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목 풀꽃을 완상하고
전날은 벗과 호연봉 산등선을 따라가며 도토리를 가득 주워 하산했다. 저녁에는 초등 친구들과 어울려 갈치조림으로 맑은 술을 반주로 곁들인 자리를 가졌다. 같은 동네 사는 꽃대감 친구와는 우리가 사는 아파트가 내려다보이는 스카이라운지에서 차수를 변경해 호프 잔을 기울이었다. 귀로에 늦은 밤이었지만 친구가 가꾸는 꽃밭에서 가을이 이슥해지도록 피어난 꽃들을 완상했다.
새날이 밝아온 구월 넷째 금요일은 절기가 추분이었다. 전날 다녀온 산행기를 남겨 놓고 ‘소로의 야생화 일기’를 마저 읽으며 아침나절을 보냈다. 저녁에는 예전 근무지 동료 둘과 만남이 예정되어 바깥 산책 걸음 이후 바로 그 자리로 가는 동선을 정했다. 집에서 이른 점심을 들고 두 분에게 보낼 큰형님의 문집과 내가 여름날 따서 말린 영지버섯을 몇 조각 봉지에 담아 챙겼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퇴촌삼거리로 나가 사림동 주택지를 지난 사격장 잔디밭을 몇 바퀴 거닐었다. 사격장은 언제 들려도 잘 다듬어진 운동장 가장자리 잔디밭 바깥을 걸을 수 있어 좋았다. 다른 활엽수들보다 철을 당겨 낙엽이 지는 벚나무는 단풍이 물들면서 낙엽이 지고 있었다. 잔디밭에서 나와 우회 등산로를 따라 소목고개로 향했는데 평일 낮이라도 산행객들이 가끔 보였다.
약수터를 지난 소목고개 쉼터에 앉아 한동안 사념에 잠겨 봤다. 약속 시간에 여유가 있어 서둘지 않아도 되어 느긋했다. 내 뒤를 따라오던 젊은이는 정병상을 향해 곧장 올라가 건각이 부러웠다. 나는 이제 경사가 가파른 정병산 등정은 생각해 볼 여건이 아니었다. 해발고도가 높다거나 경사가 비탈지고 바위 능선이 있는 구간은 고소 공포가 따라와 등정을 단념한 지 오래되었다.
고개 쉼터에서 소목마을을 향해 내려서니 이맘때 피어난 풀꽃들을 만날 수 있었다, 습지에서 즐겨 자라는 고마리가 하얀 좁쌀 같은 꽃을 달고 있었다. 양봉업자가 둔 벌통 곁에는 높이 자란 억새에서 이삭이 나와 바람이 흩날려 운치를 더해 주었다. 이른 봄에 노란 꽃을 피웠던 괭이밥은 가을에 작고 앙증맞은 꽃을 한 번 더 피웠다. 이질풀은 짙은 분홍색 꽃을 피워 눈길을 끌었다.
길섶 밤나무에서는 밤톨이 떨어져 누군가 알밥을 주워간 흔적이 보였다. 자주색 개여뀌도 은근히 예뻤고 쑥부쟁이꽃도 피기 시작했더랬다. 물이 흘러오는 개울에는 가을이 깊어가는데도 선홍색 꽃잎을 단 물봉선이 군락을 이루어 자랐다. 산간 계곡을 서식지로 하는 물봉선은 지난 태풍의 불어난 물에 휩쓸려 갔었는데 계곡물이 많이 흐르지 않는 습지 물봉선은 온전히 남아 있었다.
텃밭과 단감과수원을 지나니 소목마을이 나왔다. 소목은 행정구역은 동읍 덕산리인데 정병산 서북쪽의 고지대였다. 동구에서 가까운 남향 언덕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이 300년을 헤아리는 느티나무가 있었다. 매년 정초 동신제를 지내는 당산나무이기도 한 느티나무 아래는 마을 노인들이 나와 한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문득 어느 드라마에 나왔다는 북부동 팽나무가 떠올랐다.
소목마을 앞으로 창원대학 뒤에서 정병터널로 빠져나온 25호 국도의 높다란 교각이 걸쳐 지났다. 마을 앞의 농경지들은 산업단지로 변경되어 개발을 앞두었는데 주민들과 갈등이 해결되었는지 반대한다는 펼침막은 걸려 있지 않았다. 남해고속도로 곁의 농로를 따라 남산마을 입구로 나가 자여에서 출발해 오는 7번 마을버스를 탔더니 용강고개 너머가 도계동 만남의 광장이었다.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로 갈아타 예전 근무지 동료들과 만나기로 한 상가 횟집으로 갔다. 연장인 분은 교장으로 퇴직했고 동갑인 친구는 나처럼 평교사로 마쳤는데 반가운 얼굴이었다. 전어를 포함 우럭과 광어를 회로 쓴 안주로 맑은 술을 잔에 채워 비우면서 정담을 나누었다. 나이가 들어감에도 여전히 술잔을 기울일 수 있음만도 감사해하며 해가 바뀌기 전 다시 만나기로 했다. 22.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