안 되니 ‘바위’를 치우라고 부탁했는데도 말이다. 혹시 동부금융의 광고 문구를 쓴 사람이 그 학교를 나온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