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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자유 게시판◀ 의사들은 왜 쉽게 죽음을 맞이 하는가 (펌)
토기그릇 추천 1 조회 302 15.07.19 09:34 댓글 2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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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07.19 11:44

    첫댓글 아하~ 동감입니다. 시아버님 돌아가실 때 주변의 환자가족들이 몇년씩 호흡장치달고 집한채 날렸다고 한탄하는 걸 보면서 절대 목에 구멍뚫지 말아야겠다 싶었습니다. 아버님은 뇌부종으로 보름간 의식불명으로 있다 돌아가셨지요. 저도 자연스럽게 죽기를 언젠가부터 강하게 소망하게 됩니다.
    친정아버지도 칠개월간 집에서 누워계시다 어머니 옆에서 기도가운데 가셨구요. 요양원에서 십여년간 누워있다 가는 것이 제일 두렵습니다.

  • 작성자 15.07.21 06:36

    에이미님은 나이완 상관 없이 정신연령이 높아서 죽음에 대해서도 앞서 생각함이 남다릅니다.ㅎ
    저는 만일에 이상이 있어 의사를 찾았다가 암이라 한다면 두어군데 더 다녀 확인한후 아무 치료도 받지
    않을것입니다.
    어디서 들은 이야긴데 암이란 죽을 준비를 하게 해주는 착한 병 이라는말을 머리속에 기억해두고 있습니다.
    제가 소개한 위 책의 저자는 오랜세월 임상경험에 의하면 진짜암 일경우 오히려 방치하는것이 수명을 연장
    하며 실제로 죽기 얼마전까지도 가벼운 운동과 산책도 가능 남들과 똑같은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다 마지막때는 고통을 줄이는 몰핀 투여와 하스피스 신세를 지며 평안한 죽음을

  • 작성자 15.07.21 06:34

    @토기그릇 맞을수 있다고 합니다.
    제약회사와 병원,의사, 들의 삼각관계를 폭로하면서 조기 검진,그리고 수술과 독한 항암제로 수명을 단축
    시키지 말라 경고 합니다.

  • 15.07.19 12:52

    저도 '필요 이상의 (결국 불필요한) 생명 연장 의료행위'는 반대하여 '존엄사'를 지지하는 편입니다마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인즉슨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결코 '영웅적'이지는 못해도 (비교적?) 의연하게 죽음을 맞고 싶습니다.

  • 작성자 15.07.19 14:24

    998834는 한국 사람들이 바라는 죽음의 유행어라고 합니다.
    제가 세번씩 읽은 매우 유익한 정보들이 담긴 책을 소개 합니다.

    [의사에게 살해 당하지 않는 47가지 방법] "암 검진과 수술 함부로 받지마라!"
    저자 : 곤도 마코토 제 60회 기쿠치간상 수상, 더난 출판사 발행.

    [환자를 상품으로만 취급하는 현실에서 자신보다 환자를 더 사랑한 의사의 진심어린 고백을 담고 있다.
    과잉 진료로 이어지는 조기암 진단이나 건겅 검진에 현혹되지 않도록 의학 상식을 넓혀줄뿐만 아니라
    병원과 약을 멀리 함으로서 건강하게 살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항암제는 효과가 없다"
    "건강 검진은 백해 무익하다"
    "암은 원칙적으로 방치하는 편이 좋다"]

  • 작성자 15.07.19 14:25

    저자는 일본 유수의 병원에서 암을 치료해온 전문의로 대표적인 주장을 꼽자면
    "항암제는 독이고 암 치료는 고통만을 가중 시킬뿐이다" 합니다.
    흔히 암을 조기에 발견해 나았다던가 수술과 치료로 나았다는 사례들을 보는데 그것은 유사 암 이었을뿐
    진짜 암은 현대의 어떤 의학으로도 고치지 못한다 입니다.
    기존의 생각을 바꾸게한 eye opening 책이었습니다.

  • 15.07.19 20:27

    @토기그릇 9988234에 2를 빠뜨리셨군요. 그런데 9988234에도 버젼이 여럿있습니다. 이삼일 앓다가 죽는 것 부터 이삼주는 물론이고 두세달, 아니 이삼년 앓다가 죽는 것까지... 그런데 (끝 글자 죽는다는 4대신) 9933231은 이삼일 앓다가 일어나 100세를 마저 채우고 죽는다는 것이라네요. 그리고 9988234에도 죽을사(死) 대신 23세 아가씨와 사랑에 빠진다나 어쩐다는 것 까지요. 그나저나 저는 9988은 커녕 8899할까봐 요즘 헬스 클럽데 다니고 있습니다. 88세일 망정 구질구질하게(99의 뜻임) 살게될까봐서요.

  • 15.07.20 07:33

    @토기그릇 저는 '병원'이라는 말을 '병이 모여사는 집'으로 읽은지가 이십여 년입니다. 달리 해석할 아무런 문자적 근거가 없습니다. 우리 후세들은 '병원에서 나서 병원에서 죽는' 삶을 이미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하는 일은 의미가 적지 않습니다. 고전15 : 55 기록은, 모든 사람이 죽음이라는 그물에 걸려 떨어질 때 그 그물을 찢고 하나님께로 날아 올라가는 장쾌한 순간을 증언하는 것임을 2005년11월26일 오후4~5시쯤 알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 날의 그 기이한 기억을 다시 떠올리며 창조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감사합니다.

  • 작성자 15.07.21 06:09

    @느디님 느디님님의 해설 재밋습니다.
    근데 늙으면서 목욕 자주하고 가꾸는걸 멀리하면 구질구질이 배나 더할것으니
    요 부분을 저는 더 신경쓸겁니다.ㅎ

  • 작성자 15.07.21 06:17

    @세힘 저의 시아버지가 별것 아닌것으로 병원에 들어가셨다가 병원균 전염으로 인해 다리를 두번씩 자르시게 되고
    그로인한 고통이 가중되 6개월만애 돌아가셨습니다.
    미국사람들도 의사를 멀리하는게 오래사는 방법중에 하나라 합니다.
    툭하면 의사 찾아다니는 사람들보면 딱히 문제가 있는것도 아닌데 그리 건강해보이지도 않고
    젊은날 벌어 모아둔 돈들을 노후엔 의사에게 갖다 바치는 생활로 남은 여생을 저당 잡힌듯 합니다.

  • 15.07.21 09:58

    @토기그릇 생각해보면, '사람은 왜 죽는가?'라는 존재론적 의문에 대해 진리 자체이신 '기록된 말씀'이 가르치시는 바를 충분히 그리고 바르게 전하지 못하는 것도 한 원인이지 싶습니다. 단순히 '죄 때문에 죽는다'는 대답은 그야말로 원론적인 것이고 '사람은 죽지 않는다'데까지 이르러야 '산 자의 하나님'과 '영원한 속죄'도 아우를 수 있게 될 것이고, 그쯤가면 고전15장55절의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대목에서 괄목상대刮目相對 경험이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쨌거나 '병원病院'이라는 어휘는 '병집' 말고는 달리 해석할 도리가 없습니다. '병고치는집' 이런 의미를 갖는 다른 어휘를 찾거나 만들어야 합니다.

  • 작성자 15.07.21 16:33

    @세힘 병원.. 병집..듣고보니 그렇군요.

  • 15.07.20 00:14

    토기그릇님이 올리신 이 글은 평소 병원에서 일하시는 하토브님이 주장하시는것과 같습니다.
    전에 위내용같은 글을 하토브님이 올리셔서 저도 가끔 제마음을 하나님께 아룁니다.
    집에서 죽게 해 달라고.
    제 죽은모습이 넘 아름다워서 자녀들이 남편님이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다시한번 뵙게 해 달라구..ㅎ.ㅎ.
    좋은글 감사합니다.

  • 작성자 15.07.21 05:57

    예, 저도 병원이 아닌 집에서 평안하고 아름다운 마지막을 맞게됬음 좋겠습니다. 할말 다하고..ㅎ

  • 15.07.20 15:08

    임종을 앞둔 호스피스 병동은 가장 치열한 영적 전투의 현장이자 영, 혼, 육의 터미널과 같은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인어른(병동전도), 아내(전 호스피스병동 간호사), 이모(호스피스), 어머니(호스피스 자원봉사) 4명이 하나 같이 이야기 하는 바는 마지막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분초를 다투는 복음전파의 현장이라는 것입니다. 호스피스이신 이모님도 림프계열의 암에 걸려 3년을 치료받고 거의 완치 단계에 이르고 있습니다. 중앙대 의료원 교수로 있는 이종사촌 누이가 조기 발견을 해주어 치료가 가능했는데 병문안차 가면 누나왈, 의사도 말기에 발견되면 별 조치 방법이 없고 동료 교수들도 큰 미련을 갖지 않는다고 합니다.

  • 15.07.20 22:11

    아름다운 임종으로 제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외할머님의 임종이었습니다. 제가 초등4년때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는 당일날 가장 기뻐하셨던 것은 가족의 눈에는 안보이는 흰옷입은 3명이 찾아와 유언을 마칠 수 있도록 기다렸고, 한명은 머리맡에, 두명은 이어서 온 다른 3명(?)을 엄히 꾸짖고 돌려보낸 것, 할머니는 독립운동을 하신 할아버지와 만주에 사실때 5세된 아들을 잘 돌보지 못해 죽은 아들을 집에 놓아두고 도망쳐 나오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신후에도 이것이 평생의 한이었는데 외할머님의 머리맡에 있던 분왈, 아들은 우리와 함께 있다고 한 말에 가장 기뻐하시는 것을 보았더랬습니다. 마지막까지 유언하신 것은

  • 15.07.20 15:27

    일곱 사위들의 거듭남, 이모들간의 형제사랑, 손주들에 대한 믿음의 당부였습니다. 어머님이 몸이 약해서 제가 태어난 후 5세 삼촌을 먼저 보낸 아픔으로 정말 저를 딸의 아들이자 당신의 아들처럼 키워주셔서 아직까지 외할머님의 임종은 가족들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어린 외삼촌, 어머니 태중에서 하늘로 다시 돌아간 형을 나중에 한자리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작성자 15.07.21 05:53

    @익투스 할머니와 어머니 속에 있는 믿음이 디모데 속에도 있게된것처럼 익투스님의 신앙도 조모님으로부터
    먼저 시작된 복인가 합니다. 저도 제 임종이 다른 남은이들에게 특별히 기억되는 사람이길 간구 해야겠습니다.

  • 15.08.12 14:27

    정말 공감이가는 글이네요.....

  • 15.09.18 14:35

    저도 가끔씩 예배 드리는 가운데 부름을 받았으면 하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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