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그리는 베이징의 타락한 인간 군상은
초고속 성장을 경험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로스트 인 베이징’은 2007년 작품이다. 그런데 왜 이제야 개봉을 할까? 여기엔 중국 영화의 복잡한 속내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영화가 검열로 인해 상영금지 조치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미 이 작품은 베니스 영화제에 처음 선 보이기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바가 있다. 중국 당국이 상영 시간 중 45분을 삭제하라고 요구했고 결국 16분을 삭제한 채 상영되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든 리위감독은 검열을 피해 영화를 만드는 지하전영의 감독으로 유명하다. 앞선 두 편의 영화는 이런 방식으로 검열을 피했지만 해외 영화제 상영작들은 검열을 피할 수 없다.
5세대, 6세대 감독들이 해외 영화제에서 중국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자 이에 화가 난 당국이 영화제 영화용 검열 체계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로스트 인 베이징’도 이에 해당하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감독은 무삭제판을 유포했고, 이에 화가 난 중국은 2년간 영화 제작을 금지했다. 2012년에야 우리가 이 영화를 보게 된 데에, 이렇게 긴 사연이 있다.
‘로스트 인 베이징’의 원제는 ‘사과’이다. 사과는 주인공 여성의 이름이기도 하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가난한 젊은 부부가 돈을 벌기 위해 베이징으로 이사온다.
아내는 발마사지 샵에서 일하고 남편은 고층 건물의 외벽 유리를 닦는다. 큰 돈을 벌 욕심으로 도시로 왔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층 막노동 밖에 없다. 그러던 중 아내가 업소 사장에게 성폭행을 당하게 되고 아이를 갖게 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사장 부부는 벤츠를 타고 다닐만큼 부자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다. 젊은 남편 얀쿤은 이를 기회로 아이를 거래하고자 한다. 아이를 낳아 사장의 혈액형인 B형일 경우 강간을 인정한 2만 위엔과 아이값 10만 위엔을 줘야 한다며 계약서까지 쓴다. 집을 사고 팔 듯 그들은 똑같은 계약서에 도장을 나눠 찍는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블랙 코미디같은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진다. 막상 아이를 낳았더니 A형, 그러니까 얀쿤의 친자식이었던 것이다. 남편, 얀쿤은 의사를 매수해 B형으로 고친다. 친 자식을 사장 아이인 척 팔기 위해서 말이다.
영화 속에 그려진 중국, 베이징은 초고속 경제 성장 앞에서 처절한 인간 소외를 경험하는 공간이다. 그들은 ‘벤츠’ 로고를 얻기 위해 서로를 속이고 자식까지 매매한다. 중국이 이 영화를 금지한 표면적 이유는 지나친 노출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노출은 육체적 노출이라기보다는 중국 내부의 불편한 진실에 대한 노출이라 보는 편이 옳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둔 중국엔 이렇듯 초고속 성장이 남긴 상흔들이 속출했다. 자본의 롤러코스터에 뒤늦게 탑승한 중국 경제의 현실이기도 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그들이 보여주는 타락한 인간 군상은 우리에게도 전혀 낯설지만은 않다. 과거 50여 년간 우리 역시도 그 멀미나는 초고속 성장의 열차를 탑승했기 때문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중국은 그 성장을 더 급한 속도로 성취했다는 것 일 테다.
그래서인지 ‘로스트 인 베이징’의 풍경 속에는 우리의 1980년대와 60년대 그리고 2000년대의 문제가 어지럽게 뒤섞여 있다. 이농 인력들이 도시 하층 노동자로 편입되는 상황은 60~70년대 같고 올림픽 이전 고속 성장 가운데 등장했던 졸부의 모습은 딱 80년대 같다.
자본은 인간에게 수많은 기회를 준다. 자본 덕분에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낙인처럼 가져야 했던 계층의 고리에서 자유로워 졌다. 하지만 기회는 인간적 덕목과 교양에 대한 필요성을 가장 먼저 지웠다. 인간적 교양이 돈 버는 데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된 중국, 어쩐지 남의 일만 같지 않다. 오배속 성장 속 오십 배속으로 이뤄진 인간 상실의 현장이 곧 ‘로스트 인 베이징’이다.
강유정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