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국지의 세계에 탐닉하다
- 2부 장강의 영웅들 (219)
제9권 장강은 흐른다
제 29장 오자서(伍子胥)의 분노 (2)
안영(晏嬰)은 춘추시대 중, 후기를 통해 가장 군자(君子)다운 사람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그가 재상으로서가 아닌 인격적인 면에서 이런 평가를 받게 된 것은 온전히 그의 부단한 노력에 의해서였다. 그 대표적인 일화가 바로 월석보(越石父) 일화가 아닌가 싶다.
지난날이었다.
안영은 진(晉)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하는 도중 중모(中牟)라는 읍 가까이 이르렀을 때, 나무 그늘 아래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몇 사람의 노예를 보았다.
그 중 한 노예가 안영의 눈길을 끌었다. 그 노예는 찢어진 갖옷에 지친 몰골이었는데, 어딘지 모르게 여느 노예와는 다른 분위기를 풍겨내고 있었다.
안영(晏嬰)은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사람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먼지를 뒤집어쓴 거무튀튀한 얼굴이었으나 과연 눈동자 속에는 비천함이 아닌 당당한 빛이 서려 있었다.
'본래부터 천한 사람이 아니다. 군자의 기색이 엿보인다.'
이렇게 생각한 안영(晏嬰)은 그의 곁으로 다가가 슬그머니 앉아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는 물었다.
- 이름이 무엇이오?
- 저는 제나라 태생으로 월석보(越石父)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보(父)는 아무에게나 붙이는 이름이 아니다. 상당한 존칭이다. 그런 존칭을 이름에 붙이고 있는 것을 보면 그전에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안영(晏嬰)이 물었다.
- 어떻게 해서 여기에 오게 되었소?
그 노예는 순순히 대답했다.
- 죄를 지은 적이 있습니다. 그 대가를 받고 있는 것이지요.
- 얼마나 되었소?
- 3년쯤 되었습니다.
얘기를 나눌수록 그 노예의 인품과 지식과 언행이 안영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안영(晏嬰)은 그를 노예의 신분에서 풀어주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 속(贖) 할 수는 있소?
속이란 돈이나 재물을 주고 그 죄를 씻어주는 일을 말한다.
당시 노예는 두 종류가 있었다. 하나는 원래부터 천민인 경우였고, 다른 하나는 죄 지은 사람을 노예로 삼는 경우였다. 죄를 짓고 노예가 된 사람은 그 죄에 해당하는 속(贖)을 바치면 노예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안영의 물음에 월석보(越石父)는 놀라운 표정을 짓더니 대답했다.
- 있습니다.
- 좋소. 내가 그대를 속(贖)해주겠소.
안영(晏嬰)은 일어나서 노예의 주인과 협상했다.
주인은 안영의 수레를 끄는 좌참(左驂) 말을 요구하였다. 상당히 비싼 대가였다. 그러나 안영은 망설이지 않았다.
- 좋습니다.
거래는 성사되었다. 안영(晏嬰)은 월석보를 데리고 임치로 돌아왔다.
이때부터 월석보(越石父)는 안영의 식객이 되었다.
그런데 나라일이 바쁜 관계로 그 뒤 안영(晏嬰)은 월석보와 얘기 나눌 기회를 갖지 못했다. 아예 잊어버린 듯했다.
며칠이 지났을 때 월석보(越石父)가 안영의 방을 찾아와 노한 표정으로 말했다.
- 나는 이집에서 나가겠소.
이를테면 절교를 선언한 셈이었다. 안영(晏嬰)은 영문을 알 수 없어 물었다.
- 나 안영은 일찍이 그대를 알지 못하였지만 그대의 죄를 씻어주고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소. 그런데 그대는 또 무엇이 섭섭하다는 것이오?
월석보(越石父)가 대답했다.
- 내가 듣건대, 모름지기 사(士)란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사람에게는 굽히고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에게는 편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지난 3년 동안 남의 종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대는 나를 알아주고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는 나에게 예의(禮儀)를 갖추어 대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한마디 말을 건네지 않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나를 노예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상황이 이러한데 내 어찌 그대 앞에서 몸과 뜻을 펼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밖으로 나가 죄수의 몸으로 있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그래서 절교를 선언했던 것입니다."
- 아.................!
안영(晏嬰)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순간적으로 창피함이 일기도 했다. 나는 얼마나 교만했던가!
남의 일은 알지만 자기의 일은 모른다는 말이 맞구나. 그 동안 저 사람은 나를 얼마나 비웃었을까.
안영만큼 자성(自省)이 엄격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한순간 자신을 돌아보는 일을 망각하고 있었다. 그것을 안영(晏嬰)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 정말 송구하게 되었습니다. 지난번에는 그대의 겉모습을 보고 그대를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대의 진면목을 알았습니다.
- 모름지기 공실(功實)을 살피는 자는 명성을 얻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행실을 돌아볼 줄 아는 자는 잘못을 지니고 가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이제 나의 불민(不敏)함을 뉘우치겠습니다. 그대에게 사과드리는 바이니, 바라건대 나를 버리지 말아주십시오.
안영(晏嬰)은 명쾌하다 싶게 자신의 잘못을 빌었다.
그제야 월석보가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읍하며 대답했다.
- 선생께서 나를 예로써 대우하시니, 어찌 감히 명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이때부터 안영(晏嬰)은 월석보를 집안의 최고 귀빈으로 삼아 대접하였다.
안영의 자기 성찰은 가히 이와 같았다.
그가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곤액(困厄)을 당하지 않고 평생 자기 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자기 성찰의 덕분이 아니었을까.
안영(晏嬰)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일화가 또 하나 있다.
안영의 작은 키와 연관된 것으로 그의 수레를 모는 마부에 관한 이야기다.
이것은 <사기>의 <관안열전(管晏列傳)> 편에도 실려 있다.
안영의 수레는 네 마리 말이 끄는 사두마차다.
신분이 재상이었으므로 수레에는 큰 차양이 드리워져 있었다.
어느 날, 안영(晏嬰)이 외출을 하려고 하므로 마부가 먼저 나가 수레를 대기시켰다.
그는 수레에 올라 차양막 아래에 앉아 안영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 모습이 어찌나 의기양양했던지 마치 자신이 재상이 되기라도 한 듯한 표정이었다. 반면, 방을 나와 수레에 오르는 안영(晏嬰)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고, 몸가짐도 조심스럽고 겸손했다.
그 광경을 마부의 아내가 문틈을 엿보았다.
'한심하다.'
마부의 아내는 자신의 남편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얼마 후 남편이 귀가하자 마부에게 대뜸 청했다.
- 이혼합시다.
마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무슨 까닭이오?
아내의 대답인즉 이러했다.
- 안자(晏子)는 키가 여섯 자도 안 되는데, 제(齊)나라 재상이 되어 제후들 사이에 명성을 날리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그분의 외출하는 모습을 보니, 품은 뜻이 심오하고 자신을 낮추는 겸허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떠했습니까? 키가 여덟 자도 넘는데도 남의 마부 노릇을 하면서 대단히 만족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이혼을 청하는 이유입니다.
수레를 관리하는 사람으로는 세 종류가 있다.
어(御), 어(圉), 복(僕)이 바로 그것이다.
어(御)는 마부, 즉 운전자다. 어(圉)는 수레를 모는 말의 관리자다. 복(僕)은 수레 자체를 정비하는 사람이다.
같은 수레 관리자도 마부인 어(御)가 신분이 가장 높다. 대개 수레 주인의 심복 가신이 어자(御者)가 된다. 안영의 마부는 이 점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던 것 같다.
그런 중에 아내로부터 이 같은 얘기를 들었다. 마부는 몹시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다.
그 날 이후 그는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졌다. 절대로 으스대는 경우가 없었다.
어(圉)나 복(僕)에게도 공손히 대했다. 그의 변화는 안영의 눈에도 띄었다.
'이상한 일이로군.'
하루는 안영(晏嬰)이 마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마부는 고개를 숙이며 아내의 말을 그대로 들려주었다.
안영(晏嬰)은 마부의 아내에 대해 감탄했다.
아울러 자기 자신을 변화시킨 마부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제경공에게 추천하여 그 마부를 대부로 삼았다.
단순히 재미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마음을 숙연케 하는 그 무엇이 담겨 있는 일화다.
<사기>를 쓴 사마천(司馬遷)은 춘추시대 여러 인물 중 안영을 가장 높이 평가했다.
- 만약 안자(晏子)가 지금 살아 있다면 나는 그를 위해 마부가 되어 채찍 드리는 일도 서슴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나 흠모했으면 이런 말을 했을까.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첫댓글 연재 감사합니다.
오늘도역시 열공중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