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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8: 45 진리를 말하므로 - 요 8: 48 사마리아 사람
요 8: 45 진리를 말하므로 -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 도다. (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 도다. )
예수께서 하나님의 진리를 말함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무슨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이 그를 믿지 않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니고 마귀의 자녀들이라는 증거이다.
1]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 도다.
거듭난 자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믿을 것이다. 그들이 그것을 듣지 않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로서 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이 말씀은 그 때 유대인들의 마귀적인 성격을 지적하심이다.
그는 이렇게 날카롭게 말씀하셔서 그들의 심령 상태의 위험성을 지적하신다.
2] 진리와 자유.
유대인은 사실상 아브라함의 자손이면서 예수님으로부터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이유에 대하여 예수님은 그들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은 육적인 이스라엘의 조상으로 삼으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는 사람들의 구원 조상으로 세우시기 위하여 갈데아 우르 땅에 있는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유대인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지고 죄의 멍에를 벗고 아들이 주시는 자유를 얻어야 했다. 인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자유는 아브라함이 주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말씀하셨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1)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진리와 자유 또는 종이란 말씀을 사용하셨을 때 그들은 예수님의 이 말이 귀에 거슬렸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지손이라. 남의 종이 된 일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창세기 17장에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말씀을 그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굳게 믿었다. “내가 내 언약을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창 17: 7)
그뿐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이 선택한 거룩한 백성임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종이란 말은 가당치도 아니했으며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말이 그들에게 이해될 리가 없었다.
예수님은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닌 사실에 대하여 몇 가지 사실을 들려주셨다.
① 유대인의 육적 혈통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고 말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주님은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혈통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인 점에 대해서는 인정해 주셨다.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줄 아노라”라고 하셨다(37).
그러나 아브라함의 자손은 혈통적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에 의한 계약적인 것이 중요한 것임을 알아야 했다.
* 롬 2: 25-29 – 25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26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27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혈통으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언약으로 부르셨다.
* 창 12: 1-3 –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혈통으로 축복을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언약의 씨로 약속하셨다.
* 롬 9: 7-8 – 7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의로 여겨주실 때도 혈통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은 언약 관계로 주셨다.
* 창 15: 6 -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려면 먼저 아브라함의 행사를 해야 그 자격이 주어진다. 아브라함의 행사란 바로 믿음을 가리킨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나 있다.
하나는 후손에 대한 믿음이다.
* 롬 4: 18-22 –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이에 대하여 갈라디아서 3장에서는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라고 했다(갈 3: 9).
아브라함의 다른 하나의 믿음은 순종의 믿음으로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라고 말씀하고 있다(히 11: 8).
유대인들은 언필칭(言必稱)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랑하고 있었지만, 아브라함처럼 순종의 행사가 없었다.
② 진리에 대한 대적 행위
아브라함의 자손은 진리를 대적해서는 안 된다. 진리란 곧 복음을 말한다. 그리고 복음의 주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아브라함이 믿고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자손인 예수님 그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마귀의 행사를 하지 말아야 한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는 말하면서 그들이 하는 일은 마귀가 하는 일이었다.
마귀는 거짓을 말한다. 유대인들은 거짓으로 예수님을 대적했다. 마귀는 진리를 대적한다. 마귀는 그 자체가 진리의 대적자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끝까지 진리를 대적했다. 마귀는 살인자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로 존속했다. 아담을 유혹하여 영적인 살인을 자행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게 했다. 그 이후 계속하여 하나님의 참 종들을 수없이 죽였다. 그리고 지금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 하고 있다.
(2) 아들의 자유
아들이신 예수는 죄의 종의 멍에를 메고 있는 죄의 종들에게 자유를 주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라고 하셨다.
모든 인류는 모두 죄의 종들이다. 이 종의 멍에는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면서부터 젊어져 있는 짐으로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의의 표준인 율법을 이루지 못함으로 율법의 정죄함을 받고 있는 죄인들이다.
누구든지 이 죄의 멍에를 벗어버리지 못하면 그의 인생은 절망뿐이다.
* 롬 5: 2 -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예수님은 이 같은 인생들에게 참 자유를 주시기 위하여 오신 분이다.
자유란 말의 원어의 뜻은 고소당한 사람이 무죄가 선언될 때 얻는 자유를 말한다. 이 자유는 다시는 침해될 수 없는 자유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이 자유를 주시려고 이 세상에 보내심을 받으셨으며 이 자유 때문에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무죄를 선언해 주셨다.
요 8: 46 죄로 책잡겠느냐? -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도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
1]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라는 도언(挑言)은,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말씀이다.
이것은 큰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회개하신 일이 없는(죄가 없으시니 만큼) 사실도 그가 하나님이신 증거이지만, 여기 이 말씀도 그러하다.
2]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도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무죄자가 진리를 말씀하시는데, 듣는 자들은 그것을 믿을 것 밖에 없다.
아무리 진리를 말하여도 그 말하는 자 자신에게 허물이 있으면, 듣는 자들이 잘 믿어주지 않는다.
요 8: 47 듣지 아니함은 -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 하였음이로다. )
‘속한다.’라는 원어는 ‘---에게서 났다’라는 뜻이다.
1]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하나님께로 난 자녀들, 곧 중생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것이며 예수님을 영접할 것이다.
그들은 그리고 그들만 예수님을 믿고 그를 따를 것이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자녀를 가리킨다.
2]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우리 말에 끼리끼리란 말이 있다. 유대인들이 예수의 말을 믿지 아니하고 배척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 편의 사람이 아님을 입증한다.
요 8: 48 사마리아 사람 -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
유대인들이 그를 사마리아인이라고 부른 것은 그가 참 유대인이 아니고 이방인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말한 것은 예수께서 유대인들을 정죄하고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1]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유대인들은, 타락한 자와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를 가리켜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욕한다.
이 때에 그들은 자기들이 부패하여 하나님께 속하지 못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저희의 부패를 지적하신 예수님을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하며 욕하였다.
2]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또 귀신이 들렸다는 말은 건전한 정신이 아니라는 뜻이다. 유대인들이 그렇게 말한 것은 예수께서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왔고(42절) 자신의 말이 진리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46-47절) 말씀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사도 바울도 유대인들에게 이단이라는 말을 들었다.
* 행 24: 5 -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베스도 총독에게 미쳤다는 말도 들었다.
* 행 26: 24 -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주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사마리아인이라든가 귀신이 들렸다는 모욕적인 말을 들으셨다면, 오늘날 주의 일꾼 된 부족한 우리들이 그런 말이나 혹은 그보다 더한 말을 듣는다고 분노하거나 낙심할 것이 없을 것이다.
이단(라:haeresis, 영:herecy, 독:Ketzerei)이란 말의 희랍어 원뜻은 선택 혹은 선택된 것이란 말이었으나, 차차 어떤 단체나 조직의 권위로 규범이 된 어떤 교리나 신앙을 의식적이고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것을 일반적으로 의미하게 되었다.
천주교회에서는 교회에 계시된 어떠한 교의(dogma)의 진리라도 부인하는 영세받은 교인을 이단으로 정의한다. 천주교회에서는 "공식적인"(formal) 이단과 "질료적인"(material) 이단을 구분하여, 전자는 어떤 진리에 대한 신중하고 도전적인 부인을 의미하고, 후자는 무식하고 무지한 부인을 의미했다. 전자만이 죄로 인정되어 파문당했다.
이단은 배교(apostasy)와 교파 분열과 구별되었다. 19세기까지 개신교는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를 의도적으로 부인한 이단으로 일반적으로 취급되었다. 많은 개신교 교파들이 신앙고백을 하였지만 이것들은 양심에 의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그러나 성경의 진리를 믿는 것만은 예외로 하였다. 성서비평의 출현으로 이단을 정의하는 것이 다시 문제가 되었다. 쉴라이에르마허(1768-1834년)는 "기독교의 본질"을 정립하고 이단을 해석하려고 했으나 다소 왜곡되었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은 칼 바르트(1886-1968년)는 이단을 전반적인 교리를 가지고 어떤 요소를 의도적이고 독단적으로 추정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기독론을 중심으로 같은 비중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단의 문제는 한편으로 진리의 문제와 다른 한편으로 각 교파의 징계와 매우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으므로 권위의 근본적인 문제를 일으켰다.
(1) 이단의 정의
헬라어 원어는 독자적 견해, 자유로운 선택의 뜻으로 학파 종파 편당으로 사용되었다.
(2) 이단의 특성
① 이단은 처음의 주장과 끝이 다르다.
② 성경의 절대권을 부정한다.
③ 교주를 절대화 혹은 신격화시킨다.
④ 은혜 교리를 부정한다.
⑤ 삼위일체론을 부정한다.
⑥ 간음을 내밀 교리화시킨다.
⑦ 배타적인 구원론을 갖는다.
⑧ 시한부 종말론을 고조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죽이려 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 마귀의 자녀들이었다.
그들이 마귀의 자녀인 증거는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깨닫지 못하고(43, 47절), 받지 않고(37절), 믿지 않고(45-46절), 예수님을 사랑치 않고(42절), 도리어 죽이려 하기 때문이었다(37, 40절).
오늘날에도 마귀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성경적 기독교를 깨닫지 못하고 받지 않고 믿지 않는다.
또 주께서 보내신 참된 목사들과 복음 사역자들을 사랑하지 않는다.
둘째,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성경적 기독교를 깨닫고 받고 믿고 따른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 - 모든 사람은 이 둘 중의 하나이다.
여러분은 어느 쪽인가? 여러분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확신하고 그 앞에 복종하기로 결심하며 실천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