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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악마, 神은 없다
-<울지마 톤즈>를 보고-
산골 오지 마을에 한 아이가 있다.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시고 없다. 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있다. 밥이며 빨래며 공부 가르키는 것등 모든 것을 아버지께서 사랑으로 해 주신다. 어느날 아버지께서는 장에 갔다가 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 소식을 들은 아이의 절망은 어떨까?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지금 당장 무었을 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떠오를 겨를 이 없을 것이다. 지금 지구의 저편 남아프리카 수단의 톤즈에 있는 아이들은 이 절망을 느끼고 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톤즈의 모든 사람들이~
2011년 새해가 밝았다.1월1일 정초 오랬만에 영화 한편을 보았다. 작년 9월 추석무렵에 개봉했다가 관객들의 성화에 못이겨 다시 재 개봉하는 다큐 영화 <울지마 톤즈>였다. 남 아프리카 수단의 작은 오지마을 톤즈에서 자신의 모든것을 헌신한 故 이태석 신부의 위대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휴먼 다규멘터리 영화다. 안국역 부근에 있는 비 상업영화만 전문적으로 개봉하는<씨네코드 선재>라는 영화관에서 보았는데 전 좌석이 매진된 참 가슴 뭉클한 영화다. 한 인간의 <사랑과 나눔> 방정식을 보여주며, 공동체의 중요성과 더블어 살아 가라는 메세지를 던져준다. 이영화를 보고나면 내가 지금 어떤 길을 살아 가고 있는 가를 생각하게 해 준다.
이태석 신부는 부산의 달동네에서 10남매중 아홉번째로 태어났다. 10세때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가 삯바느질로 10남매를 길러냈다. 유년 그의 생활은 가난이었고 그 가난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는 열심히 공부해서 의과대학에 입학한다. 1987년 인제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인턴을 마친후 군의관 복무를 한다. 그러나 군복무시절 그는 전혀 다른 길을 꿈꾸게 되는데 그것은 사제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10남매중 벌써 그의 형이 신부가 되었고 누나 한 분이 수녀가 되었는데 10남매를 홀로 삯바느질로 키우신 어머님께는 다른 자식보다 의과대학 다니는 이태석 하나를 누구보다도 의지해 왔다. 이태석 마저 성직자가 되겠다고 하니 어머니의 낙담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이태석은 그런 어머니를 찿아가 울면서 성직자가 되겠다고 고백한다. 군복무를 마친 뒤 광주 가톨릭대를 거쳐 살레시오회에 입회했으며,2001년 사제서품을 받자마자 아프리카 수단 의 작은 마을 톤즈로 떠난다. 수단은 20년 넘게 내전을 치르는 동안 국토는 황폐하고 지구상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가 되었다. 톤즈 마을로 가서 그는 맨 먼저 배운 의료기술로 사람들을 먼저 치료 한다. 병원도 없는 황랑한 맨 땅에 벽돌을 찍어서 병원을 짓고 병동을 만들었다. 내전으로 총상입은 환자. 말라리아 환자 .한센병환자,폐결핵환자등을 치료한다. 톤즈 에서 차로 20분거리에 있는 라이촉마은 60명의 마을 주민이 모두 한센병환자들이다. 이태석 신부는 이곳을 시간날때마다 찾아가 그들과 같이 어울려 그들의 말을 들어 주고 자기들이 무슨병에 걸렸는 지도 모르는 마을 주민들을 치료해 준다. 한센병으로 발이 뭉글어져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발의 형체를 일일이 그려서 그들의 발에 맞게끔 센들을 만들어 걷게 해준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쫄리신부라고 부르며 그를 따르고 그가 마을에 오는 날은 마을 주민들 전부가 다 모인다. 이태석 신부는 의료 활동을 펼치며 중요한 사실을 깨닿는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의료활동 보다도 그들과 함께 있어 주는 것을~ 그래서 그는 내전으로 폐허가 된 마을에 학교를 짓고 학생을 가르치기로 결심한다. 전쟁과 가난 속에서 상처 받은 아이들에게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하기위해서 직접 손수 학교를 짓고 아이들을 가르킨다.
장기간의 전쟁으로
건물 뿐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도
상처받고 부서져 있었다
음악을 가르치면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기쁨과 희망의 씨앗을
심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태석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中-
그는 남부수단 최초로 35인조 브라스밴드창단 해서 전쟁으로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안겨 주었다.그는 음악적 재능도 아주 탁월하다. 고등학교 3학년때 이미 <묵상>이란 곡을 직접 작사 작곡 했다.유년 자신의 어려웠던 과거를 치켜주는 것은 음악이었다.모든 악기를 지인들의 도움으로 구입해서 하나 하나 가르켜서 브라스 벤드를 창단하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35인조 브라스벤드는 일약 수단의 화제가 되었고 대통령이 참석하는 정부 공식 행사에도 초대 될 정도다. 그는 한 성직자이기 이전에 의사이고 교사이고 건축가이고 음악가다.그는 점점 톤즈 사람이 되었고 그들과 아픔과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그가 휴가차 한국을 방문 하는길에 우연히 건강검진을 받게 되었는데 결과는 대장암 말기로 온전신에 암세포가 펴져 2010년 1월 14일 서울의 성모 병원에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수단의 톤즈 마을에 그가 하다 만 일들을 무수히 남겨놓은체 그는 갔다. 마지막 가며서 " 톤즈에서 우물 파다가 왔어요... 마저 다 파러 다시 가야하는데..." 라고 말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이태석 신부가 없는 수단의 어린이들 어떻게 될까?, 그를 기다리는 한센병환자들은 그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느님은 과연 존재 하는가? 어떻게 이런 착한 사람을 48세의 젊은 나이에 데려 가는가? 말라리아나 폐결핵 한센병에 걸린것도 아니고 대장암이라니 신은 너무도 불공평하다.<사랑이 깊으면 그리움도 아픔이 된다고> 했다 수단 톤즈마을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신부가 떠난 후 그들은 버려졌던 과거로 다시 돌아 가고 있다.
<인간이 인간에게 꽃이될 수 있다는 한남자의 이야기다>라는 자막과 함께 시작되는 이 영화는 인간의 아름다움이 꽃보다 더 아름답다는 것을 그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그는 사람들을 가르킬려고 하지 안았고 치료할려고 하지 않았고 선교할려고 하지 않았다.그는 그들과 함께 있어 주었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고 그러다 톤즈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그는 다시 영정으로 톤즈로 돌아갔다.
참 아름다운 영화다.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로 나와 정곡도서관 방향으로 올라가면< 아트선재셴터>가
있다 그 건물 지하 <씨네코드 선재>에서 1월 5일까지 하루 1시40분 단 1회만 상영
유년의 이태석 신부
군의관 시절의 이태석 신부
사제서품을 받는 이태석 신부
라이촉마을 주민이 한센병으로 뭉글어진 손에 신부의 생전 사진을 들고 슬퍼하고 있다
해맑은 모습에서 말기암 환자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임종 직전의 이태석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