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족
사족(蛇足)은 원래 화사첨족(畫蛇添足)의 준말로 동일한 의미로 쓰인다. 여기서 사족을 직역하면 ‘뱀(蛇)의 발(足)’을 뜻하고, 화사첨족은 ‘뱀을 그리고(畫蛇) 발을 더하다(添足)’라는 의미이다. 원래 뱀은 발이 없다. 따라서 뱀의 발을 그린다는 것은 쓸데없는 짓으로 헛수고일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현실에서는 포괄적으로 ‘쓸데없는 일’을 지칭하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이 성어에 관련된 고사(故事)의 유래와 출현 배경과 만남이다.
중국 초(楚)나라 회왕(懷王)의 집권 초기의 일이었다. 초나라 영윤(令尹)*인 소양(昭陽)이 군사를 이끌고 위(魏)나라를 침공해 대승을 거두고 그 여세를 몰아 제(齊)나라를 공격하려고 할 무렵이었다. 위기를 직감한 제나라 민왕(閔王)은 유세가(遊說家)인 진진(陳軫)에게 밀명을 내려 초나라 소양을 만나 전쟁이 발발하지 않게 설득하라고 사신으로 보냈다. 이런 중차대한 임무를 맡았던 진진이 소양과 만나 담판을 짓는 자리에서 나누던 대화중에 사족 즉 화사첨족이란 말이 생겨났다고 전해진다. 한편 유의어로서 상상안상(牀上安牀)이 있다. 아울러 다소 무리가 있을지 모르지만 ‘지붕 위에 지붕을 씌운다.’는 뜻을 지닌 옥상가옥(屋上架屋)도 떠올릴 수 있겠다.
이 고사를 전해주는 출전(出典)은 ⟪사기(史記)⟫의 ⟨초세가(楚世家)⟩와 ⟪전국책(戰國策)⟫의 ⟨제책(齊策)⟩인데 둘의 내용을 큰 틀이나 줄거리는 동일하고 일부에서 다를 뿐으로 대동소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후자(後者)를 중심으로 사족과 관련된 부분의 줄거리 대강을 요약 정리한다. 달변가(達辯家)인 진진이 소양과 담판을 지어야 하는 절절한 설득의 자리에서 교묘하게 마음을 휘어잡으며 유효적절하게 회유함으로써 결국 소양이 제나라 침공 계획을 거둬들이고 홀연히 초나라로 돌아가게 했다.
진진은 소양에게 “공(公)께서는 이미 초나라 최고의 관직인 영윤의 자리에 계셔서 더올라갈 자리도 없을뿐더러 이번 출정에서 위나라와의 전쟁을 크게 승리하면서 장수 여럿의 목을 벰은 물론이고 여덟 개의 성(城)까지 얻으시는 역사에 길이 빛날 전과를 거두셨습니다. 게다가 지금 제나라는 공(公)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으니 그것으로 족하지 않으신지요? 그런 처지에 강공을 하다가 혹여 뜻하지 않은 낭패를 당하시면 여태까지 이루신 모든 게 물거품이 됨.”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조곤조곤 설득했다. 그러면서 예를 들은 고사 내용이 사족에 관련된 옛 일화였다. 그 얘기를 하면서 혜량하시고 끝까지 들어 주십사 라고 당부하며 몸을 한껏 낮췄다.
초나라에 제사를 지내던 사람이 있었는데, 수고했던 사인(舍人)*들에게 술 한 잔을 하사했었지요. 그 술을 두고 사인들은 여러 사람이 마시기에는 부족하고 혼자 마시면 넉넉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사인들이 땅 바닥에 뱀 그림을 가장 먼저 그리는 사람 혼자서 모두 마시기로 합의했었지요. 그래서 곧바로 사인들이 앞을 다퉈 땅 바닥에 뱀을 그리기 시작했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뱀을 다 그리고 술잔을 집어 들어 마시려다가 왼손에 잔을 거머쥔 채 오른손으로는 뱀의 발(足)을 그리면서 말했다.
/ ....... / 나는 발도 그릴 수 있다(吾能爲之足 : 오능위지족) / 아직 (발을) 완성하지 못했는데(未成 : 미성) / (다른) 한 사람이 뱀을 완성하고(一人之蛇成 : 일인지사성) / 그 잔을 낚아채며 말했다(奪其卮曰 : 탈기치왈) / 원래 뱀은 발이 없는데(蛇固無足 : 사고무족) / 당신은 어찌 발을 그릴 수 있는가(子安能爲之足 : 자안능위지족) / 마침내 그 술을 마셔버렸다(遂飮其酒 : 수음기주) / 뱀의 발을 그린 사람은(爲蛇足者 : 위사족자) / 끝내 그 술을 잃었다(終亡其酒 : 종망기주) / ........ /
위의 뱀을 그리는 과정의 대화에서 “쓸데없는 일을 한다.”는 뜻의 사족 즉 화사첨족이라는 성어가 유래했다는 얘기다. 결국 진진의 유려하고 심오한 말을 새겨들으며 오랫동안 심각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장고(長考)에 들어갔던 소양은 이윽고 어려운 용단을 내리고 명을 내렸다. “더 이상 전쟁은 없다면서 군사를 거두어 고국인 초나라로 돌아갈 준비”를 서두르라고.
우리가 즐겨 쓰는 글에서도 불요불급(不要不急)한 군더더기 같은 내용을 끌어다 덧붙인 경우가 허다한데 이 또한 사족의 예 중에 하나이다. 이런 글을 대하다가 핵심을 간결하고 맛깔스럽게 절제미가 도드라진 글을 대할라치면 험한 산길을 오르며 목말라 쩔쩔매다가 정갈한 석간수를 만나 한 모금 마시는 청량감에 비유할 수 있지 싶다. 세상을 사노라면 하루에도 수많은 결정이나 행동을 하면서 관습 혹은 관행적으로 중언부언(重言復言)을 거듭하며 사족을 붙이는 어리석음은 없는지 진지하게 돌아보며 자성(自省) 할 일이다. 왜냐하면 촌철살인(寸鐵殺人)의 한 마디가 지루할 정도로 긴 사설(辭說)에 비해 훨씬 큰 공명(共鳴)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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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윤(令尹) : 초무왕(楚武王) 때 설치하였다. 국내에서는 정치의 수장(首長)을 맡고, 국외에서는 군사를 통솔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초나라가 진(秦)나라에게 멸망당하기 전까지 초나라의 최고위 관직이었고, 중원 제후국에서의 재상(宰相)이나 장수의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
* 사인(舍人) :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부터 한(漢)나라 초기에 귀족이나 측근이나 시종을 일컫던 말이다. 오늘날 하인(下人) 비슷한 의미로 쓰이던 말이다.
한맥문학, 2024년 12월호(통권411호), 2024년 11월 25일
(2024년 5월 15일 수요일)
첫댓글 현대인이 주저리주저리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사족으로 쓰신 글에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