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가뭄에 바짝 비틀어진,
채 한 뼘도 자라지 못한 열무가, 어느 날 갑자기
쑤욱- 대궁을 밀어 올리더니
연보랏빛 열무꽃이 분분하다.
나풀나풀, 바람이 불면 일제히
어린 나비로 고운 날갯짓하는
연보랏빛 꽃무리들.
너무 게으르거나 혹은 지나치게 바쁜
텃밭 주인들이 본의 아니게 풀어논
난데없는 꽃잔치.
주인들은 꽃구경도 안 오는데……
-『중앙SUNDAY/시(詩)와 사색』2024.05.18. -
어머니는 꽃과 식물을 좋아하지만 좀처럼 꽃구경을 가는 법이 없습니다. 해마다 봄이 되면 진해나 구례쯤으로 여행을 다녀오자고 권해도 싫다고만 합니다. 아니 세상 쓸데없는 일이라 깎아내립니다. 어머니의 꽃구경 무용 논리는 이렇습니다.
집 앞 길가에 벚나무 몇 그루 있고 앞산에 진달래 개나리 피고 작은 텃밭에 오이꽃도 작약도 해당화도 백일홍도 국화도 순리대로 열릴 텐데 왜 그 멀리까지 꽃을 보러 가느냐는 것입니다. 돈 만 원을 십만 원 혹은 백만 원쯤이라 크게 여기고 평생을 살아온 어머니는 이제 풍경과 시선까지 절약하는 법을 터득하게 된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