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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again님에게 바칩니다.
개신교의 조직신학이나 가톨릭의 사변신학으로 성경을 다른 성경 구절로 증명해가면서 주장을 내세우는 건 JW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니 이 자리에서 그런 글을 쓰려하는 건 아닙니다. 최대한 압축되고 요약된 논리로 주장을 개진하고자 합니다.
심리학자 니커슨에 따르면 인간은 어떤 대상에 대해 판단할 때 여러 한계를 갖습니다. 기억, 주의, 태도, 지식, 외적 한계 등등이 그것이지요. 대상에 대한 결정에 노력을 들이기를 거부하거나 혹은 어떤 결정인지조차 관심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정보를 충분히 모으지 않고 다시 말해 상당한 지적 노력이 필요함에도 대상에 대해 더 알고자 노력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대상에 대해 편향된 사고를 가지게 되기 쉽고 이는 합리적 의사결정이 불가능해지게 만듭니다.
간단히 말해서, 확증편향이란 사람들은 원래 자신이 생각했던 것, 현재 고려중인 생각과 일치한 증거만을 탐색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더 간단히 말해서, 확증편향은 믿고 싶은 대로 보는 것입니다.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은 숫자로 계상될 수 있는 논리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합니다. 그는 JW 출판물에도 언급된 것처럼 고물쓰레기가 회오리 바람이 한 번 불어서 보잉 747이 되는 확률 등을 이야기하며 생명체는 우연히 생길 수 없다는 주장을 합니다. 생명이 우연히 생겨날 수 없다고 '믿고 싶어'하는 확증편향자에게는 이러한 논증이 매우 매력적일 수 있습니다.
집에 있는 창조책 가지고 찍어보았습니다.
지금 저는 '믿는'이 아니라 '믿고 싶어'하는 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인간은 어떤 판단상황에 놓이게 되면 모든 정보를 취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이나 지식을 지지하는 증거만을 찾습니다. 반대되는 내용의 정보를 검증하며 상대 진술의 참/거짓 여부를 확인하고자 하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심지어 자신이 잘못 믿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거나 자신이 '믿고 싶어'하는 진술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처음 형성된 생각에 대한 반증 증거가 주어졌을 때에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경우도 심리학 실험에서 왕왕 발견됩니다.
영국의 심리학자 웨이슨(Wason)은 이 확증편향(確證偏向, Confirmation bias)이란 단어를 1960년 처음 사용한 학자입니다. 그는 이것을 실험을 통해 증명했는데 실험은 매우 간단합니다.
실험자는 학생들에게 2-4-6, 세 숫자를 제시하고 여기에 존재하는 규칙을 발견하라고 합니다. 학생은 자신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규칙에 맞게 새로 세 숫자를 만듭니다. 실험자는 마치 스무고개처럼 이 세 숫자가 실험자가 원래 생각한 규칙에 들어맞는지 아닌지 여부만을 알려줍니다.
예를 들어 한 학생이 2씩 증가하는 숫자라는 규칙을 생각하고 6-8-10을 제시하면 실험자는 이 숫자가 원래의 규칙에 맞는지 맞지 않는지 여부를 알려주는 간단한 실험입니다.
이 실험의 의도는 얼마나 빨리 진짜 규칙을 찾는지의 여부였고, 정답은 단지 '오름차순의 세 수' 였습니다만 80%가 넘는 학생은 처음 제시받은 2-4-6 때문에 확증편향이 남아서 이를테면 6-8-10이나 8-10-12처럼 2씩 증가하는 예만 두세 번 언급한 후 실험자에게 규칙에 맞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정답을 2씩 증가하는 세 수로 대답했습니다. 2씩 증가하지 않는 다른 예, 이를테면 1-3-8과 같은 예를 실험자에게 언급한 사람은 결국 정답을 맞히었지만, 80%가 넘는 대부분의 학생은 결국 자신에게 처음 주어진 2씩 증가하는 세 수라는 확증편향 때문에 눈이 가려져 정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는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문제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언급할 창조/진화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누구도 신의 존재를 오감으로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신의 현신은 과거에는 있어왔지만 현재에는 더는 존재하지 않는 사건입니다. 성서 시대에 야곱에게는 천사가 나타났지만, 그 후손들은 우리의 조상 야곱이 천사를 만나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받았다고 가르침 받았을 뿐입니다. 예수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들은 천사를 만났다지만 그 이후에는 성경에 기록되어 사도들이 천사를 만났다더라로 믿음의 영역이 됩니다. 1800년대 조셉 스미스에게도 가브리엘이 나타나 몰몬경을 주었다지만 현재의 후기성도교회 신도들은 주어진 몰몬경을 가지고 이게 천사가 우리의 교조 스미스에게 나타나 준 몰몬경이니 하느님의 말씀이겠거니 하는 '믿음'의 영역에서 이해될 뿐입니다. 이젠 누구든 천사를 만났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새로운 종교를 창시하기보다는, 병원에서 약물치료를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지만 죽은 우리 교주가 사실 천사의 부름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2세대 종교 지도자의 주장은 신도들에게 혹은 대중들에게 가감없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큽니다. 과거에 그랬다는 거지 현재 그런 게 아니라면 우리 뇌는 알지 못하는 영역까지 굳이 분석/판단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신박한 일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혹여 머리가 3개인 사람이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중국'에서 그랬다더라 한다면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창조가 진화에 비해 우월하다는 믿음도 비슷합니다. 현재 과학으로는 빅뱅까지는 증명해도 빅뱅 이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왜 빅뱅이 일어났는지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확증편향을 가진 인간에게 그리고 어떤 일이든 '정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플라톤주의자들에게는 원인을 설명할 수 없는 진화론보다 원인이 신이라고 말하는 창조설이 훨씬 합리적으로 들립니다. 경험적으로 우리는 인과론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유 없는 결과는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확증편향을 넘어서 정답에 근접하기 위해서는 비교적인 지식이 필요합니다. 혹은 분리적 사고라고 말해도 될 수도 있습니다.
5공에서 6공화국으로 넘어가면서 서대문구 연희동은 대통령을 두 명이나 배출한 명당(?)이 되었습니다. 안산이 천하 명당이라서 그렇다든가 묫자리를 잘 써서 그렇다든가 사람들은 복잡한 문제에 대해 심플하게 한가지 이유만 그럴싸하면 넘어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비판적 사고로 생각해보면 서대문구 연희동이 명당이라기보다는 전두환-노태우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동기 사이라는 것이 두 대통령을 배출한 더 설득력 있는 가설일 수 있습니다만, 사람들은 그런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저 '명당'이니까, '묫자리'를 잘 써서와 같은 직접적으로 와 닿는 약간의 초자연적인 무언가를 믿고 싶어 합니다.
스위스 심리학자 피아제(Piaget)도 어린아이에게 나타나는 자기중심적 사고를 실험한 적이 있습니다. 어린이 네 명에게 서로 다른 산의 모형을 보여준 후 자기가 아니라 맞은편에 앉아 있는 상대 어린이가 바라보는 산의 모양을 고르도록 하는 실험이었습니다. 만 5세를 기준으로 대부분은 상대가 바라보는 관점을 선택하지 못했습니다. 즉 그 나이 이하의 어린이는 자신의 위치에서만 사물을 이해하지 타자의 관점에서 보이는 사물의 모습을 추론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자신의 경험을 상대도 할 것이라는 경향을 으레 보입니다. 자신이 갖고 싶은 장난감은 엄마도 아빠도 갖고 싶어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기쁘면 친구도 기뻐할 것이며, 자신이 배가 고프면 엄마도 배가 고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걸 바로 자기중심적 사고라고 합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비록 어른은 산의 모양 문제 정도는 맞출 공간지각력이야 발달 될 순 있겠습니다만 자기 위주의 편향된 사고는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어떤 물건 이를테면 머그컵을 제시하고 이 컵을 산다면 얼마에 사겠는가는 질문을 했을 때의 가격과 이 컵을 팔 수 있다면 최소한 얼마를 받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했을 때의 가격이 현저하게 달랐습니다. 살 때보다 팔 때 2배 이상의 가격을 원하는 것이 실험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유리/불리에 대한 판정은 결국 자기중심적 사고에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하버드 대학의 연구도 비슷합니다. 연구팀은 SNS로 상대에게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뇌의 시냅스에서 쾌감을 느끼고 따라서 이야기를 쉽게 멈출 수 없도록 한다는 결과를 얻어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남에게 할 때 대뇌변연계의 도파민 영역이 활성화 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자기중심적 사고를 할 때 우리 뇌에서는 도파민이 펑펑 분비됩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큰 돈을 벌거나, 섹스로 쾌감을 느낄 때와 비슷하다는 말입니다.
현대의 5세 미만 영아 사망률은 5%정도입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매우 높았지요. 토니 리글리와 로저 스코필드의 영국 인구사에 대한 연구에서는 15-49세 여자의 출산률은 9.47명에 육박하였습니다. 한국은 6.9명, 일본은 5.69명 프랑스는 8.26명, 독일은 10.6명 정도였습니다. 동양에 비해 서양의 출산률이 높은 이유는 경제 그리고 의학의 발달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영국에서의 결과에서 10명의 아이중 5-60%는 영아일 때 사명하여 성인이 되어 결혼하는 자녀는 2-3명에 불과했습니다. 영국의 평균 결혼 연령인 20대 중반까지 7-80%는 사망했다는 뜻입니다. 다산 정약용은 다산시문집 17권에서 부인이었던 풍산 홍씨가 슬하에 모두 6남 3녀를 두었지만 요절한 자식이 4남 2녀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아마도 영국보다 열악한 위생습관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지만 여튼 기록은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태어나서 자식을 남기고 죽을 확률은 50%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간단한 산수를 해보겠습니다. 인간의 1대를 30년으로 잡겠습니다. 인간역사는 6000년이라는 성경의 말에 비추어보면 6000년은 약 200대에 해당합니다. 영국/한국에서의 기록대로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을 확률은 50%정도로만 잡아봅시다. 실제로는 더 높았지만 말입니다. 우리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필요합니다. 그러니 계산도 두번씩 하면 됩니다. 즉 우리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필요하고, 이들이 살아남아 자식을 남길 확률은 1/2라고 했을 때 1대가 태어날 확률은 1/4입니다.
우리가 200대라고 가정합니다. 그렇다면 산술해서 (1/4)의 200제곱이라는 확률이 나옵니다. 창조책에서 언급하듯이 수학자들은 10의 50제곱만 되어도 일어날 수 없는 확률이라고 합니다만 4의 200제곱은 256의 50제곱으로서 10의 50제곱보다 훨씬 큰 수입니다. 여기에 특정한 우리가 태어나기 위한 5000만개~2억개의 정자와 난자의 배란일이 맞을 수학적 계산까지 곱하면 단백질분자가 생겨날 가능성인 10의 113제곱과는 비교도 안 되는 확률이 나옵니다.
1회 사정시 정자가 1억개 전후 라는 것 고려할 때 지금 당신이 존재하게 될 확률은 1/10의 40000제곱보다 훨씬 낮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렇게 실재합니다.
비록 우리의 100대조 조상은 번식욕구로 인해 성관계를 통해 아이를 낳았을 뿐일지 모르지만 후대의 누군가는 역사적으로 큰 일을 할지도 모릅니다. 전두환-노태우식으로 묫자리를 잘써서 그렇게 된 게 아니라 사람이 태어나서 살다보면 그 어떤일도 벌어질 수 있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창조주는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최초의 빅뱅도 신이 일으켰을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 현대의 과학은 그 이상은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신이 어떤 의도가 있고,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성경을 썼다는 것을 믿는 건 또 다른 부차적인 문제가 됩니다.
기술하였지만 지금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아주 가볍게 계산을 해도 121자리의 수 중 하나의 확률입니다. 10자리 숫자는 10억입니다. 13자리 숫자는 1조정도 됩니다. 하지만 다시 강조하지만 지금 이 글을 읽고있는 바로 당신이 태어날 확률은 121자리의 수중 하나의 확률이었습니다. 로또 당첨확률은 숫자가 7자리지요. 이해하기 쉽게 로또가 8자리라고 즉, 1/1천만의 확률이라고 합시다. (실제로는 약 1/817만) 그런 로또를 15주 연속으로 맞을 확률이 바로 우리가 존재할 확률입니다.
즉, 창조책에서 언급된 대로 유기물용액에서 단백질 분자가 무작위로 생성될 확률인 10의 113자리가 천만번(10의 8자리) 일어나는 확률이 바로 지금 당신이 존재할 확률이란 뜻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아도' 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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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살다보니 저에게 글이 받쳐지는 매우 기이한 경험까지 하게 됩니다~ㅎㅎ, 앞으론 그러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기 모두 소중한 사람들이고 위와같은 글은 모든 분들이 똑같이 읽어볼만한 그런 글로 모든 독자들을 위해서 계속 글을 쓰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광어님의 그 선의와 정성된 글을 이 카페의 모든 소중한 방문객들과 독자분들과 함께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잘 읽었구요. 제시된 이 논제와 관련하여 저도 하고 싶은 말씀이 정말 많답니다. 우선 확증편향은 상대적이라고 생각하구요. 공정하고 정직한 토론으로 대체되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어떤 명백한 증거나 논증을 진영논리에 갇혀 무작정 배격한다면 그건 정말
확증편향이 될 것입니다. 다 좋았는데, 마지막 산수계산은 어디에 내어놓아도 별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광어님의 주장은 인간부부 한 쌍이 6,000년 동안 지금의 65억 인구로 증식할 가능성은 전무하다는 그런 논증같은데, 제게는 얼핏보더라도 궤변으로 여겨집니다. 마치 화살이 뛰어가는 사람을 절대 맞출 수 없다는 그 유명한 논증을 보는 것 같습니다. 궤변학파의 이론대로라면 화살이 날라가는 동안 사람도 그 만큼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절대 맞출 수 없다는 그 논리 말씀입니다.
궤변이란 단어로 기분이 나쁘실 것 같아 죄송합니다만, 그 단어 말고는 더 적합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군요. 죄송합니다.
@again return of 이 논제와 관련하여 제가 오래동안 궁금해 해왔던 점을 별도의 글로 한 번 올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again return of 음, 제 뜻한 바는 그게 아닙니다. 6000년이 중요한 것도, 현재 인구수로 증가할 수 있다든가 없다든가에 대한 뜻이 아닙니다. 오로지 지금 나라는 존재는 그 희박한 확률하에서 존재한다는 뜻이며, 이는 확률의 희박함으로 진화의 가능성을 논박하는 창조책의 주장에 대한 오마쥬 정도 되겠습니다.
아침에 글들을 읽노라니 댓글 중에서 제게 글쓰기를 권하시는 걸 보고 쓴 것이라 헌정드렸습니다.
로마, 중국 기타 등등 자료들을 토대로 1세기 세계 인구를 추산하면 약 2억이 된다고 합니다. 간단히 계산해보니 BC2340년 홍수가 끝난 것을 기준으로, 평균수명 40세로 잡고 여성 1인당 생애 출산률을 2.7명 정도로 잡으면(성비는 50:50 가정) 기원 1년 기준으로 1.8~1.9억 정도의 인구가 됩니다. 4000년 정도면 기 언급한 인구 수 등 연구에 기반한 통계적 주장으로도 충분히 70억의 인구는 가능해보입니다.
생물이 좀 특이한 건 유전자입니다.. 그런데 유전이란 것도 단순화해보면 결국 단백질 분자 접힘현상의 반복이죠.
생물내 질서가 무생물에겐 없는가? 쉬이 그렇다고 하지 못합니다.
바윗돌 하나라도 생물계에 있는 프랙탈, 정주기 대사율, 그런 모든 각 축소단위에서 나타나는 자기 유사비례등이 고루 있고 그런 현상들의 집합이 곧 세상만물이죠.
무생물속 복잡함도 생물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즉. 생물의 질서로 설계자를 논하는 창조논증은 겉보기만큼 특별한 논거가 되지 못합니다. 저 창조책이 그런 점에서 문제였죠.
신앙은 과학논증이 아닌 신앙 그 자체로 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의 존재여부와 별개로 그 신이 인격신인지 단지 제 1원인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급하신대로 신앙과 과학은 분리해서 판단해야 한다는 점에 100% 동의합니다.
@광어 동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