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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 '대한민국 트리거60' ⑪> 독일 자주포는 북극 눈길서 멈췄지만…한국 K9은 문제없다 / 7/23(수) / 중앙일보 일본어판
한국이 미국 동맹국의 핵심 무기 공급국이 됐다.
12일(현지 시간) 미국 CNN은 이렇게 보도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대폴란드 무기 수출을 사례로 들었다. 폴란드는 2022년 한국과 K2 전차 1000대, K9 자주포 696문, FA-50 경공격기 48대, K239 청무 다연장로켓 290문을 구입하는 계약을 했다. 각종 부품 지원 등을 포함해 20조원(약 2조엔) 규모였다. 미국 싱크탱크 스팀슨센터는 지난해 한국 방위산업에 대해 공급망·기술·조선 등 분야에서 한미 협력을 확대하는 것이 가능해 미국은 한국 방위산업을 전략적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최근 성장하고 있는 대한민국 방위산업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초기에는 무모한 것이었다. 1971년 11월 10일 박정희 대통령은 김정렴 비서실장을 통해 국방과학연구소(ADD)에 긴급무기 개발 지시를 내렸다.
"M2 카빈, M1 소총, M1919A4·A6 기관총, 60mm 박격포, 81mm 박격포, 3.5인치 로켓포, 수류탄, 대전차 지뢰. 12월 30일까지 다 만들어 와라."
박 대통령은 "첫 번째 무기는 총구가 찢어져도 좋으니 시제품부터 만들어 순차적으로 개량해 쓸 수 있는 무기를 생산해야 한다"고 전했다.
주어진 시간은 불과 50일. 하지만 총포는커녕 검 하나 만들지 못한 게 당시의 실정이었다. 소총의 총구를 청소하는 막대기까지도 미국의 군사원조에 의존하던 때였다. 기술은커녕 장비·설비도 부족했다. 사업명 「번개(=번개) 사업」에는 「번개처럼 콩을 볶는 방식」이라고 하는 과학자의 흉중이 반영되어 있었다(조영길 지음 「자주국방의 길」).
박 대통령이 무리한 요구를 한 배경에는 당시의 엄혹한 안보 현실이 있었다. 북한 특수부대가 청와대를 습격한 1968년 121 사태와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1969년 미군 EC-121 조기경보기를 북한이 격추해 승무원 31명이 모두 사망한 사건 등 무력 도발이 계속됐다. 이런 가운데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1969년 7월 25일 미국의 동맹국들은 자국의 방위를 위한 일차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했다. 이어 1970년 7월 5일 미국은 주한미군 7사단 철수 사실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자주국방은 한국 생존의 필요조건이 됐다.
ADD는 밤낮으로 소총과 박격포를 개발했다. 설계도면이 전혀 없어 무기를 분해한 뒤 치수를 재고 도면을 그리는 역설계에 의존했다. 미국 무기교범을 찾으러 청계천 고서점에도 갔다. 대통령 지시 시한을 2주 앞당긴 71년 12월 16일 마침내 국산 무기 시제품 8점이 청와대 대접견실에서 공개됐다. 박 대통령은 환한 미소로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12월 26일 중공업 발전을 담당하는 청와대 오원철 경제2수석비서관을 불렀다. "우리도 평양을 공격할 수 있는 유도탄을 개발하자". 미사일 개발사업은 비밀리에 진행돼 "항공공업 육성계획"으로 불렸다.
번개 사업에 쫓기던 ADD에는 난리가 났다. 개발팀을 구성해 인력을 모았다. 해외에서 가세하는 연구원에게는 이사비용과 사택, 자가용까지 제공했다. ADD 연구원으로 근무하면 병역을 면제해주는 특례보충역 제도도 이때 생겼다.
1973년 1월 12일 박정희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중화학공업 육성에 중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최우석 방위산업학회 이사장은 "기계·화학·철강·조선업 등 중공업은 방위산업이 싹트고 자라는 토양 같다. 다른 나라에서도 방위산업 육성을 추진했지만 중공업 기반이 약하기 때문에 대부분 실패했다며 한국은 1980년대에 전기전자산업도 육성해 방위산업이 더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시간이 나면 대전기계창(현 ADD)을 찾아 유도탄 개발 상황을 점검했다. 1976년 취임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주한미군 지상군을 1982년까지 철수할 계획을 세웠다. 시간이 촉박했다. 한겨울 눈보라 속에서도 시험을 강행했다. 당시 연구원의 모습이 북극곰과 비슷하다고 해서 국산 미사일의 별칭은 '백곰(=백곰)'이 됐다. 1978년 9월 26일 백검은 공개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백곰과 함께 '불곰'이 한국 방위산업을 한 단계 높였다. 러시아는 한국이 빌려준 돈의 일부를 무기로 상환했다. 이것이 '불곰사업'(1995~2007년)이었다.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튼튼한 러시아 무기를 사용하면서 얻은 지식과 노하우는 무기 개발에 반영됐다. 이 때문에 한국 무기는 미국 무기(첨단·정밀성)와 러시아제(간편성·내구성)의 장점을 잘 도입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K9 자주포는 한국 방위산업 도약의 계기가 됐다. 98년 개발을 마치고 3년 뒤인 2001년 터키에 수출됐다. 외환위기 때문에 99년도 국방예산은 전년도에 처음으로 삭감되었다. 국방예산 삭감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K9의 육군 납품 대수가 대폭 감소했다. 이 때문에 생산기업인 삼성테크윈(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은 적극적으로 수출길을 열어야 했다. 2025년 7월 현재 K9은 9개국에 1690대가 팔리고 있다.
K9은 특히 2016년 1월 노르웨이가 실시한 비교시험에서 성능을 발휘했다. K9과 독일 PzH2000을 북극과 가까운 군기지에서 비교 평가했다. 독일 자주포는 눈길에서의 기동성 평가에서 우르릉거리는 비정상적인 소리를 내며 정지해 버렸다. K9의 승리였다.
2010년대 20억-30억달러였던 방위산업 수출액은 2021년에는 72억 500만 달러로 늘었다. 같은 해 12월 13일 호주와 체결한 K9 자주포 30문, K10 탄약운반장갑차 15대의 계약이 기폭제가 됐다. 그 후로는 수출이 순조롭게 늘었다. 그리고 대표적인 방산기업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시가총액은 지난 2년간 12조 8000억원에서 47조 4000억원으로 270% 증가했다.
2022년 7월 19일에는 국산 4.5세대 전투기 KF-21 보라매(=타카)가 첫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2001년 3월 20일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늦어도 2015년까지 최신예 국산 전투기를 개발하겠다고 밝힌 지 21년 만이었다. 미국이 핵심기술 이전을 거부했지만 자국 개발로 돌파했다.
2022년 7월 27일은 한국 방위산업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폴란드와 20조원에 이르는 방산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같은 해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이유였다. 러시아와 가까운 폴란드는 군사력을 강화했다. 폴란드가 처음 고려한 독일은 탈냉전 이후 방위산업 생태계가 무너져 납기를 지키기 어려웠다. 북한과 군사적 대립을 위해 지속적으로 무기를 개발·생산·배치해 온 한국에게 폴란드는 기회의 땅이었다.
꾸준한 세일즈도 기여했다. 2021년 9월 '폴란드가 탱크를 조달한다'는 소문을 듣자 방위사업청 관계자가 바로 폴란드로 향했다. 이듬해 계약까지 1년이 채 되지 않는 동안 관계자들은 폴란드를 13차례 방문했다.
강은호 전 방위사업청장(전북대 특임교수)은 후발주자이기 때문에 방위산업뿐 아니라 상대국이 원하는 다른 분야의 협력까지 제공하는 마케팅을 했다고 설명했다. 오는 2022년 문화재청이 이집트 국가유물최고위원회와 룩소르 라메세움 신전 복원과 6개 박물관 소장 유물 디지털화에 협력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집트가 필요로 하는 사업에 정부개발원조(ODA)를 제공한 것이다. 당시 한국은 이집트에 K9을 판매하려고 했고 방위사업청과 문화재청이 합의했다. 결국 이집트는 200문의 K9을 계약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을 방산 4대 강국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앞으로 한국 방위산업에 꽃길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선진국의 견제가 강화됐다. 특히 독일·프랑스는 유럽을 내주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강 전 청장은 "방산은 전형적인 GtoG(정부 대 정부) 사업"이라며 "이 대통령이 신설하겠다고 한 방산 컨트롤타워를 조속히 설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선진국 시장, 특히 미국 시장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철재/국방기자
<創刊企画「大韓民国トリガー60」⑪>ドイツ自走砲は北極の雪道で停止したが…韓国K9は問題なし
<創刊企画「大韓民国トリガー60」⑪>ドイツ自走砲は北極の雪道で停止したが…韓国K9は問題なし
7/23(水) 13:50配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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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央日報日本語版
1972年4月3日、朴正熙大統領が前方部隊で開かれた稲妻事業試験発射行事場所で試作品を見ている。 [e映像歴史館]
「韓国が米国の同盟国の核心武器供給国になった」。
12日(現地時間)、米CNNはこのように報道した。そして韓国の対ポーランド武器輸出を事例に挙げた。ポーランドは2022年、韓国とK2戦車1000台、K9自走砲696門、FA-50軽攻撃機48機、K239チョンム多連装ロケット290門を購入する契約をした。各種部品支援などを含めて20兆ウォン(約2兆円)規模だった。米シンクタンクのスティムソンセンターは昨年、韓国の防衛産業についてサプライチェーン・技術・造船などの分野で韓米協力を拡大することが可能で、米国は韓国の防衛産業を戦略的資産と認識していると分析した。
このように最近成長している大韓民国の防衛産業は最初から順調だったわけではない。初期は無謀なものだった。1971年11月10日、朴正熙(パク・ジョンヒ)大統領は金正濂(キム・ジョンリョム)秘書室長を通じて国防科学研究所(ADD)に「緊急兵器開発指示」を出した。
「M2カービン、M1小銃、M1919A4・A6機関銃、60ミリ迫撃砲、81ミリ迫撃砲、3.5インチロケット砲、手榴弾、対戦車地雷。12月30日まですべて作って来い」。
朴大統領は「最初の武器は銃口が裂けてもよいから試作品から作り、順次改良して使える兵器を生産するべき」と伝えた。
与えられた時間はわずか50日。しかし銃砲どころか剣一つ作れなかったのが当時の実情だった。小銃の銃口を掃除する棒までも米国の軍事援助に依存していた頃だった。技術どころか装備・設備も不足していた。事業名「ポンゲ(=稲妻)事業」には「稲光のように豆を炒る方式」という科学者の胸中が反映されていた(チョ・ヨンギル著『自主国防の道』)。
朴大統領が無理な要求をした背景には当時の厳酷な安保現実があった。北朝鮮特殊部隊が青瓦台(チョンワデ、韓国大統領府)を襲撃した68年の1・21事態と蔚珍(ウルジン)・三陟(サムチョク)武装共産軍浸透、69年に米軍EC-121早期警戒機を北朝鮮が撃墜して乗務員31人が全員死亡した事件など武力挑発が続いていた。こうした中、リチャード・ニクソン米大統領は69年7月25日、「米国の同盟国は自国の防衛のための一次的責任を負うべき」という「ニクソンドクトリン」を発表した。続いて70年7月5日、米国は在韓米軍第7師団撤収の事実を一方的に伝えた。自主国防は韓国生存の必要条件となった。
ADDは昼夜を問わず小銃と迫撃砲を開発した。設計図面が全くなく、武器を分解した後、寸法を測って図面を描く逆設計に依存した。米国武器教範を探しに清渓川(チョンゲチョン)古書店にも行った。大統領の指示期限を2週間操り上げた71年12月16日、ついに国産武器試作品8点が青瓦台の大接見室で公開された。朴大統領は明るい笑顔で「最高のクリスマスプレゼント」と語った。
朴大統領は12月26日、重工業の発展を担当する青瓦台のオ・ウォンチョル経済第2首席秘書官を呼んだ。「我々も平壌(ピョンヤン)を攻撃できる誘導弾を開発しよう」。ミサイル開発事業は秘密裏に進められ「航空工業育成計画」と呼ばれた。
稲妻事業に追われていたADDには大騒ぎになった。開発チームを構成して人材を集めた。海外から加わる研究員には引っ越し費用と社宅、自家用車まで提供した。ADD研究員として勤務すれば兵役を免除する特例補充役制度もこの時に生じた。
73年1月12日、朴正熙大統領は新年の記者会見で重化学工業育成に重点を置くと明らかにした。チェ・ウソク防衛産業学会理事長は「機械・化学・鉄鋼・造船業など重工業は防衛産業が芽生えて育つ土壌のようだ。他国でも防衛産業の育成を進めたが、重工業基盤が弱いためほとんどが失敗した」とし「韓国は80年代に電気・電子産業も育成し、防衛産業がさらに発展した」と説明した。
朴大統領は時間があれば大田(テジョン)機械廠(現ADD)を訪れて誘導弾開発状況を点検した。76年に就任したジミー・カーター米大統領は在韓米軍地上軍を82年までに撤収する計画を立てた。時間が迫っていた。真冬の吹雪の中でも試験を強行した。当時の研究員の姿が北極グマに似ているとして国産ミサイルの別称は「ペクゴム(=白熊)」となった。78年9月26日、ペクゴムは公開試験発射に成功した。
ペクゴムと共に「プルゴム」が韓国の防衛産業を一段階高めた。ロシアは韓国が貸した資金の一部を武器で償還した。これが「プルゴム事業」(1995-2007年)だった。洗練されていないが丈夫なロシア武器を使用しながら得た知識とノウハウは武器開発に反映された。このため韓国の武器は米国武器(先端・精密性)とロシア製(簡便性・耐久性)の長所をうまく取り入れたという評価を受ける。
K9自走砲は韓国防衛産業飛躍のきっかけとなった。98年に開発を終え、3年後の2001年にトルコに輸出された。通貨危機のため99年度国防予算は前年度で初めて削減された。国防予算の削減はこれが最初で最後だ。K9の陸軍納品台数が大幅に減少した。このため生産企業のサムスンテックウィン(現ハンファエアロスペース)は積極的に輸出の道を開か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2025年7月現在、K9は9カ国に1690台が売れている。
K9は特に2016年1月にノルウェーが実施した比較試験で性能を発揮した。K9とドイツPzH2000を北極に近い軍基地で比較評価した。ドイツ自走砲は雪道での機動性評価でゴロゴロという異常な音を出して停止してしまった。K9の勝利だった。
2010年代に20億-30億ドルだった防衛産業の輸出額は、2021年には72億500万ドルに増えた。同年12月13日にオーストラリアと締結したK9自走砲30門、K10弾薬運搬装甲車15台の契約が起爆剤となった。その後は輸出が順調に増えた。そして代表的な防衛産業企業ハンファエアロスペースの時価総額は過去2年間に12兆8000億ウォンから47兆4000億ウォンへと270%増加した。
2022年7月19日には国産第4.5世代戦闘機KF-21ボラメ(=タカ)が初の試験飛行に成功した。金大中(キム・デジュン)大統領が2001年3月20日の空軍士官学校卒業式で「遅くとも2015年までに最新鋭国産戦闘機を開発する」と述べてから21年ぶりだった。米国が核心技術の移転を拒否したが、自国開発で突破した。
2022年7月27日は韓国防衛産業史で重要な分岐点だった。ポーランドと20兆ウォンにのぼる防衛産業協力契約を締結した。同年2月24日のロシアによるウクライナ侵攻が理由だった。ロシアと近いポーランドは軍事力を強化した。ポーランドが最初に考慮したドイツは、脱冷戦後に防衛産業の生態系が崩れて納期を守るのが難しかった。北朝鮮と軍事的対立のため持続的に武器を開発・生産・配備してきた韓国にとってポーランドは機会の地だった。
根気強いセールスも寄与した。2021年9月に「ポーランドが戦車を調達する」という噂を聞くと、防衛事業庁の関係者がすぐにポーランドに向かった。翌年の契約まで1年足らずの間に関係者はポーランドを13回訪問した。
姜恩瑚(カン・ウンホ)元防衛事業庁長(全北大特任教授)は「後発走者であるため防衛産業だけでなく相手国が望む他の分野の協力まで提供するマーケティングをした」と説明した。2022年に文化財庁がエジプト国家遺物最高委員会とルクソール・ラメセウム神殿の復元と6カ所の博物館の所蔵遺物デジタル化に協力することにしたのが代表的な例だ。エジプトが必要とする事業に政府開発援助(ODA)を提供したのだ。当時、韓国はエジプトにK9を販売しようとし、防衛事業庁と文化財庁が合意した。結局、エジプトは200門のK9を契約した。
李在明(イ・ジェミョン)大統領は韓国を「防衛産業4大強国」にすると約束した。しかし今後、韓国防衛産業に花の道があるわけではない。何よりも先進国の牽制が強まった。特にドイツ・フランスは欧州を明け渡さないよう全力を注いでいる。
姜元庁長は「防衛産業は典型的なGtoG(政府対政府)事業」とし「李大統領が新設すると話した防衛産業コントロールタワーを早期に設置しなければいけない」と強調した。続いて「先進国市場、特に米国市場を必ず確保するべきだ」と助言した。
イ・チョルジェ/国防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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